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미네/생애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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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미네 공녀가 부모인 하인리히 22세 공작과 샤움부르크리페의 이다 공주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

로이스그라이츠 공국의 공녀 헤르미네는 하인리히 22세 공작과 샤움부르크리페의 이다 공주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 하인리히 22세가 공국의 군주이자 공작이었기에 그녀는 공녀 작위를 지녔으며, 경칭으로는 '전하'라 불렸다.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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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모습 공녀 시절의 모습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자세한 삶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훗날 세련되고 우아한 복식 감각으로 주목받았던 만큼, 그녀의 뛰어난 패션 감각 역시 어린 시절부터 드러났을 것으로 추측된다.

독일제국 황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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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시절

빌헬름 2세의 첫 번째 황후인 아우구스테 빅토리아가 사망한 이후, 헤르미네는 독일제국의 두 번째 황후가 되었다. 당시 빌헬름 2세에게는 아우구스테 빅토리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있었으나, 헤르미네는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후 친자녀 두 명을 낳았음에도 의붓아들들과는 매우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였다.

패션 잡지 회사 차리다

헤르미네는 황후로서는 최초로 잡지 회사를 설립하여 사장이 되었다. 패션 일보에 글을 낼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황후가 아니었다면 사장으로서 크게 활약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으며, 황후로서의 역할 또한 훌륭하게 해냈다.

자선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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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활동에 참여하는 황후 헤르미네

헤르미네는 황후이자 기업인으로 활동하는 한편,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고아원을 방문하는 등 적극적인 자선 활동을 펼쳤다. 며느리인 황태자비 마리아와 손주며느리인 황태손비 알토와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러한 헤르미네의 따뜻한 성품과 꾸준한 봉사활동은 국민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이는 데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의붓아들인 빌헬름 황태자와의 불화로 인해 이틀간 봉사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후 남편인 빌헬름 2세와도 성격 차이로 갈등을 겪으면서 자선활동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혼 후에도 헤르미네는 자선활동을 계속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며, 어려운 이웃과 아이들을 돕겠다는 뜻을 이어갔다.

빌헬름 2세와 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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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싸움을 벌이는 빌헬름 2세와 헤르미네 황후

빌헬름 2세와 성격 차이로 인해 자주 부딪히게 되었고, 결국 이혼 위기 끝에 두 사람은 이혼을 결정하게 되었다. 헤르미네는 이 과정에서 의붓아들들은 물론 친자녀들까지 걱정하며 많은 고민을 하였다.

재결합 거절

이후 빌헬름 2세가 재결합을 제안하였으나, 헤르미네는 이를 거절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앞으로 재결합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이후

헤르미네는 이후 로이스그라이츠의 공녀로 돌아가며 이름 또한 헤르미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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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이후 쇼핑하는 헤르미네 공녀

최근에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기는 모습이 포착되어 다시 한번 사교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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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의 근황 사진

아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베를린 왕궁을 찾은 헤르미네는 자녀들과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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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붓딸 제1황녀 루이제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 친딸 제2황녀 벨모라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

이혼으로 작위가 변경되면서 황후의 신분에서 다시 공녀가 된 헤르미네는 공녀의 신분으로 황자와 황녀, 공비를 맞이했다.

황태자비, 황태손비, 공비, 황자와 황녀의 경칭은 모두 ‘전하’이며, 헤르미네 역시 황후 시절에는 ‘황후 폐하’였으나 이혼 후 공녀가 되면서 경칭이 다시 ‘전하’로 변경되었다.

헤르미네는 앞으로도 자녀들과 꾸준히 만남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문화 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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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 취임식 사진

황후 시절 운영했던 ‘독일 패션 일보’는 ‘독일 문화 일보’로 개편되었다.

이와 함께 헤르미네는 독일 문화 일보의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앞으로 문화와 패션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쇠나이히카롤라트의 공자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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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후 연회장에 참석한 헤르미네 공자비

독일제국의 전 황후였던 헤르미네는 1918년, 요한 게오르크 폰 쇠나이히카롤라트 공자와 재혼하면서 쇠나이히카롤라트의 공자비가 되었다. 두 사람은 비공식적인 결혼식을 올렸으며, 당시 연회장에는 여러 귀족들이 참석해 두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공자비의 지위에 오른 이후에도 헤르미네는 자신의 기업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또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중요하게 여기며, 앞으로 자선활동과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새로운 신분을 얻은 뒤에도 기업인으로서의 활동과 자선사업을 이어가겠다는 헤르미네의 행보는 당시 귀족사회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다시 시작된 자선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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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활동에 참여하는 헤르미네 공자비

헤르미네는 황후 시절부터 이어오던 자선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예전처럼 화려한 마차 대신 전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시민들의 눈에 띄면서 처음에는 다소 낯설어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민들도 그녀의 새로운 모습에 차츰 익숙해져 갔다.

무엇보다 변함없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시민들을 살피는 헤르미네의 선행에 시민들은 다시 한번 그녀의 따뜻한 마음과 선함을 칭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