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왕국/역사

근대

1793년 네덜란드와, 벨기에, 룩셈부르크 지역은 프랑스 혁명군에게 점령되어 1795년 프랑스의 자매 공화국인 바타비아 공화국이 수립되기도 했다. 1806년에는 황제에 즉위한 나폴레옹이 자신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를 네덜란드의 왕으로 임명해 홀란트 왕국이 수립되었다. 루이 보나파르트는 나폴레옹이 임명한 여러 친인척들이 부패하고 무능한 와중에도 그나마 친네덜란드적인 왕이어서 네덜란드인들에게 지지를 받았으나 대륙 봉쇄령을 거부했다는 빌미로 나폴레옹에 의해 1810년 홀란트 왕위에서 쫓겨났다. 이후 그의 아들 나폴레옹 루이가 왕위에 오르지만 즉위 10일 만에 프랑스 제국에게 합병당하고 말았다.

독립과 건국

1811년 7월 3일 영국의 지원하에 안트베르펜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 봉기의 주동자는 빌보르드 후작 레오폴트 반 마인란트이며 9월 16일에 임시정부를 선언하고 건국을 위한 첫 회의를 브뤼셀 시청에서 열었는데 여기에 건국일이 근거하고 있으며 제1대 의회로 예우하고 있다. 이 첫 회의에서 국명을 벨기에 왕국으로 할 것, 국가정체는 군주제이며 국왕은 레오폴트 반 마인란트로 정할 것, 프랑스 제국에 선전포고를 할 것을 의결하였다. 그러나 이 때의 군주제는 전제군주정이었다.

독립전쟁

1811년 영국의 지원하에 봉기한 안트베르펜 시민군은 시청사를 점령하고 군대를 둘로 쪼개어 브뤼셀과 브뤼허를 점령하기로 하였다. 9월 8일 헨트를 거쳐 브뤼허를 점령하였고, 9월 10일 브뤼셀을 점령하였는데, 이 때 사령관 빌보르드 후작 레오폴트가 가장 먼저 브뤼셀에 들어갔다. 브뤼허 점령군은 해안선을 점령하며 동부지방을 여유롭게 정리하였고, 브뤼셀 점령군은 1812년 1월 5일을 기하여 뤽상부르를 향해 남진하였다. 사실 이 같은 남진은 프랑스가 러시아 원정을 준비한다는 사전 첩보를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프랑스 군대 대분이 원정을 가있는 동안 벨기에는 이미 현재의 영토를 완성해 놓을 수 있었다. 결국 1813년 대불동맹에 참가하여 1만 2천명의 병력을 파병한 벨기에 왕국은 1815년 빈 회의에 승전국 자격으로 참여하여 독립의 승인

현대

국민의 노래 사태

입헌군주제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