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운영위원회 보호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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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청 소재지 | 중구 육조대로 110 (태평로1가) | |||||||||||
| 면적 | 605.2km2 | |||||||||||
| 하위 행정구역 | 24구 | |||||||||||
| 인구 | 10,969,862명[1] | |||||||||||
| 인구밀도 | 15,532.47명/㎢ | |||||||||||
| 한성부판윤 | 이해원 | |||||||||||
| ISO 3166-2 | KR-11 | |||||||||||
개요
| 00年代 漢城 |
| 城高鐵甕千尋 / 성은 높아 천 길의 철옹이고
雲繞蓬萊五色 / 구름은 봉래 오색을 둘렀구나 年年上苑鶯花 / 해마다 정원에는 앵화 가득하고 歲歲都人遊樂 / 세세로 도성 사람 놀며 즐기네 |
| - 정도전,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 中 도성궁원(都城宮苑) |
한성부는 대한제국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이다. 평양부, 경주부, 개성부, 전주부, 부여군, 공주부, 익산부, 고령군처럼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한제국의 고도 중 하나다.
법률상 대한제국 제1의 도시로 규정되어 있다. 현재 대한제국에서 최고 부[2], 수장인 한성부 판윤은 대한제국 광역자치단체장 중 유일하게 대신급 대우를 받으며 국무회의 참여권 및 발언권이 있다. 한성은 대한제국 제2의 도시인 부산보다도 인구가 약 3배 더 많은 명실상부한 대한제국 종주도시다.
역사적으로도 백제, 조선~舊대한제국의 수도이자 현재 대한제국의 수도로서 중요성이 높다. 기원전 18년 백제가 현 송파·강동구 지역에 도읍해 492년간 한성 시대가 이어졌다. 이후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조상들의 원수를 갚을 겸 개로왕과 그의 신하, 장병들을 죽이고 한성을 함락했는데, 북쪽에 기반을 둔 국가인 고구려는 기존 백제의 한성에서 북쪽으로 한강을 건너 현 광진·성동구 및 구리시 일대를 거점으로 삼아 고구려의 북한산군으로 지정했고, 이후 한성부는 강북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고구려의 영토인 적도 있었으나, 얼마 못 간 후에 백제가 고구려로부터 남·북한산주를 비롯한 한강 유역을 다시 되찾았다. 허나 자체적인 사정으로 한성을 포함한 한강 유역을 스스로 포기했고 553년에 신라가 차지해 이후부터 신라의 한산주 한양군이 되었다. 이후 고려 시대에는 약 250년간 개경 이남의 남경으로 국가적 주요도시인 3경의 하나였다. 조선 시대에는 510년 동안 조선 및 舊 대한제국의 수도 한성부였고, 이어 70여년간 대한제국 수도인 한성으로서 지위를 차지하는 도시로, 한강 이남의 위례성→남한산주와 한강 이북의 북한산주→한성의 역사를 통틀어 한국사에서 도합 1070여 년간 수도로서 기능했고 부수도 기간까지 합치면 13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의 고도다.
전통적으로 한성은 강북 지역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60년대 한성 대확장을 통해 한강 이남까지 관할구역이 확장되었다. 현재의 한성부 영역은 舊 한성부 영역에서 조선 후기의 양천현 전체와 시흥현, 과천현의 상당 지역, 광주유수부와 양주목, 부평도호부의 일부를 추가로 편입한 형태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인 만큼 비교적 최근에 개발된 강남의 평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일목요연하게 설립된 계획도시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강남을 제외한 지역은 산과 강 같은 자연과 아름답게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형성된 도시 형태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