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언뜻 보면 다 깜짝 놀라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며, 동네의 친구들에게 어린아이를 구해 주었다는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 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
| 맹자 |
성선설(性善說)은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성품은 선하게 타고난다는 주장을 의미한다.
상세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선진 유교 사상가 맹자가 주장한 학설이다.
성선설을 주장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맹자가 있으며, 옛 문헌을 살펴보면 맹자 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대조되는 관점에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보는 성악설이 있으며, 대표적인 학자는 고대의 철학자 순자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성무선악설도 있다.
위의 우물에 빠진 아이의 사례에서 언급했듯이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구조할 의무가 있든 없든 대부분의 사람은 기꺼이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동한다는 것이다.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고서라도 위의 맹자가 말했던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하는 것을 포함하여 자살 시도자를 저지하려는 행동이나 우울한 사람을 위로하고 북돋는 행동 등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슨 의도가 있어서, 자신이 이득을 얻거나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본디 선(善)을 취하는 입장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대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선행을 취하거나 약하고 불쌍한 이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들이 성선설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선설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독립적인 인간에게 오직 선함만을 타고났다고 착각될 수도 있으나 이 이론에선 '인간의 본성'과 '동물의 본능'이 구분되어 있고 인간이 둘 모두 동시에 갖고 태어난다는 의미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인간은 주변 환경이나 교육 등으로 '인간의 본성'을 발달시키지 못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악해질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끊임없이 선한 환경과 교육 등을 제공하여 선한 본성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성선설이 '선하지 않은 새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짤도 있는데 아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사실이 아니며 성선설, 그 중에서도 맹자의 학설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동양
현대 사회에서 '맹자'하면 '성선설', '성선설 '하면 '맹자'를 떠올린다. 이는 반대 학설을 주장한 순자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성선설에 대해 현대인의 가장 큰 오해는 성선설을 인간은 선한 존재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맹자는 인간을 선한 존재가 될 가능성을 품은 존재라고 설파한다. 이게 무슨 차이냐면 현대인은 단편적으로 "선하니까 계속 선하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맹자는 "수양하면 내면의 선성을 쌓아 성인군자가 될 수 있다, 그 수양을 방해하는 내외적인 문제가 그 수양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1]
때문에 맹자는 사람의 선성을 기르는 교육제도와 자기 수양 그 자체도 중요시하지만[2], 개혁의 대상을 사람 개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로 극대화한다.
반대의 경우인 순자와의 대조를 보면 더 두드러지는 데, 순자는 교육제도와 법률제도로 본래 악한 사람을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순자의 사상을 이은 법가는 국민 개개인을 엄격히 통제하며, 한비자와 같은 철혈 재상을 탄생시켰다. 반면 맹자의 가르침에 심취한 정도전은 결국 역성혁명을 일으켜 나라의 정체성 자체를 바꾸려 시도했다.
즉, 맹자의 주장의 요체는 결국 "인간은 원래 선한 존재이고, 스스로의 수양으로 대장부가 될 수 있는 존재이나,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가 인간을 악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세상을 바로 잡아야한다."가 된다. 그리고 이 "바로잡힌 세상"으로 맹자는 현대식으로 말하면 최소한의 일자리 보장제 등 복지라 할 수 있는 항산(恒産)과 군자가 인의(仁義)로서 다스리는 왕도정치를 주장했다.
이런 식의 "바로잡힌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론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역성혁명론이다. 왜냐하면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 즉 시스템의 정점이 바로 왕, 즉 정부이기 때문이다.
결국 성악설이든 성선설이든 "지금 돌아가는 세상 꼬라지가 정상은 아님"을 인정한다. 다만 그 악의 근원이 개인 내면에 있느냐, 아니면 돌아가는 세상 그 자체에 있느냐로 학설이 나뉜 것이다. 이 학설들은 철학의 대표적인 쟁점 중 하나인 인성론(人性論)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철학자인 맹자와 순자가 주장한 학설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이기 때문에 맹자=성선설, 순자=성악설과 같은 간단한 도식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고(李翶)의 성선정악설(性善情惡說)도 성선설에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만, 감정은 그런 본성을 발휘하는 것을 방해하므로 악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의는 대한민국 유학에도 영향을 끼쳐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서 일어난 사단칠정과 같은 논쟁을 낳았다.
서양
학문적 관점
정치적 관점
철학적 관점
종교적 관점
불교
불교에서는 여래장 계열이 중생들의 번뇌보다 중생들 마음 속에 감춰진 불성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깨달아서 보살도를 실천해 중생을 이롭게 하고 해탈로 이끌 수 있는 자질은 모든 인간과 중생에게 두루 내재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 점에서는 성선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단, 유의해야 할 점은 불교에서는 선이나 악 중 어느 개념에도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고 가르친다는 점이다. 역시 여래장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선불교에서, 혜능 선사가 '선도 악도 생각하지 않았을 때 당신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던진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렇다고 성무선악설이라고 보기도 어려운데, 인간의 기본 욕구를 인간의 본성으로 단정하지는 않으며 무명으로 말미암아 지은 업의 과보라고만 보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그러한 욕구를 따랐을 때 발생하는 현상계에서의 유익함과 해로움을 명확히 꿰뚫어 알 것을 요구하므로 '선악 따위는 없다'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부파를 막론하고, 불교에서는 인간이 전도된 망상으로 인해 계속 연기에 의한 업을 지어가는 존재이며 이로 인해 선업과 불선업을 짓게 된다고 본다. 이를 보면 성악설과 비슷한 요소도 일부 엿보이면서도, 성악설이라고 무 자르듯이 분류하기도 어렵다. 성선과 성악을 동시에 인정하나 이 둘 역시 극복해야 한다는 입장에 더 가깝다. 구체적인 실현 방법론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 연기의 연쇄로부터 자유로워져 열반에 드는 것이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그리스도교
기독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대립하던 펠라기우스파의 주장이 성선설에 가까우나[3] 논쟁에서 패배해서 5세기경 이단 판정을 받았다. 다만 기독교 또한 인류의 영혼은 신(하느님)의 영혼을 본떠서 만들어졌지만 나중에 타락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연법이 마음에 심어져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성선설적이라고 볼 수 있는 면도 부분적으로 있다. 예를 들어 가톨릭 성인이자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윤리학의 기본 전제는 '인간은 최선을 의욕한다'이다. 인간이 최선을 욕구하므로 결국은 최선 그 자체이신 신에 다다를 수밖에 없으나 악한 경향에 이끌린다고 보았다. 또한 악은 단순히 선의 부재로, 순수선(=신)은 존재하지만 순수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후기성도교회는 이슬람과 비슷한 이유로 성악설을 인정하지 않고, 성선설을 주장한다.
이슬람
이슬람의 교리도 성선설에 가까운 내용을 포함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누구나 순수한 상태로 깨끗하게 태어나며, 기독교의 원죄론을 인정하지 않는다(피트라). 모든 인간은 무슬림으로 태어나지만 주변 환경에 의해 다른 종교를 가지게 된다고 주장된다. 따라서 비무슬림이라도 사춘기 이전 성욕을 가지기 전 어린 나이에 죽으면 바로 천국으로 직행한다는 교리가 있다. 그래서인지 이 교리가 변질되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의해 피해자인 아이들이 지하드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각주
- ↑ 성선설에 대한 비판으로 '인간이 선하다면 왜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는 말은 사실상 성선설이 그 자체로 하고 있는 말이다. 맹자는 '먹고 살고 수양을 할 만큼 여유로운 삶이 안되면 당연히 수양이 어렵고 이 원인은 사회와 정부 제도에 있다'를 꼬집었다. 그래서 왕도정치와 역성혁명을 말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 ↑ 맹자는 이때 자기 스스로 수양하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 직양(直養)과 집의(集義)를 제시한다. 직양이란 명상법으로 사단과 같은 마음 속 선한 본성을 확충하는 일종의 정신수양이며, 집의는 직양을 통해 길러진 선함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의로운 행동을 꾸준히 하라는 것
쉽게 말해 봉사활동이다. 이 두 가지가 일치될 경우 그 사람에게 쌓이는 선한 무언가(기품 혹은 항심)가 바로 호연지기이고, 이 호연지기가 충만한 사람이 바로 대장부이다. - ↑ 인류는 원죄 없이 "순수히 자신의 힘만으로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