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벚꽃이 흩날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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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
大日本帝國 | Empire of Japan

Flag of the Japan Empire.png Imperial Seal of Japan.png
국기 국장
五箇条の御誓文
5개조의 서약문
상징
국가 君が代
기미가요

국화 국화
벚꽃

국조 日本雉
일본꿩

역사
왕정복고의 대호령 1868년 1월 3일
메이지 시대 개막 1868년 10월 23일
대일본제국 헌법 공포 1889년 2월 11일
다이쇼 시대 개막 1912년 7월 30일
쇼와 시대 개막 1926년 12월 25일
쇼와 유신 1936년 3월 5일
제3차 호헌 운동 1941년 11월 3일
헤이세이 시대 개막 1989년 1월 8일
레이와 시대 개막 2019년 5월 1일
지리
면적 721,989.6㎢[1]
내수면 비율 1.7%
수도 도쿄도
해외영토 Flag of Kantou Prefecture and Dairen City.png 관동주, Flag of the South Sea Islands.png 남양 군도
접경국 오성홍기.png 중화사회주의공화국
인문환경
인구 총인구 228,473,250명 (2021년)[2]
인구밀도 316.4명/km² (2021년)
성장률 -0.42% (2021년)
기대수명 83.08세 (2021년)
출산율 1.46명 (2021년)
민족구성 일본인 97.8%
한족 0.5%
기타 1.7%
공용어 일본어(사실상)
종교 국교 없음(정교분리)
불교 30.2%
기독교 9.8%
기타 6.9%
무종교 53.1%
군대 일본군
행정구역
도도부현 1도 2도 4부 83현
시정촌 23특별구 ?시 ?정 ?촌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단방제
국가요인 천황 나루히토 (국가원수)
내각총리대신 아오키 쇼코 (정부수반)
참의원 의장 미야모토 유사이
중의원 의장 가이에다 반리
대심원장 오타니 나오토
여당 일본사회당
연립여당 입헌민주당
사회노동당
레이와 신센구미
경제
경제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명목 GDP 전체 GDP $11,044,853,851,500(2021년)
1인당 GDP $48,342(2021년)
GDP
(PPP)
전체 GDP $11,691,661,622,250(2021년)
1인당 GDP $51,173(2021년)
국부 $47,337,500,000,000(2021년)
수출입액 수출액 $1,759,200,000,000(2021년)
수입액 $1,714,300,000,000(2021년)
신용등급 Moody's Aa3
S&P AA
Fitch AA
화폐 공식화폐 일본 엔 (¥, 円)
ISO 4217 JPY
국가예산 세입 $2조 3785억(2021년)
세출 $2조 5950억(2021년)
단위
법정연호 레이와(令和)
시간대 UTC+9(일본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ccTLD
.jp
국가코드
392, JPN, JP
국제전화코드
+81

개요

대일본제국의 전경

대일본제국(大日本帝国), 또는 일본은 동아시아·오세아니아 일대에 위치한 의원내각제 입헌군주국이다.

상징

국호

일본의 정식 국호는 일본 헌법에 따라 대일본제국이지만 줄여서 일본을 통용되게 쓴다.

일본(日本)은 태양이 떠오르는 땅, 태양의 근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명칭은 쇼토쿠 태자가 중국에게 일본을 '해가 뜨는 곳(日出處)'이라 자처한 것을 시초로 기원후 8세기 초 다이호 율령이 제정되면서 공식 국호로 사용되었다.

종래에 일본의 국호는 '왜국(倭)'이었다. 이 왜(倭)에는 비하적인 의미가 내포돼 있었으며 후일 일본이라는 국호가 확립되기 전까지 중국을 비롯한 타국이 일본을 칭하는 말로 자리했었다. 한편으로 당대 일본에선 야마토(大和, 대화)라는 국호가 쓰이기도 했는데 이에 말미암아 오늘날까지 일본을 의미하는 부분에서 화(和)가 사용되는 경우가 다소 있다.

국기

日章旗일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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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日章旗)' 또는 '히노마루(日の丸)'는 법령에 의해 제정된 일본의 공식 국기이다. 여기서 일장기의 적색 원은 태양을 상징하는데 이는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한 모습으로서 고대부터 신성시 여겨지던 태양을 묘사한 것이다.

한데, 이러한 일장기는 과거엔 지금과 달리 적색 배경에 금색 원이 배치된 모습이었다. 시대가 흘러 에도 막부 말기의 군기와 상선기가 일장기로 채택된 뒤부터 비로소 적색 원에 흰색 배경이 조합된 모델이 나왔고 에도 막부가 붕괴된 후에도 메이지 유신 이래 선포된 태정관 포고 제57조에 근거하여 일장기는 실질적인 일본의 국기로 취급받았다. 다만 일장기를 국기로 규정하는 법제는 제정이 계속 지연되던 도중 1999년, 국기·국가법(国旗国歌法)이 성립된 시점에야 도입되었다.

국가

君が代임금의 치세

일본의 공식 국가인 기미가요는 메이지 시대에 프란츠 에케르트가 작곡해 국가에 준하게 통용되다가 1999년에 제정된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 즉 국기·국가법으로 일본의 법제화된 국가가 되었다. 기미가요는 가사는 상당히 짧은데 가창을 할 때는 길게 부르는 특징이 있고 서양인 음악가 에케르트가 작곡했으나 일본 전통 선율인 요나구키 음계에 기반하여 만들어졌다는 배경이 존재한다.

국장

十六八重表菊십육팔중표국화五七桐花紋오칠동화문
Imperial Seal of Japan.png5af29a69be59661240e46ba8b5b5c2d444425a8404f16e2b21557759b3cee8ca933c47c324076114b8ca4f8fe717cadf853a.png

일본은 공식적인 국장이 없고 대신 여권에 부착되는 일본 황실의 문장인 국화 문양이 사실상 국장을 대체하고 있다. 국화 문양이 관습상 국장으로 인식되긴 하지만 내각을 위시한 일본 정부와 관료 조직들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오동나무 문양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예시로는 내각총리대신을 가리키는 문장이 있다.

국화

サクラ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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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국화를 따로 통일되게 성문화하여 명시하진 않으나 황실을 상징하는 꽃인 국화(菊花)나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벚꽃이 관습상 국화로 거론된다. 실제로도 벚꽃은 경찰과 자위대의 휘장, 계급장 및 동전·우표의 디자인에 쓰이고 국화는 전술한 바와 같이 일본 황실의 문장, 일본 재무성이 발행하는 공식 여권 표지에 부착되는 등 둘 다 일본을 대표하는 국화의 쓰임새와 비슷하게 기능한다는 공통점들이 있다.

역사

고대

농경에 기반한 야요이 문화

일본은 과거 구석기 시대를 지나 원주민 위주의 신석기 문화인 조몬 문화를 거쳐 대륙에서 이주한 도래인들을 주축으로 농경 문화를 바탕으로 한 야요이 문화를 일으켰다. 야요이 문화를 분기점으로 대륙과 인접해 있던 서일본에서 야마타이, 야마토 같은 군소 국가들이 탄생했고 이중 야마토가 주변의 경쟁자들을 모두 제압하며 서일본을 통일, 야마토 정권을 성립시켰다.

야마토 정권은 상대적으로 대륙에 비해 덜 발달된 사회였던지라 군사 용역을 대가로 백제와 유착하여 이들과 우호관계를 맺어 대륙의 선진 문물을 받아오며 성장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쇼토쿠 태자의 섭정 때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쇼토쿠 태자는 호족 중심 사회였던 야마토 정권을 중앙집권국가로 발전시키고자 불교를 공인하는 한편 보다 적극적으로 대륙의 문화를 수용하려 애썼다. 쇼토쿠 태자 사후 그의 노력은 결실을 이루어 중앙집권체제 이행을 위한 정치 개혁 운동인 다이카 개신을 거쳐 덴무 덴노의 대에 이르러 야마토 정권은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국가 '일본'으로 발돋움하였다.

무가정권의 첫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그러나 천황의 측근으로 활동하던 귀족 가문 후지와라 가문이 여러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지속적으로 황후를 배출하며 천황의 외척으로서 권세를 휘두르기 시작하는 바람에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는 얼마 안 가 무너졌고 중앙 정치가 끝없이 문란해지자 일본 전국의 불안은 최고조에 달하였다. 이 상황을 바탕으로 막강한 무력을 지녔던 무사 가문, 즉 사무라이 가문인 '무가'가 급성장하여 이윽고 일본의 정국을 장악하게 되니 일본 최초의 무가 정권인 가마쿠라 막부의 탄생이었다.

중세

전국 시대를 평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일본의 무가 정권은 가마쿠라 막부를 시작으로 무로마치 막부까지 이어졌지만 무로마치 막부 하대에 오닌의 난의 여파로 막부의 권위가 실추되고 지방의 유력 무사들인 다이묘들이 전국에서 권력투쟁을 벌임에 따라 그 유명한 일본의 전국 시대가 열렸다. 전국 시대에 등장한 수많은 군웅 중에서 일본을 통일한 이는 다름 아닌 유력 다이묘 오다 노부나가의 일개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무로마치 막부를 멸망시키며 전국 시대를 종식시킬 줄 알았던 명장 오다 노부나가는 부하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했었으나 이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를 배신한 부하를 처단하여 자연스레 오다 노부나가의 유산을 흡수, 이를 토대로 그 야심을 드러내 대륙 진출을 도모했지만 그 첫 선인 임진왜란이 실패로 돌아간데 이어 얼마 안 가 도요토미 본인도 사망하면서 도요토미 세력은 실각하고 그 틈을 노려 집권에 성공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새로운 막부가 개창되니 에도 막부의 시작이었다.

근세

번영하는 에도의 모습

에도 막부는 막번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전란의 시대 동안 피폐해져있던 일본을 안정화시켜나갔다. 이때 일본의 인구는 급증했으며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정치도 비교적 안정된 시절이었는데 이 시기 일본의 경제 호황을 '겐로쿠 호황'이라 부른다.

하지만 에도 막부 하대로 내려갈수록 대기근이 덮쳐오고 막번 체제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민란이 거듭되며 쿠로후네 사건 이래 서구 열강에 막부가 승복한 것을 기점으로 지방 번들의 독립적인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일본의 역사는 '막말'에 진입하였다. 막말에 일본은 서구 열강에게 경제적 침탈을 당하는 한편 정치적으론 천황을 내세워 존황양이를 주장하는 사쓰마, 조슈 번 중심의 토막파와 에도 막부를 지지하는 막부파가 서로 격렬히 대립하였다. 해당 분쟁은 결국 보신전쟁을 끝으로 토막파가 일본을 장악하게 되면서 종지부를 찍는다.

근대

조선의 보호국화가 확정된 일-러 간 포츠머스 회담

에도 막부를 무너트린 토막파는 메이지 유신을 통해 일본의 근대화에 매진하였다. 이에 일본은 다방면에서 서구화의 노력을 이어갔고 아시아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로서 국제 사회에 전면으로 등장하게 된다. 근대화 이후 제국주의에 입각하여 영토 확장을 시작한 일본은 청일전쟁을 거쳐 대만을 획득한 뒤 곧이어 영국의 후원 하에 일러전쟁으로 서구 열강인 러시아를 조선에서 축출, 다롄을 조차하며 조선의 종주권 및 가라후토 남부를 얻었다. 여기서 식민화한 조선은 1910년에 직할령으로 병합하였다. 직후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도 개입한 일본은 독일이 아시아에서 지니고 있던 식민지 남양 군도를 할양받는다. 이때 오늘날의 일본 국경이 대강 확정되었다.

다이쇼 데모코라시의 문을 연 민주화 운동, 다이쇼 정변의 모습

일본은 일본군의 군홧발 아래에서 세계 열강의 대열에 올라탔지만 이는 일본 내에서 군의 영향력이 비대해지는 요인이 되었다. 메이지 유신과 여러 전쟁들을 거치면서 비정상적으로 팽창돼 영향력을 확대한 일본 군부는 국가 정치에서의 주도권을 공고히 했는데 이러한 군부의 정치 개입에 대립각을 세웠던 문민 정치인들이 1920년대에 정국의 주도권을 움켜쥐어 잠시 동안 일본은 군부의 정치적 발언권이 비교적 감소한 채 다이쇼 데모크라시라 불리는 의원내각제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경험하였으나 연이은 경제 위기로 문민정부가 국민의 신망을 잃자 만주 사변을 시발점으로 군부가 정면에 나섬에 따라 문민 정치 몰락의 전주곡이 울려퍼졌다.

문민 정치의 마지막 보루였던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가 군부에 대항하다가 급진적인 해군 장교들에게 피살당하면서 문민 정치가들은 완전히 정국의 주도권을 상실해버렸다. 이윽고 정치적 혼란이 지속된 끝에 마사키 진자부로 육군 대장을 수반으로 하는 군사 정권이 출범되었다. 한데 야심차게 출범한 군사 정권이었지만 내부 권력 투쟁과 대규모 국가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는 바람에 정권이 흔들리자 국내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 급기야 감당할 수도 없는 소련을 침공하는 오판을 저질렀다. 그리하여 기어코 대소전쟁도 말아먹어버린 군사 정권은 실책만 반복하다가 제3차 호헌 운동으로 붕괴되었다.

현대

선거 승리를 기념하는 사회당 지도부

제3차 호헌 운동의 결과로 성립한 새로운 일본의 민주주의는 곧 자유민주당 장기 독주 체제인 55년 체제로 이행되었다. 55년 체제 연간에 일본은 자유민주당을 주축으로 꾸준한 경제 재건과 산업 개발 및 조선, 대만의 내지 동화 정책을 추진, 구 외지의 혼란을 일소시키고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한편 영국과 함께 소련의 남하를 견제하며 냉전에 돌입하였다. 이후 소련이 체제의 한계에 직면하면서 자유 진영의 승리로 사실상 냉전이 끝났지만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 장기 독주로 정치 부패를 일삼았던 자유민주당이 1990년 중의원 총선에서 도이 다카코가 이끄는 일본사회당 중심 야당 연합에게 정권을 넘김으로써 55년 체제가 붕괴되는 기념비적인 역사를 기록하였다.

55년 체제의 종식을 전후로 1990년대 일본은 대내적으론 일련의 정치적 혼란과 자산시장의 대규모 거품이 꺼지면서 촉발된 경제위기를 겪는 한편 대외적으로는 공통의 적인 소련의 부재로 서방권과의 신냉전 시대에 돌입하였다. 시간이 흘러 한 세기를 지나 일본에선 자민당과 사회당 사이의 양당제 구도를 재확립해 정치적 안정을 꾀하는 변화의 움직임이 일었고 경제 방면에서도 대대적인 구조 개혁이 진행되면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던 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들어 원만한 경제성장을 지속하다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기점삼아 소련 등 동구권이 다시금 자유 진영의 헤게모니에 도전하기 시작하자 일본은 서구권과의 데탕트 정책을 통해 신냉전 구도의 개편에 대응하며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자연환경

지리

서태평양 전역에 분포한 일본의 영토들

일본은 전반적으로 영토가 파편화된 모습이다. 주요 지역으로는 일본열도, 조선반도, 대만 섬이 존재하는데 먼저 일본열도는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의 주요 4개 섬을 위시하여 이즈 제도, 오가사와라 제도, 난세이 제도 및 그외 부속도서로 구성되며 북쪽 홋카이도부터 남쪽인 오가사와라 제도까지 거대하게 뻗어 있는 활 모양과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조선반도는 아시아 대륙에서 길게 돌출된 반도의 형태로 과거엔 일본열도와 연결된 적이 있었다. 주요 지역 중에선 유일하게 대륙 안에 있는 영토이기도 하다. 대만 섬은 난세이 제도를 통해 일본열도와 상대적으로 인접해 있는 지역으로서 때때로 광의의 일본열도로 분류될 때가 있다. 이 섬은 제국 본토로 한정하면 주요 지역 중 가장 남단에 위치해 있다. 주요 지역 외에 기타 영토로는 일본열도로 묶길 때가 있는 지시마 열도, 가라후토 섬을 비롯, 제국 속령에 해당하는 영구 조차지 관동주 및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이었던 남양군도가 있다.

이러한 제국 영토들을 총합하면 727,231.1km² 정도의 면적이 나온다. 이정도 면적이면 세계적으로 꽤 넓은 축에 속하지만 전술했듯 각 영토들이 좀 분산돼 있고 이웃나라가 국가면적이 하나같이 상당한 남중국, 북중국, 소련 등인지라 영토가 협소하게 보인다.

일본열도

일본열도는 호상열도로서 고산 지대가 곳곳에 두루 분포해 있다. 아울러 일본열도가 형성된 지역이 환태평양 조산대인지라 일본열도엔 세계 화산의 10%가 밀집돼 있고 크고 작은 지진이 열도 전역에서 발생 중이며 고베 대지진, 동일본 대지진이 근래에 일본에서 일어난 주요 대지진이었다. 이렇듯 산맥과 화산이 넘쳐나는 일본열도이지만 간사이 평야, 간토 평야, 나라 분지 같은 평야 지대도 꽤 있긴 하다.

일본열도 북방의 가라후토 섬은 길이 약 1000km에 달하는 일본에서 두번째로 큰 섬인데 면적 중 약 70%가 산악 지대로 이루어져 있고 평야는 주로 기타가라후토에 몰려 있다. 특기할만한 점은 가라후토 섬 좌측의 마미야 해협(타타르 해협)이 동결되면 소련이 자리한 아시아 지역으로 편하게 이동할 수 있다. 이는 마미야 해협의 가장 얇은 구간이 불과 7km밖에 안 돼서 그렇다고 한다. 가라후토 섬과 배치되는 홋카이도 동부 방면에 위치한 지시마 열도는 약 56개의 섬으로 구성되며 개중 에토로후 섬이 가장 큰 면적을 가지고 있다. 일본열도와 비슷하게 화산 분화도, 지진도 많이 발생한다.

조선반도

조선반도는 만주에서부터 일본열도까지 세로로 약 1000km 정도 펼쳐져 있는 지역이고 일본열도 못지 않게 산이 많지만 반도 동부의 다이하쿠 산맥(태백 산맥)과는 대조적으로 반도 서부엔 고난 평야(호남 평야), 게이키 평야(경기 평야), 헤이조 평야(평양 평야) 등의 광활한 평야가 줄지어 존재한다. 또 일본열도와는 달리 간코 강(한강), 라쿠토코 강(낙동강), 오오로쿠 강(압록강) 등 커다란 강들이 많다.

대만 섬

대만 섬은 주오 산맥(중앙 산맥)을 분수령으로 태평양과 맞닿는 동부 지역은 험난한 산맥이 포진하지만 다이완 해협 방면인 서부 지역은 비교적 완만한 평야가 존재한다. 이렇게 지형의 고도는 조선반도와 대체로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 일본열도와 함께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해 있는 관계로 이 지역에서도 자주 지진이 일어난다.

남양군도·관동주

일본의 해외 속령인 남양군도는 남양제도 상당 부분을 영유하며 수천 개의 섬과 환초로 이루어진 군도 지대이다. 그런데 이렇다 할 큰 섬이 없다보니 인구 자체도 적은 지역이다. 이에 반해 관동주는 남양군도와 같은 일본의 해외 속령이지만 지형은 매우 판이하여 북중국의 랴오둥 반도 끄트머리를 차지한다. 의외로 산이 많고 저지대는 하천의 하구나 구릉지밖에 없다. 허나 꾸준한 개발 사업 끝에 170만명이 거주하는 대도시가 형성되었다.

기후

일본의 국토는 대체로 온난 기후대에 위치하지만 전체적으론 기후 분포가 상이해 조선반도 북부와 내륙 지방, 일본열도 홋카이도 지방, 도호쿠 지방, 주부 지방 일부, 관동주는 냉대 기후권에 포함되며 대만 남부 및 남양군도 지대는 열대 기후의 영향을 짙게 받는다.

인문환경

인구

일본의 인구는 228,473,250명(속령까지 합하면 230,933,250명)이다. 지역별로 일본열도에는 127,837,04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조선엔 78,720,602명, 대만엔 21,915,608명 정도가 거주 중이다. 민족 구성에 있어 일본인이 약 98% 정도가 분포되어 있으나 이는 조선인, 대만인을 일본인으로 분류시킨 결과이기에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일본인이 전체 인구 중 약 60~70%를 점유할 뿐 조선인이 약 20~30%, 대만인이 약 10%의 지분을 보유 중이다.

저출산/고령화

일본은 고도경제성장기를 거친 이후 국민 생활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의학과 사회보장제도가 발전하면서 본격적인 인구의 고령화가 시작되었다. 출산율 감소는 이 흐름을 더욱 촉진시켰는데, 1992년에 발생한 경제 위기인 '헤이세이 금융불황'과 출산 장려 정책의 실패는 출산율을 급격히 떨어트렸고 그 반동으로 아동 인구가 줄어듬에 따라 노령층의 비율이 더욱 늘어난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은 1970년대에 고령화 사회로, 1990년대에 고령 사회로, 2000년대 중후반에 초고령사회로 진입하였다.

현재는 일본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이 성과를 내면서 차츰차츰 출산율이 회복되는 추이지만 사망자수가 꾸준히 신생 인구수와의 폭을 줄여나가는 형편인지라 얼마 안 가 인구절벽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고령층 비율은 매년 현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일본 정부는 이민 규제 대폭 완화와 고령 인구의 노동력 활용 및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착수한 상황이다.

민족

일본의 민족은 명목상 일본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절대다수를 구성하지만 사실상은 일본인, 조선인, 대만인이 주된 일원이며 제국 속령에 해당하는 관동주의 한족이나 남양군도의 원주민들을 비롯하여 아이누족 같은 여러 지역의 소수민족과 일본에 귀화한 여러 재외 민족들로 구성된다.

본디 일본인이라는 민족은 일본열도에 유입된 대륙의 도래인에서 기원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인은 야요이 시대부터 오랜 시간을 걸쳐 원주민들을 밀어내고 규슈, 시코쿠, 혼슈를 차지하였다. 오키나와 정벌과 홋카이도 개척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팽창한 일본인의 영역은 메이지 유신을 전후해 일본이 일본열도 외곽의 대만, 조선, 나아가 남양군도까지 합병함과 동시에 만몽으로 진출함으로써 이 시기 절정기를 맞이했다. 1970년대 초 만몽을 북중국에 반환하긴 했으나 만몽의 일본인 공동체는 온전히 이어져 일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로써 지금의 일본인들은 태생한 일본열도뿐만 아니라 근방의 조선, 대만, 남양군도, 만주 방면에도 상당히 분포해 있다.

일본인과 밀접한 생물학적 연결고리가 있는 조선인은 북부아시아에서 남하한 북방계와 동남아시아에서 부상한 남방계가 혼합되어 등장한 민족이라는게 학계의 중론이다. 조선인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만주, 조선반도 및 그 부근에 두루 거주하던 민족이었고 현재도 그러한 거주 반경을 상당부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면서 일본열도로 이주한 조선인도 상당해 현지에서 규모있는 사회들을 만들기도 했다. 단, 조선인의 주요 영역은 인구 상당수가 밀집하여 살아가는 조선반도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인구통계학적으로 다소 비중이 적은 대만인은 크게 보면 한족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본도인(본성인)과 그외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 대만에 유입되어 형성한 대만 원주민들이 병존 중이다. 이들은 주로 대만섬에서 국부적인 생활을 했지만 현대에 이르러 외국에서 살아가는 대만인도 제법 많은 편이다. 분포상으로 보면 본도인이 대만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고 대만 원주민들은 본도인에 동화된 이들을 제외한 고산족이 대만 동부 산악 지대에서 생활한다.

언어

일본은 법적으로 명확하게 공용어를 정한 바가 없다. 다만 여러 관계 법령과 제반 사정으로 일본의 공용어는 일본어라는게 통념이다. 대다수의 일본 국민은 일본어 화자라 할 수 있지만 조선, 대만, 오키나와 등지에선 지역의 토착 언어를 쓰는 인구가 다소 있다.

일본어의 유래에 대해서는 설이 많으나 일본인의 기원처럼 대륙에 있던 언어 화자들이 일본열도로 이주한 후 해수면 상승으로 열도에 고립되자 점차 오늘날의 특색있는 일본어를 정립하는 양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동화 정책의 일환으로 일부 지역에서 일본어 사용이 강제된 적이 있었고 이로 인해 아이누어 등의 언어가 소멸 혹은 소멸 위기에 놓이기도 했는데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정책들은 모두 중단되었다.

종교

일본은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며 국교는 없다. 그러나 과거엔 일본의 전통 문화이자 신앙이었던 신토를 국론 통합, 정부 추종을 목표로 천황 중심의 국가 이데올로기인 국가 신토로 변질시켜 국교나 다름없이 강요한 적은 있는데 이 과정에서 불교에 대한 종교 탄압이 이루어져 폐불훼석이라는 법난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또 불교뿐만 아니라 기독교 등의 기타 종교들을 상대로도 암암리에 종교 탄압이 실시되었다. 이중 기독교 같은 경우엔 메이지 유신 이전에도 가쿠레키리시탄이라는 집단이 생겨나는 등 모진 탄압이 가해졌었다. 현재는 제3차 호헌 운동을 전후하여 국가 신토가 폐지된 상태고 종교의 자유도 옛 메이지 헌법이 보장한 수준보다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지방자치제도·행정구역

메이지 유신 이후 점진적으로 발달되기 시작하여 1940년대 시데하라 내각의 개혁을 통해 정립된 현 일본의 지방자치제도는 지방자치단체장 및 의회 민선제, 주민 소환제, 주민 발안제 등에 기반해서 도도부현을 정점으로 시정촌이 편제되는 구조다. 이러한 도도부현이 설치되는 일본의 본토를 내지(內地)라 일컬으며 내지가 아닌 해외 속령은 내지와 별개의 행정 체계를 수립한다.

도(都)

전술되어 있듯이 일본의 최고지방자치단체는 일명 도도부현(都道府県)이라 일컬어지는데 이중 도(都)는 수도 도쿄를 관할하는 도쿄도를 의미한다. 이 도(都)의 수장은 도지사라 하며 현직 도쿄도지사는 고이케 유리코가 재임하고 있다.

도(道)

제국 북부 홋카이도 섬과 가라후토 섬을 각각 관할하는 도(道)는 과거 최고행정구역인 청부현(庁府県)에서 청(庁)을 대신하게 된 행정구역 단위로서 홋카이도와 가라후토도가 현존하는 유이한 도(道)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도(道)는 한자는 다르지만 음독 상으로는 도쿄도와 똑같이 도지사를 수장으로 한다.

부(府)는 부지사를 수반으로 삼는 교토와 오사카, 게이조, 다이호쿠의 행정구역 단위인데 초기의 부는 에도 막부가 직할령으로 삼았던 에도(도쿄), 교토, 오사카를 위시해 일본의 다양한 거점 도시에 설치된 주요 행정구역이었기에 그 수가 10개를 넘어 11개에 이르렀으나 수도 도쿄 및 핵심 도시 교토, 오사카를 제외한 다른 부들이 전부 현으로 강등당하며 3개로 부가 줄어들었다. 이리하여 성립한 3부 체제가 약 70년 동안 유지되던 도중 지방자치법 제정에 따라 도쿄를 관할하던 도쿄부가 도쿄도로 개편되었다. 이어 1962년엔 일본의 중핵인 조선의 중심지 게이조와 대만의 중심지 다이호쿠를 부로 승격시키면서 최종적으론 4개의 부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도도부현의 일반적인 행정구역 현(県)은 현지사를 수장으로 하는 행정구역으로, 도도부현 중에선 가장 절대적인 비중을 가진 행정구역으로서 그 숫자는 84개의 도도부현 중 77개에 달한다. 구 에도 막부의 막번 체제를 해체하고 실시한 폐번치현에 의거하여 설치된 현은 초창기엔 봉건제적 행정구역인 번을 그대로 현으로 개조했었던지라 월경지가 난무하며 현의 수가 300개를 넘어갔었다가 여러번의 통폐합이 있은 뒤 1890년대 극후반에 구획이 정돈된 43개로 정리되었었다. 이후, 제국의 영토 확장이 이어지자 신규 영토에도 현이 설치되기 시작했는데 1960년대에 조선, 대만에서 통용되던 행정구역 단위들이 전면 해체되어 부로 승격된 게이조부나 다이호쿠주를 뺀 나머지는 현으로 이행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오늘날의 1도都 2도道 4부 77현의 도도부현을 완성하였다.

시정촌

한국으로 치면 기초지자체 '시군구'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일본의 도도부현 예하 기초자치단체인 시정촌(市町村)은 보통 인구 5만명 정도면 설치되는 시, 대개 5000명 정도면 설치되는 정, 그외 나머지 촌으로 구성된다. 시, 정, 촌 말고 시정촌과 비슷한 등급의 특별구도 존재하는데 특별구는 도쿄도에만 설치되는 특별 지방자치단체로 이 특별구까지 포함하여 시정촌을 시구정촌으로 부르기도 한다. 시정촌은 과거엔 정촌만 해도 7만개나 있을 정도로 방대했지만 시간이 경과하여 시정촌 간의 통폐합이 거듭된 끝에 메이지 대합병, 쇼와 대합병, 헤이세이 대합병을 거쳐 약 3000개의 시정촌만 남아있다.

해외 속령

일본은 도도부현이 설치되는 내지 밖의 해외 속령인 관동주와 남양군도엔 본토와 상이한 행정 체계를 도입시켰다. 관동주는 내지의 시정촌과 유사한 시, 회(会)가 기본적인 행정 단위이고 관동청과 관동주 자치의회가 관동주의 행정·입법 사무를 처리한다. 한편 남양군도는 남양청과 남양군도 자치의회에 의해 전반적인 행정 및 입법을 처리하며 남양청 예하에 몇몇 지청들을 두어 여러 섬들로 분할돼 있는 남양군도를 통치 중에 있다.

정치

일본의 정치 체제는 전형적인 영국식 의원내각제로 구성된다. 국가원수는 세습 군주인 천황(덴노)이 맡지만 입헌군주제가 철저하게 보장돼 있다. 일본의 정치적 실권자는 내각총리대신인데 약칭 총리는 제국의회에서 선출되는 집권여당의 당수로 정부수반으로서의 강력한 권한을 지닌다. 총리는 천황의 이름으로 중의원 해산에 대한 재량권을 가지는 한편 총리를 지명하는 제국의회는 자신들이 선출한 총리와 그 내각을 불신임할 수 있는 결의가 가능하다. 이렇게 제국의회와 내각은 옅으면서도 선명한 견제 구도에 놓인다.

정부 요인

현 일본의 국가원수는 나루히토 천황이다. 2019년에 아키히토 상황의 양위로써 즉위한 그는 근래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천황이 될 아이코 황태녀를 두고 있기도 하다. 현대 일본의 실질적 국가 수반인 아오키 쇼코 내각총리대신일본사회당, 입헌민주당, 사회노동당, 레이와 신센구미 연립정권을 기반삼아 집권 중이다. 내각과 함께 3권 분립을 구성하는 사법부의 수장은 오타니 나오토 대심원장이 있으며 입법권을 대표하는 제국의회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기에 참의원의장 안도 에이키치와 중의원의장 가이에다 반리가 제국의회의장으로 병립한다.

정당

슈기인.png
일본 제국의회
원내 구성
[ 펼치기 · 접기 ]
제2차 아오키 내각
(2022~현재)

여당
일본사회당 투명 로고.Png
일본사회당
169석·370석
벚흩 입헌 백색 로고.png
입헌민주당
34석·81석
사회노동당 신규.png
사회노동당
9석·7석
레이와 신센구미 투명 로고.Png
레이와 신센구미
7석·4석
야당
자민당 투명 로고.Png
자유민주당
115석·220석
공명당 투명 로고.Png
공명당
37석·47석
일본유신회 로고.svg
일본유신회
27석·43석
일본공산당 투명 로고.png
일본공산당
16석·22석
국민민주당 투명 로고.svg
국민민주당
11석·15석
대만진보당 투명 로고 2.png
대만진보당
2석·8석
태동조 1.png
태동하는 조선
4석·3석
NHK당.png
NHK당
4석·0석
무소속 15석·10석
재적 450석·830석
※ 정당조성법상 정당 요건을 충족 못하는 정치단체는 무소속으로 분류
좌측은 참의원(상원) 의석 수, 우측은 중의원(하원) 의석 수

현대 일본의 정계는 양당제의 구도로 굴러가는 상황이다. 일본의 대표 양당은 사회주의 좌익 빅텐트 일본사회당(日本社会党)과 보수주의 우익 빅텐트 정당 자유민주당(自由民主党)인데 원래는 자유민주당이 1955년에 창당된 이래 1990년까지 집권여당의 자리를 유지해오며 독주하였으나 1990년 총선에서 대패한 후 사회당과 자주 정권을 교대하고 있다. 사회당과 자민당 외에 제3당들로는 자유주의 성향의 중도 정당인 입헌민주당, 종교 조직 창가학회에 기반한 온건 보수주의 공명당, 오사카 지역주의 보수정당 일본유신회,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국민민주당 등이 있는데 개중엔 지역 분리주의 정당들도 있다. 조선 지역의 분리주의 정당인 태동하는 조선이나 대만 지역의 분리주의 정당인 대만진보당이 바로 그것이다.

선거

사법

초기 일본의 사법부는 프랑스 파기원을 참고하여 사법 행정을 내각이 맡고 일반 민형사의 종심을 사법기구 대심원이 맡도록 구성되었었다. 허나 이러한 구조상, 사법 행정권 등의 권한으로 내각이 지나치게 사법권에 간섭하면서 사법부의 유명무실화가 일어났는데 황도파 정권 붕괴 직후 단행된 1940년대 사법 개혁으로 현재는 내각, 제국의회와 더불어 대심원이 견고한 3권분립을 이루고 있다.

일본의 사법부는 최고재판소인 대심원을 3심으로 2심 고등재판소, 1심 지방재판소로 성립하는 3심제에 기초한 조직을 갖추고 있다. 앞서 설명한 재판소 이외에도 가정에 관한 사건 심판을 맡는 가정재판소, 일생 생활 중 발생하는 사소한 민형사상 사건의 간결한 처리를 담당하는 간이재판소, 지적 재산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지적재산고등재판소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 한편으로 일본은 헌법을 통해 특별재판소의 설치와 행정 기관의 종심 재판을 금지한 상태이므로 행정재판소와 군법회의 같은 특별재판소가 없다. 가정재판소나 지식재산고등재판소는 특별재판소가 아닌 하급재판소의 성격으로 존재하기에 특별재판소로 인정되지 않는 케이스라고 한다.

일본은 특이하게 내각이 지명하는 대심원의 장인 대심원장과 대심원 재판관을 국민이 투표로써 파면할 수 있는 대심원 재판관 국민 심사 제도가 있다. 1940년대 민주화에 따라 사법 개혁이 진행될 때 사법권에 대한 국민의 견제 기능 및 국민 주권의 상징으로서 도입된게 해당 제도의 취지인데 현재로서 해당 제도로 파면된 재판관은 없었지만 1972년 국민 심사 투표에서 과반득표에 가장 근접했던 15%라는 역대 최고의 파면 찬성율을 얻은 시모다 다케조 재판관이 있었다.

외교

분리주의

경제

일본은 명목 GDP 11조 달러의 거대한 경제 규모를 지닌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라 할 수 있다. 도쿄에서부터 헤이조까지 뻗어있는 태평양 벨트의 거대한 산업 지대와 장엄한 제국 메트폴리스들의 전경, 쉴새없이 움직이는 수많은 무역항의 크레인들을 보면 단편적으로만 보아도 제국 경제의 규모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일본의 경기가 비록 1990년대 장기 불황으로 크게 정체된 적이 있었지만, 2000년대 초에 경제 성장을 재개한 후 지금까지도 세계 경제의 일익으로 기능 중임은 틀림없다고 볼 수 있다.

경제 체제

일본의 경제 체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다. 1800년대 메이지 유신으로 정착한 일본의 자본주의 경제 체계는 일련의 변천 과정을 겪은 끝에 정부와 금융계, 재계가 강하게 유착하여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호송선단형 모델로 변모했는데 고도경제성장기까지만 해도 호송선단형 구조는 매우 효율적인 경제 정책인 듯 보였지만 그 이면에선 정재계의 유착으로 인한 부정부패의 횡행과 변화에 둔감한 경직적인 시장 구조, 금융업계의 방만한 운영을 초래함으로써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일본의 경제위기를 야기하는 온상이 되어버렸다. 결국, 이러한 체계를 주도하던 자민당 정권이 무너진 시점부터 수반된 각종 행정개혁과 경제개혁으로 호송선단형 구조 역시 형해화되었다.

산업

일본의 주요 산업은 제조업 부문의 자동차 산업, 기계 산업, 전자 산업, 철강 산업, 조선업 등과 서비스업 부문의 금융업 등이 있다. 이뿐만 아니라 파편화되어 있는 국토 특성상 물류 산업이 크게 발달해 있고 여러 지역의 문화 자원을 기반으로 관광업이 번창 중이다.

기업

과학기술

경제사

전근대~근대화 시기

근대화 이전 일본은 농업 중심의 경제 체제를 영위하고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으로 대표되는 근대화 개혁이 시작되면서 일본은 경제 개발의 초석인 철도 부설과 함께 금본위제와 같은 서구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적극 수용하는 한편 면사 방직업을 위시한 경공업을 시작으로 차근차근 근대적 산업 개발에 매진, 농업 중심 경제 체제에서 탈피하려 노력하였다. 아울러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의 대규모 전쟁들을 거쳐 일본은 군수공업과 연관된 중공업 개발에도 열을 올렸는데 이 일련의 결과, 일본 경제는 기초적인 근대화에 성공하였다.

근대 시기

시간이 흘러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전시 특수를 누리게 된 일본은 유례없는 경제호황을 만끽하며 경제 성장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무역 수지가 흑자로 전환되는가 하면 만성 채무국에서 순채권국으로 바뀌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간토 대지진을 발단으로 쇼와 금융공황, 대공황이 연이어 터져 일본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1930년대 군부의 무리한 경제 개혁, 미국 내전의 광역 피해를 얻어맞아 기어코 빈사 상태에 빠졌다. 성급하게 전개된 일소전쟁은 빈사 상태가 된 일본 경제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트렸는데 이렇게 난장판이 된 경제 상황은 제3차 호헌 운동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였다.

고도경제성장기

제3차 호헌운동에 의해 출범한 일본의 새로운 문민정부는 우선 독일의 소련 침공을 이용해 일소전쟁을 종전시킨 다음 극심한 혼선에 빠져 있던 경제 체계를 재정비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당시 성황리에 진행 중이던 제2차 세계대전을 빌어 다시금 전시특수를 창출함으로써 경제 위기로부터 일본을 부흥시켰다. 한편으론 서구 열강들로부터 자립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묶어 대동아경제동맹을 차린 뒤 고도 경제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국내외의 방대한 물류 소비 시장, 2차 대전 연간에 유입된 전문 인력들을 활용한 대규모 기술 혁신, 55년 체제 하 자민당 주도 경제 체제의 성립, 제2세계의 위협에 대항한 자유 진영의 무역 자유화가 합쳐지며 일본은 유례없는 고도 경제 성장을 기록하였는데 한창 경제 성장이 이루어질 때에는 연 경제성장률이 10%를 훨씬 상회하기도 하였다.

안정경제성장기

1960년대, 고도 경제 성장의 결과로 당대 최고의 경제강국이었던 영국까지 꺾은 일본이었지만 오일 쇼크까지 회피할 수는 없었다. 에너지 위기와 스태그플레이션이 고조되자 고도 경제 성장의 시대는 1970년대 초에 막을 내렸고 연 평균 4% 정도의 경제성장률이 이어지는 안정 경제 성장기가 개막되었다. 이 시기 일본은 저부가가치 중화학공업 위주의 산업 경제 구조를 하이테크 산업 중심으로 개편함과 동시에 공격적인 수출 증대 전략을 통해 오일 쇼크를 극복했지만 이 과정에서 조장된 일본의 고의적인 환율 조작과 일본 하이테크 기업들의 약진, 그리고 그동안 누적되어 있던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에 대한 유럽 자유 진영의 불안감이 합쳐져 유럽과 일본 간 무역 마찰이 극에 달함에 따라 1985년, 구일무역전쟁(欧日貿易戦争)이 발생하였다. 게다가 구일무역전쟁에 이어 영국의 마거릿 대처 내각이 주도한 강도 높은 대일본 시장 개방 압박은 치명적인 수출 부진으로 이어졌다.

잃어버린 10년

예상 외의 수출 부진이 지속되면서 다소 심각한 경제 불황이 일본 경제를 엄습하자 일본 정부는 경제 불황 해결을 목적으로 경기 부양을 의도한 금리 인하 정책 및 대출 규제 완화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불황이 닥친 경제의 회복을 시도했다. 한데 급격한 금리 인하와 대출 규제 완화로 풀린 돈은 비정상적으로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으로 유입되어 거대한 거품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형성된 일본의 거품 경제는 한동안 일본을 호황으로 이끌었으나 거품은 결국 거품일 뿐이었고 상상 이상의 거대한 거품을 빼기 위한 정부의 섣부른 정책들이 화가 되어 일본을 끔찍한 경제 위기의 구렁텅이로 빠트리게 되니, 헤이세이 금융불황의 발발이었다. 더군다나 1997년에 일본의 핵심 경제권이었던 동남아 지역을 초토화시킨 동아시아 외환 위기가 일본 본토까지 파급되어 일본 경제를 절체절명의 길로 인도하게 된다. 그렇게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이어진 일본의 장기 경제 침체기,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었다.

현대

유럽의 시장 개방 압박, 제국의 그늘 아래에 있던 동남아 일대의 정치적·경제적 혼란으로 인한 국제적 지위 추락, 만성적인 경제 후퇴로 점철된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해버린 일본은 긴 암흑기를 걸어야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대동아공영연맹 개혁과 일본 내부의 경제 개혁이 추진되어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노력들이 이어지며 일본의 경제는 마침내 2000년대 중반에 다시 정상 궤도로 복귀하였다. 2009년 세계를 강타하였던 대침체, 2011년 도호쿠 지방을 휩쓴 동일본대지진에 제국 경제가 휘청거리긴 했으나 일본사회당 5기 정권이 개시한 경제 대응책으로 이내 이 문제는 수습되었다. 시간이 흘러 2020년 범세계적 코로나19 바이러스 대확산이 이루어져 잠시 경제가 하강 곡선을 그렸다가 2022년 현재는 사회당 정부의 무난한 코로나 대응 정책에 힘입어 경제가 회복되는 중이다.

사회

언론

교육

문화

일본인들은 넓은 국토 속에서 다양한 자연 환경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 추운 고산 지대가 만발한 조선 북부부터 열대 사바나 기후권인 대만 남부까지 다원화되어 있는 자연경관이 그 효시라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론 지난 메이지 유신 이후 강화되었던 국가주의 시류가 1940년대 민주화를 거치며 약화되면서 자유로운 사조가 20세기 중후반에 유행하였고 고도 경제 성장에 따른 물질적 풍요가 잇따르자 이러한 사회상을 바탕으로 사회 전반의 문화 산업이 크게 발달하기도 하였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제국으로 합류한 지역의 대부분은 일본 문화가 파급되어 전통적인 색채가 약화되고 일본 문화와의 융합이 진행되었는데 가령 조선은 후잔 등의 레이난 지방과 대규모 인구 밀집 지역인 게이키 지방을 주축으로 이러한 경향이 강한 편이며 대만은 다이호쿠 등의 북부 지역에서 일본적인 문화 색채가 진해지는 편이다. 반대로 일본열도 역시 조선과 대만에서 유입된 이주자들의 영향으로 기존 일본 문화 양식과는 색다른 문화가 조성되었다. 이리하여 만들어진 특이한 문화 양상들은 일본의 사회-문화상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다만, 제국 영토 전역은 대체로 일본열도에서 유래한 일본 문화권을 공유하고 있다.

관광

군사

관련 문서

  1. 해외영토 합할 시 727,809.4km²
  2. 일본열도: 127,837,040명
    조선반도: 78,720,602명
    대만: 21,915,608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