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헌황태후 유씨

대한제국 순종의 황후
황후 유씨ㅣ皇后 兪氏
대한제국 이강조 황태후
정헌황태후 유씨ㅣ正軒皇太后 兪氏
정헌3.png
출생 1896년 9월 7일
경기도 가평군 사저
재위기간 대한제국 황후
1903년 1월 21일 ~ 1904년 9월 3일
대한제국 황태후
1904년 9월 3일 ~ 현직
[ 펼치기 · 접기 ]
본관 기계 유씨
휘 연
부모 부친 기계부원군 유길준, 모친 반남부부인 박연
형제자매 1남 1녀 중 장녀
배우자 순종 효황제 (1903년 결혼, 1904년 사별)
자녀 황제 이강
학력 황실학교 (중퇴)
종교 유교 (성리학)
존호 정헌 (正軒)
절일 황태후 탄신일 (양력 9월 7일)
황태후유씨3.png
공식 초상화

개요

대한제국의 황태후

대한제국의 황제인 순종 효황제의 황후이자, 대한제국 최초로 처음부터 황후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대한제국 최초 귀족 출신 황후이기도 하다. 부친이 백작의 작위를 받은 유길준이기 때문에 황후에 오르기 전엔 귀족가의 영애였으며 집안 전체가 정치적 집안이다. 정조 태황제와 효자태황태후 온씨의 며느리이며 황제 이강의 모후이다.

작위

황후기.png 태후기.png
황후 시절 깃발 현재 깃발
  • 황후 폐하 Her Majesty the Empress (1903년 1월 21일 ~ 1904년 9월 3일)
  • 황태후 폐하 Her Majesty the Empress Dowager (1904년 9월 3일 ~ 현직)

생애

어린 시절과 신분

황태후의 집안은 대대로 명성과 인망 높은 귀족 가문으로, 부 유길준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한 정치인이었다. 기계 유씨 가문의 장녀로 태어나 귀여움을 많이 받으며 곱게 자랐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으며 황실 학교에 입학해 수업을 간간이 들었다.

황후

1902년에 황태자비 간택이 궁중에서 열렸다. 당시 성년이 되어 황태자 책봉을 앞둔 순종 효황제의 가례를 황실의 전통성 보존을 위해 급하게 매듭지어야 했다. 당대 순종 효황제의 품위와 행실에 관해 대중적 비난이 컸으며 내각에서도 '원자가 아니라 영친왕을 황위에 세워야한다.' 라는 주장이 내세워져 궁중 내에선 원자파와 영친왕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원자는 황태자로 책봉되기 전 칭호로 순종 효황제를 의미했으며, 영친왕은 정조 태황제의 서자이자 순종 효황제와 동갑내기인 후궁 한씨 소생의 왕자군이였다. 이 논쟁은 몇년 간 지속되었으나 결국 보수파가 승리하여 '황후의 적장자가 황위를 이어야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순종 효황제의 황태자 책봉이 확정되었다.

다시 돌아와 간택에서 황태자비 후보로 귀족가 영애라는 유리한 케이스로 기계 유씨의 장녀인 유연이 동궁계비로 간택되었다. 하지만 황태자비 책봉을 앞두고 일본의 을사 조약 요구에 정조 태황제가 자결로 갑작스럽게 승하하며, 순종 효황제가 황위를 급하게 잇자 유씨도 황태자비가 아닌 황후로 책봉되었다.

황태후

황후에 오른지 1년이 지난 1904년에 순종 효황제와 합방을 하여 황제 이강을 회임했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크게 기울고 있었다. 러일전쟁 이후 영국, 미국, 러시아, 청나라 등이 모두 일본의 한국 통치를 인정하였으며 순종 효황제는 별다른 저항 없이 일본의 한일합병조약에 서명하여 대한제국이 2년도 안되서 멸망해버린 것이다. 순종 효황제는 심한 죄책감에 부왕처럼 자결하였으며, 황후 유씨는 황태후로 진봉되었고 정헌의 존호를 받았다. 다음 해인 1905년에 황제 이강을 출산하였고 장자 이강이 곧 바로 공석인 황위에 올라 대한제국 제3대 황제가 되었다. 현재는 나라가 망한지 10년이 지나가며 대외 행사를 중단하고 궁중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유흥을 즐기고 있어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 슬픔을 견디지 못해 알콜에 의존하는 태후라는 이미지가 국내에서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