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학준

주학준 (朱學浚, 1899년 9월 13일 ~ 1970년 12월 10일)은 대한제국의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명조평황제의 장인으로, 황실 전통 법률에 따라 전주백 (全州伯)이라는 호칭을 가지고 있었다.[1]

생애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오늘날 한성특별시 노원구 일대) 출신이다. 한성대학을 졸업하고 반임 독립 운동을 위한 재원 마련 사업에 참여하여, 양전제분, 양전합자산업 등을 설립했다. 이승만을 지지하여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 합류했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양주군 갑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러나 1950년 제2회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은 지역구에서 사회당 조시원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한국 전쟁이 끝난 뒤인 1954년 제3회 의정위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1958년 제4회 의정위원 선거를 앞두고 딸 주희연과 황태자 사이의 결혼이 성사되자,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며 갑작스레 불출마 선언을 했다.[2] 정계 은퇴 후 양전제분, 양전합자산업의 운영에 힘쓰다가 기업인 김본수에게 두 회사를 매각하였고, 수도그룹의 모체가 되었다.

장남인 주희철대한제국 육군 중령으로서 5·16 군사정변 당시 반란군에 맞섰지만, 이후 친박정희 성향으로 전향해 베트남 전쟁 파병 당시 맹호부대 예하 연대장으로 참전했다. 박정희는 황실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지만, 주학준 일가는 이와 같은 장남의 덕을 보아 편안한 말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3]

가족 관계

선거 이력

연도선거 종류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당선 여부비고
1948제헌 의정위원 선거 (양주군 갑[4])대한독립촉성국민회39.2%당선 (1위)[5]
1950제2대 의정위원 선거 (양주군 갑)대한국민당44.0%낙선 (2위)
1954제3대 의정위원 선거 (경기도 제7선거구[6])자유당55.1%당선 (1위)

각주

  1. 전주부원군이라고도 말하지만 잘못된 것이다. 1945년 이후 황제국의 예에 따라 백작급인 '~백' (伯)으로 환원되었기 때문이다. 신안 주씨의 분파인 전주 주씨에서 유래했다. 부원군(~백)의 명칭은 일반적으로 해당 인물의 본관을 딴다.
  2. 그러나 역사학자 형태만 등은 주학준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 이기붕 등 다른 친이승만계 인사들이 견제를 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3. 김응석, 《담 너머의 삶》, 110쪽.
  4. 경기도 양주시, 의정부시, 동두천시에 해당.
  5. 1948년 대한국민당으로 이적.
  6. 양주군 갑에서 명칭만 변경되었으며 선거구 변동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