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가상시나리오 역대 시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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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장편가상시나리오의 10기 모의전에서 벌어진 역사변동을 정리한 문서이다.기원전 500년부터 진행된 모의전으로, 2500년이라는 장대한 역사를 다루는 모의전인만큼 역사변동도 많고,여담과 재밌는 부분도 많다.
역사 변동:고대(-500~476)
이집트 제30왕조의 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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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80년,현실에선 빠르게 진압된 아케메네스 왕조에서의 이집트 반란이 성공적으로 끝났다.이는 아케메네스 유저의 무능함으로 벌어진 일이였는데,이집트 왕조는 향후 100년 이상을 존속하는등 왕조를 유지했다.
진의 오르도스 정벌:장성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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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18년,메이지가 이끄는 진나라의 오르도스 정벌이 성공하여 만리장성의 경계가 오르도스 이북까지 확대되었다.
로마제국의 아라비안 펠릭스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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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국민이 이끄는 로마제국이 팍스 로마나 당시 국력을 아라비아에 투사하였고,아라비아 반도 서부 전역을 점령하고 식민지를 개척,인도와 무역하였다.
팍스 로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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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년,국민이 이끄는 로마 제국이 파르티아의 크테시폰을 함락시키고 완전히 정벌하여 아예 파르티아 왕조를 멸망시켰다.이는 장편 흥망성쇠 시즌 최초의 대규모 역사 변동이자 로마제국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촉한의 삼국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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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의 삼국지는 이릉대전 이후 상당히 다르게 흘러갔다. '먕쥬'라는 유저가 이끄는 손오가 이릉대전에서 승리하였으나 촉한 지휘부 제거에 실패했고,뒤이은 신단의 촉한이 반격하여 화북을 수복할때까지 촉한을 견제하지 않아 스노우볼이 굴러갔다.결국 북위의 수도 허도가 함락되고 북위를 멸망시키자 판도는 촉한에게 돌아갔고,끝내 한나라가 재건되었다.이는 모의전에서 유저의 유/무능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아우렐리아누스의 철인통치
270년,메이지는 로마제국의 명군인 아우렐리아누스의 선민정치를 통해 로마제국의 재부흥을 시도하고 직전까지 갔으나 끝내 아우렐리아누스가 3년 늦게나마 암살되며 실패하였다.
신라 분할과 고구려의 일본 원정
400년 광개토대왕 시기,백제(황러)와 일본(시현)이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였는데,이틈을 타 함동훈의 고구려가 위례 정복에 성공하였다.그 후 광개토대왕은 백제-일본-가야 연합군을 격파한뒤 신라를 속국으로 삼고 일본을 침공하였다.일본의 천황이 친정하여 전투에 나섰는데,고구려 개마무사에게 격파되어 일시적인 속국으로 전락했다.
성 레오의 기적
452년,훈족의 왕 아틸라가 로마를 침공하였으나 협상도중 아틸라가 침공을 결단하고 레오를 죽이자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가 아틸라의 목을 베어버린 사건이다.이 사건은 기적으로 불리우며 장편 역사에서 벌어진 최초의 기적이다.
역사변동:중세(476~1453)
고구려의 남진정책 대성공
489년,일전 광개토대왕시기 남진이 대성공한것에 이어 장수왕(함동훈)의 남진정책이 성공하였고,웅진과 사비성이 함락되었다. 이로 인해 백제(시현)는 침미다례까지 수도를 옮겨야 했다.
당의 해상 진출
630년,메이지의 당나라가 대대적인 해상진출을 실시하였다. 말레이반도를 식민화하는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실크로드가 더 큰 부흥을 누렸고,당나라의 내분으로 인해 막판에 믈라카 식민지는 몰락하였다.당나라는 또한 700년 대만을 정벌하는등 인근 도서지역을 병합하기도 했다.
백제 멸망과 고구려-신라 남북국 시대
660년,백제를 멸망시킨 나당연합군은 고구려를 3차례 공격했다.그러나 당나라의 독단적 행동으로 인해 전력 상당수를 날린 상황이였고 이로 인해 평양성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 나당은 고구려와 평화협정을 맺는다.이로써 남북조 시대가 시작되었다.
팍스 비잔타니아
750년,가우가멜라의 비잔틴 제국이 아바스 왕조와 평화 협정을 맺고 팍스 비잔타니아를 이루었다.이는 양국 유저의 합의에 의한것이였으며 이로 인해 동로마 제국은 아나톨리아와 국력을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850)
고구려의 통일과 화북정벌
800년,함동훈을 이어 고구려를 이끌게 된 국민은 나당전쟁 이후 신라와 국혼을 체결하고 동군연합을 성사시킨다.이로 인해 고구려는 통일되었다. 당시 안사의 난과 황소의 난으로 무너져가던 당나라를 상대로 공세를 쏟아부었다.돌궐제국과 동맹을 맺고 대륙 정벌에 나선 고구려는 입관에 성공하고 화북 정벌을 단행하는 기염을 토한다.870년 고구려는 최대판도를 이루었으며 그뒤에도 상당기간 유지된다.이로 인해 만주와 한반도의 문화권이 동일해지는 원인이 되었다. 이후 고구려는 황제국(대여제국)으로서 화북의 제후를 봉해봉건제로 다스렸으며,화북은 군벌화되었다.
당나라의 남만파천
907년,고구려의 침공과 황소의 난 이후 피폐해진 당나라는 급격히 무너졌고,끝내 주전충이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이때 메이지는 강남에 금릉을 세우고 수도를 금릉으로 천도하였다.금릉은 오늘날의 난징에 해당된다.그러나 메이지가 국변하며 당나라는 얼마가지못하고 결국 멸망한다.
고려의 만주수복
919년,시현이 이끄는 고려가 만주 지방에 대한 공세를 개시하였다.이는 당시 대씨 왕조 고구려의 멸망으로 인한것이였으며,거란의 확장둔화로 인한것이였다.고려의 요동 수복으로 인해 요나라와 전쟁이 발발하였으나 고려가 승리하였고,이후 고려는 여진정벌을 통해 만주 전역을 차지한다.
송의 대월 식민화
송나라 유저 메이지는 동남아에 대한 큰 관심을 보였다.유목제국의 실크로드 장악으로 인한 불안을 해소하고자 해상길을 개척하였는데,그과정에서 대월을 정벌하였다.3차례에 걸친 정벌로 대월을 멸망시키고 중국인들을 이주시켰으며,이로 인해 베트남은 수백년간 중국에 동화되었다.
아르타 제국의 인도 통일
국민이 세운 대체역사 가상국가로 서벵골 지역에어 시작하여 인도 전역을 통일하였다.아르타 제국은 불교를 국교로 삼고 소멸해가던 인도 불교를 부활시켰고,이시기엔 국가주도의 대승 불교가 인도의 국교로서 자리잡게 된다.
3차십자군 전쟁
현실에선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강물에서 익사하지만 여기선 익사하지 않았다.이로 인해 사자심왕 리처드,바르바로사,존엄왕 필리프의 대활약으로 3차 십자군이 성공하여 예루살렘을 수복하였다.한편 칼리프의 지하드 선포로 사자심왕 리처드,바르바로사,존엄왕 필리프,칼리프,살라딘,교황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장관이 연출되기도 했다.
새로운 마리아의 도시와 니케아
13세기,마누일 대제(메이지)는 수도 과밀화를 해결하고자 니케아를 이중수도로 삼고,새로운 수도로 성모 마리아의 도시,테오토케폴리스를 건설한다.테오토케폴리스는 4차십자군 전쟁 이후 니케아와 함께 로마제국의 새로운 공동수도가 되었다.그러나 13세기 몽골제국이 니케아를 공격해 함락시키고 아나톨리아를 초토화시키며 니케아 제국이 멸망하며 유일 수도가 된다.
몽골제국:팍스몽골리카
칭기즈칸으로 시작된 몽골(노의 세계정복은 유럽에까지 이어졌고,수부타이는 러시아,폴란드,헝가리를 정복한뒤 신성로마제국을 정벌(노강)하여 보헤미아를 공격하고 오스트리아를 공격해 빈까지 함락시키는 위엄을 보여주었다.13세기 말에는 동로마제국을 공격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기도 했다.(노강)
애산전투와 송의 국부천대
1276넌 남송은 애상전투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였으나, 송의 잔존세력이 대만,필리핀 식민지에서 부활을 선포하였다.그 이후로 계속 유지되다 14세기 후반 명에 의해 멸망한다.
여명전쟁과 요동쟁탈전
1363년 고려(시현)의 공민왕은 요동원정대를 보내 요동성을 함락시켰다.그러나 명(디보)의 요동 정벌 의지는 강력했고,그 결과 2차례의 여명전쟁이 발발한다.고려는 1차전에서 명군을 격퇴하였으나 끝내 요동을 상실한다.그 뒤에도 고려는 요동 정벌을 시도하다 위화도 회군으로 멸망하게 된다.
아르크의 성녀 요안나
1428년,메이지의 프랑스는 잉글랜드(노티,도쿄대공습)에게 연패하며(아쟁쿠르 전투)재기하지 못하고 합병의 위기에 놓였다.그러나 잔다르크가 계시를 받고 잉글랜드군을 격파했고 파리를 수복하였다.콩피에뉴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으나 샤를 7세는 잔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이후에도 잔의 군대는 연승을 거두었고 결국 1337년,칼레 협정으로 백년전쟁이 100년만에 종전되었다. 잔다르크는 이후 결혼하여 15년을 더 살다가,승천하게 되는데,이로 인해 잔다르크 가문은 프랑스의 주요 가문중 하나가 된다.
임은 번개처럼 오시리라
1453년,메흐메트 2세의 대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였으나 치열한 공방전 끝에 테오토케폴리스의 구원군이 도착했고,로마 제국이 승리를 거둔다.이로 인해 로마 제국의 수명이 연장되게 된다.그러나 1518년 콘스탄티누스 12세의 항복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고 얼마안가 로마 황실이 로마냐 왕가에 흡수되며 완전히 멸망한다.
메흐메트 2세의 이집트 정복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에 실패했으나 맘루크 왕조를 멸망시키고 이집트를 정복,술탄-칼리프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근대시대:르네상스/대항해 시대(1450~1600)
르네상스와 대항해 시대
이탈리아 국가들의 번영은 르네상스 시대의 개창을,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항해는 대항의 시대를 열었다.이로 인해 유럽은 크게 발전하였으며,서유럽 근대시대의 기초사상인 인문주의가 태동하였다.
시글로 데 오로
kkk의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쏟아지는 막대한 양의 보물을 바탕으로 국내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이탈리아 전쟁에서 프랑스를 격파하며 스페인의 최전성기,시글로 데 오로를 열었다.이 시대를 기점으로 스페인은 테르시오와 무적함대(아르마다)를 앞세워 유럽최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1588년 칼레 해전에 패하며 위축되다가,대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만다.
이탈리아 전쟁과 로마냐 왕국
1494년 이탈리아 전쟁이 벌어지자 교황 알렉산드르의 아들인 체사레 보르자가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였다.그는 급기야 1500년 피렌체를 함락시키며 공작 칭호를 흭득하고,로마냐 공작의 작위를 굳히게 된다.1527년 사코 디 로마가 벌어지자 후안 보르자는 군대를 이끌고 폐허가 된 로마에 입성하였으며,로마 땅을 기증하고 교황을 복위시켜 로마냐 왕국이 선포,신성로마제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다.
바로크 시대(1600~1750)
네덜란드 황금시대
17세기에 들어 스페인은 과도한 전쟁으로 쇠락하고 있었고,네덜란드는 그 틈을 타 대양에 진출하였다.17세기 초중반 어절의 네덜란드는 강력한 해상제국을 건설했고,해상패권을 장악해 유럽 무역을 선도했다.이시기 발달한 삼각무역은 유럽 무역의 대세로 노예 무역에 기여하였다.
30년 전쟁
1517년 종교 개혁과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이후에도 합스부르크 제국은 종교문제를 봉합하지 못했고 1618년 프라하창문투척사건으로 30년전쟁이 발발하였다.이때 활동량이 급격히 폭주하였다.처음엔 구교군이 연전연승을 거두었으나 스웨덴의 부상으로 신교군이 우세를 점했고,프랑스가 참전하며 신교가 완전히 압도하였다.한편 이탈리아에서도 전투가 이어졌는데,1642년 스페인 국왕이 로마전투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히자 로마냐 왕국은 로마에 입성,동로마 황제로 대관한다.
프랑스의 전성시대와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프랑스는 유능한 관료를 등용하고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압도적인 국력에 이르렀다.이에 프랑스는 40만에 달하는 상비군을 바탕으로 확장에 나섰다.네덜란드-프랑스 전쟁과 9년전쟁,스페인 왕위계승전쟁으로 국고가 파탄에 이르렀으나 영토는 고작 플랑드르 일부만을 흭득했을뿐이었다.반면 오스트리아는 불후의 명장 외젠의 활약으로 대튀르크 전쟁에서 승리하며 막대한 영토를 손에 얻었다.
로마 왕위계승전쟁과 로마 분할
1720년,보르자-팔레오고스 황가가 단절되자 로마의 황위를 둘러싸고 이탈리아 반도는 강대국의 각축장이 되었다.오스트리아는 외젠을 앞세워 순식간에 로마를 점령한뒤 로마가 무단합병한 베네치아를 독립,속국화하고 밀라노를 위성국으로 삼았다.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과 7년전쟁
1740년,마리아 테레지아의 왕위계승으로 발발하였으나 프리드리히 대왕과 프랑스 연전연승에도 불구,대영제국의 해상봉쇄와 신성로마 제후국들의 지지로 합스부르크 군주국을 지켜낼 수 있었다.그러나 이는 이후 7년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이후 1756년 7년전쟁이 벌어졌고,오스트리아는 슐레지엔 수복을 시도했으나 프리드리히 대왕의 신들린 지휘로 모두 격파당했다.또한 참전한 프랑스는 패전을 거듭했고,거의 모든 식민지를 잃고 빚더미에 앉았다.그리고...
산업혁명과 대영제국의 부상
미국독립전쟁
나폴레옹 전쟁과 에투알 체제:The Étoile O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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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89년,테니스코트의 서약 이후 루이 16세는 파리에서의 봉기를 우려하여 파리 근교에 군대를 주둔시켰습니다.
한편,파리 시민들 사이에선 루이 16세의 군대가 파리 시내로 진군해올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이러한 상황에서 시민들의 지지를 받던 재정 총감 자크 네케르가 파면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파리 시민들은 스스로를 방위하고자 무장을 시작하였으며,파리 거리 곳곳에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었습니다.그렇게,파리에선 3일간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1789년7월14일,황혼이 지고,초저녁이 파리의 바리게이트를 비추었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저녁이 되자,본래 도시를 지키기 위해 세워졌으나 이젠 봉건제의 상징인 높은 벽으로,압제의 상징이 되어버린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습니다. 바스티유의 높은 벽이 무너지고,어두운 압제 사이에 펼쳐진 "계몽의 빛"이 비춤과 함께,심장에는 자유와 평등,박애가 살아 숨쉬었습니다. 마치 대서양 너머,미국에서 벌어진 일처럼, 프랑스인들은 존엄과 가치를 위한 위대한 혁명을 시작하였습니다. 『 Aux armes, citoyens! 』 " |
| 프랑스 대혁명中 |
1789년,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하자 프랑스 왕국(제오르지오)는 입헌왕국을 보존하고자 노력했다.그러나 혁명은 곧 급진화되었고,급진공화파인 자코뱅이 권력을 잡아 왕정을 붕괴,루이 16세를 처형시켰다.이후 프랑스는 《프랑스 인권선언문》을 선언하고 헌법을 공포하여 국민국가로 전환되었고,프랑스 혁명전쟁을 시작했다.프랑스는 전쟁 초반 동맹군에게 밀렸으나,곧 압도적인 동원력으로 베네룩스 3국을 제압하였다.
그러나 공화정은 로베스피에르의 집권으로 정치가 개판나며 밀리기 시작한다.영국과 스페인이 프랑스를 해상봉쇄한뒤 남프랑스를 공략했으며,오스트리아는 라인강 유역에서 반격에 성공했다.그러나 그런 공화정에 한명의 명장이 있었으니,나폴레옹이였다.나폴레옹은 톨룽 포위전에서 영국군을 격파하고 오스트리아를 항복시켰다.(1차 이탈리아 원정) 이로써 나폴레옹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고 총재정부는 나폴레옹을 견제하고자 그를 이집트로 보내버린다. 이쯤에서 프랑스는 국민(Jean Paul Marat)의 지휘 하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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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 5만명은 이집트에 상륙했다.피라미드 전투에서 압도적인 교환비로 오스만의 정예기병을 궤멸시켰으나 나일강 전투에서 넬슨 제독의 영국군에게 완패하며 보급이 차단되었다.이후 영국(준배)는 이집트 봉쇄에 착수했다.그러나 프랑스는 오스만과 협상에 성공하여 이집트를 강탈하였으며,1799년 나폴레옹은 원정을 성공한채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1799년,나폴레옹은 브뤼메르(안개의 밤)에 쿠데타를 성공시키고 프랑스의 정권을 잡게된다.그리곤 라인강 이서를 모두 정복하는 한편, 오스트리아 공격을 시작했다.(2차 오스트리아 원정)그러나 라인강 방면 프랑스군의 부진으로 시간이 지연되자 나폴레옹은 곧장 로마 원정을 단행,로마 제3제국을 해체시켰다.이후 오스트리아는 양면 압박을 받다가 빈이 함락,굴욕적인 조약을 체결하며 2차 대프랑스 전쟁이 막을 내렸다.(1801)이후 프랑스(국민)는 영국과 대립하는 한편 내정을 정비하는데,《나폴레옹 민법전》을 공포하고 국민교육제도를 확립,데파르트망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해상봉쇄로 인해 프랑스는 여전히 경제불안을 겪었다. 그러나 1802년 영국은 아미앵 조약 체결을 거부했고,그와중에 1804년 나폴레옹은 로마를 완전히 합병하고 프랑스 제국 황제로 대관한다.이에 반발한 오스트리아가 3차 대프랑스 동맹을 시작했다.울름 전투에서 7만명이 갈리는 사이 러시아,프로이센이 참전했고 첫번째 아우스터리츠 전투가 발발한다. 프로이센의 참전으로 완벽한 전력상 우위에 있던 연합군이였으나 동맹군 간 통합지휘부의 부재로 프랑스군이 동맹군 전열 절단에 성공했고,동맹군은 그대로 쓸려나가며 궤멸되었다.이 전투로 프랑스는 라인 연방을 설립하는등 유럽의 패권국으로 부상하였다.그러나 바다에서 넬슨제독이 트라팔가르 해전으로 프랑스군을 좌절시키며 여전히 해상 우위를 점했다. 1805년,영국은 끝내 아미앵 조약을 받아들이고 프랑스와 휴전했다.그 사이 프랑스는 북해 함대를 키우는 한편,덴마크와 동맹을 맺어 스웨덴을 굴복시켰다.(1806)프랑스가 스칸디나비아를 침공하자 프로이센은 러시아와 연합해 반격을 시작했다.그러나 예나-아우슈테트 전투에서 또다시 완패하며 베를린을 비롯한 프로이센 전역이 함락되었고 이에 질겁한 러시아는 프랑스와 제휴를 맺고 전쟁을 마쳤다.이로써 4차 대프랑스 전쟁 역시 프랑스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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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806년,다시 영국이 프랑스를 해상봉쇄하자 프랑스는 대륙봉쇄령을 선포한다.또한 1808년 스페인이 영국과 동맹을 맺자 프랑스는 스페인을 침공한다.(반도전쟁)영국 역시 참전했는데,여기서 패착을 저지르고 만다.첫째,스페인이 함락될때까지 포르투갈에만 방어선을 구축했다.당시 프랑스는 스페인과 적대관계로 들어섰기에 스페인을 처음부터 밀고 들어기야만 했다.그러나 영국은 포르투갈에만 방어선을 조직해 기회를 놓쳤다.이에 나폴레옹은 직접 리스본까지 출정하여 영국군의 리스본 방어선을 붕괴시켰고 영국은 프랑스와 조약을 맺고 종전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화평이 심지어 유지되었으므로 이는 동맹군 입장에선 재앙적인 일과 다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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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프랑스가 1808년부터 육성하던 북해함대는 전열함 50척 규모의 상당한 규모로 거듭났다.준비를 마친 프랑스는 30만의 대군을 동원해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이에 러시아는 청야수성을 위해 인근 인프라를 파괴하였으나 1차 침공은 거대한 페이크였다.프랑스는 벨라루스,발트 일부만을 점령한뒤 폴란드(리투아니아 민족주의를 건드려 괴뢰국 리투아니아 대공국,루테니아 백국을 설립했다.이후 그곳에 인프라와 병참망을 구축하여 보급기지로 만들었다.
1811년,프랑스는 원정에 앞서 스칸다나비아-덴마크 해협을 봉쇄하였다.이에러시아 발틱함대가 선제공격하며 러시아 전쟁이 시작되었다.그러나 해전에서 발틱함대는 3배 이상의 수적 열세에 직면하였고,거친 발트해의 바다에서 후퇴전을 벌이다 전력 대부분을 잃고만다.프랑스군은 핀란드만까지 장악해 상트페테르부르크 해안을 봉쇄하며 2중 봉쇄망을 구축하였다. 모든 준비가 끝난것이였다.
1812년5월,62만명에 이르는 프랑스군은 라스푸티차가 끝나자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러시아군은 압도적인 수의 프랑스군에 퇴각을 반복했고,양군은 러시아의 끔찍한 날씨와 질병으로 개전 3주만에 프랑스 13만,러시아 10만이라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프랑스군은 탈린을 점령하고 해상 보급을 받은뒤 정비 후 나르바로 진격했다.나르바에서 양군은 치열한 혈전을 벌였고,러시아군 분견대가 궤멸되었으나 바그라티온의 본대는 잡을 수 없었다.어느새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눈앞에 있었고,따라잡히기 직전에 처하자 러시아는 방어선을 조직하고 프랑스군과 격돌한다.(로모노소프 전투)이 전투에서 양군 총합 100,000명에 달하는,파멸적인 피해가 발생하였으나 러시아군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버리고 후퇴하였다. 결국 상트페테르부르크는 함락되고,프랑스군은 광란의 약탈을 시작했다."동방의 로마"는 그렇게 철저하게 더럽혀졌다. 한편,러시아군은 이 상황을 보곤 회심의 한 수를 쓰는데...
그것은 바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불태우는것이였다.화재는 수일간 지속되었고,상트페테르부르크의 80%가 불타버렸다.이에 프랑스군은 러시아 발틱함대를 전부 자침시킨뒤 철수를 시작했다.그러나 동장군이 도래하며 프랑스군은 막대한 비전투 손실을 겪어야했고,해상보급을 조달했음에도 지옥의 행군길로 인해 손실이 컸다.
| 성 페테르부르크가 불타자,나르바의 성채엔
언제나 그랬듯 싸락눈이 쏟아졌다.그 해,핀란드 만의 추위는 여느때와 같았다. 살을 파고들던 깊은 추위는 바다를 얼리고,말발굽을 땅으로 끌고들어갔다. "봄은 언제 오는가?"라는 물음에 러시아의 벌판은 추위로 답했다.동토의 추위만이 적은 아니였다.우리를 향한ㅡ용맹한 코사크 기병의 창날은 매서웠고,슬라브의 청년들은 마치 성채와 같아,두려움이 없었다. 영하 45도의 강추위는 이 땅을 지옥으로 만들었다.동료가 쓰러지면 그가 죽기도 전에 모든 옷이 벗겨지고,버려졌다. 농가를 약탈했을땐,곧장 인근의 농민들이 몰려와 아군을 죽였다.농민들은 프랑스군을 말 그대로 찢어죽였다."추위,증오,죽음,대체 전쟁이란 무엇입니까?"십자가는 침묵했다.버려진 성당의 스테인글라스는 추위에 거룩을 불어넣을뿐이였다.우리가 국경에 달했을때,60만중 14만만이 남아있었다.봄은 느리게 다가왔다. 지난 몇 주 동안은 맑고 서늘한 날씨가 꾸준히 이어졌다. 낮에는 햇볕에 녹았지만, 밤에는 영하 7도까지 떨어졌다. 눈밭이 얼어붙어 도로를 벗어나 어디든 마차를 몰고 다녔다. 부활절은 눈 속에서 찾아왔다. 그러다 부활절 월요일, 갑자기 따뜻한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사흘 밤낮으로 따뜻하고 거센 비가 쏟아졌다. 목요일에는 바람이 잦아들었고, 마치 자연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신비를 감추려는 듯 짙은 회색 안개가 땅을 뒤덮었다. 안개 뒤에서는 물이 흐르고, 얼음이 깨지고 떠다니며, 탁하고 거품이 이는 급류가 빠르게 흘러갔다. 그리고 다음 월요일 저녁이 되자 안개가 걷히고 폭풍우 구름이 작고 둥글게 뭉게뭉게 솟아올랐으며, 하늘이 맑아지고 진짜 봄이 왔다. 아침이 되자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은 물 위를 덮고 있던 얇은 얼음을 금세 녹여 버렸고, 따스한 공기는 땅에서 피어오르는 김으로 온통 진동했다. 오래된 풀은 더욱 푸르게 보였고, 어린 풀들은 작은 잎을 틔웠다. 귤꽃과 건포도, 그리고 끈적끈적한 자작나무의 새싹은 수액을 머금고 부풀어 올랐고, 탐험하는 벌 한 마리가 버드나무에 핀 황금빛 꽃밭 주위를 윙윙거렸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푸른 들판과 얼음으로 뒤덮인 그루터기 밭 위로 종달새들이 보이지 않게 지저귀었고, 웅덩이에 잠긴 저지대와 습지 위에서는 뻐끔뻐끔 울부짖는 뻐끔새들이 울었다. 두루미와 기러기들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봄기운을 노래했다. 아직 새 털이 나지 않은 곳에 털이 듬성듬성 난 소들은 목초지에서 낮게 울었고, 양들은 어미 양 떼 주위를 뛰어다녔다. 맨발자국으로 뒤덮인 마른 길 위를 날렵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었다. 연못가에서는 농사꾼 아낙네들이 린넨 천을 두르고 즐겁게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마당에는 농부들이 쟁기와 써레를 수리하는 도끼들이 즐비했다. 진짜 봄이 온 것이다. "전쟁,그리고 평화,평화는 정말로 오는것인가요?" 십자가는 침묵으로 답했다. 그리곤,버려진 성당의 스테인글라스는ㅡ평화를 말하듯 전장의 고요에 거룩을 불어넣었다. 『단순함, 선의, 진리가 없는 곳에 위대함은 없다.』 ㅡ'전쟁과 평화'이벤트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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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42만명의 대군을 파병했고 그중 27만을 잃었다. 이후 프랑스는 폴란드와 발트에서 러시아군의 반격을 지연시키는 한편,외레순 해협 봉쇄를 유지하여 영국의 러시아 지원을 차단하고 있었고,그사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선전포고하였으나 러시아의 반격이 오기 전에 이 둘을 격파하고자 했다.나폴레옹(국민)의 작전은 상당히 성공했는데,러시아의 진격이 물자부족(영국 해군이 외레순 해협 봉쇄선을 돌파하지 못한탓이다.)으로 지연되는 사이 독일 남부에서 소모전으로 오스트리아를 묶어두고,오스트리아와 함께 반격하는 프로이센군을 공격해 베를린을 함락시켰다.그러나 프로이센 수뇌부가 틸지트로 몽진에 성공하였고,곧 러시아군이 도착하며 프랑스는 밀리기 시작한다.프랑스는 기동전을 통해 또다시 연합군 20만을 갈아버리지만 수적 열세는 지속되었고,결국 라인강 방어선(보나파르트-라인 경계선)을 구축하고 20,000문에 달하는 포병전력을 밀집시킨다.이에 라인강 방어선으로 무작정 돌격하던 연합군은 프랑스군의 포도탄 포격에 그야말로 대학살당했다.
이러한 소모전을 타개하고자 연합군은 엠스강~라인강 사이에 전력을 집중시켜 공세한뒤 프랑스군 방어선을 마치 낫처럼 분쇄시키는 작전을 구상했다.프랑스군을 네덜란드까지 몰아내며 이 작전은 성공하는듯 보였으나,프랑스는 "롱기누스의 창"작전을 시행,연합군의 퇴로를 차단한뒤 양면으로 분쇄시켜 연합군 19만명을 몰살시키는 기염을 토했고 이 전투를 기점으로 결국 1816년,연합군과 프랑스 제국은 에투알 조약을 통해 종전하며 나폴레옹 전쟁이 막을 내렸다.
에투알 체제 동안 유럽은 프랑스 중심의 유럽질서에 굴복해야했다.2년간 지속된 소모전은 지연전을 탄생시키며 포병을 비롯한 각종 군사무기의 비약적인 발전을 불러왔으며,프랑스는 각종 개혁으로 산업화에 성공하고 가톨릭의 수호자를 표방해 계몽주의를 지연시키고 저출산을 늦춰 유럽대륙의 경제,문화,정치,군사등 수많은 분야를 선도했으나 산업혁명 이후 세계 패권국으로 부상한 대영제국을 끝내 넘을 수 없었다.이러한 프랑스와 대영제국의 냉전관계를 에투알 체제라 부를 수 있을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프랑스의 에투알 체제는 7월 혁명을 거쳐 1848년까지 이어졌다.
| 1815년,에투알 개선문 인근의 회의장에서 체결된 에투알 조약(Treaty of Étoile)으로 나폴레옹 전쟁은 완전한 종전을 맞이하였으며,세계는 새로운 질서를 향해갔습니다.전 유럽의 국가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자유,평등의 가치를 우애라는 가치 하에 수용하였고,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적 권리를 수호할것을 선언하였습니다. 프랑스는 유럽의 중심으로 다시 일어섰으며,프랑스 제국 중심의 에투알 체제(The Étoile Order)가 막을 올렸습니다. ㅡ신질서 ㅡ'The Étoile Order'이벤트中 |
48혁명과 그레이트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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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으로부터 33년전,나폴레옹 대제의 성전은 그 전까지의 어떤 전쟁보다도 위대한 전쟁 끝에 승리하였고,대제는 프랑스의 산업화까지 완수하며 프랑스를 유럽의 패권국이자 영국에 버금가는 초강국으로 부상시켰습니다.그러나 나폴레옹 2세 이후,계속된 황실의 혼란은 전제군주제를 이어오던 프랑스의 모든 부분에서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마치 루이16세와 같이,향락과 사치를 즐기는 나폴레옹 3세의 모습은 경건하고 독실하던 대제와 달리,가톨릭 제국을 표방하던 프랑스 제국의 정통성에 금이 가게 만들었으며,그는 "뮈라 스캔"이라 불리우는 뮈라 숙청 사건으로 인해 민중의 민심을 잃었으며,영국의 노동자 인권운동은 다시금 프랑스인들의 계몽사상에 불을 붙이며 심장을 불태우게 하였습니다.이러한 일들 이후,파리에는 다시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었고,아침이 되자,기차의 기적 소리가 울려퍼지듯,수많은 파리 시민들이 자유,평등,박애를 외치며 몰려나왔습니다.황실은 진압을 명했으나 군인들마저 시위대에 합류하며 실패하였고,결국 제롬 보나파르트가 퇴위 성명을 발표하며 2월의 혁명은 성공하였습니다.이후 프랑스는 입헌군주제를 전면 도입하였으며,영국의 인민 헌장을 차용한 프랑스 인민 헌장을 수용하는 등,다시 인권의 가치를 위해,자유의 횃불이 되어 유럽의 신민들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Viva Le Français!』 ㅡ'2월혁명'이벤트中 |
1848년,프랑스 파리에서 촉발된 시작으로 벨기에,로마,헝가리,비엔나,베를린,네덜란드,라인강 이서,폴란드,시칠리아,스위스에서 동시다발적인 혁명이 시작되었다.에투알 체제의 심장부이던 파리에서 발생한 혁명으로 인해 프랑스 제1제정이 붕괴되며 에투알 체제가 붕괴되었다.뒤이어 벌어진 혁명으로 유럽 전역이 혁명의 불구덩이에 빠져 혼란을 빚었다.
그 결과로 로마는 제정이 붕괴하고 공화정이 되었고,프로이센은 입헌군주국이 되었으며,스위스는 연방이 재수립되고,벨기에와 네덜란드 등 베네룩스 3국이 독립하였다.또한 프로이센은 프랑스를 공격해 라인강 이서 수복을 시도하며 전쟁 직전의 상황이 벌어졌으나,프랑스의 철수로 전쟁을 모면했다.이 사건으로 인해 에투알 체제가 붕괴되었고,세계는 대영제국 중심의 팍스 브리타니카로 재편된다.한편으로는 러시아가 남하를 시작하며 그레이트 게임이 막을 올린다.
팍스 브리타니카와 그레이트 게임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영국은 경제적으로 압도적인 국가로 성장하고 있었으나 프랑스 제국이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하고 에투알 체제를 성립시키며 초강대국의 지위에는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그러나 1948년 유럽 전역에서 대혁명이 발생하여 에투알 체제가 붕괴되자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한다.그러나 러시아 역시 남하를 개시하며 유라시아 전역에 영향력을 뻗치기 시작했다.이에 영국은 러시아와의 경쟁을 시작했다.그러나 러시아는 크림전쟁에서 패흐였고,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과 합의하며 그레이트 게임을 빠르게 종결시킨뒤 개혁에 나섰다.그러나 이는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되며 실패하였으며 준배가 이끄는 대영제국은 패권을 지키는데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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