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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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 神德王后
신덕왕후어진.png
출생2022년 11월 19일
대조선국 나주 사저
사망2023년 4월 20일 (향년 92세)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자경전
정릉(貞陵)
재위기간2022년 12월 18일 ~ 2023년 2월 10일 (55일)
본관나주 임씨
부모없음
형제자매없음
배우자태조
자녀없음
종교유교
시호신덕왕후(神德王后)

현재2.png 개요

조선 초대 국왕 태조 계비(새 중전)이며 본관은 나주 임씨.

현재2.png 왕비 시절

2022년 11월 19일, 나주에서 태어난 신덕왕후는 어릴때 가난하게 자랐다. 낚시와 농사로 생계를 겨우 유지하던 도중 20세가 되던 해 태조의 정비 간택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임씨는 왕비 간택에 나갔으나 신의왕후에게 밀려 떨어졌다. 하지만 왕대비 의혜왕후가 혹시 모를 상황에 신덕왕후도 왕실에 들여야한다고 판단하였다.

신덕왕후는 종1품 귀인으로 책봉되었다. 아이가 없으면 품계가 오르지 않는데, 간택후궁이여도 바로 종1품 귀인으로 책봉되는 것은 드문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인으로 책봉된 이유는 당시에는 내명부 품계가 정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의왕후가 왕비로 재위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채 폐위되어, 귀인 임씨던 신덕왕후가 20세의 나이에 태조의 계비로 정식 책봉된다. 태조와 무려 30~40살 차이났으며, 명목상 아들인 세자 인종과 10살 차이가 났으며 명목상 며느리인 세자빈 휘빈이씨와도 2살 차이가 났다. 12월 20일, 왕대비 의혜왕후가 훙서하고 내명부 최고 어른이 되었으나 그녀의 나이는 불과 24세로 왕실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다.

그러던 12월 27일, 신덕왕후가 세자빈 휘빈이씨뒷담을 까고 욕설을 하며 품위를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일 왕위를 계승한 원손 성종까지 나은 세자빈은 미래 왕의 어미로 지지세력 꽤 되던 인물이였다. 하지만 신덕왕후는 아이 하나 없었으며 아버지 뻘인 남편과도 각별한 애정도 없어 지지기반이 약했다. 결국 조정 대신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태조는 신덕왕후를 교태전에 유폐시키고, 내외명부 권한을 세자빈 휘빈이씨에게 밀어주었다.

하지만 태조와 세자빈 휘빈이씨의 사이가 매우 안좋아지자 태조는 신덕왕후의 유폐를 금방 해제시켜주고 내외명부 권한을 회복시켜주었다. 세자빈 휘빈이씨태조신덕왕후에게 불만이 많아지고 있었는데, 어느날 신덕왕후가 자선당을 찾아 세자빈 휘빈이씨가 왕가의 법도를 어기고 있다며 종아리를 걷으라 하였다. 이때 세자던 인종과 원손이던 성종이 말려 휘빈이씨가 회초리를 맞진 않았다. 신덕왕후는 회초리를 때릴려고 마음먹었으나 세자와 원손의 극심한 항의로 결국 화난채로 교태전으로 돌아갔다. 왕가의 법도상 내명부의 수장인 중전이 내명부에 속한 세자빈을 벌하는 것은 국왕도 막지 못한다. 하지만 당시 중전이 원손의 모친인 세자빈을 때리지 못한 것은 왕비로써 기반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결국 얼마 안 가 2023년 1월 5일, 세자빈 휘빈이씨가 폐위되었고 정신질환의 초기 증세를 보이며 매우 순진했던 정안왕후가 새 세자빈으로 간택된다. 휘빈이씨가 죽고 순진한 세자빈이 들어와 신덕왕후는 한 순간에 궁중내에서 입지가 매우 커졌다.

내명부의 품계가 정리될 때쯤 신덕왕후는 내명부 궁인들과 외명부 여인들을 총괄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내조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위상이 휘빈이씨 사후 얼마나 커졌냐면, 세손빈이던 원경왕후의 모친인 디보가 규정을 어기고 반매국짓을 하자 국왕이던 태조와 이야기도 없이 품계를 빼앗고 노비로 만들어 버렸다. 신덕 왕후의 입지는 조선에서 국왕 태조와 세자 인종을 다음으로 높아졌다. 이후 낚시, 농사를 즐겨하였는데, 경복궁 후원에서 물고기만 300마리 이상은 잡았다고 한다.

현재2.png 왕대비 시절

2023년 2월 10일, 태조가 86세의 나이로 승하하면서 52세의 나이에 왕대비가 되었다. 세자 인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정안왕후는 세자빈에서 왕후가 되었는데, 이때 정신 질환이 더 심해져 궁인들을 폭행하고 허언과 망상을 하기도 하여 내외명부를 관리할 처지가 아니자, 왕대비가 되어서도 신덕왕후는 내외명부를 총괄하였다. 왕비일때보다 입지가 더욱 더 커진 것이다.

결국 정안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후궁이던 현덕왕후가 왕후가 되었다. 현덕왕후는 성품도 좋고 내외명부도 안정스럽게 다스렸기 때문에 현덕왕후가 왕비가 된 이후 신덕왕후는 내외명부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았다.

현재2.png 대왕대비 시절

인종 재위 29일 치세를 끝으로 3월 10일 승하한 후 68세의 나이에 대왕대비가 되었다. 왕후에서 왕대비가 된 현덕왕후와 자경전에서 함께 살았으며 왕후가 된 원경왕후가 내외명부를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대왕대비가 된 이후 성종원경왕후의 인기가 커지면서 대왕대비로써 입지가 매우 줄어든다.

대왕대비로 말년에 극대접을 받으며 평온하게 산 신덕왕후는 2023년 4월 20일, 자경전에서 향년 92세의 나이로 승하하였으며 시호는 신덕왕후(神德王后)로 정해졌다. 신덕왕후는 태어난 이후 환종, 태조, 인종, 성종 이렇게 4명의 국왕을 보았으며 의혜왕후, 신의왕후, 정안왕후, 현덕왕후, 원경왕후 이렇게 5명의 왕비를 보았다.

현재2.png 가족 관계


자식이 하나도 없어서 선덕왕후의 핏줄은 사실상 없다.

현재2.png 평가

・신덕 왕후는 어린 나이로 가난하게 자라 왕비가 되어 여러 고난을 겪고, 이후 왕비-왕대비-대왕대비가 될때까지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큰 대접을 받은 성공한 왕후로 후대에 평가되고 있다. 그는 자식 하나 없었으나 그녀의 영향력은 마치 아들이 여러명일 정도로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