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폰 헤센카셀

미카엘 폰 헤센-카셀
michael von hessen-kassel
출생1969년 9월 19일(1969-09-19) (54세)
하늘미르왕국 하늘미르왕국
사망2018년 7월 17일 (48세)
하늘미르왕국 하늘미르왕국 칼리아리시 칼리아리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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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하늘미르왕국 하늘미르왕국
학력칼리아리 대학교 정치학 학사
경력하늘미르 왕국 2대 부총리
하늘미르 왕국 5,6대 의원
하늘미르 왕국 ktbc 사원
하늘미르 왕국 누오로시 시장
직업무직
소속무소속
종교무교
부모알프레드 폰 헤센-카셀(아버지), 안나 폰 바덴(어머니)
배우자케런 헤센-카셀
자녀알베르트 폰 헤센-카셀
상훈없음

"하늘미르의 정치 원로이자 거인"-한비자
"하늘미르의 김종필"-수마르코
미카엘 폰 헤센-카셀 (1969년 9월 19일~ 2018년 7월 17일)은 하늘미르의 정치인이며 언론인이었다.

생애

출생과 성장

그는 1969년 9월 19일, 이탈리아 샤르데냐섬 칼리아리시(현 하늘미르 왕국 칼리아리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알프레드 폰 헤센-카셀은 칼리아리시에서 회사를 운영했고 그럭저럭 먹고 살수 있을정도로 돈을 벌었다.
그는 하늘미르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로 거처를 이동하고 거기서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정계 입문

그는 2006년경 정치에 입문했다, 그때는 유니온과 민주정의당의 유세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그후 그는 부수상으로 취임, 업무를 시작한다.
하지만 그는 피로감을 느껴 부총리직을 사퇴하게되고 1주일 후에 내각이 해산되는 소식을 들었다.
유니온이 없어진후, 그는 국민개혁신당에 입당하고 3당합당으로 보수신당이 결성된다, 그리고 그는 누오로시(현 누오로주) 시장에 당선된다.

시장

그가 시장이 되고 난 직후에 하늘미르 의장 전용기 테러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묘소에 헌화를 한것으로 전해진다.
그후 그는 시의 안정을 위해 임기에 최선을 다했다.

정계은퇴와 사망

그는 2018년 6월 30일 정계를 은퇴했다. 정계은퇴 성명에서 그는 "그동안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죽음을 빨리 찾아왔다.
2018년 7월 17일, 그는 그의 자택에서 칼에 찔려 쓰러진채로 이웃에게 발견되었고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그는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찾아왔다.

조문

이맹박 의장은 조문을 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을 남겼고
바빠서 미처 오지 못한 동료, 임성민은 조화로 "역사는 그를 기억하고 평온한 정치를 보이셨다"는 메세지를 남겼다, 그는 그의 사무실에서 소식을 듣고 "정치 동지를 이렇게 잃게된 상심이 크다"고 말했다.
왕실 또한 조전으로 "미카엘 폰 헤센카셀 전 부총리님의 명복을 빌며, 그는 하늘미르 역사에서 오랫동안 살아있을것입니다"라는 뜻을 전했다.
육장 최고재판소장 또한 조문을 와 "그동안 당신의 지나온 발자취를 난 잊지 않을것이며 당신을 영원히 기억할것이다"라고 말했다.
라두 알구어 의원 겸 조명방송 사장 또한 조문을 왔고, 그는 "하늘미르를 지켜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영이 되어서도 하늘미르를 지켜중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고 말했다.

그의 유서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누구던지간에, 만약 당신들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나는 이미 죽어있을것이다.
내가 언제 죽을지는 나도 모른다, 갑자기 내일에 죽을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유서는 남기고 죽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우선 내 집은 내 아들인 알베르트 폰 헤센-카셀에 물려준다, 내 재산의 절반은 사회에 기부하며 나머지 절반은 내 아내에게 물려준다.
동시에 기타 자산은 전부 사회에 기증한다.
- 미카엘 폰 헤센-카셀 (인)
2016,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