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신자유주의는 이런 위기에 대한 해법이었다. 금융을 해방하는 방법으로 자본가의 충동을 되살리고, 완전고용을 추구하는 대신 사회안전망으로 실업을 관리하자는 제안이었다. 소련 사회주의가 몰락해 더는 자유민주주의 외부에 대안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고용이란 치명적 약점을 쉽게 관리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케인스주의를 기각했다기보다는 핵심 문제의식을 달라진 세계정세에서 다른 방법으로 구현한 셈이었다.

신자유주의 혁신 이후 고용 문제는 양상이 달라졌다. 해방된 금융이 세계화하면서 국가 차원의 고용 정책은 효과가 없어졌다. 또한 해외이전·외주화가 확대하고 노동조합 조직률도 낮아지면서 고용과 임금의 격차가 노동자 사이에서 극대화됐다. “20대 80”이니, “두 개의 국민”이니 하는 말들도 유행했는데, 국민주권이 이런 식으로 분열하면서 고용이란 약점을 가지고 자본을 압박하던 정치 권력의 영향력도 감소했다. 선거 정치는 금권에 포획됐고, 트럼프가 잘 보여줬듯 포퓰리스트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노동자를 쉽게 포섭했다. 이런 결과 고용은 실질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기보다는 얄팍한 선거 공약으로 전락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초기에 ‘일자리 현황판’을 앞에 설치하고 온갖 쇼를 하다 은근슬쩍 모두 치워버린 것도 그런 사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