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의 대외 전쟁•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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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선제국 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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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 연(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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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제나라도 인정한 태공망 건국 이래의 부끄러운 역사이자 매륵단군과 제 환공이 동북아의 패권을 걸었던 전쟁이었다.
발단
기원전 653년, 조선제국의 제36대 단군 매륵단군이 수유국의 군대와 더불어 연나라를 침공하였다. 이에 연나라의 제17대 군주 장공이 제나라의 제16대 군주 환공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제나라가 대거 고죽국으로 쳐들어오다가 조선제국군의 복병을 만나 전세가 불리하자 화친을 구걸하고 물러났다.
사기에 나오는 제나라의 반격
36대 단군 매륵단군 52년조와 동일한 기록이 사기 제태공세가 환공 23년조와 연소공세가 장공 27년조에도 보인다. 제태공세가에는 산융이 연나라를 치자 연나라가 위급함을 제나라에 알렸다. 제 환공이 연나라를 구하고자 드디어 산융을 치려고 고죽까지 이르렀다가 돌아갔다도 하였다. 이처럼 사기에는 연제와 산융의 전쟁이라 기록하였다. 사기 봉선서에는 환공이 말하기를 ‘과인이 북쪽으로 산융을 칠 때 고죽을 지나갔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산융은 단군조선을 말한다. 조선제국을 비하하고 국력의 강성함을 은폐하기 위해 나라 이름을 산융이라 조작한 것
영향
매륵단군은 황하의 새로운 패자 제 환공을 잘 몰랐던 것 같다. 기원전 653년, 매륵단군은 연의 정벌에 나섰고, 제 환공의 역습을 받고 물러나야 했다. 이는 동아시아 두 세력의 역학관계를 바꾸어 놓은 사건이었며 이후 조선제국은 한 없는 몰락의 길을 걸어갔다. 제 환공은 황하유역의 조선제국 분조를 몰아냈고 이어 패자 진 문공은 회수 지역의 동이 소국들을 제압하였다
춘추좌전에 따르면 이후 주나라 제후국들과 대치하던 수遂, 서徐, 내萊, 모牟, 서舒 등 동이 열국(고조선 제후국)이 잇달아 자취를 감추고 조선제국의 서토 세력권은 회의淮夷가 거주하는 회수淮水 일대로 크게 줄어들고 말았다. 이와 반대로 한족은 일진일퇴의 격전을 치르며 조선제국 중심 질서에서 이탈 독립하는 한편, 동방 조선족의 문화유산을 흡수하여 자신들의 문화적 역량을 크게 도약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