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석가모니
शाक्यमुनि | Sakyamuni
석가모니.webp
CE 1-2세기 간다라의 불상
〈석조입불상(石造立佛像, Standing Buddha of Gandhara)[1]
출생
기원전 560년경 추정[2]
사캬국 카필라바스투 룸비니 동산
(現 네팔 룸비니 루판데히 구 마야데비 사원)
사망
기원전 480년경 추정 (향년 80세)
말라국 쿠시나가르
(現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 쿠시나가르)
가족관계
아버지
슈도다나
어머니
마야부인
계모 겸 이모
마하파자바티
아내
야쇼다라
아들
라훌라

개요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 스스로에 의지하며 살아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 진리에 의지하라.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디가 니까야 16경 <대반열반경>과 26경 <전륜성왕사자후경>[3]

석가모니불교의 교조이자 창시자이며, 여러 붓다(부처) 중 하나다.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 고타마가 성씨이며 싯다르타가 이름이다. 석가모니는 산스크리트어 '샤캬무니'를 음역한 것으로 샤캬족(석가)의 성자라는 뜻. 또한, 무니에는 고행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고대 인도의 샤캬 부족의 소왕국 '카필라'의 왕[4]정반왕마야부인 사이에서 왕자로 태어났으나, 인간의 삶이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벗어나고자, 이후 왕세자의 지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많은 수행 끝에 '감정이라는 악마'의 유혹을 견뎌내고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인도 북부를 중심으로 가르침을 펼치고 많은 이들을 교화하다가 마지막 제자인 쑤밧다를 교화하고 80세의 나이로 열반에 들었다.

생애

석가모니는 실존했는가?

사상


  1. 석가모니를 표현한 초기 불상 중 하나다. 다만 초기 불상이라고 해도 석가모니 부처가 살았던 당대의 것은 아니다. 불상이라는 것 자체가 석가모니 부처 입멸 이후 거의 5백 년이나 지난 뒤에야 제작되기 시작한 데다, 종교적 목적으로 제작되는 이상 작성자의 주관 즉 제작 대상에 대한 경모의 감정이나 작성 당시 사람들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형태의 신성관이 들어가기 때문에 미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며, 석가모니도 그렇고 예수도 그렇고 실제 얼굴이 어땠는지 현재 시점에서 100% 완벽하게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2. 석가모니의 정확한 탄생 연도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일본의 저명한 불교학자 와타나베 쇼코는 <불타 석가모니>(법정 역)에서 탄생 연도에 대한 세계 학자들의 주된 의견이 기원전 560년경이라고 설명했다.
  3. 다만 원전인 팔리어 경장에는 등불이 아니라 섬으로 되어 있다. 흔히 자등명 법등명 자귀의 법귀의(自燈明法燈明 自歸依 法歸依)로 알려진 이 구절은 "누구든 지금이나 내가 죽고 난 뒤에나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으로 삼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다음 구절이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어떻게 비구는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서, 열렬하고, 정확하게 알고 기억하면서, 몸에서 몸을 좇으면서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서, 열렬하고, 정확하게 알고 기억하면서, 느낌에서 느낌을 좇으면서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서, 열렬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기억하면서, 마음에서 마음을 좇으면서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서, 열렬하고, 정확하게 알고 기억하면서, 현상에서 현상을 좇으면서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비구는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는다."이다.
  4. 이러한 소왕국의 군주를 '라자Raja'라고 한다. 라자는 중세유럽기준으로는 군소 영주 정도로 리히텐슈타인이나 모나코 공국 정도의 규모의 영주이다. 마하라자가 왕이라고 할 수 있다. 각 부족을 통합하는 장(長)을 의미하며, 도시국가성읍국가의 왕 정도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