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펼치기 · 접기 ]
|
개요
장편가상시나리오의 10기 모의전에서 벌어진 역사변동을 정리한 문서이다.기원전 500년부터 진행된 모의전으로, 2500년이라는 장대한 역사를 다루는 모의전인만큼 역사변동도 많고,여담과 재밌는 부분도 많다.
역사 변동:고대(-500~476)
이집트 제30왕조의 존속
기원전 380년,현실에선 빠르게 진압된 아케메네스 왕조에서의 이집트 반란이 성공적으로 끝났다.이는 아케메네스 유저의 무능함으로 벌어진 일이였는데,이집트 왕조는 향후 100년 이상을 존속하는등 왕조를 유지했다.
진의 오르도스 정벌:장성의 확장
기원전 218년,메이지가 이끄는 진나라의 오르도스 정벌이 성공하여 만리장성의 경계가 오르도스 이북까지 확대되었다.
로마제국의 아라비안 펠릭스 성공
80년,국민이 이끄는 로마제국이 팍스 로마나 당시 국력을 아라비아에 투사하였고,아라비아 반도 서부 전역을 점령하고 식민지를 개척,인도와 무역하였다.
로마 제국의 파르티아 멸망
117년,국민이 이끄는 로마 제국이 파르티아의 크테시폰을 함락시키고 완전히 정벌하여 아예 파르티아 왕조를 멸망시켰다.이는 장편 흥망성쇠 시즌 최초의 대규모 역사 변동이자 로마제국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촉한의 삼국 통일
장편의 삼국지는 이릉대전 이후 상당히 다르게 흘러갔다. '먕쥬'라는 유저가 이끄는 손오가 이릉대전에서 승리하였으나 촉한 지휘부 제거에 실패했고,뒤이은 신단의 촉한이 반격하여 화북을 수복할때까지 촉한을 견제하지 않아 스노우볼이 굴러갔다.결국 북위의 수도 허도가 함락되고 북위를 멸망시키자 판도는 촉한에게 돌아갔고,끝내 한나라가 재건되었다.이는 모의전에서 유저의 유/무능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아우렐리아누스의 철인통치
270년,메이지는 로마제국의 명군인 아우렐리아누스의 선민정치를 통해 로마제국의 재부흥을 시도하고 직전까지 갔으나 끝내 아우렐리아누스가 3년 늦게나마 암살되며 실패하였다.
신라 분할과 고구려의 일본 원정
400년 광개토대왕 시기,백제(시현)와 일본(최연후)이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였는데,이틈을 타 함동훈의 고구려가 위례 정복에 성공하였다.그 후 광개토대왕은 백제-일본-가야 연합군을 격파한뒤 신라를 속국으로 삼고 일본을 침공하였다.일본의 천황이 친정하여 전투에 나섰는데,고구려 개마무사에게 격파되어 일시적인 속국으로 전락했다.
역사변동:중세(476~1453)
고구려의 남진정책 대성공
489년,일전 광개토대왕시기 남진이 대성공한것에 이어 장수왕(함동훈)의 남진정책이 성공하였고,웅진과 사비성이 함락되었다. 이로 인해 백제(시현)는 침미다례까지 수도를 옮겨야 했다.
당의 해상 진출
630년,메이지의 당나라가 대대적인 해상진출을 실시하였다. 말레이반도를 식민화하는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실크로드가 더 큰 부흥을 누렸고,당나라의 내분으로 인해 막판에 믈라카 식민지는 몰락하였다.당나라는 또한 700년 대만을 정벌하는등 인근 도서지역을 병합하기도 했다.
백제 멸망과 고구려-신라 남북국 시대
660년,백제를 멸망시킨 나당연합군은 고구려를 3차례 공격했다.그러나 당나라의 독단적 행동으로 인해 전력 상당수를 날린 상황이였고 이로 인해 평양성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 나당은 고구려와 평화협정을 맺는다.이로써 남북조 시대가 시작되었다.
팍스 비잔타니아
750년,가우가멜라의 비잔틴 제국이 아바스 왕조와 평화 협정을 맺고 팍스 비잔타니아를 이루었다.이는 양국 유저의 합의에 의한것이였으며 이로 인해 동로마 제국은 아나톨리아와 국력을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850)
고구려의 통일과 화북정벌
800년,함동훈을 이어 국민이 이끄는 고구려가 통일을 이룬뒤 당시 안사의 난과 황소의 난으로 무너져가던 당나라를 상대로 공세를 쏟아부었다.돌궐제국과 동맹을 맺고 대륙 정벌에 나선 고구려는 입관에 성공하고 화북 정벌을 단행하는 기염을 토한다.870년 고구려는 최대판도를 이루었으며 그뒤에도 상당기간 유지된다.이로 인해 만주와 한반도의 문화권이 동일해지는 원인이 되었다. 이후 고구려는 황제국(대여제국)으로서 화북의 제후를 봉해봉건제로 다스렸으며,화북은 군벌화되었다.
당나라의 남만파천
907년,고구려의 침공과 황소의 난 이후 피폐해진 당나라는 급격히 무너졌고,끝내 주전충이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이때 메이지는 강남에 금릉을 세우고 수도를 금릉으로 천도하였다.금릉은 오늘날의 난징에 해당된다.그러나 메이지가 국변하며 당나라는 얼마가지못하고 결국 멸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