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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공화정 수립 이후 국교를 해제함에 따라 종교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가장 많은 신자 수를 보유한 종교는 불교이다. 2015년 기준으로 국민의 94.5%가 불교 신자이며, 2위인 이슬람교는 4.29%, 기독교와 힌두교는 각각 1%와 0.03%를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교는 대체로 남부 말레이 반도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데, 불교 중심의 단일 종교 체제의 오랜 역사와 문화로 인하여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지만 소수 종교 차별로 인한 종교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민주공화정 수립 이후 국교를 해제함에 따라 종교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가장 많은 신자 수를 보유한 종교는 불교이다. 2015년 기준으로 국민의 94.5%가 불교 신자이며, 2위인 이슬람교는 4.29%, 기독교와 힌두교는 각각 1%와 0.03%를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교는 대체로 남부 말레이 반도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데, 불교 중심의 단일 종교 체제의 오랜 역사와 문화로 인하여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지만 소수 종교 차별로 인한 종교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스포츠에서는 현재 축구가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두 번째가 야구, 세 번째가 무에 타이이다. 축구는 1954년 피분송크람 정부 때 '타이 프로축구 리그'로 출범하였으며, 야구는 같은 시기 '타이 프로야구 리그'로 출범하였으나 관중 부족과 운영난 등 복합적인 문제로 60년대에 폐지되어 '방콕 야구 대회'로 명맥을 이어오다, 다시 1989년 끼티카존 정부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타이 야구 선수권 대회]]'로 재출범하였다. 축구는 1990년대부터 1부 리그와 2부 리그 승강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1부 리그 20개 팀, 2부 리그 22개 팀으로 구성하고 있다. 야구는 북부 리그와 남부 리그로 나누어지는 양대 리그로 운영하고 있다. 참가 구단은 북부와 남부 둘 다 6개 구단이 참가하고 있으며, 특징으로는 양대 리그를 운영하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에는 한 쪽 리그만 '지명 타자제(DH)'를 채택하는데 반해, 태국은 양 리그 다 지명 타자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축구의 경우는 구단과 지역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시민 구단'이 대다수를 이루는 반면, 야구의 경우에는 기업 구단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러한 차이는 두 리그의 출범 방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축구의 경우 처음 프로 축구가 출범했던 1954년에는 피분송크람 정부 주도 하에 '지역 클럽'으로 각 행정구역에서 팀을 창설한 것으로 출발했고 그 팀들이 서로 합쳐지는 과정을 통해 현재 프로 축구의 모습을 갖추었다. 한편 야구의 경우 폐지 이후 80년대에 재출범하는 과정에서 끼티카존 정부가 기업 별로 야구단을 창설하여 운영하도록 하면서 프로 야구가 출범하였기 때문에 축구와 야구의 큰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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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는 현재 축구가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두 번째가 야구, 세 번째가 무에 타이이다. 축구는 1954년 피분송크람 정부 때 '타이 프로축구 리그'로 출범하였으며, 야구는 같은 시기 '타이 프로야구 리그'로 출범하였으나 관중 부족과 운영난 등 복합적인 문제로 60년대에 폐지되어 '방콕 야구 대회'로 명맥을 이어오다, 다시 1989년 끼티카존 정부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타이 야구 선수권 대회]]'로 재출범하였다. 축구는 1990년대부터 1부 리그와 2부 리그 승강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1부 리그 20개 팀, 2부 리그 22개 팀으로 구성하고 있다. 야구는 6개 구단이 참가하는 단일 리그로 운영하고 있다. 축구의 경우는 구단과 지역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시민 구단'이 대다수를 이루는 반면, 야구의 경우에는 기업 구단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러한 차이는 두 리그의 출범 방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축구의 경우 처음 프로 축구가 출범했던 1954년에는 피분송크람 정부 주도 하에 '지역 클럽'으로 각 행정구역에서 팀을 창설한 것으로 출발했고 그 팀들이 서로 합쳐지는 과정을 통해 현재 프로 축구의 모습을 갖추었다. 한편 야구의 경우 폐지 이후 80년대에 재출범하는 과정에서 끼티카존 정부가 기업 별로 야구단을 창설하여 운영하도록 하면서 프로 야구가 출범하였기 때문에 축구와 야구의 큰 차이가 난다.
  
 
== 군사 ==
 
== 군사 ==

2021년 2월 11일 (목) 11:19 판

타이 공화국
Republic of Thailand
타이공화국.png
타이 공화국의 국기
국가공민의 노래
수도방콕
공용어태국어
정치
정치체제공화제, 대통령중심제, 단원제
대통령수라윳 호티디엠 (타이 민주당)
부통령아파싯 아치차웨 (자유당)
집권여당타이 민주당 - 자유당 연립 정권
역사
  • 수코타이 왕조
  • 1238년 - 1368년
  • 아유타야 왕조
  • 1350년 - 1767년
  • 딱신 왕조
  • 1767년 - 1782년
  • 짜그리 왕조
  • 1782년 - 1949년
  • 타이 공화국 정부 수립
  • 1949년 11월
    지리
    면적514,000㎢
    시간대UTC (UTC+7)
    DST없음
    인구
    2015년 어림64,004,000 명
    인구 밀도109명/㎢
    경제
    GDP2015년 어림값
  • GDP
  • $ 6,400억
  • 일인당
  • $ 9,846
    인간개발지수0.690
    통화바트 (THB)
    종교
    최대 종교상좌부 불교
    종교 분포상좌부 불교 94%
    이슬람교 5%
    기독교 0.9%
    힌두교 0.1%
    기타
    ISO 3166-1764, TH, THA
    국제전화+66

    타이 공화국(Republic of Thailand), 또는 태국가상국제연합 공동세계관 제3채널의 국가로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공화국이다. 본래 짜그리 왕조에 기반을 둔 입헌군주제 국가였으나, 1933년 쿠데타로 군국주의자인 쁠랙 피분송크람이 정권을 잡으며 일본과 화친하고, 추축국과 동맹을 맺는 친파시즘 외교를 펼쳤으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며 왕당파의 역쿠데타로 실각하였고, 국외로 망명했던 라마 8세가 귀국하는 '왕정 귀환' 사건이 있었다. 그러다 1947년 국왕인 라마 8세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쁠랙 피분송크람 당시 육군야전사령관이 '2차 쿠데타'를 일으키며 왕정은 폐지되었고 대통령 중심제를 골자로 한 헌법이 통과되면서 현재의 공화국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피분송크람 정부 하에서 공화국 체제는 제대로 뿌리내릴 수 없었고 잇다른 국내외 혼란 속에 사릿 타나랏 장군이 쿠데타를 통해 피분송크람 정부를 축출하고 전권을 잡게 되었다. 타나랏 정부는 강력한 군부의 통제력에 기반한 치안 유지 정책으로 공포 정치를 펼치며 반대파를 축출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이 있지만, 반대로 중앙집권화를 통한 정책 추진력을 통해 성공적으로 경제 발전을 위한 초석을 닦았다는 평을 받는다. 또한 타나랏 정부 시기에 적극적인 친미 외교 정책을 펼치며 동남아시아의 교두보 역할을 자처하기도 하였다.

    이후 1980년대, 타놈 끼티카존 대통령의 대통령 7년 임기 개헌을 두고 반발이 거세던 중, 정부가 야권의 민주화 투사였던 수라윳 호티디엠과 민주화 세력 일당을 잡아 들이기 위하여 대낮에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이들을 기습한 것이 알려지면서 방콕 시내는 타이 민주화 운동의 최전선이 되었고, 끼티카존 정부가 개헌 철폐 및 야당의 정치 활동을 허가하면서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렸다.

    타이 공화국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대대적인 경제 계획을 수립, 시행하였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신흥공업국'으로 불리우고 있다. 동남아시아 전체에서도 결코 영향력이 작지 않다. 그러나 여전한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하여 태국의 경제는 본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2000년대 초반, 민주화 이후 집권한 수라윳 호티디엠 1기 정부는 군정장교제(정치장교제)를 도입하면서 군부의 문민에 의한 통제를 본격화하였으나, 계파와 인물 중심으로 움직이는 군부에는 큰 효력을 거두지 못했고, 현재까지 호티디엠 정부가 20년에 가까운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군부 내 특정 계파와의 결탁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올 정도이다.

    국호

    태국이라는 명칭은 타이(ไทย)의 중국어 발음을 한자로 음역한 명칭으로, 헌법 상의 공식 명칭은 타이 공화국이다. 본래 1939년 이전에는 시암이라는 국호가 사용되었는데, 1933년 쿠데타 이후, 1938년 총리로 집권한 쁠랙 피분송크람은 시암이라는 국호가 전근대적이고 과거로 퇴보하는 이름이라는 명분으로 타이라는 명칭으로 바꾸도록 결정하였다.

    일본에 굴욕적인 외교 조약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에 참전했던 피분송크람 정부가, 패전과 함께 왕당파의 쿠데타로 실각하면서 국호 문제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되었다. 당시 왕당파였던 쁘리디 파놈용 총리는 국외 망명 중인 라마 8세를 국왕으로 추대하면서 다시 왕정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옛 명칭인 '시암'이 필요하다며 국호를 다시 되돌리자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1946년 2월, 시암으로 되돌려졌으나, 왕정 복고 후 2년도 안되서 쫓겨났던 쁠랙 피분송크람이 다시 쿠데타로 재집권함에 따라 타이 공화국로 바꿔져 현재의 국호로 이어지고 있다.

    국기

    현재 사용되는 국기는 태국어로 '뜨라이롱'이라고 하며, 왕조 시절인 1917년 제작된 삼색기를 바탕으로 한다. 이후 1946년 2월, 국호 변경과 함께 국기에 '자유와 정부의 권위'를 상징하는 독수리 문양을 추가하는 현재의 도안이 국기로 채택되었다.

    국가

    타이 공화국의 국가는 『공민의 노래』로 사릿 타나랏 대통령 집권기인 1960년에 정식 국가로 채택되었다. 그 이전에는 태국 육군행진곡을 국가로 사용하고 있었다. '공민의 노래'는 쩐반 첸두리양이라는 무명의 베트남 출신 사회운동가가 작곡하였다고 알려졌는데, 이 이야기에 의하면 첸두리양은 1910년대 반왕정 운동을 전개했던 인물로, 가도 행진을 위해 동지들과 부르기 위해 쓴 곡이 '공민의 노래'라는 것이다. 국가의 가사는 1910-20년대 활동하며 '태국 현대 시의 기틀을 닦았다'고 평을 받는 시인 꼰 후타싱(ก้อน หุตะสิงห์)이 생전에 쓴 시를 사용하고 있다.

    국화

    국장

    역사

    군사정부 시기

    현대

    자연환경

    영토

    지형

    생태

    자원

    인문환경

    인구

    언어

    종교

    교통

    행정구역

    타이 공화국은 특별 행정시인 방콕과 75개의 도를 포함하여 76개의 광역 행정구로 구성되어 있다.

    정치

    정당

    행정

    국제관계

    경제

    사회

    교육

    문화

    타이 공화국은 본래 역사적으로 불교의 나라로, 현재도 전 국민의 약 95%가 불교(소승 불교) 신자이다. 이러한 불교 양식과 함께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서 유래한 양식이 어우러진 '아유타야 양식'이 유행하며 현재 태국 문화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 아유타야 양식이 잘 나타나는 것은 현재 남아있는 왕궁과 불교 사원들로, 황금빛의 첨탑과 높은 지붕, 하늘을 향해 곧이 뻗은 장식용 돌기들은 태국 문화의 황금기를 상징한다.

    민주공화정 수립 이후 국교를 해제함에 따라 종교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가장 많은 신자 수를 보유한 종교는 불교이다. 2015년 기준으로 국민의 94.5%가 불교 신자이며, 2위인 이슬람교는 4.29%, 기독교와 힌두교는 각각 1%와 0.03%를 차지하고 있다. 이슬람교는 대체로 남부 말레이 반도 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데, 불교 중심의 단일 종교 체제의 오랜 역사와 문화로 인하여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지만 소수 종교 차별로 인한 종교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스포츠에서는 현재 축구가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두 번째가 야구, 세 번째가 무에 타이이다. 축구는 1954년 피분송크람 정부 때 '타이 프로축구 리그'로 출범하였으며, 야구는 같은 시기 '타이 프로야구 리그'로 출범하였으나 관중 부족과 운영난 등 복합적인 문제로 60년대에 폐지되어 '방콕 야구 대회'로 명맥을 이어오다, 다시 1989년 끼티카존 정부의 우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타이 야구 선수권 대회'로 재출범하였다. 축구는 1990년대부터 1부 리그와 2부 리그 승강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1부 리그 20개 팀, 2부 리그 22개 팀으로 구성하고 있다. 야구는 6개 구단이 참가하는 단일 리그로 운영하고 있다. 축구의 경우는 구단과 지역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시민 구단'이 대다수를 이루는 반면, 야구의 경우에는 기업 구단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러한 차이는 두 리그의 출범 방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축구의 경우 처음 프로 축구가 출범했던 1954년에는 피분송크람 정부 주도 하에 '지역 클럽'으로 각 행정구역에서 팀을 창설한 것으로 출발했고 그 팀들이 서로 합쳐지는 과정을 통해 현재 프로 축구의 모습을 갖추었다. 한편 야구의 경우 폐지 이후 80년대에 재출범하는 과정에서 끼티카존 정부가 기업 별로 야구단을 창설하여 운영하도록 하면서 프로 야구가 출범하였기 때문에 축구와 야구의 큰 차이가 난다.

    군사

    단위

    법정 연호

    시간대

    관련 문서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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