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모사 공화국/역사

포르모사의 역사
福爾摩沙史
선사고대중근세근대현대
말레이계 원주민스페인 제국 (북)
누에바에스파냐
네덜란드 제국네덜란드 제국대일본제국네덜란드 제국포르모사 공화국
네덜란드 제국 (남)
다두 왕국

상세

선사 시대

최초의 인류 흔적은 3만 년 전 쯤에 나타나며 이들은 키작은 흑인계통의 네그리토로 추정되며 이후 오스트로네시아어족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8000년 전에 유라시아 동남쪽에서 포르모사 섬으로 이동해 왔다. 네그리토 종족들은 이후로 서서히 오스트로네시아어족 계통의 종족들에게 점차적으로 동화되었고, 마지막 네그리토 종족은 사이시얏 족 거주지 근처에 불과 100여 년 전까지 살고 있었다. 이들 원주민들은 대만해역의 풍부한 어장을 바탕으로 어업에 종사하며 생활하였다.

포르모사 원주민은 미국-캐나다와 남미 동부일대의 아메리카 원주민마냥 통일된 정치체제를 이루지 않고 부족별로 흩어져 살았으며, 현재도 크고 작은 부족집단으로 나뉘어 있고 부족별로 언어도 다르다. 고산족(高山族) 등의 이름으로 불렸으며, 그들이 쓰는 언어는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인도네시아어, 말레이어, 필리핀의 타갈로그어와 태평양 지역의 많은 언어들이 같은 남도어족계 그룹이다)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옛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이 섬에 살아온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시대

고대에는 그냥 원주민들만 사는 섬이였다. 삼국지에서는 타이완을 이주(夷州)라 불렀는데 관련 사건도 언급된다. 230년에 이르러 오나라 황제 손권위나라와의 잦은 전투 등으로 인하여 인구가 감소 추세에 놓이자 위온제갈직에게 1만명의 병력을 주고 이주와 단주 등에 건너가서 징발을 명했다. 하지만 위온과 제갈직은 이주에 도착했으나 그곳은 미개한 원주민들만 있었고 위온과 제갈직은 그들이라도 1천명을 징발해서 손권에게 돌아갔으나 태풍 등에 의해 8천이나 되는 많은 병력을 잃어(...) 분노한 손권에 의해 참수당했다.

중세 시대

송나라부터 원나라 시대 때 섬이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해양무역이 발달하였다. 포르모사 섬은 중국 대륙과 동남아시아 사이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중계무역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명나라 때에 이르러 해금정책이 실행되자 타이완 섬의 해양무역은 쇠퇴하게 되었다. 한편 포르모사 섬 중서부에서는 원주민들의 연합 왕국인 다두 왕국이 성립하였다.

중국 대륙에 명나라가 건국된 이후 타이완 섬은 원주민들의 부족 국가들을 비롯한 여러 소왕국들이 존재하였다. 한편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서구 열강들도 세계 각지에 세력을 뻗기 시작했고 이들은 동아시아에도 당도했다. 이 과정에서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아시아에 대한 권리를 얻은(?) 포르투갈 제국의 항해사들이 유럽인 중 처음으로 포르모사 섬의 존재에 대해 알렸고, 이들은 이 섬을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섬이란 뜻의 '일랴 포르모자(Ilha Formosa)'라 하였다.

그러나 포르투갈 제국은 국가 역량의 한계로 인해 이 지역을 식민화할 생각은 없었고, 대신 원주민들과 약간의 무역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1624년에는 네덜란드 제국펜오 열도와 타이람에 당도하였다. 이들은 타이람에 질란디아 요새를 쌓고, 펜오에는 포대를 구축해 거점으로 삼고자 했는데 펜오의 포대에 대해서는 명나라가 자국 영토라고 압력을 가하는 바람에 오래 있지 못하고 밀려났다. 지역 원주민들은 이들에 호의적이지 않아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원주민들보다 우수한 무기를 지닌 네덜란드(동인도 회사)를 이길 수는 없었고, 이내 타이람, 코횽, 핀통, 타이탕 일대를 세력권 안에 넣는다. 이들은 사탕수수를 재배해 수출하여 이득을 얻었다.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명나라 복건 지역에서 노동력을 수입했는데 이것이 공식적으로는 첫 한족의 타이완 섬 진출이 되었다.

한편 스페인 제국 역시 1626년지룽, 단수이 등에 당도하여 요새를 구축하고 포르모사 섬 북부를 지배했다. 그러나 당시 견원지간이었던 스페인과 네덜란드는 타이완 섬에서 세력을 다투었고, 1642년에는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포르모사 섬에서 몰아낸다.

한편 중국 대륙에서는 1644년 청나라의 공격으로 명이 몰락하자 정성공이 당왕(唐王) 주율건(朱聿鍵)을 남명의 2대 황제인 융무제(隆武帝)로 옹립하여 청에 대항하였고, 한때 명나라의 고도 남경(南京)까지 진격하여 포위하는 등 잘 나가다가, 결국 청군에 패하고 복건성 해안가의 근거지 금문도로 밀려나게 된다.

정성공은 청나라의 해안 봉쇄에 극심한 식량 부족에 시달렸고 명나라 부흥을 위한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1661년 4월 29일에 타이람을 공격하였지만 정성공이 죽고 패전한다.

이 때부터 청나라와 네덜란드의 교역이 시작되었다.

근세 ~ 근대

네덜란드가 통치하던 중 청일전쟁이 발발하였고 전쟁 중에는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항구를 대여함으로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제국이 점령하고 대만총독부를 설치하여 일본의 통치가 시작되었다.[1]

현대

1950년 포르모사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한편 윈난성으로 도망가지 못한 중화민국이 하이난 상륙 작전으로 국공내전에 패전하였고 포르모사로 망명하였다. 그 후 포르모사에 잔여 국토를 임시로 양도하고 타이팍에 망명정부를 구성하였다.

각주

  1. 점령지 중 대만에만 총독부를 설치했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