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Split Order: Companies' World/세계관

개요

Great Split Order: Companies' World의 세계관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서이다.

비밀스러운 발견(1958 ~ 1968)

1958년

냉전의 초읽기에 들어선 1958년. 어느 때 처럼 가동되던 스코틀랜드 코노니시 광산에서 무기 개발을 위한 신물질 연구를 위해 영국 정부가 네블라이트라는 광물을 채굴해간다. 영국은 이를 연구소로 보내 연구를 시작한다. 성분 분석과 정밀 검사 결과 네블라이트는 일정 자극만 주면 엄청난 전기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영국은 이 검사 결과를 극비에 부쳐 연구하기 시작한다.

1959 ~ 1968년

영국은 이를 군사적으로 이용하기 보단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자 결정하였다. 이 광물을 실제 발전소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가 계속 되었으며 계속되는 성과와 실패 끝에 1968년, 시험용 발전소를 가동하고 실제 전자 기기들도 작동시키는데 성공하게 된다.

휘몰아치는 지폐와 자유의 폭풍(1969 ~ 1999)

1969년

1969년 미국은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달 착륙에 성공하고 보잉 747과 인터넷 등등.. 하지만 영국은 약 10년간의 연구 끝에 만든 팰머스 네블라이트 발전소를 공개하면서 세상의 이목이 영국에 집중된다. 팰머스 네블라이트 발전소는 영국 전역에 많은 전력을 공급하였고 이로 인해 제조업, 식량산업, 우주산업, 정보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1970년

이미 지구상에 풍부하게 존재하던 네블라이트는 인류 문명 자체를 바꿀 수준이었고 영국은 네블라이트 발전 기술을 독점해 과거 대영제국 시절보다 더 큰 경제적 호황기를 누리게 된다. 또한 아직 남아있던 식민지 재정위기를 해결해 식민지를 발전시키고 식민지 내부의 민족주의자와 협상해 독립을 막는데 성공한다.

1971 ~ 1972년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은 네블라이트 전력을 도입하였고 많은 발전소와 광산이 생겨나게 된다. 막대한 전력 생산력을 통해 산업을 키워가고 있으며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다.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 발발로 OPEC의 회원국들이 석유를 감산하고 원유 가격을 인상하며 벌어진 석유 파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네블라이트 전력을 도입한 선진국에게는 아무런 타격이 오지 않았고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1974 ~ 1976년

선진국의 전기 요금은 엄청나게 저렴해졌으며 화석 에너지 사용은 줄어들게 되기에 중동 전쟁에서 패배하고 선진국이 석유를 사용하지 않게 되자 산유국의 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1977 ~ 1979년

개발도상국들도 네블라이트 전력을 도입하면서 값싼 전력을 확보하게 된다. 가장 큰 혜택을 본 국가는 중국으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과 맞물려 중국의 경제는 실제 역사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1980 ~ 1982년

세계 에너지 비용은 급감하고 생산비 감소, 물가 안정과 같은 경제적 호황이 전세계를 휩쓸게 된다. 일부 대도시는 밤이 낮보다 더 밝다는 평가를 받고 전기를 이용한 이동 수단도 개발되기 시작한다.

1983 ~ 1985년

석유 같은 화석 연료를 거의 쓰지 않게 되면서 산유국의 경제는 폭망하게 된다. 석유는 이제 그저 검은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찍히게 된다.하지만 정작 환경 오염의 주범은 네블라이트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폭발이 발생하게 된다. 폭발은 체르노빌 주변을 방사능에 물들게 했지만 소련은 이미 국가 전력 시스템을 네블라이트로 대부분 변경한 상태라 그렇게 큰 타격은 입지 않게 된다.

1987 ~ 1988년

소련은 점차 서방의 압박 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며 경제적으로도 큰 호황을 맞게 된다. 이때부터 컴퓨터 같은 정보 산업이 크게 발달하게 된다.

1989년

중국은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되면서 높은 교육을 받은 지식인과 중산층이 크게 성장하게 된다. 이 들은 이전부터 민주화를 요구하였으며 결국 이런 요구가 한계에 치닫게 되면서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가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시위는 시위대의 요구에 힘이 가게 되고 중국 전역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이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물리적으로 충돌하게 되자 이는 혁명으로 번지게 된다.

1990 ~ 1992년

혁명 세력은 중국민주화해방위원회를 구성해 중국 공산당에 대항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큰 힘이 없었고 처음엔 당시 크게 부패한 중국 공산당의 주요 인사를 매수해 혁명 세력을 지원하고 1991년부터는 타국의 도움을 받게 된다. 중국민주화해방위원회는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대한민국, 중화민국에게 해안가 도시 일부와 군사 기지 일부를 조차 해준다는 조건으로 지원을 받게 된다. 반대로 중국 공산당은 소련으로부터 지원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혁명은 중국민주화해방위원회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이 혁명으로 인해 경제는 폭락했으며 티베트와 위구르가 독립 선언을 하게 된다.

1993년

중국민주화해방위원회는 국명은 중화민주공화국으로 변경하고 혁명 중 독립한 위구르와 티베트의 영유권을 주장하게 된다. 하지만 정부 내부의 민주주의 성향이 강한 세력은 위구르와 티베트의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 주장하게 된다. 정부는 이 두 세력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위구르와 티베트에서 국민 투표를 하여 운명을 맡기기로 한다. 위구르와 티베트에서 각각 독립표가 78.2%, 85.5%가 나오면서 위구르와 티베트는 독립을 인정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