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사회체계이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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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기실 주체 중심의 사고관이 역으로 자유주의적 기획을 벗어나지 못 했다는 점이 학계에서 구조주의와 해체론을 토대로 비판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루이 알뛰세와 미셸 푸코 등은 주체는 구조 혹은 담론으로 대변되는 주체 이상의 것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었다. 푸코는 주체란 권력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언어와 지식으로 대표되는 '담론' 속에서만 활동할 수 있음을 자본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면밀한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그에 의하면 권력은 우리 스스로가 사용하는 것이며 저항 또한 이 프레임 내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알뛰세는 역시 주체가 힘의 작용을 통해 구성된다고 말하며 주체에 대한 구조의 우위를 주장했다. 이처럼 고전적인 주체 개념은 이미 새로운 사상의 선택지로 작용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SS는 구조주의와 해체론에서 자유와 부자유가 엄밀화되지 못 했다며, 또는 사회 개념을 선험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음을 말하며 이들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2. 기실 주체 중심의 사고관이 역으로 자유주의적 기획을 벗어나지 못 했다는 점이 학계에서 구조주의와 해체론을 토대로 비판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루이 알뛰세와 미셸 푸코 등은 주체는 구조 혹은 담론으로 대변되는 주체 이상의 것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었다. 푸코는 주체란 권력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언어와 지식으로 대표되는 '담론' 속에서만 활동할 수 있음을 자본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면밀한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그에 의하면 권력은 우리 스스로가 사용하는 것이며 저항 또한 이 프레임 내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알뛰세는 역시 주체가 힘의 작용을 통해 구성된다고 말하며 주체에 대한 구조의 우위를 주장했다. 이처럼 고전적인 주체 개념은 이미 새로운 사상의 선택지로 작용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SS는 구조주의와 해체론에서 자유와 부자유가 엄밀화되지 못 했다며, 또는 사회 개념을 선험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음을 말하며 이들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3. 무엇보다 자유 개념은 '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일련에 사상에 의해 이미 대표되고 있었으며, 이들의 기본 논리는 주어진 기본 단위로서의 주체를 상정하고 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68혁명의 기획과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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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무엇보다 자유 개념은 '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일련에 사상에 의해 이미 대표되고 있었으며, 이들의 기본 논리는 주어진 기본 단위로서의 주체를 상정하고 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68혁명의 기획과 다를 바 없었다. 특히 LSS는 자유주의와의 대결에 주목했다. 자유주의가 근대의 빈곤과 착취를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 하고 심지어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가 낳는 가학적 상황의 원천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자유주의가 근본적으로 개인 밖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를 자유주의가 전제한 사회명목론의 문제로 본 LSS는 따라서 '사회' 그 자체의 개념을 정식화하며 시작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 자유주의 내에 샌델, 드워킨, 왈저 등이 이미 개혁적인 대안을 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LSS가 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는, 이미 새로운 형태의 착취로 분류된 자기착취에 대해 이들이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실 현대의 긍정성이
  
LSS는 이 중 특히 자유주의와의 대결에 주목했다. 자유주의가 근대의 빈곤과 착취를 효ㅕ과적으로 설명하지 못 하고 심지어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가 낳는 가학적 상황의 원천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자유주의가 근본적으로 개인 밖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를 자유주의가 전제한 사회명목론의 문제로 본 LSS는 따라서 '사회' 그 자체의 개념을 정식화하며 시작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 자유주의 내에 샌델, 드워킨, 왈저 등이 이미 개혁적인 대안을 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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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는 이들에 대해 비판을 할지언정 그 가학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연구하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실 가학을 주체의 자유로운 활동 속에서만 두고 보자면, 오로지 욕구 충족의 방해에서 확장된 형태만을 가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었으며, 따라서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른 사상 내의 '중도파' 정도의 역할만을 자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LSS가 경성 과학 수준의 체계화까지 목표로 하고 시작했음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불만족스로운 답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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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0일 (목) 15:19 판

가상의 사상. 통칭 LSS 이론(혹은 LSST). 해방사회체계이론 (에스페란토: Liberigita Socia Sistema Teorio, 영어: Liberated Social System Theory)과 해방체계사회주의이론 (에스페란토: Liberigita Sistema Socialisma Teorio, 영어: Liberated System Socialism Theory) 이라는 말이 혼용된다. 이하는 모두 LSS로 통일한다.

LSS라는 이름은 남태평양 해방 공화국에 위치한 해방사회체계연구소(Liberagita Socia Sistema Institutio)를 중심으로 정세민을 비롯한 여러 사상가들의 이론을 일컫는다. 이 이론은 2028년 세계 혁명의 핵심을 이루는 사상이 되었으며, 현대 사회주의의 큰 흐름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그 핵심은 상호 해방적 소통 구조의 건설을 통한 모든 가학의 철폐 로 요약할 수 있다.

배경

LSS의 문제의식은 68혁명이 부르짖었던 자유(Libertaire)의 개념을 정식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기실 실존주의를 전범으로 했던 68혁명 당시 자유관에 분명 모호하고 비정합적인 부분이 있었던 만큼, 새로운 이론이 이를 비판적으로 계승하고자 한다면 우선 자유 개념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LSS는 이를 근대적 주체 개념을 해체하고 이론 밖으로 내몰면서 시작했다. 여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1. 상술하였듯, 68혁명 당시 사상적 전범이 되었던 네오맑시즘의 계보로부터 역사적으로 파생된 정체성정치와 환경정치 등은 20년대 말 위기를 맞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 운동이 만든 고유의 언어와 생활 양식이 탈근대 사회의 파편화 물결을 정확히 포착해내지 못 하면서 스스로 폐쇄적인 공동체로 귀결된 이유가 컸다. 이들은 점차 중산층의 아비투스화 하면서, 신보나파르티즘 동맹의 저항 세력 정도로만 위치를 잡고 있었을 뿐 결코 수권을 위한 세력이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피로를 느끼면서 내부에서 '게토화'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으며 이들은 LSS의 초창기 성립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의식이 되었다.
2. 기실 주체 중심의 사고관이 역으로 자유주의적 기획을 벗어나지 못 했다는 점이 학계에서 구조주의와 해체론을 토대로 비판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루이 알뛰세와 미셸 푸코 등은 주체는 구조 혹은 담론으로 대변되는 주체 이상의 것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었다. 푸코는 주체란 권력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언어와 지식으로 대표되는 '담론' 속에서만 활동할 수 있음을 자본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면밀한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그에 의하면 권력은 우리 스스로가 사용하는 것이며 저항 또한 이 프레임 내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알뛰세는 역시 주체가 힘의 작용을 통해 구성된다고 말하며 주체에 대한 구조의 우위를 주장했다. 이처럼 고전적인 주체 개념은 이미 새로운 사상의 선택지로 작용할 수 없었다.[1]
3. 무엇보다 자유 개념은 '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일련에 사상에 의해 이미 대표되고 있었으며, 이들의 기본 논리는 주어진 기본 단위로서의 주체를 상정하고 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68혁명의 기획과 다를 바 없었다. 특히 LSS는 자유주의와의 대결에 주목했다. 자유주의가 근대의 빈곤과 착취를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 하고 심지어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가 낳는 가학적 상황의 원천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자유주의가 근본적으로 개인 밖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를 자유주의가 전제한 사회명목론의 문제로 본 LSS는 따라서 '사회' 그 자체의 개념을 정식화하며 시작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여기서 자유주의 내에 샌델, 드워킨, 왈저 등이 이미 개혁적인 대안을 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LSS가 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는, 이미 새로운 형태의 착취로 분류된 자기착취에 대해 이들이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실 현대의 긍정성이

맑스주의는 이들에 대해 비판을 할지언정 그 가학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연구하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실 가학을 주체의 자유로운 활동 속에서만 두고 보자면, 오로지 욕구 충족의 방해에서 확장된 형태만을 가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었으며, 따라서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른 사상 내의 '중도파' 정도의 역할만을 자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LSS가 경성 과학 수준의 체계화까지 목표로 하고 시작했음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불만족스로운 답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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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S란 21세기 초 복잡계 사회학의 발달로 만들어진 사상으로, 자유와 가학의 개념을 미시사회학적으로 엄밀히 밝힌 정세민의 일반 소통 이론에 근거하여 사회주의를 재건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LSS는 근대적 소유자로서의 주체 개념을 부정하고 이를 재귀준거적 체계 개념으로 대체한다. LSS는 사회가 자기생산적으로 작동하는 소통을 통해 구성된다고 보고, 이 소통은 다시 근대 사회에 이르러 기능적 분화를 취하다가 결국 포함/배제-분화의 슈퍼코드로 수렴된다고 본다. 이 때 분화 도식들은 근대에서 자본주의적 질서에 의해 규정되며, 이에 따라 복잡성이 관리된다.

LSS가 기존의 체계이론과 다른 점은 체계이론이 단순한 매체의 보편성에 기초한 세계사회를 상정하는데 반해, LSS는 매체의 공간적 차이가 아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체계들의 분화가 상이한 방식을 띨 수 있다고 본다. 이에 자본주의는 세계 사회에서 주류 포함 집단을 구성하는 기제가 되며, 이에 미치지 못한 주변부가 자본주의와 공존하며 변동을 겪는 것으로 본다.

LSS는 역사를 분석하며 자본주의, 나아가 근대성 자체에 파쇼적 수행성이 내재되어 있다고 보며, 아울러 정체성 정치로 대표되는 기존의 포스트모더니즘 조차 근대적 및 탈근대적 도식인 포함/배제를 벗어나지 못 한다고 본다. 이에 배제당한 자라는 공통의 감각에 기초해[2] 새로운 주체를 구성하고 이들의 연대적 소통을 통해 해방구를 건설해야 한다고 본다.

LSS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일정 조건이 만족될 경우 복잡성을 그대로 보존하는 조건 하에 시장을 철폐하고도 완전한 정보 없이 파레토 최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증명하여 사회주의의 새로운 기초를 닦았다. 또한 일상적인 감정 분석에 기초해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형태의 소통을 만들고자 하였다.

LSS가 만든 원칙들은 다음과 같다:

  • 배제자 상위 원칙
  • 집단 순환 원칙 / 넓은 집단 원칙
  • 배제자 네트워크 구성
-비밀권 보장
-소통 재귀책임 원칙
  • 무차별 원칙
  • 최후 소통권 원칙

LSS의 핵심은 해방 의정서의 첫 문장

침묵을 강요하는 체제는 자신이 억눌러온 모든 것에 의해 무너진다

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말과 사물』
『구조와 모순』
『』

『』

  1. 그럼에도 불구하고 LSS는 구조주의와 해체론에서 자유와 부자유가 엄밀화되지 못 했다며, 또는 사회 개념을 선험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음을 말하며 이들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2. LSS는 이를 '가난의 감각'에서 찾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