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만한 오해

이곳은 정대성의 학술적 일기입니다. 학술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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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벌의식이 없다. (있다면 논문이나 내가 모르는 분야의 학자 프로필을 볼때인데, 그건 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나 자체가 주제넘게 남을 학벌로 판단할만큼 잘난게 아니라, 학벌로 사람을 나누진 않는다.

내 자긍심은 조금 다른데, 흙수저 출신으로 맨손으로 처절하고 하드코어한 인생을 만리타향에서 부모님 등골 한번 안 빼먹고 학력이든 지갑이든 내 앞가림 잘 하면서 20대를 잘 살아남았다는 생존에 대한 자긍심이다.

근데 이 알랑한 자긍심 하나 품고 살아온 내가, 금수저 물고 태어난 새끼들때문에 내가 세상 물정모르고 세상 편하게 살아온 도련님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억울하고 분하고 울화가 치미는 일이다. 인생을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나보고 한국말한다는 해외학부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수저 이지랄하는 사람들중 나이 40이하면 내 입장에서는 가소롭기 그지없고, 도리어 니가 한국에서 80,90년대에 궁하게 살아봐야 얼마나 궁하게 살았겠으며, LA밑바닥 생활보다 더 처절하고 피가 말리겠냐고, 밥 굶어보고, 센터에서 밥타먹어봤냐고 큰소리 탕탕 치는게 내 단골 레퍼토리다.

그럼에도 억울함을 뒤로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나는 숱한 한국 출신(한인 말고;;)의 미국 명문대생을 보았으나, 그중에서 단 한명도 나처럼 흙수저 출신의 사람들이 없었다. 그들은 적어도 부모 부양할 걱정 없는 아이들이었고, 부모님으로부터 수많은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국 출신으로 탑스쿨 대학원을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국내 명문대에서 학석사를 나오고 장학재단을 끼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탑스쿨 학부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의 국제학교나 명문 사립 고등학교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후자는 국제학교, 외고 다닐정도면 집이 돈이 썩어넘쳐서 그렇다 치더라도 전자는 노력하는 흙수저 출신이 올법도 한데 그 중 단 한 사람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난한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대부분 한국에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었다. 보더라도 이공계였고, 대부분 생활고와 주거문제등으로 제대로 학업을 수행하지 못한다.

심지어 금수저 물고온 사람들은 실력이 없는것도 아니던데, 특히 국제학교 출신들은 해외에서 공부했는데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 같다. 국내에서의 교육은 그나마 낫겠지만, 미국 탑스쿨 해외유학은 기회의 수단이 아닌 "이미 필터링 된" 세습의 수단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미국 탑스쿨 유학, 실력이 있어야 하지만, 돈도 있어야 한다. 미국 유학 자체가 그러한 성격이기에 일종의 기득권세습을 공고화하는 느낌이 있는게 사실이다.

사정을 알았으니, 요즘들어 내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는다 한들, 요즘은 화도 안 내고 그려려니 한다. 어울려 지내다 보면 내 성격 특성상 썰을 풀게 되고 그러다보면 그런 오해가 자연스럽게 풀린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