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사노바 연방/역사

롬베드로프 왕국(1798 ~ 1856)

피에몬테와 에밀리아로마냐에 위치한 왕국으로 1812년 이탈리아 통일 전쟁으로 북부 오스트리아령 지역을 제외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데 성공한다. 통일 이후 입헌군주제가 자리 잡게 되었고 롬베드로프 의회가 탄생하게 된다. 1822년 제노바 폭동으로 전제군주제를 지지하는 왕당파와 공화정을 지지하는 공화파의 대립은 한계에 치닫게 된다. 이는 1831년 롬베드로프 정치 위기, 1853년 밀라노 혁명으로 까지 이어지며 이 둘의 대립은 무력으로 확대되다가 공화파가 일으킨 1856년 나폴리 폭동이 결국 내전으로 확대되며 롬베드로프 왕국은 둘로 갈라지게 된다.

롬베드로프 내전(1856 ~ 1861)

우선적으로 로마를 점령한 왕당파지만 롬베드로프 산업 대부분이 집중된 북부를 먼저 점령한 공화파는 즉각적으로 군대를 양성해 남부로 진격한다. 하지만 공화파와 왕당파에서 내부분열이 일어나며 1857년에 시칠리아가 독립, 1859년에 샤르데냐가 독립하게 된다. 공화파에서도 산레모 반란 같은 독립 시도가 일어나지만 모든 점령지가 육로로 연결되어 있고 기반 시설, 철도도 많이 설치되어 있는 이탈리아 북부 특성 상 반란은 금방 진압 당했다. 왕당파는 계속 밀려 타란토까지 후퇴하고 왕당파 내부 쿠데타로 들어선 새로운 정부가 1861년 2월 15일, 공화파에 항복하고 만다. 내전에서 승리한 공화파는 체제 안정을 위해 롬베드로프 임시 왕정을 수립하고 5개월 후 헥사노바국을 선포한 뒤 국왕 움베르토 1세를 폐위시킨다.

헥사노바국(1861 ~ 1918)

내전이 끝난 후 헥사노바는 내전 중 왕당파로부터 독립한 샤르데냐와 시칠리아로 향한다. 샤르데냐에는 이미 친공화파 정부가 들어서 있기에 1863년 합병하게 된다. 시칠리아는 헥사노바 편입을 반대하며 헥사노바국은 1864년 시칠리아에 선전포고하며 합병한다. 이 때부터 헥사노바국은 자신과 같이 오스트리아를 몰아내는데 동의하는 프로이센과의 관계를 다지게 된다. 1869년, 베를린에 방문한 헥사노바국 외교관은 프로이센과 함께 밀약을 맺어 프로이센은 독일 연방을 해체하고 헥사노바는 오스트리아로부터 발칸 영토를 얻는데 서로 동의하며 1874년 오스트리아를 함께 침공하게 된다.

오스트리아는 전쟁에서 패배하고 조약 내용에 따라 독일 연방이 해체, 프로이센은 북독일 연방을 결성하고 헥사노바국은 롬바르디아-베네치아, 이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합병하게 된다. 이후 헥사노바는 민간 경제를 키우는데 집중하지만 1899년 들어선 새로운 정부는 팽창주의적 정책을 펼치며 1901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점령하고 1년 뒤 몬테네그로를 침공하며 발칸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1905년 발칸 전쟁에서 승리하며 막대한 영토를 얻게 된다. 이때 그리스는 오스만 제국의 루멜리아 속주에 가로막혀 그리스 공국(1905 ~ 1918)이라는 괴뢰 정부를 세우게 된다.

헥사노바국은 프로이센과의 우호를 이용해 독일 제국과 동맹 관계까지 발전하며 제1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해 오스만을 항복시키고 전후 협상에서 캅카스도 추가로 얻어오는데 성공한다. 발칸 전쟁 이후 수립된 그리스 공국을 1918년 10월에 합병한다.

헥사노바국 말기(1918 ~ 1927)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헥사노바국은 추가로 남프랑스를 할양 받으며 방대한 영토를 얻게 된다. 하지만 한순간에 많아진 민족, 갑작스레 늘어난 지출 때문에 국가는 혼란스러워 진다. 1923년 대공황이 덮쳐오며 경제 상황은 더 어려워 지며 극단주의가 판치게 된다. 1927년 베네치아에서 쿠데타 세력이 베네치아를 점령하고 로마까지 점령하고 헥사노바 공화국을 선포하며 헥사노바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헥사노바 공화국(1927 ~ 1980)

헥사노바 공화국이 출범하고 헥사노바 공화국은 곧바로 군비 증강을 하게 된다. 보통 국가라면 막대한 군비 증강은 경제를 망하게 하지만 헥사노바 공화국은 점령지 유지와 국가 방위를 위해 계속해서 군비를 증강 하며 경제는 더욱 더 망가지게 된다. 그리고 헥사노바 공화국은 당시 유럽에서 많은 자본을 보유하고 있던 스페인을 1941년 침공해 헥사노바-스페인 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스페인은 대공황 이후 군축을 하고 있던 상황이라 헥사노바 공화국의 군대를 못 이기고 항복 하게 된다. 헥사노바는 지중해를 헥사노바의 내해로 만든다는 계획에 따라 1919년 영국으로부터 조차받은 지브롤터와 남프랑스를 연결하기 위해 스페인 동부 해안가 전역과 스페인령 모로코를 합병한다. 그리고 마드리드 금 보유고와 바르셀로나 금 보유고를 약탈해 파산 직전이던 경제를 겨우 되살리는데 성공한다.

헥사노바 공화국은 석유가 적은 국가였다. 그래서 석유 대부분을 루마니아, 미국으로부터 수입 해오고 있었는데 점점 석유 가격이 올라가자 중동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헥사노바 공화국은 이미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있었기에 이번에도 아무 이유 없이 전쟁을 일으키면 엄청난 경제 제재가 들어올 것이 분명했으니 킬리스 사건이라는 자작극을 통해 이를 명분으로 중동을 침공하게 된다. 1973년 중동을 장악한 헥사노바는 그곳에 식민지를 설치하고 페르시아를 협박해 페르시아 서부를 추가로 뜯어 오는데 성공하고 북아프리카 원정으로 완전히 지중해를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역시 단기간에 영토를 엄청 확장 한 만큼 식민지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게 되며 본토의 소수 민족들도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1978년 발칸 대봉기는 헥사노바 공화국 정부를 굴복 시켰으며 발칸 민족주의자 대표와 하나의 협상을 하게 된다. 협상 내용은 기존 헥사노바 공화국의 중앙 집권적 체제를 포기하고 각 지역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연방제로 재편할 것. 요구를 수락한 헥사노바 공화국은 헥사노바 연방으로 재편되며 헥사노바 본토를 카탈루냐, 그라나다(1978 ~ 1991), 그로스란트,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알바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소아시아, 키프로스, 세르비아(1978 ~ 1999)로 나누게 된다. 그리고 이 10개의 구성국을 하나로 합쳐 현재 헥사노바 연방의 본토를 지칭하는 첸트랄란트로 부르게 된다.

헥사노바 연방(1980 ~ 현재)

1991년 헥사노바는 스페인과의 조약을 통해 그라나다 공화국을 스페인에 반환하게 된다. 2011년 광저우를 조차하며 남중국해로 진출하는 길을 얻게 된다. 하지만 수십년간의 잦은 전쟁과 단기간에 확장한 거대한 영토, 발칸 대봉기와 같은 사건들로 중앙 정부의 힘이 약해지고 군부 세력이 성장하게 된다. 군부 세력은 2009년부터 계속해서 쿠데타 시도를 벌여오지만 죄다 실패하며 2019년 3월에 일어난 쿠데타는 야당인 국가중앙당에 의해 진압되고 국가중앙당은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 승리하며 군부 세력을 축출, 결국 독재 체제를 확립하고 만다.

헥사노바 연방은 영토를 늘리기 보단 위성국을 늘리는데 집중한다. 2019년 6월에 발생한 스페인 경제 위기를 헥사노바 연방이 지원해주며 스페인의 다양한 이권을 가져오는데 성공한다. 이후 차례대로 스페인 경제 위기로 같이 위험에 처한 스위스, 프랑스, 트란실바니아 공화국, 크림 공화국을 똑같이 지원하고 이권을 챙겨 사실상 앞에 나온 5개국을 위성국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독재 체제가 확립되고 난 후 식민지 수탈은 더더욱 강해졌으며 2023년에 유럽 최대 박물관인 비잔티움 박물관이 개관하고 이집트 식으로 꾸며진 빈 전시관이 있었는데 2023년 말, 이집트 전역에서 식민지 경찰과 주둔군이 이집트의 거의 모든 유물을 약탈해 비잔티움 박물관으로 보낸 것이 그 예이다. 이외에도 중동 원정 때 일부가 파괴되고 방치된 예루살렘과 메카를 완전히 파괴시켜 사실상 전세계를 적으로 만들어버렸다. 현재도 수탈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라이히스콜로니의 경제는 추락하고 경제학자들은 2040 ~ 50년대에 헥사노바 연방에 대규모 경제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