비동맹

비동맹은 냉전 초기에 세계가 서로 경쟁하는 두 진영으로 나뉘면서 등장했다. 세계 질서가 급변하는 시기였다. 미국이 세계 최초로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한 직후였고 세계의 과반을 차지하는 식민지들이 자유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새로 독립한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유고슬라비아와 다른 많은 국가들이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 양쪽 모두에 가입하기를 거부하며 두 진영과의 협상력을 높이고 다른 국가의 싸움에 덜 휘말리게 됐다

비동맹이 탄력을 받은 것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였다. 당시 비동맹은 탈식민화, 군비 축소, 인종차별과 아파르트헤이트와의 싸움에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1955년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이 모인 반둥회의에는 필리핀이나 이라크 등의 미국 동맹국들과 중국 등의 소련 동맹국들도 참여했다. 1961년에는 비동맹운동(NAM)이 설립돼 오늘날 120개국과 20개의 참관국을 아우르는 조직으로 비동맹이 부분적으로 제도화됐다.


비동맹 국가들

  • 인도는 가장 먼저 비동맹을 주창했던 국가 중 하나다. 그것은 1947년 독립과 함께 선택의 자율성을 갖게 된 인도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것은 또한 현실적인 정책적 대응이기도 했다. NATO도 바르샤바 조약도 인도가 중시하는 개발이나 안보에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다. 인도가 상대 진영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경쟁 덕분에 인도는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얻어낼 수 있었고, 진영에 상관없이 자국의 정책과 맞는 나라와 협조함으로써 인도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비동맹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

  • 냉전 추진에 앞장 선 존 덜레스와 같은 사람들은 비동맹을 비도덕적이라 치부했다. 이런 태도는 요즘 미국이나 중국의 강경파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볼 수 있다. 냉전 기간 동안 우위를 점한 강대국이었던 미국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의 적’이라는 태도를 취했다. 상대적으로 약했던 소련은 미국과는 달리 이미 스탈린의 사망 이전부터 비동맹국가들과 등을 지키기보다는 협력하는 것이 더 생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