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비전/왕후/장화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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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기록

古人云

忠臣不事二君,烈女不更二夫。 昔有義士,聞國將亡,誓以死報國。 臨行之際,有村女奉酒於前。 義士辭曰 國難未平,何敢安飲。 遂策馬而去。

옛사람이 말하기를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두지 않는다. 옛날 한 의로운 선비가 있었는데 나라가 망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겠다고 맹세하였다. 길을 떠나려 할 때 마을 여인이 술을 바쳤으나 그는 말하였다. “나라의 난리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는데 어찌 편히 술을 마실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말을 타고 떠났다.

—  고려사 〈후비전:장화왕후〉
나주원왕후께서 모든 부인들을 불러모아 서책을 나눠주시며 명하시길

" 일주일안에 각각 이 서책들을 필사하여 왕후전으로 검사받으러 오시오. "

그러자 많은 후궁들이 당황하였고 왕후께서 못하겠느냐 하시며 호통을 치시자 부인들께서 명을 따르겠다 하셨다.

— 고려사 〈후비전:장화왕후〉

나주원왕후와 충주원왕후,황주원왕후와 대량원왕후께서 다함께 임천각에 모여앉아 다과를 즐기시다 충주원왕후께서 나주원왕후께 말하시길

" 나주원왕후께선 참 대단하십니다. 의지할 뿌리 하니도 없이 그리 높은자리에 서계시니깐요.

다만... 나무라는것이 뿌리가 얕으면 아무리 줄기가 굵어도 바람앞에서 제일먼저 흔들리기 마련이라 하여 신첩은 그저 걱정될 뿐 입니다.. "


그러자 나주원왕후께서 안색이 안좋아지셨고 다른 왕후들께서 눈치를 살피시었다.

—  고려사 〈후비전:장화왕후〉

상이 교지를 내려 이르기를, "짐이 부덕하여 황위에 오른 뒤에도 여러 두려움에 얽매여 뜻을 펴지 못하였고, 생모를 오래도록 돌보지 못하였노라. 이에 생모를 왕태후로 존봉하고 만월대를 처소로 삼게 하노라." 하였다.

이에 장화왕후가 왕태후로 책봉되어 다시 만월대로 돌아오니, 그동안의 고난을 보상받듯 평온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재궁 밖에서 얻은 병환이 깊어져 오래지 않아 훙서하니, 향년 84세였다. 사람들이 이를 슬퍼하였다.

—  고려사 〈후비전:장화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