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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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윈저 왕조 제5대 국왕 빅토리아 3세 Victoria I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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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2021년 7월 11일 | ||||||||||||||
영국 잉글랜드 런던 버킹엄 궁전 | |||||||||||||||
사망 | 2021년 10월 17일 (향년 60세) | ||||||||||||||
영국 잉글랜드 런던 버킹엄 궁전 | |||||||||||||||
묘소 | 윈저 성 세인트 조지 예배당 | ||||||||||||||
재위기간 | 그레이트브리튼왕국 여왕 | ||||||||||||||
2021년 7월 30일 ~ 2021년 10월 17일 | |||||||||||||||
캐나다 자치령 여왕 | |||||||||||||||
2021년 7월 30일 ~ 2021년 10월 17일 | |||||||||||||||
인도제국 여제 | |||||||||||||||
2021년 7월 30일 ~ 2021년 10월 17일 | |||||||||||||||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여왕 | |||||||||||||||
2021년 7월 30일 ~ 2021년 10월 17일 | |||||||||||||||
뉴질랜드 여왕 | |||||||||||||||
2021년 7월 30일 ~ 2021년 10월 1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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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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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영국의 여왕이자 인도 제국의 여제이며 윈저 왕조의 제5대 군주. 대영제국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군주이다.
작위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왕국의 여왕, 신앙의 수호자, 인도제국의 여제, 캐나다 자치령의 여왕,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의 여왕, 뉴질랜드의 여왕, 남아프리카 연방의 여왕, 몰타의 여왕, 나이지리아의 여왕, 파푸아뉴기니의 여왕, 말레이의 여왕, 대한국의 여왕, 지브롤터와 홍콩의 여왕, 버뮤다와 자메이카의 여왕, 가터 기사단장, 바스 기사단장, 영국령 인도 기사단장이신 빅토리아 여왕 폐하 — 공식적인 칭호
- 빅토리아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Princess Victoria (2021년 07월 11일 ~ 2021년 07월 30일)
- 여왕 폐하 Her Majesty The Queen (2021년 07월 30일 ~ 2021년 10월 17일)
생애
즉위 배경
빅토리아 3세는 앨버트 국왕의 직계손녀이자 헨리 1세 국왕의 장녀로, 다른 아들이 태어났다면 왕위에 오르기 힘든 입장이었으나 마거릿 왕비가 빅토리아 3세 외에 자녀를 더 두지 못한 상황이 발생해 즉위가 가능했다.
어린 시절
2021년 7월 11일, 헨리 1세 국왕과 마거릿 왕비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마거릿 왕비는 빅토리아 공주가 마치 푸딩같다며 자식인 빅토리아 공주를 매우 좋아하였다. 당시 영국 왕실은 위기에 놓여있었다. 빅토리아 공주의 할아버지인 앨버트 국왕이 친위 반란을 통해 왕위에서 내려오며, 아버지 헨리 1세가 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정국이 불안정한 상태였다.
헨리 1세 국왕은 궁내부를 통해 차기 여왕이 될 빅토리아 공주를 엄격히 교육하고자 하였다. 빅토리아 공주는 하지만 지식 능력이 풍부하여 이러한 교육을 손쉽게 끝냈으며 이에 놀란 영국 언론이 많은 호평을 하였다. 빅토리아 공주는 사교 무대에도 엄청 일찍 데뷔하였다. 무려 5살때부터 사교계에 입문하여 많은 영국 귀족, 정계 인사들의 청혼을 받았고 파파라치가 늘 따라다녔다.
빅토리아 공주는 베네치아 공화국을 비롯해 부왕 헨리 1세 국왕과 함께 여러 외교 업무를 수행하며 장차 여왕으로써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많은 타국 국민들도 빅토리아 공주를 헨리 1세 국왕보다 더 반겼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영국령 몰타를 빅토리아 공주가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때 몰타 총독과 데이트를 한다는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린 언론인 윤석이 처벌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너무나 커지는 빅토리아 공주의 인기로 헨리 1세 국왕이 언론을 향한 경고를 한 것이다.
그러던 2021년 7월 30일, 어머니 마거릿 왕비가 사망했다. 하지만 왕비의 국장을 진행하기도 전에 국내에서 대형 사태가 터지고 만다.
여왕 즉위
대관식 직후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찍은 초상사진
2021년 7월 30일, 아버지 헨리 1세가 라인코리아 총리와 함께 외세에 의한 협박을 받고 국내 테러를 감행한다. 테러 이후 자책감으로 스스로 퇴위하였고, 빅토리아 공주는 15세의 나이로 영국의 여왕으로 즉위했다. 2020 섭정법에 따라 섭정자가 빅토리아 3세 여왕이 장성할 때까지 섭정해야했지만 부왕 헨리 1세의 퇴위, 모후 마거릿 왕비의 사망, 그외 고령인 왕실 구성원들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섭정을 할 사람이 없었다. 당시 왕실 최고어른인 대왕대비 이리야가 섭정을 했어야했지만 그녀는 지식이 부족하다며 의회에서 섭정자로 임명하지 않았다.
대관식 직후 버킹엄궁전 발코니 행사.
즉위 당일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빅토리아 3세 여왕은 대관식을 치룬다. 간소한 대관식을 빠르게 치룬 여왕은 직접 전두지휘하여 국내 회복, 성장을 일으킨다. 이때 많은 국민이 하나로 단합되며 영국 왕실의 위상, 빅토리아 3세의 대한 인기는 엄청나게 높아지기 시작한다.
치세
빅토리아 3세 여왕은 이른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전성기의 영국을 통치한 여왕이었다. 이 시기 영국은 자본주의 선진국이 되는 동시에 본격적인 정당제 의회정치가 전개되었고, 특히 문화력이 증강하며 소프트파워가 카국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80일간의 긴 치세를 통해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따라 영국 군주제를 확립했다.
치세 전기
결혼 기념 버킹엄궁전 발코니 행사
8월 4일, 빅토리아 3세 여왕은 왓 가문에 속한 앨버트와 결혼을 하게 된다. 빅토리아 3세 여왕이 버킹엄궁전에서 고백하여 앨버트 공이 청혼을 수락하였다고 한다. 또 국내 복구 시기에 해당하였기에 모후 마거릿 왕비의 국장은 물론 자신의 결혼식 또한 치루지 않았고 문서상으로만 진행하였다.
8월 10일, 왕실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 이리야가 노환으로 인해 사망한다. 대왕대비 이리야의 사망으로 빅토리아 3세가 사실상 왕실 최고 어른이 되었으며 빅토리아 3세는 할머니의 슬픔에 매우 슬퍼하였다고 한다.
빅토리아 3세 여왕이 차를 운전하고 있으며, 조지 7세가 탔다.
8월 11일, 빅토리아 3세 여왕과 앨버트 공은 켄싱턴 궁전에서 행복한 신혼 여행을 즐겼다. 빅토리아 3세와 앨버트 공이 이후 회고하기를, 켄싱턴 궁전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또 얼마 안가 켄싱턴 궁전에서 장남 조지 7세를 낳게 된다. 웨일스 공으로 책봉된 조지 7세는 여왕 부부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앨버트 공이 정치적 야심을 들어내며 빅토리아 3세와 정치적 의견 충돌로 인해 결혼 생활이 갈수록 파국으로 가고 만다.
8월 12일, 국내 재건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이에 런던에서 2021 런던 올림픽이 개최된다. 이 올림픽은 역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올림픽이였다. 빅토리아 3세 여왕이 개회를 선언하였으며 수십명이 참가하였다. 또 BBC의 중계로 다른 카국인들도 지켜보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영제국의 문화가 입김을 타기 시작한다. 또 당시 시행중이던 국적법에 따라 대영제국 외 국가에서 활동할 순 없었는데 이 법을 많은 국민들이 이행하며 카국 내 독자적인 인구력을 가지게 되었고 인구는 수십 배 이상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윈저 성에서 무도회가 열린 모습이다.
빅토리아 3세 여왕은 사치를 매우 즐겼다. 버킹엄 궁전, 세인트 제임스 궁전, 윈저 성, 샌드링엄 하우스, 크림 하우스, 켄싱턴 궁전, 벨모랄 성 등 여러 궁전을 건설, 확장함은 물론, 여러 그림과 장식품울 구매, 수많은 옷과 보석을 모으며 사치를 즐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궁이던 버킹엄 궁전만 17번 이상의 공사로 크기가 10배 이상 커졌다. 하지만 이 자산들은 모두 후대 영국 왕실의 권위 상승에 큰 도움이 되었다. 사교 행사 또한 매주 진행함으로써 사교계 문화를 발전시켰다. 시녀제도 또한 시행하면서 왕실을 모시는 궁정 인사들을 대폭 증가시켰다.
빅토리아 3세 여왕은 또 제국주의를 옹호하였다. 당시 잘 나가던 카국들을 침공, 압박하여 수많은 인구를 대영제국에 유입시키고 식민지화를 통해 영국의 영향력을 대폭 확장시켰다. 당시엔 클랜계의 후원으로 카국을 호령하던 엘피스 제국, 그리고 신흥 국가로 성장한 스페인 제국, 이탈리아 공화국 등이 차례로 무너지며 대영제국을 막을 또 다른 대형 국가가 전혀 없던 상황이였다.
여왕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주의, 도덕주의에 쏠려있었다. 하지만 진보주의적 정책을 밀어붙이던 당대 총리들의 주장을 대부분 수락하며 입헌군주제 수호를 우선시 하였다. 또한 곰을 비롯한 신세대 인사들이 영국 영향력 확장에 큰 긍정적 영향을 주자, 그들이 국정을 운영하는 것에 견제 없이 무조건적인 지지를 하는 편이였는데, 이는 결국 부정부패와 왕권 약화로 지속되어 증손주 헨리 2세 때 왕권이 붕괴되고, 그 이후 즉위한 엘리자베스 5세때 2022년 태명라인-대영제국 전쟁으로 번지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또 국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외부인 유입을 계속하여 허용하였는데 이는 2024년 태명라인-대영제국 전쟁으로 번지게 되는 원인이 되고 만다.
8월 28일, 재위 30일 기념일인 골든 주빌리를 맞이한다.
치세 중기
남편 앨버트 공의 정치적 야심이 극에 달하며 빅토리아 3세에게 국서의 권한을 사실상 강화시키라고 요구하였다. 군주가 하는 일에 여러 개입하고, 또 왕실법을 자신이 지키지 않아 빅토리아 3세가 잔소리를 하면 밥먹듯이 별거하였다. 또 빅토리아 3세는 장남 조지 7세로 족하였지만, 당시 궁정 내에서 전권을 쥐고 있던 앨버트 공의 정치적 압박으로 차남 앤드루 왕자가 탄생하였다.
빅토리아 3세가 30대를 맞이하던 9월, 텍사스 공화국의 수반이던 도이치가 대영제국을 향한 공격을 감행했다가 실패하였다. 이에 대영제국은 더 강력한 보복으로 텍사스 공화국에 대한 인구, 외교적 제재를 시작한다. 이때부터 영국과 텍사스의 냉전 시작된 것이다. 한편 자메이카를 비롯해 식민지 몇 국가들이 영국 정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켜 빅토리아 3세가 골치아프던 시기였다. 이에 빅토리아 3세 여왕은 식민지는 물론이고 주요 카국들을 방문하여 영국의 외교력 입지를 강화하였다.
장남 조지 7세가 메리 케펠과 결혼한다. 메리 케펠은 이후 메리 왕비가 되는 인물이다.
9월 26일, 재위 60일 기념일인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맞이한다.
치세 후기
10월 2일, 차남 앤드루 왕자가 주요 정계 인사들과 함께 여왕과 웨일스 공을 시행하여 앤드루 왕자를 왕위에 올릴려는 역모 논의를 하였다. 결국 이 논의는 무산되었으나, 빅토리아 3세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왕은 차남과의 사이가 멀어지기 싫어 이 사건을 은폐하였고 대신 보란듯이 앤드루 왕자를 왕실 행사에서 배제하기 시작했다.
10월 7일, 항상 형 조지 7세에게 밀려 궁정에서 찬밥 친세이던 차남 앤드루 왕자가 해산물이나 잡던 평민 앨리스와 결혼하게 된다. 앤드루 왕자는 결혼 이후 불안정한 정신상태를 회복하였다.
10월 13일, 남편 앨버트 공이 사망하며 오랜 결혼생활이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이미 결혼생활이 파국이 된 상태라 빅토리아 3세는 별 감정없이 그의 국장을 치루었다. 앨버트 공이 살아있었을 당시엔 조지 7세, 앤드루 왕자가 아버지 앨버트 공을 더 따랐는데, 앨버트 공이 죽자, 장남 조지 7세는 빅토리아 3세의 눈치를 보며 굽신거렸다. 하지만 차남 앤드루 왕자는 끝까지 어머니를 원망하는 눈치 였다고 한다.
10월 17일, 스페인 황태녀 부부가 영국 버킹엄궁전에 방문하게 된다. 무도회와 각종 연회로 성대하게 맞이했으며 모든 영국 왕실 가족들이 스페인 황태녀 부부를 맞이했다. 모두 끝난 직후 앤드루 왕자는 이탈리아 공화국을 방문해 대접을 받는다. 앤드루 왕자가 방문이 끝나고 런던에 복귀하였을때 여왕이 갑자기 몸이 안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게된다.
사망
빅토리아 3세의 장례 행렬
모든 영국인들이 부모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영국 운영부
나는 왕이 아니다. 새로운 웨일스 공 조지가 앞으로 위대한 군주로 군림할것이다. — 여왕의 유언
빅토리아 3세 여왕은 스페인 황태녀 부부의 접견을 마친 직후 갑작스럽게 쇠약해지더니 오후 6시 45분 버킹엄궁전에서 승하하였다. 공식적인 사망원인은 노환으로 밝혀졌으나 과도한 직무로 인한 스트레스도 한몫 한다고 전해졌다. 여왕이 생전에 참여한 공식행사만 약 280개, 방문한 국가만 약 50곳으로 매우 많았다. 정부는 10월 17일부터 10월 21일까지 국가애도기간 및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장남 조지 7세가 왕위를 계승받았고, 빅토리아 3세 여왕의 장례식은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거행됬으며 먼저 세상을 떠난 에든버러 공작 앨버트 옆의 안장되었다.
자녀
자녀 | 이름 | 출생 | 배우자/자녀 |
1남 | 조지 7세 (The Prince of Wales) | 2021년 8월 11일 | 메리 왕비 에드워드 4세 |
2남 |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The Duke of York) | 2021년 9월 4일 | 요크 공작부인 앨리스 요크 공녀 엘리자베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