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lle Étoque/타임라인


| 거인의 기상

1928년 10월, 뉴욕 연방준비은행장 벤저민 스트롱이 심장마비의 위기를 넘기고 생존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연준의 금리를 미세하게 조정하여 시장의 과열을 잠재웠다.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1]이 찾아왔을 때 뉴욕 증시는 요동쳤으나 붕괴하지 않았다. 스트롱은 J.P. 모건을 포함한 월가의 거물들을 소집하여 무제한 매수를 지시했고, 연준은 즉각적인 유동성을 공급했다. 폭락은 단 사흘 만에 멈췄으며, 대공황이라는 재앙 대신 '1929년의 가벼운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자본주의의 심장은 멈추지 않고 더욱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 히틀러의 몰락

미국의 자본이 끊기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럽에 유입되자, 도스 안과 영 안에 의존하던 독일 경제는 극적인 안정을 찾았다. 하인리히 브뤼닝 총리는 가혹한 긴축 재정 대신, 풍부한 외자를 바탕으로 한 공공사업과 복지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실업률은 한 자릿수를 유지했고, 중산층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경제가 안정되자 극단주의 정치 세력은 힘을 잃었다. 아돌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은 1932년 선거에서 참패하며 의회 진출에 실패했다. 공산당 역시 대중의 지지를 잃고 지하로 숨어들었다.

나치당 내부는 책임론으로 분열되었고, 돌격대는 자금난으로 해체 수순을 밟았다. 히틀러는 뮌헨의 낡은 맥줏집에서 과거의 영광을 부르짖는 변두리 선동가로 전락했다.

대신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의 뜻을 이은 중도 우파 연정이 권력을 굳혔다. 이들은 영국, 프랑스와의 우호적인 외교를 통해 베르사유 조약의 족쇄를 서서히 풀어갔다. 1935년, 자를란드는 평화로운 투표를 통해 공화국에 복귀했고, 독일은 재군비 선언 대신 '범유럽 경제 공동체'의 핵심 국가로서 오스트리아와의 경제적 관세 동맹을 조심스럽게 추진하기 시작했다.

| 군부의 권력 상실

대공황으로 인한 생사 여탈의 농촌 빈곤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일본 제국 내 민간 정부의 권위는 유지되었다. 시데하라 기주로 외상의 '협조 외교' 노선이 탄력을 받았고, 일본은 영미권과의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경제적 풍요는 군부 강경파의[2] 입지를 좁혔다. 군비 확장을 주장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의회의 예산 삭감 칼날 앞에서 힘을 잃었다. 1931년, 관동군 일각에서 만주를 침공하려는 음모[3]가 발각되었으나, 민간 정부와 천황의 강력한 제지로 주동자인 이시와라 간지 등이 조기 숙청되며 미수에 그쳤다.

결과적으로 만주국은 세워지지 않았고, 일본은 무력이 아닌 거대한 자본을 통해 장제스의 국민정부와 타협하며 만주와 화북 지역의 철도 및 광산 채굴권을 독점하는 방식을 택했다. 아시아는 일본의 경제적 지배 아래 위태로운 평화를 유지하게 되었다.

| 막강한 독수리들

미국은 전례 없는 황금기를 누렸다.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경제 호황의 공로를 인정받아 1932년 선거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가볍게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뉴딜 정책이라는 단어는 탄생조차 하지 않았고, 정부의 간섭이 배제된 자유방임주의 시장 경제가 세계를 주도했다.

마천루가 끊임없이 올라가고 할리우드 영화가 전 세계의 극장을 장악하며 '팍스 아메리카나'의 문화적, 경제적 패권이 완성되어 갔다. 미국인들은 유럽의 골치 아픈 정치 문제에는 눈을 감은 채, 끝없는 소비와 번영의 달콤함에 취해 있었다.

| 고립된 붉은 제국

반면,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이오시프 스탈린은 자본주의 체제가 곧 붕괴할 것이라 굳게 믿었으나, 서구권은 오히려 더 화려하게 번타오르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멸망이 오지 않자, 스탈린은 극도의 편집증에 사로잡혔다.

그는 외부와의 국경을 철저히 봉쇄하고, '일국사회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가혹한 5개년 계획과 농업 집산화를 멈추지 않았다. 서방의 기술과 자본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무리한 공업화는 수많은 인민의 피를 요구했고, 소련은 풍요로운 세계 속에서 홀로 거대하고 기괴한 병영 국가로 고립되어 갔다.

| 기회를 노리는 독수리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영악하게 상황을 이용했다. 대공황의 압박이 없었기에 그는 에티오피아라는 척박한 땅에 군대를 보내는 도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그는 영국, 프랑스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4]하며 지중해 내에서 이탈리아의 경제적, 해군적 입지를 다지는 데 주력했다.

에리트레아와 소말리아는 이탈리아 자본의 집중 투자를 받아 아프리카의 현대적 무역 거점으로 성장했다.

| 식민제국의 유지

영국과 프랑스 역시 식민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부를 바탕으로 구시대의 제국주의적 영광을 연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새롭게 부상하는 아메리카의 자본에 경계심을 품으면서도, 유럽 대륙 내에서 무리한 군비 경쟁을 피하며 현상 유지에 안주했다.

| 새 아침

1936년 새해의 아침이 밝았을 때, 세계는 파시즘의 군홧발 소리 대신 각국 거대 기업들의 컨베이어 벨트 소리와 샴페인 터지는 소리로 가득했다. 극단주의자들은 거리의 구석으로 밀려났고, 총 대신 자본과 조약이 국경선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끝없는 풍요의 이면에서는 거대해진 자본의 독점, 강대국들의 조용한 식민지 경제 전쟁, 그리고 고립된 채 칼을 가는 붉은 제국의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탄환이 오가지 않을 뿐인 '배부른 제국'들의 이권 다툼이라는 새롭고 거대한 형태의 대결이 드디어 막을 올리기 시작했다.

  1. ↑ 1929년 월스트리트 대폭락
  2. ↑ 황제파, 통제파
  3. ↑ 만주 사변
  4. ↑ 스트레사 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