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베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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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베이 제국
관련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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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정치 대장관경
왕실 및 귀족 황제, 황실, 엔저드 왕조
경제
국방 황제폐하의 군대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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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언어
기타

댄베이 제국
Danbay Empire
댄베이 제국 국기.png
댄베이 제국 국장.png
국기 국장
rex, populus, ventus
국왕,국민,총애
상징
국가 위대한 국왕과 그의 백성들[1]
국화 장미[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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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던 연합왕국 건국 1349년
귀족의 난 발발 1459년
댄베이 왕국 건국 1460년
제국 헌법 발효 1800년[3]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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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 최대도시 그레이터 덴
면적 1,900,560,711km2 1위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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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770,783,982명 3위
공용 언어 영어
공용 문자 라틴문자
국교 가톨릭
군대 황제 폐하의 군대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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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18식민지(펜)
광역시 1시[4]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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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식민제국,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황제
(국가원수)
댄비6세
정부
요인
대장관경
(정부수반)
존 리스고
귀족회 의장 팔턴 마리아공
제국의회 의장 제임스 필립
여당 보리스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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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 27조 962억 세계 1위
1인당 $52,400
화폐 댄베이 데인(D)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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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00:00(협정 세계시)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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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가입 1945년
ccTLD
.de, .댄베이
국가 코드
826, GDE, DE
국제 전화 코드
+82

개요

댄베이 제국의 상징이자, 황제가 머무는 황궁


댄베이 제국(Danbay Empire)또는 고귀하고 위대한, 댄베이와 그 영토들의 대제국은 서유럽을 비롯해 오세아니아, 북아메리카, 아프리카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5]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이 있었다. 19세기~20세기에 영토가 가장 넓었을 시절,[6] 언제나 제국 영토의 어딘가는 낮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지역이 독립한 지금도 해외 영토들이 일부 남아있기 때문에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제한적이나마 아직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유효하다. 또한 독립한 나라들도 대체로 댄베이연합체를 유지하며, 댄베이의 황제를 국가원수로 두고 있다.

역사

1349년, 현재의 그레이터 덴(런던)자리에 데이센 로얄 아틀로, 후에는 댄비 1세라고도 불리는 그가 팔레던 연합왕국을 건국한다. 이 땅이 생긴 이후로 처음으로 가장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왕국이라고도 불린다. 현재 댄베이는 이 댄비1세를 초대 국왕으로 모시고 있지만 실질적 초대 국왕은 댄비 3세이다. 그는 팔레던의 영토 (아래 사진 참고)를 꾸준히 넓혔다. 그는 51년간 왕국을 통치하며 국가의 안정을 찾은다. 그가 죽고 그가 유일하게 짜지 않은 시스템인 바로 후계자 선정이였다. 그의 아들이였던 데이센 주니어 로얄 파트리에 아틀로는 자신이 왕이 되어야한다 주장한다. 하지만 당시 가장 강력했던 가문이였던 페이페 가문의 수장은 직접 그의 아들을 참수형에 처하고 왕위에 오른다. 데스토 페이페는 자신의 호를 댄비라 칭하고 왕조를 팔레던을 유지하며 마치 댄비 1세의 아들이라도 되는 듯 댄비 2세로 취임한다. 그는 댄비 1세가 짜둔 체계들을 파괴하며 국경의 군을 전부 수도로 몰집시킨다. 자세한 사항은 전해지지 않았는데, 최근 학자들은 자신처럼 또다시 누군가가 쿠데타를 이르킬까 두려워 그랬다는 썰이 유력하다. 그렇게 나라의 돈이란 돈은 다 써가던 그때 1459년, 팔레던 연합왕국의 가장 큰 분열의 위기가 찾아온다. 전설의 귀족들이라고도 불리는 세가문인 댄베이 가문, 제이코스키 가문, 자네고르샤토사가문의 가문장이자, 대귀족들이 직접 만나 반란을 모의한다. 이는 당시 유지되는게 대단한 팔레던 왕국이였기에 그들은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반란을 합당화시켰다.

위 사진은 당시 귀족반란이 일어나기 직전의 상황이다. 팔레던연합왕국은 위사진에서 진한노랑부분에 위치해있었다. 원래 위 사진에서 연한 노랑 부분까지 전부 팔레던왕국 소속 영토였지만, 제1의 왕정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웨스트이스트가문이 군사를 이끌어 당시 웨스트이스트 왕국을 건국한 것이다. 이에 다른 귀족들은 당연히 화를 냈고 여기서 가장 뻘쭘한 것은 제대로 처리를 못한 중앙정부였다. 당시 모든 책임은 왕에게 돌아갔다. 댄비 2세는 귀족들에게 원 영토를 돌리면 일부 영토들을 주겠다며 귀족들의 화를 가라앉히기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귀족들은 왕 앞에서는 그러겠다 하였지만 결국 반란을 준비하며 1459년 그 '귀족의 난'을 이르킨다. 귀족의 난을 성공한 귀족들은 당시 총지도자였던 댄베이가문의 수장, 엔더 폴카스 댄베이를 왕에 즉위하게 만들며 댄비 2세를 왕실법정에 서게 만들고는 1460년, 결국 참수형에 처하고 엔더 폴카스 댄베이가 댄비 3세로서 오르니 새 왕조인 '댄베이'가 시작되었다. 이와 함께 가문의 이름을 딴 댄베이 왕국의 선포를 명령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댄비 3세는 나이가 아무래도 많이 먹었던 탓에 자신의 생애를 국가의 안정에 힘쓰고 결국 사망한다. 그리고 최초의 여왕이라고 불리며, 그의 딸인 레이너 1세가 즉위한다. 이 레이너의 시기동안 잃어버린 국토를 회복하고 웨스트이스트 왕국을 토벌하고 댄베이 왕국의 이름을 널리 알린다.

그 이 후 역사상 최고로 평화로웠던 100년의 시기(평화의 시대, 1499~1601년)가 시작된다. 레이너 1세가 사망한 1521년, 후계자로 그녀의 장남인 댄비 폴카 레이너 댄베이가 국왕에 즉위한다. 그리고 1596년, 빅토르 1세가 사망하고 후계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당시 가장 유력한 썰은 펄가문의 데니올 펄이 국왕에 오르는 것이였다. 더 놀라운 점은 진짜 그가 국왕에 취임하고 새 왕조인 헤즈카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아일랜드 왕국이 당시 댄베이 왕국이 보초아일랜드섬에 보유한 영토를 공격하며 전쟁이 시작된다. 이 전쟁에서 펄왕은 직접 전투에 나가지만 1601년, 전투 중 사망하며 후임자로 빅토르 1세의 3남이였던 존 헨리 페리스 빅토리얼 헬턴이 새 국왕에 취임하며 헨리 1세의 시대가 개막된다. 그는 우선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이 전쟁은 1624년까지 이어진다. 안타깝게도 마우셔배튼, 당시 아일랜드 왕국의 국왕이 직접 헨리 1세를 죽이고 후계자로 오른 헨리 2세는 더이상의 피해를 계속하다가는 국토가 피폐해질거라 판단하며 1656년, 항복을 선언한다. 그 대가로 엄청난 영토를 아일랜드 왕국에게 주어야만 했으며, 아일랜드의 총독이 댄베이에 부임되고 댄베이 국왕은 사실상 꼭두각시로 변했다. 그리고 아일랜드는 수도를 그레이터 댄으로 이전한다. 국왕은 역사상 최악의 망신을 당하였고 결국 1667년, 자결한다. 자결함에 따라 왕실은 사실상 붕괴 직전까지의 위치로 간다. 그 때 아일랜드 왕국은 세계에 식민지를 만들고 있었다. 아일랜드는 댄베이 왕국의 국민들을 식민지 전쟁에 보내는 등의 행위를 하며 이용해먹을 수 있는 건 전부 이용해먹었다. 이후 그의 장남인 헨리 3세, 그는 아일랜드로 부터 독립하기 위해 우선 스코틀란 왕국에 밀서를 보낸다. 스코틀란 왕국은 흔쾌히 수락하였고 그리하여 댄베이-스코틀란 동맹의 시작을 알린다.

댄베이-스코틀란 동맹은 우선 그레이터 댄을 공격한다. 그 이후 계속해서 전투에서 승리하며 결국 본토까지 점령하고는 왕가의 씨를 말려버리고 1681년 영토를 회복한다. 이 때 헨리 3세는 스코틀 동맹의 공동 왕으로 등극했다. 하지만 헨리 3세는 이 동맹은 불완정하다 판단 및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이 후 군을 이끌어 스코틀 동맹의 왕을 죽이고 단독적인 국왕으로 오르며 댄베이 제국을 부활한다.

이 때 서민들은 자신들의 발언권을 유지하고 왕들의 권력을 줄이게 하기 위해 일명 '왕궁점령의 혁명'을 벌인다. 말 그대로 왕궁을 점령하여 왕을 협박하고 의회의 설립을 동의받자는 것이였다. 1689년, 헨리 3세는 댄베이 제국의 첫 의회인 '헨리의회'를 소집한다. 하지만 헨리의회는 당시 헨리 3세가 원했던 유럽 본토 침공을 막았고 결국 결성 1년만에 해산되었다. 그리고 다음해 헨리 3세가 사망하며 새 국왕자리를 두고 왕위계승전투가 벌어졌다. 프랑스에 유배를 가있던 헨리 3세의 먼 친척인 발롱 셰 마트루스, 영어로는 셰 마트루스 볼 빅토르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 귀국한다. 하지만 당시 의회는 의회의 설립을 지지하던 헨리 3세의 장녀, 메리에게 이미 왕위를 넘긴 상태였다. 셰 마르투스는 프랑스에게 댄베이의 일부 영토를 주겠다 약속하고 프랑스와 함께 본토 침공을 시작한다. 메리는 메리1세로 등극하며 헬턴 왕조를 유지하기 위해 당시 댄베이의 속령이였던 덴마크를 통해 프로이센을 걸쳐 프랑스를 침공한다. 프랑스는 미처 댄베이로 오기 전 메리 1세의 훌륭한 작전으로 먼저 프랑스를 치며 프랑스의 일부 지역을 따낸다. 그 이후, 메리 1세는 왕위를 지켜내며 바다의 식민지를 확장하기 위해 동쪽으로 향한다. 당시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프랑스의 식민지들도 따낸다. 레이너 2세가 사망하고 빅토르 2세가 왕위에 오르며 대제국헌법을 발효하고 댄베이 제국을 선포하며, 기존의 국왕의 호칭을 '황제'로 바꾼다. 그 이후,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의 공격도 막아내며 계속해서 식민지 확장을 해냈다. 이 후 많은 식민지들을 따내며 결국 1902년, 댄비 5세 시기 최대의 영토를 획득한다. 이 시기, 댄베이은 정치, 산업 등이 발전했고 문화적 성취도 세계 최선진으로 발전한다. 유럽 본토의 주류 문화가 귀족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었던 것과 달리 댄베이는 시민 계급이 주체가 되었다. 당시 귀족들이 즐겨왔던 것과 차별화된 새로운 문화가 나타나서 대중 소설이 나오기도 했다. 제1.2차 대전에서는 승전국으로 이름을 올리고 이 후 훌륭한 황권과 경제회복을 보이는가 싶었다. 메리 2세가 사망하고 그녀의 장남이였던 댄비 6세가 댄베이 제국 영토들을 둘러보다가 급히 귀국하며 황제에 오른다. 이 후 그는 하락하고하락하는 경제를 대장관경과 회복하는 등 서민들과 교류하는 행보들도 보였다. 댄비 6세는 일부 식민지들의 독립을 승인했으며, 특히 인도의 독립을 이루어내고 1981년, 댄비 6세 헌장(Danby VI Charter)을 발효하고 각 식민지들의 독립과 자치권 부여를 수용하며 사실상 댄베이 제국은 붕괴됨이 틀림없어보였다. 그럼에도 21세기의 황제와 귀족들이 존재하는 댄베이 제국은 홍콩반환을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제국의 시대는 막이 내렸으며, 우리는 제국의 호칭, 황제의 호칭을 사용할테지만 더이상 예전의 댄베이 제국을 생각하지 말라며 공식적으로 황제가 밝혔으며, 세계의 변화에 따라가는 중이다.

정치

황제

대장관경

귀족회

제국의회


  1. 어느 왕정 국가처럼, 이는 왕실의 왕가로도 사용된다.
  2. 이는 그레이트 댄베이섬 외에는 각기 다른 꽃들이 있다.
  3. 이 시기부터 댄베이 제국이라 부른다.
  4. 그레이터 댄
  5. 보통 간단하게 '댄베이 제국'이나 '댄베이'라고 말한다.
  6. 현재 독립한 인도, 파키스탄, 미국 등 지역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