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천하체계와, 서구의 개인관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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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과 자유주의 계열 사람들은 "개인"만이 서구의 대발견이자,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발견이며, "사회" 나 "공동체"라는 것은 그저 원시인류문명의 특징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과 "이슬람"은 개인을 발견하지 못해서 서구 문명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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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과 자유주의 계열 사람들은 "개인"만이 서구의 대발견이자,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발견이며, "사회" 나 "공동체"라는 것은 그저 원시인류문명의 특징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과 "이슬람"은 개인을 발견하지 못해서 서구 문명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리버럴들은 "개인"만이 서구 문명의 특징이라고 호도하지만, 서구문명에서 개인이 발견되어지면서 그 반동으로 근대적 의미의 "사회 (집단,혹은 국가)"라는 것이 발견되어졌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또한, 리버럴들은 "개인"만이 서구 문명의 특징이라고 호도하지만, 서구문명에서 개인이 발견되어지면서 그 반동으로 근대적 의미의 "사회 (집단,혹은 국가)"라는 것이 발견되어졌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19세기까지 Person (individual과는 다르다) 에 대응하는 "개인"이라는 말도 없었지만, Society에 대응하는, "사회"라는 단어도 없었으며 이 두가지가 분리되지도 않았다. (필요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대신, 아시아에서는 사회와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는 대신, 개체와 가정, 국가, 세계를 일관적으로 관통하는, "천하"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19세기까지 Person (individual과는 다르다) 에 대응하는 "개인"이라는 말도 없었지만, Society에 대응하는, "사회"라는 단어도 없었으며 이 두가지가 분리되지도 않았다. (필요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대신, 아시아에서는 사회와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는 대신, 개체와 가정, 국가, 세계를 일관적으로 관통하는, "천하"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2022년 9월 20일 (화) 09:34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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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럴과 자유주의 계열 사람들은 "개인"만이 서구의 대발견이자,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발견이며, "사회" 나 "공동체"라는 것은 그저 원시인류문명의 특징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과 "이슬람"은 개인을 발견하지 못해서 서구 문명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또한, 리버럴들은 "개인"만이 서구 문명의 특징이라고 호도하지만, 서구문명에서 개인이 발견되어지면서 그 반동으로 근대적 의미의 "사회 (집단,혹은 국가)"라는 것이 발견되어졌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19세기까지 Person (individual과는 다르다) 에 대응하는 "개인"이라는 말도 없었지만, Society에 대응하는, "사회"라는 단어도 없었으며 이 두가지가 분리되지도 않았다. (필요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대신, 아시아에서는 사회와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는 대신, 개체와 가정, 국가, 세계를 일관적으로 관통하는, "천하" 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유교적 세계관에서 개인과 사회는 구분되는 존재가 아니었으며, 최하위 정치단위인 개체, 가정, 국가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천하라는 틀 안에서 모든 것이 이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사회와 개인을 구분하려는 자세, 국가(생존의 주체)와 세계정치(무정부 상태)를 구분하려는 자세야 말로 서구정치철학만의 "지역적 특징"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며, 냉전에서 자유주의 국가들이 보여주었던 기만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 내제되어있는 "우월주의"를 인식하고, 동아시아의 부상이 국제정치를 어떻게 바꿀지 인식하여야 하겠다.

자유주의세계의 정치적 기만으로 보는 "개인-국가" 관념의 지나친 보편화와 서구 우월주의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보여주는 정치적 기만은 무엇일까?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소련도 결국에는 서구 문명의 사생아라는 것을 애써 부정하고 있는 것이겠다. 이미 자유주의의 형성 시기에 루소를 비롯하여 "사회계약"의 "공동체성"을 인식한 계몽주의자들이 존재했고, 이러한 사조는 결국 사회주의 출현의 이론적 기반으로 이어졌다.

리버럴들은 개인이 강조될수록 그 반동으로 사회 역시 강조될 수밖에 없고, 기독교의 비합리적 집단주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합리적인 개인이 만들어졌다면 그에 무한히 대응하는 합리적인 주권자 역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러한 시각은 자유주의 진영이 사회주의 진영을 지칭할때 주로 사용하던 "동구권"이라는 용어에서도 드러난다. 결국 극단적인 과학성과 합리성에 근거한 집단주의 국가인 소련을 마주하며, 자신들이 서구문명의 사생아와 대립한다는 것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서구가 전근대의 집단주의나 이슬람교를 보던 시각을 그대로 적용시켜, "문명화된 정통적" 서구 문명에 대응하는 "이교도성" "비문명성"을 부각시켜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이 냉전 시대 자유세계가 보여주었던 기만의 본질이며, 이 기만은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오늘의 서방권의 이론적 우월성의 하나로 "개인의 발견"을 내세우는 정치적 헛짓거리의 중심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헛짓거리조차도 서구 문명에서의 분열에 국한되었던 냉전과 달리, 중국의 부상은 이러한 기만조차도 뛰어넘어, 개인과 국가를 해석의 틀로 삼는 현대 민족국가체계 그 자체에 대한 도전이 될 것이기에 통하지 않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천하체계와 서구의 민족국가체계의 차이

서구 사상에서의 "개인"은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 아래에서 만들어진 개념이었다. "개인"이란, 기독교가 전파되며 인간의 합리를 벗어나는 존재에 근거한 배타적인 신적주권 아래에서 신음하던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에서 출발하여, 주권자로부터 인간 개체를 설명하기 위한 사상적 수단으로서 발견되었다 (종교 개혁시대의 개인구원과 자유의지 등등).

홉스는 <자연상태의 개인>이 사회계약을 통해 이룩한 "세속주권자"를 강조했으며, 그 최소 단위로 개인을 지명했다(리바이어던). 더 나아가 로크와 같은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주권"이 세속화되어 출현한 "세속 주권"과 "국가" 체제에서, 개체를 주권자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인"을 사용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가장 최상위 단위인 천하라는 틀에서부터 세계를 이해했기에 개인이라는 것이 발견될 필요도, 유용성도 없었다. 천하라는 것은 단순히 globe가 아닌, 그 자체가 혼란(亂)과/정상(治)으로 나누어지며, 개체(사람)와 가정, 국가, 천하의 법도가 일관적으로 작동되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서구의 세계가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인간의 생존의 장이자 인류에게 시련을 부여하는 자연 그대로의 이해였다면, 동아시아의 천하는 그 개체의 안정과 협력, 법도확립에 따라 안정될 수도, 또는 혼란될 수도 있는 존재이며, 궁극적으로는 자연의 섭리로부터 인간의 생존을 도모하는 대가정적 존재라는 것이다.

홉스의 사고실험에서 <자연>은 그 생존의 무대이고, 개체는 생존의 주체이자, 무대의 배우로서 묘사되었으며, 개체와 개체간의 사이는 본질적으로 "적대자"이자 "타도(정복)의 대상"이였다. 홉스는 가정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상상의 인간을 만들어 낼수밖에 없었는데, 이를 국가에 그대로 적용하며, 교회의 주권을 부정하고 자연상태의 개인의 사회계약을 강조하여 세속주권을 정당화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동아시아의 세계관 역시 <자연> 속에서의 생존본능에 기반하여 있지만, 우리 인류가 수만년간 실제로 그러하였듯 "가정(혈족)"을 생존의 주체로 인식하고, 가정을 통해 나를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생존의 주체인 가정을 세계로 확대하여 천하를 이해하였다. 천하는 인간이 생존하는 공간이자 무대이기도 하였지만,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공공 생존 수단 그 자체로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천하체계와 높은 개체독립성

이와같이, 동아시아는 홉스 이전부터 서구보다 철학적 세계관을 빠르고 촘촘하게 구축하였다. 가정의 확대판인 천하체계에서 "타자"는 적대자가 아닌 협력자이자 화합의 대상이였고, 동아시아는 이러한 이념을 통해 "이단 의식"을 배격할 수 있었으며, 동아시아에서는 공리적 충돌 이외, 정신이나 지식의 층면에서 타자를 부정하는 불구대천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중원에서 천자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명분과 호소가 "가정"적 논리에 의해 일어났으므로, 인류 감정의 절대적인 지지를 구할 수 있었으며, 인류의 감정을 뛰어넘는 신앙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현실정치적 부분도 있으니 나중에 글을 한번 쓰려고 한다) 종교 논리가 아닌 가정 논리에 근거한 정치 체제의 등장으로, 동아시아에서는 화합을 해치는 배타적 종교가 빠르게 소멸되거나 불교처럼 그 성격이 개변되었고, 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비합리적 집단주의가 정복한 서구나 아랍보다 개체독립성이 매우 높은 사회를 구축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절대적 주권자"와 대비되는 성격의 "개인"이라는 개념이 발생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동아시아의 가정(household)으로부터 출발하는 천하관념과 높은 개체독립성은, (1) 동아시아의 무신론 인구와 비종교적 특성, (2) 유럽과 대비되는 동아시아의 수많은 유동인구 비율, (3) 동아시아 조공체제 아래 조공국의 높은 정치적 자율성, (4) 전쟁이 났다하면 누구보다도 적국에 분개하고 충성을 강조하지만, 지금까지 모은 현금을 싸짊어들고 가족과 튈 준비를 동시에 하는 누구보다도 현실주의적이고 이기적인 동아시아인들의 모순적 특징을 설명할 수 있다.

유교문명권에서 자라난 사람들의 이러한 특징은 유교 문명권의 교육과 가족관을 탑재하였다면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는 천하관이며 가정속에서의 본능적인 "인간 개체" 에 대한 본능적 깨달음으로부터 출발한다. 가정에서 개인을 인식하고, 가정의 도를 세계에 투영하여, 세계의 선험적 완전성을 긍정한 이후에, 확정된 완전한 세계관념(천하) 아래에서 민족과 국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마치 거북이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바다로 기어가듯, 우리는 누군가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유교 문화가 지배하는 이 사회를 살아가며, 가정이라는 선험 형식속에서 나를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이 교육을 통해 천하인식체계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이 천하관념 속에서 자연스레 세계정세를 구상한다는 것이다.

레짐의 타협과 중국의 근대

그러나, 나는 중국의 부상이 민족국가체계를 천하 체계로 재구성하려는 반동적 움직임으로만 규정될 수 없다고 본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민족국가체계와 개인관은 사회속에 자리를 잡았으며 충분히 유교적 세계관에서 재해석되어 오늘날 우리 사이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몇천년간 자생적으로 동아시아 사람들의 인식속에 존재하던 천하관념은 서구권의 민족국가쳬계를 거울삼아 우리 스스로를 성문화하고, 체계적으로 고찰하는 단계에 이르렀으며, 서구권의 민족국가체계와 근대 체계를 다시한번 돌아보며, 레짐의 타협**(Regime Compromise)을 도모하리라 본다.

그렇기에, 나는 중국이 외교적으로 "순리"와 "도덕명분", "대국과 소국" "인류운명공동체"등을 통한 시도가 이러한 레짐 타협의 일종이라 생각한다. 종국적으로, 중국의 부상으로 서구의 주권국가 체계는 동아시아인들의 천하의 사유 안에서 다시 재해석될 것이며, 개인은 동아시아의 컨텍스트 하에서 실질적인 의미가 "높은 독립성을 지닌 사회적 개체" 식으로 변개될 것임이 분명하다. 예를들어, 국제연합은 민족국가사이의 이익관계를 처리하는 국제연합이 아니라, 천하 공동의 이익을 창조하는 국제 연합으로서 그 본질상의 속성이 변경될 것이다.

이것은 유교권과 서구권중 어느 것이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가 생존을 도모하는 방식과 서구가 생존을 도모하는 방식의 사고차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