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국제제

황국제제가 선포된 환구단

개요

대경국대경제국 제1제국으로 교체되는 결정적 사건이다. 다른 말로 황국제제가 선포된 1890년의 간지인 '경인'을 따와 경인제제라 부르기도 하고 '황국칭제', '경인칭제'라는 말도 사용된다.

선포 배경

당시 대경국은 철종 사후 즉위한 안종의 치세 하에 안정기에 돌입한 상태였다. 몇차례 군사 원정으로 국경선을 명확히 하고 정종 시절부터 시작된 근대화 노력이 거의 완성되가던 시점이였다. 하지만 동시에 서구 열강들이 점차 중국에서 틀을 다지고 일본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전쟁판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안종은 현재 형식적인 옹나라와의 조공관계(속국관계)를 청산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에 안종은 총리 유백산으로 하여금 이에 대한 대안을 찾도록 한다.

선포 준비 과정

총리 유백산은 경유23년학성회의을 통해 칭제론(稱帝論)을 선포하고 이에 대한 근거 25조항을 정립한 다음 학공회의를 열어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자 실무 작업을 위해 1888년, 총리 직속기구로 '민의수의관(民意受議館)'을 설치하여 칭제론을 설파하며 공론화를 시켜나가고 외국인 영국과 프랑스에 지식인을 초청하여 이 문제를 논의하게 한다. 1889년, 유백산 총리는 이백근 전권대신을 통해 안종에게 칭제를 제안한다. 안종은 칭제를 승인하고 이를 위한 환구단 건설을 명령했으며 환구단에 막대한 인력이 동원되서 1890년에 완공된다(환구단). 안종은 영국과 프랑스, 일본의 외교관을 칭제식에 초청하였고 베이징에 칭제에 대한 공문을 보낼 준비까지 완료하였으며 1890년 6월 8일에 식이 거행된다.

선포

짐(朕)이 생각하건데, 현재의 천자(天子)는 그 기치(旗幟)를 상실(喪失)하고 그 도(度)를 이미 한참 지나쳤다. 이에 짐(朕)은 상제(上帝)의 근심을 없앨 진택(眞澤)을 받은 천자(天子)라는 상제(上帝)의 칙유(勅諭)를 받들고자 함에 오늘 천지신명(天地神明)과 상제(上帝)께 이 제단을 바치어 무궁(無窮)토록 제사(祭祀)를 지낼 것이니라. 조정(朝廷)의 만조백관(滿朝百官)들과 모든 만신민(萬臣民)은 새롭고 진정한 상제의 택(澤)을 받은 천자(天子)가 상제(上帝)도 탄복(歎服)할 국사(國事)을 가꾸어 자손만대(子孫萬代)가 영원토록 누릴 수 있는 광영(光榮)을 만끽할 것이다.
— 황국제제 선포식 거행 中 조서 낭독문

환구단에서의 예식은 고려조선의 천지신명에게 바치는 제사의 예식을 복원한 것으로 조선 왕실의 예법으로서 편찬된 조선왕실오례의를 많이 참고하였다. 실무 기관은 궁내부 예하 관서인 '환구단 사제서'[1] 및 국무대신 직속의 '칭제실무간국'과 총리대신에 '칭제실무진행심의회'가 맡았으며, 이외에 연회와 후에 열린 다과회는 궁내부의 예식원과 서양전례관, 프랑스에 초청한 장 리브잉 지 메디 신부가 맡았다. 이와 동시에 중국 베이징에 칭제에 대한 모든 정보를 써내어 전보로 보낸다.

초청된 주요 인사

반응

내부

  • 대경제국 제1제국 의정원 - 기념 결의문을 의결하고 당분간 정쟁을 중단하였다.

대외

  • 옹나라 - 당연히 용납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황국제제 당일 이 소식을 알게 된 이홍장은 즉각 반발 성명문을 내며 열강의 동조를 얻으려 했지만 방향을 선회하여 베이징 헌장을 체결하여 황국제제를 인정하고 협력관계를 도모한다.츤데홍장
  • 일본 제국 - 일본은 애매모호한 성명을 했다가 주재영사를 공사로 승격시키고[2] 축하 사절을 보낸다. 그리고 결과가 대 일본 전쟁
  • 영국 - 영국도 일본처럼 주재영사를 공사로 승격시키고 축하 사절단을 보낸다.
  • 프랑스 제3공화국 - 프랑스는 주재영사로 하여 축하 서신을 보냈으며 이후 공식적으로 사절단을 보내 축하하였다.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축하 사절로 보내고 주재공사를 특별공사(사실상 대사)로 승격시킨다.
  • 미국 - 축하 서신을 보낸걸 제외하고는 없다.
  • 독일제국 - 축하 서신을 보내고 이후 외교 목적 성격의 축하 사절을 보낸다.
  • 러시아 제국 - 축하 성명을 한 것을 제외하고 없다.
  • 스페인 왕국 - 축하 서신을 보냈다.
  • 미 연합왕국 - 축하 서신을 보내고 이후 축하 사절을 보낸다.

파급 효과

기타

각주

  1. 오늘날 환구단 사제서와 비슷한 역할을 가졌다.
  2. 하지만 황국제제 단행연도 1890년 이전인 1883년에 일본 외무성은 일찍이 청경 주재 '영사'가 아닌 '공사'로 부르던 경우가 많았으며 공식문서 일부에서도 공사라고 쓴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