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조공화국

에조 공화국
蝦夷共和國(Aiun Mosh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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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꽃

天空の花
rikunmosir-oro-ebuike

표어눈처럼 순수하게,
대지처럼 강인하게, 바다처럼 거침없이
국가파일:

지도
수도카무이모시르
최대 도시카무이모시르
정치
총리가야노 시로
내각사무장관
국회의장
대법원장
감사원장
쿠로우미 하루카
야마키 사야카
역사
 
 • 하코다테 정청 수립1868년 10월
 • 에조 제 1공화국 수립1870년 7월 1일
 • 제 1대 총선거 실시1877년 2월 23일
 • 카무이모시르 조약1905년 7월 24일
 • 국치일1906년 3월 3일
 • 광복절1945년 10월 15일
 • 5.18 민중혁명(에조의 봄)1989년 5월 18일
 • 에조공화국
건국준비위원회 출범
1989년 5월 28일
 • 제 11대 총선거 실시
(에조 제 2공화국 수립)
1989년 7월 1일
지리
면적9만 3,600 km^2
시간대(UTC+11)
인문
공용어일본어, 아이누어
제2언어러시아어, 한국어, 중국어, 니브흐 어 등
인구
2015년 조사101만 8,531명
경제
 • 전체29,028,133,500 달러
 • 일인당28,500 달러
기타
도메인.ez

개요

상징

자연환경

인문환경

민족

에조는 아이누인, 한국인, 러시아인, 중국인, 일본인이 거주하고 있다. 총 인구는 101만 8,531명으로 집계된다. 이 중 97%인 97만 명 가량이 아이누인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에조는 겉보기에는 단일민족 국가로 보이지만, 사실은 다민족에 가깝다. 우선 인구의 비율은 97%가 아이누 인이다. 그리고 아이누인을 제외한 주류 소수민족은 4개 족에 불과하다.(니브흐 족 등 비주류 소수민족도 있다) 그런데 왜 다민족에 가깝다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이누 인 내에서도 문화적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누 인은 그 지역에 따라 세부적으로 구별된다. 사할린 아이누, 쿠릴 아이누, 심지어는 캄차카 아이누, 홋카이도 아이누도 일부 있다. 이들 지역은 지리적으로 오랜 세월 단절되었고, 이들의 언어나 생활 방식, 문화 차이도 벌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 아이누 집단들을 세부적으로 나눠본다면, 하나의 아이누 민족으로 보기에는 일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서로 같은 민족이라고 자각하게 된 것은 에조 공화국 독립 과정에서이다. 그래서 다른 국가에 비해 단일민족 의식은 약하다. 그래도 '카무이'라는 존재를 신으로 섬기는 샤머니즘 문화가 공통으로 존재하고, 공통의 신화와 구전설화가 남아있다. 이것이 아직 아이누 인의 생활 습관과 문학에 남아 있어 이들이 같은 아이누 민족임을 느끼게 한다. 또한 아이누인은 과거 일본 본토인의 북방한계선 북상과 식민지배 시대를 통해 일본인과 혼혈이 다수 발생하여, 현대 에조의 아이누인은 혈통상으로 일본인 등 주변 민족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진다 보기 어렵다.
소수민족은 대부분 근현대 시기를 거치며 에조에 정착하게 되었다. 에조 공화국의 체제 정착 이전에 정착한 경우가 많아, 수립 초기 조사 때 각 가정의 족보나 가족관계에 대한 설문을 토대로 추적하여 일일이 정리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각 가정의 민족 집단은 각 가정 스스로가 잘 알고 있고, 가족 관계 증명만 명확하게 된다면, 자동적으로 국가에서 민족 분류를 한다. 다만 일부 경우에서는 해당 국민에게 민족선택권을 주기도 한다.[1]
일본인은 제 1의 소수민족으로, 근대에 무역에 종사하다가 정착한 일본인들, 에조 공화국 정부의 카르 푸트 섬 이주 당시 정착한 일본인들이 이들의 선조이다. 상인의 후손이어서 그런지, 아직도 경제계 인사 중에는 일본계 사람들이 꽤 있다. 현대 아이누인과는 구별이 쉽지 않다. 한국인은 만주 일대를 개척하려던 조선인이 일부 사할린까지 건너와 정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인은 원래 러시아 붕괴 이전부터도 사할린, 쿠릴, 캄차카 일대에서는 소수였다. 중국인은 현대에 이르러 귀화한 사람, 또는 그 귀화인들 사이의 2, 3세들이다.
에조 정부는 이들 민족의 구분을 이렇게 인구 측정 때만 따진다. 일반적으로 국민권이나 혜택 등은 모두 평등하게 '에조 인'으로 적용된다. 게다가 아이누 인의 작명 방식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일본식으로 변해, 러시아인, 한국인, 중국인처럼 작명방식에 차이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사람 간 민족 구별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이누인 vs 일본인

에조는 알다시피 아이누 족이 주축이 되어 건국된 국가이다. 아이누 족은 과거 고아시아제족에서 출발했고, 일본, 러시아 지역에 산개해있던 여러 민족과 교류를 하며 현대의 에미시의 주축을 이르는 민족집단에 이르게 되었다. 현대의 아이누 족은 그 혈통적 특성에 있어 현대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 및 러시아 인과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나, 육안으로 그 차이를 식별하기 쉽지는 않다. 특히 일본과는 공유하는 역사가 상당부분을 차지하여, 그 역사적 흐름 속에서 특별히 많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본은 이러한 이유로 '아이누 족은 일본인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은 일본인과 아이누인은 다른 부분이 다수 존재한다.
인류의 본격적인 이동이 일어나기 전, 일본 열도와 카르 푸트 섬 등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고아시아제족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이들은 하플로 D형 계열의 유전자를 갖고 있었으며, 현재는 에미시와 러시아 일대에 분포하여 살고 있다. 이들은 시베리아를 통해 캄차카 반도, 카르 푸트 섬, 일본 열도로 퍼져 나갔는데, 일본 열도로 진출한 집단은 카르 푸트 섬을 거쳐 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방계 몽골로이드들이 북상하여 일본열도에 정착했고, 이들이 야요이인들의 유입으로 변방으로 밀려나 현대의 아이누 인 등을 형성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이 일본 고대사에서 등장하는 '조몬인'이다. 즉, 에조의 주류를 이루는 아이누 족과 일본의 원주민이었던 조몬인은 같은 조상을 지닌다. 다만 아이누 = 조몬인의 결론을 내기는 성급하다. 고대 기록에서는 조몬인과 아이누의 외형적 묘사는 상이하게 되어 있다. 이후 하플로 O형 계열의 유전자를 지닌 인종이 아시아 곳곳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면서 기존의 고아시아 인종(고(古) 몽골로이드)은 변방으로 밀려나가게 된다. 현재 카르 푸트 섬 북단에 거주하는 퉁구스 계의 니흐브 족, 오로크 족(윌타 족)이 이를 반증한다. 이들은 과거 육지를 통해 섬 북단으로 유입되어 카르 푸트 섬에 거주하던 고아시아제족을 남쪽으로 몰아 낸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시간이 흘러 일본 고대 시대에 아이누족은 도호쿠 지방의 북반부, 홋카이도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별도의 국가를 구성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단결하여 일본 중앙정부에 대항하여 삶을 영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는 현대 일본의 북일본 지역 및 홋카이도 지역의 지명, 그리고 그 지역에서 전승되는 사냥꾼의 언어, 도호쿠벤 등에서 찾을 수 있다. 홋카이도의 대표적 대도시 '삿포로', 카르 푸트 섬의 일본식 지명 '가라후토' 등이 예시이다.
다만 이들은 섬마다(지역마다) 언어, 의복 등 문화적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크게 홋카이도 아이누, 쿠릴 아이누, 카르 푸트 아이누, 캄차카 아이누로 나누어 구별할 수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차후 설명하겠다. 혈통적으로도 시간이 갈 수록 구분되기 시작했는데, 쿠릴 아이누와 카르 푸트 아이누 등은 비교적 아이누 그대로의 혈통을 유지하였지만, 홋카이도 아이누는 서기 8C~11C에 이르는 기간 동안 일본과의 교류 및 종속화 과정에서 야요이 인들과 피가 섞이게 된다. 현대에도 이들의 외향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현대의 에조인은 고아시아제족을 조상으로 하고, 일부 코카소이드 및 퉁구스계(몽골로이드) 민족의 혈통이 섞여있다. 에조의 영토는 과거 청나라, 러시아 영토로 편입되었었고, 이들과 혈통적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일본인은 다양한 민족이 섞여있다. 이들 또한 고아시아제족을 조상으로 하지만, 더불어 북방계 몽골로이드 및 폴리네시아 인등이 속하는 남방계 몽골로이드의 피가 섞여있음은 명백하다. 일본열도에는 과거 한반도, 중국, 태평양으로부터 여러 이주민족이 유입되었고, 이들이 섞여 현재의 일본인의 조상이 되었다.
이는 언어적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아이누어는 일본어와는 별도의 언어로, 그 음운학적 구성이나 기원에서도 차이가 온다. 아이누어는 다른 언어와 친족관계가 없는 고립어로, 문법적으로는 포합어에 속하는 언어이다. 일본어는 고립어이기는 하나 문법적으로는 교착어에 속한다. 또한 아이누어는 고아시아제어 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나, 일본어는 고대 한국어, 폴리네시아계 언어 등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이누어와 일본어는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주로 어휘 부분에서 교류를 하게 되었고, 서로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출발과 발전과정에서 두 언어는 별개의 언어임을 알 수 있다.

정치

행정구역

의원내각제

에조는 의원내각제 국가이다. '에조의 봄' 사건 이후 에조 공화국 체제가 재건되면서, 에조 사람들은 어떤 체제의 정치제도를 운영할 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가 모두 논의 되었다. 일부는 일본의 천황이나 대한제국의 황제를 참고해 왕을 국가원수로 세운 입헌군주제 국가를 주장했지만, 에조 탄생 이후부터 왕정국가였던 경우가 없었으며, 마땅한 후보도 없어 묵살되었다.
우선 정치학자들은 에조의 민주주의 및 국가발전 정도를 고려했을 때 대통령제가 적합하다고 여겼다. 이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하였는데, 서방세계의 리더격인 미국이 300년이라는 짧은 세월에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점에 주목했다.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구심점을 마련하여, 이를 주축으로 한 국가정책을 수립하면 그 정책은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큰 문제 없이 수행될 터였기 때문이다.
다만 국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국민들은 80여년에 이르는 식민지 기와 소련 시기를 거치며, 특정 인물 및 집단의 권력 장악에 신물이 났다. 누군가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형태의 정치체제는 국민들에게 있어 암흑의 시대를 떠올리게 했고, 국민들은 국민들의 목소리가 정치에 큰 힘을 발휘하는 정치체제를 원했다. 그것이 의원내각제였다.
실제로 당시 제헌헌법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식인 층은 대통령제의 비율이 높았으나, 전 국민 조사 결과는 의원내각제의 지지율이 높았다. 이 둘을 혼합한 이원집정부제의 의견이 나왔으나 복잡하고 권력이 필요 이상의 분산을 보여 국론이 분열될 수 있으며 이는 신생국 에조에 치명적이라는 평가로 인해 선택에서 배제되었다.
에조의 국민들과 전문가 간 이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자, 이들의 대표들이 모여 토론회를 열었다. 결론은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되, 총리에게 행정부 수반 및 국가원수의 자격을 주고, 법률안거부권 등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에게 보장하는 권리를 포함한 여러 권력을 주어 정부주도의 정책을 권력으로 보장하는 형태의, 중앙권력강화형 의원내각제를 운영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제헌헌법에 보장되어 지금에 이르고있다.

총리

총리는 에조 공화국의 행정부 수반이자 국가원수이다. 총리는 행정부 수반으로서 법률안거부권 및 의회해산권을, 국가원수로서 군 통솔권을 가진다. 다만 법률안을 거부할 때는 합당한 이유를 들어야한다. 사실상 '반송'인 것이다. 모든 행정기관의 정점에 있으며, 총괄한다.(감사원은 제외. 감사원은 제 4의 권력체이다.)
총리는 여느 의원내각제 국가처럼, 총선거를 통해 구성된 의회의 다수당(또는 연합체)의 당수가 직무를 맡는다. 즉 간선제이다. 이렇게 당선된 총리는 임기 시작 전, 형식상의 임명 절차를 거친다. 선거 결과가 확정된(재검표 및 과정을 포함하여 모든 의혹 및 결과가 정리된 시점) 그 다음 날, 총리는 신임 총리(다수당 당수)를 (형식상) 지목한다. 임기 시작 전 날, 신임 총리는 총리관저로 찾아가 전임 총리에게 임명을 받는다. 이때 전임 총리는 자신의 아이누 전통복장을 걸치고 나오는데, 임명이 끝나면 전임 총리가 자신이 걸친 복장을 직접 신임 총리에게 걸쳐준다. 이는 총리의 직책, 에조의 국가원수로서 상징성 등이 인수인계되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의식이다.

행정부(내각)

개요: 1부 10성 25외국
<상세 조직>
내각부 (内閣府)
공정거래위원회 (公正取引委員会)
정보보호위원회 (情報保護委員会)
금융위원회 (金融委員会)
방송통신위원회 (放送通信委員会)
국민권익위원회 (国民權益委員会)
아이누유산보존위원회 (アイヌ遺産保存委員会)
국무성 (国務省)
소방청 (消防庁)
경찰청 (警察庁)
외무성 (外務省)
법무성 (法務省)
검찰청 (検察庁)
출입국관리청 (出入国管理庁)
재무성 (財務省)
국세청 (国税庁)
통계청 (統計庁)
경제산업성 (経済産業省)
자원에너지청 (資源エナジー庁)
특허청 (特許庁)
기업벤쳐사업청 (企業ベンチャー事業庁)
문부과학성 (文部科学省)
교육청 (敎育庁)
문화청 (文化庁)
후생노동성 (厚生労働省)
노동청 (労働庁)
보건청 (保健庁)
국토환경성 (国土環境省)
기상청 (気象庁)
해양보안청 (海洋保安庁)
교통청 (交通庁)
농림수산성 (農林水産省)
수산청 (水産庁)
임야청 (林野庁)
방위성(防衛省)
기술기재청 (技術機材庁)
<총리직속>
내각사무국 (内閣事務局)
내각부(위의 내각부와 동일)
내각법제국 (内閣法制局)
인사관리국 (人事管理局)

입법부(의회)

에조의 의회는 단원제로 구성되어있다. 의석은 100석이며, 모두 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인구 1만 당 1석). 주된 회의장은 영국, 일본의 의회처럼 의장석을 중심으로 하여 의원들이 크게 좌우로 나뉘어 서로 마주보게 구성되어 있다. 단 표결을 할 때 사용하는 주회의장은 부채꼴 모양이다.

위원회

위원회는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의 2가지 종류로 나뉘는데, 에조공화국의 국회는 상임 15개, 특별 1개의 총 16개 위원회가 운영 중이다.

1) 상임위원회

내각위원회
국무위원회
외무방위위원회
법무위원회
문교과학위원회
후생노동위원회
재무금융위원회
경제산업위원회
농림수산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환경위원회
예산위원회
국가기초정책위원회
결산행정감시위원회
의회운영위원회

2) 특별위원회

아이누문화보존문제에 관한 특별위원회

기관

산하 기관으로는 다음과 같다.
법제국
사무국
국립의회도서관
재판관소추위원회
재판관탄핵재판소

정당

민주당 (우파)
- 현 의회 의석: 19석
- 친 기업 정당. 공화당이 전신이다.
- 몇 년 전 스캔들의 여파로 야당으로 밀려남. 그래도 내적 쇄신을 진행하며 회복추세에 있다.
- 일본 등 1세계와의 관계 개선을 중요시한다.
신개혁당 (중도우파)
- 현 의회 의석: 49석
- 몇 년 전 스캔들의 여파로 민주당에서 분당한 당.
-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신경쓰지만, 러시아 등 적과의 동침을 요구하는 정책도 내놓는 등, 매우 실리주의적이다.
에조공산당 (좌파)
- 현 의회 의석: 9석
- 에조의 식민지 시절 설립되어 소비에트 시절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 2005년 아이누 공산당과 합당했다.
- 에조 소비에트 몰락 이후, 현재는 에조의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사회주의적 이념의 적용과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친 노조 정당이다.
아이누 공화당 (중도)
- 현 의회 의석: 12석
- 아이누 민족운동의 산물로, 공화당과 더불어 오랜역사를 가진 민족정당이다.
- 아이누 민족 문화의 부흥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정당. 덕분에 문화진흥 관련 법안의 제출이 많다.
백색당 (중도)
- 현 의회 의석: 3석
- 환경주의 정당으로, 하얀 눈처럼 맑은 국토를 유지하자는 의미에서 '백색당'이라고 당명을 정했다.
- 광산업 및 자원채굴을 줄이고 다른 분야의 예산추가를 요구하고 있다.
미래에조당 (중도좌파)
- 현 의회 의석: 5석
- 복지주의 정당, 에조 정부의 국민에 대한 국가적 지원 및 각종 혜택 사업을 확대할 것을 요구.
- 마음만 앞서는 정당 이라는 평가가 있음.
청년당
- 현 의회 의석: 0석
- "젊은 정치, 젊은 에조"를 강령으로 하여 활동하는 청년 정당
진보당 (중도좌파)
- 현 의회 의석: 1석
그 외 다수 (상기 정당들은 의회 진출 경험 있는 정당들)

사법부(법원)

역사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에조공화국군에서 서술

  1. 서로 다른 민족 사이에서 자녀가 탄생했을 경우인데, 자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만 19세 전까지는 아버지의 민족을 임시적으로 따라간다. 이는 인구집계 시 포함된다.
    만 19세 이후에는 자녀가 성인으로서 스스로 민족선택권을 갖는다. 이후 이는 인구집계 시 반영된다.
    민족선택권을 행사하고 싶을 경우, 자신의 거주지를 관할하는 관청에 찾아가서 이를 고지할 의무가 있다.
    만약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고지를 하지 않고 만 19세가 된 이후 6개월이 경과할 시, 자동적으로 아버지의 민족을 따라가게 된다.
    민족 간 차별은 없고, 소수민족으로서 특별대우도 없어서 일반적으로는 권리 행사를 하지 않고, 그대로 아버지를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만약 권리 행사를 하고자 하는 경우, 민족선택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민족 선택 사유를 적는 항목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