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신오 민의원 의원 총선거

제11회 민의원 의원 총선거
第11回民議院議員総選挙
1981년 7월 8일
10회 민원선
(유신 유작 총선)
→ 1984년 4월 12일
11회 민원선
(광명 총선)
→ 1987년 @월 @일
12회 민원선
(@ 총선)
투표율 74.16% ▲ 6.85%p
선거결과
제11회 신오 민의원 의원 총선거 의석배치.svg
▼
민자 151석
55석 사회
정당 지역구 비례대표 총합 비율
민주자유당 130석 21석 151석 59.22%
사회당 41석 14석 55석 21.57%
기독민주당 15석 8석 23석 9.02%
광명당 4석 7석 11석 4.31%
신당평화 0석 4석 4석 1.57%
신오유신회 0석 1석 1석 0.39%
무소속 10석 - 10석 3.92%

개요

1984년 4월 12일에 실시된 신오 민의원 의원 총선거이다. 광명 시대 개막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선거로 현행 신오국 헌법에 의해 치러진 최초의 선거다. 제1회 신오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와 함께 치러졌다.

배경

의원 정수는 255명으로 제10회 신오 민의원 총선거 때보다 24명이 늘어났다. 이 선거부터 비례대표제가 실시되어 총 255석 중 55석은 병립형 비례대표 몫이 되었고, 대신 지역구 의원 수는 31석이 줄어들었다. 선거제도도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전환되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신오사회당, 기독민주당, 광명당, 신당평화, 신오유신회 등이 참여하였다.

의회 해산

개표 결과

지역구

정당별 지역구 득표율
정당득표수의석
득표율
민주자유당3,729,527130석
44.18%
사회당2,348,37741석
27.77%
기독민주당950,33315석
11.29%
광명당346,3434석
4.08%
신당평화409,7000석
4.83%
신오유신회71,8030석
0.81%
무소속591,31710석
7.04%

비례대표

정당별 비례대표 득표율
정당득표수의석
득표율
민주자유당3,518,45621석
42.48%
사회당2,303,28314석
27.98%
기독민주당1,007,6148석
12.52%
광명당747,3527석
8.97%
신당평화486,5044석
3.51%
신오유신회173,2181석
2.53%
기타정당169,7920석
2.01%

정당별 결과

민주자유당

민주자유당은 지역구에서 130석, 비례대표에서 21석을 얻어 총 151석이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대도시권에서의 민주화 열풍 및 장국강 정부 심판론으로 인해 당초 전망은 상당히 부정적이었으나 그간 수십년간 쌓아왔던 조직력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 야권의 분열로 인한 반사이익도 무시할 수 없는 선거 승리 요소로 사회당과 신당평화의 지역구 득표율을 단순 합산했을 때만으로도 수도권에서 10석 이상을 넘겨줬을 것으로 추산되며 야권의 선거연대가 성사되었다면 과반에도 미달했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때문에 향후 야권이 작정하고 선거 연대를 통해 단일대오를 이룬다면 민자당으로선 상당히 부담스럽게 되었다.

지역별로 살펴보자면 불리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대도시권에서 민주화 열풍이 가장 강했던 상경도에서조차 사회당을 29:24라는 스코어로 따돌렸고 남경부에선 31석 중 17석을 용원부에선 19석 중 18석을 가져가며 완승했다. 마찬가지로 지방에서의 성적표는 말할 것도 없이 초압승으로 지역구에서 획득한 130석만으로도 의회 과반 확보를 일찌감치 확정지었다.

이렇게 해당 선거에서 대선전을 한 민자당은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어느 정도 벗고 정권을 얻는데에 성공하였으며 선거 직후 당내 지도부는 무소속 당선자 영입에 총력을 기울였다.

신오사회당

사회당은 지역구에서 41석, 비례대표에서 14석을 얻어 총 55석으로 원내 2당이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당초 최소 85석, 개헌저지선 확보를 목표를 내걸은 것과는 다르게 상당히 부진했으며 지도부가 책임론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애시당초 기대조차 않았던 지방은 물론이고 대도시권에서조차 참패했는데 당세가 가장 강했던 상경도에서 민자당에게 밀렸고 남경부에선 더블스코어차, 용원부에선 한 석도 건지지 못하며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 이러한 부진의 가장 큰 요인은 신당평화와의 단일화 실패로 합당은 커녕 선거연대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양당은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고 이는 가뜩이나 민자당에게 밀리는 혁신계 표를 더욱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만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닌데 우선, 야권 최대 의석을 확보하며 향후 야권의 주도권을 쥐게 된 점, 선거 레이스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신당평화와 양분되었던 혁신계 표심을 대부분 자당으로 흡수하는데 성공하며 잠재적 경쟁자였던 신당평화를 말 그대로 시망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당은 합당 수순은 밟게 된다.

기독민주당

기독민주당은 지역구에서 15석, 비례대표에서 8석을 얻어 총 23석으로 원내 3당이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전반적으로 선거 전까지 당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서진태의 계파[1]는 수도권에 출마했던 인원 대부분이 낙선하였고 설상가상으로 파벌의 좌장이었던 강문위 정책조사회장이 낙선하며 몰락할 것으로 보이나, 반대로 기독사회파[2]는 북해성, 광주성에서 민자당과 의석을 양분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수도권 참패 이후 "대중적 대안 보수" 노선을 주장하던 당권파의 목소리가 급속도로 줄어든 반면 북해성, 광주성의 선전으로 당을 살려낸 기사파 의원들이 당권을 완벽히 정합할 것으로 보이며 총선 직후 기독사회당은 모호한 대중 보수 노선을 전면 폐기하고, "기독교적 윤리관과 사회적 복지를 결합한 도덕적 기독교 정당"으로 노선을 대전환하게 된다.

광명당

광명당은 지역구에서 4석, 비례대표에서 7석을 얻어 원내 4당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당초 목표했던 20석에는 한참 모자르나 특별한 지역기반이 없었던 것 치고 지역구 4석은 매우 선전했다는 평가, 비례로도 7석을 올리며 의회 주요 정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신당평화

신당평화는 지역구에서 0석, 비례대표에서 4석을 얻어 총 4석을 얻는데에 그쳤다. 사실상 최대의 패자로 이번 선거 한 번으로 "회생불가"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사회당에서 뛰쳐나와 선거 레이스에 뛰어들 때까지만 해도 20석 이상 확보를 목표로 내걸며 기세등등했으나, 점점 선거날이 다가올 수록 지지세가 추락하더니 결국, 지역구 전멸, 비례대표에서 4석을 건지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으며 완전히 침몰했다.

신당평화가 이렇게까지 참패한 이유에는 사표 심리가 강하게 작용핰 것으로 풀이되며, 실제로 선거일이 다가올 수록 신당평화는 전지역구에 공천하며 당 지도부에서 총력을 기울인 상경도에서조차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상경도 제9구에 출마한 이중길 대표는 이름값이 무색하게 민자당 후보는 물론 사회당 후보에게까지 밀려 3위로 낙선하였고 이외에도 공천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회당 후보와 표를 갈라먹다 낙선하는 등 사실상 민자당의 다크나이트 노릇을 했다는게 대략적인 평가.

선거 직후, 신당평화는 사실상 당의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조건 없는 복당 및 재합당을 제안한 사회당에게 도로 흡수합당되며 짧은 역사를 마감하게 된다.

신오유신회

신오유신회는 지역구에서 0석, 비례대표에서 1석을 얻어 총 1석을 얻는데에 그쳤다. 원내 입성도 회의적이었던 기존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장국강 정권 시절의 향수를 떠올린 유권자들의 결집을 이끌어내 가까스로 원내입성에는 성공한 상태이나 당대표는 물론이고 비례 당선자들도 대부분 재판을 받고 있는 터라 얼마나 당이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 그나마 민주자유당과의 연정을 통해 재판을 회피하거나 사면을 받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으나 단독 과반 의석을 획득한 민자당 입장에선 뭐가 아쉬워서 시한부 정당인 유신회를 돕겠는가.

이후 당연하게도 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유신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비례 당선자는 물론 당지도부 대다수가 투옥되어 원외 소수정당으로 전락하고 만다.

지역별 결과

제11회 민의원 의원 총선거
지역 민자 사회 기민 광명 평화 유신 무소속 합계
화태도 3 2 0 0 0 0 0 0 0 0 1 6
오로촌 3 0 0 0 0 0 0 0 0 0 0 3
북해성 1 0 0 0 0 0 0 0 0 0 1 2
광주성 2 1 1 0 0 0 0 0 0 0 0 4
상경도 2 1 0 0 0 0 0 0 0 0 1 3
발해성 2 1 0 0 0 0 0 0 0 0 0 3
림해성 4 2 0 0 0 1 0 0 0 0 0 7
안주성 4 2 0 0 0 0 0 0 0 0 0 6
용원부 27 16 2 1 1 1 1 0 0 0 0 53
남경부 4 4 0 0 1 0 0 0 0 0 0 9
소선거구 107 66 5 2 5 3 1 0 0 0 8 196

선거 이후

여담

관련 문서

신오

  1. ↑ 기독민주당을 기민련(CDU)를 모델로 삼고 민자당을 대체하고 대중보수 정당으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2. ↑ 명확적 기독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강력한 종교·사회 정당을 구축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