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니아

타락여우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12월 20일 (수) 11:46 판
Commonwealth of Moronia
모로니아 연방국
모로니아의 국기.png 모로니아의 국장.png
국기 국장
표어To Lead is To Serve
이끌어 주는 것은 봉사하는 것이다
국가"I Vow to Thee, My Country"
(내 조국이여, 나 그대에게 맹세하노라)
모로니아 지도.png
모로니아는 오스트레일리아 동부에 위치한 군도 국가이다.
수도젠시티
최대 도시앵글리아
정치
영국 여왕엘리자베스 2세
총독
총리
국회의장
대법원장
휴 잭맨
제이콥 알리
제프리 맥와일드
제리 마테파라에
역사
독립영국으로부터 독립
 • 연방 성립1903년 1월 1일
 • 웨스트민스터 헌장1931년 11월 11일
 • 제헌절1984년 6월 17일
지리
면적225,853 km2 (83 위)
내수면 비율4.3%
시간대GMT (UTC+11)
인문
공용어영어
시아시아어(소수 언어로 인정)
인구
2016년 어림12,830,200명
2015년 조사12,799,200명 (74위)
경제
GDP(PPP)2016년 어림값
 • 전체5260억 (38위)
 • 일인당40,997$ (28위)
GDP(명목)2016년 어림값
 • 전체4740억 (24위)
HDI0.910 (10위, 2013년 조사)
통화모로니아 달러 (MOD) (MO$)
기타
ISO 3166-1322, MO, MOR
도메인.mo
국제 전화+610

모로니아 연방국 (영어: Commonwealth of Moronia 커먼웰스 오브 모로니아[*]), 줄여서 모로니아 (영어: Moronia 모로니아[*])는 오세아니아에 속하는 나라로, 모로니아 제도와 기타 속령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동쪽에는 바누아투, 그리고 남동쪽에는 루니온이 있다. 국명의 어원은 원주민어인 'Molosium'(몰로시움, 깨끗한 자연)에서 유래하였다.

모로니아는 영국과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를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과 동군연합을 이루고 있으며 국가원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며,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연방 성립 이후 대의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모로니아는 여덞개의 주와 여러개의 해외영토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시화 비율이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높다.

모로니아 제도는 1770년 영국의 제임스 쿡 선장이 오스트레일리아를 나가던 도중 발견하여 유럽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1788년 1월 26일부터 모로니아로 죄인들을 수송해 정착시키기 시작하면서 이민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 인구는 차츰 늘기 시작했고, 대륙은 계속 탐험되어 다섯개의 자치 식민지가 추가적으로 건설되었다. 1902년 1월 1일, 7개의 식민지가 연합하여 모로니아 연방국을 설립하였다. 모국인 영국과 지리적 영향으로 인해 다른 정체성을 점차 가지게 되었다. 1931년 웨스트민스터 헌장의 적용을 받아 행정적으로 모국과 분리되었으며, 1948년부터 모로니아에 거주하는 대영제국 신민들은 모로니아 국적을 사용하게 되었다. 1984년 모로니아 법이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어 영국 의회의 모로니아 내 입법권이 정지되었으며, 사법권도 최고재판소가 런던의 추밀원에서 모로니아 최고재판소로 옮겨짐으로서 영국과의 남은 법적 종속관계를 단절하여 자주국가가 되었다.

모로니아는 GDP가 세계에서 26위로 높고, 1인당 GDP은 10위이며 삶의 질이 높은 선진국이다. 인간 개발 지수에서 10위를 기록한 것을 비롯해, 모로니아는 삶의 질, 건강, 교육, 경제적 자유, 시민적 자유와 권리의 보호 등 다양한 국가간 비교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모로니아는 G20, OECD, WTO, APEC, AMRUS, 국제 연합, 영국연방, 태평양 제도 포럼, FIFA, AFC에 가입되어 있다. 한편, 2012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의 조사에서는 모로니아가 세계에서 4번째로 살기 좋은 나라로 조사되었다.

정치

모로니아는 입헌군주제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모로니아는 영연방에 가입하여 엘리자베스 2세 여왕폐하를 국가원수로 모시고 있다. 또한 여왕폐하가 임명하는 총독이 여왕폐하의 대리자로 있으며, 국가 관리 등을 한다. 정부수반은 다수당의 대표가 임명되는 총리이다. 모로니아는 전석 비례대표제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의석수는 임기 4개월인 의원 300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주민인 시아시아족, 기타 속령의 경우에는 소수 의견 배려 차원에서 20석을 배정하여 균형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의회의 다수당 지도자, 즉 연방총리가 국가를 실질적으로 통치한다. 여당진영과 야당진영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여 서로 정치적으로 견제를 하고 있으나, 중요 국가적 정책사안에서는 긴밀히 협력한다. 의회의 원내교섭단체 구성 가능 의석수는 20석 이상이며, 여러 정당이 연립하여 구성할 수 있다.

1999년, 폴 키팅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영연방 완전독립 지지자들의 요청으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이 나라의 군주제 폐지 및 체제 전환이 논의되었으나, 과반수(약 54%)가 전환에 반대하였다. "영국과의 우호" 및 (독립시 도입할) 정치체제간 갈등이 그 원인이었다. 그러나 2007년 1월의 여론조사(Newspoll 조사)에서는 45% 대 36%(19%는 무응답)로 공화국 전환에 찬성, 전세가 역전되었다. 1984년에는1984년 모로니아 법이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어 영국 의회의 모로니아 내 입법권이 정지되었으며, 사법권도 최고재판소가 런던의 추밀원에서 독자적 최고법원인 모로니아 대법원으로 이관됨으로서, 기존 영국판례만을 원용하던 사법권은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었다. 그 아래에 각 주도마다 고등법원이 위치해있으며, 지역 주요도시들마다 지방법원이 있다.

자연

오스트레일리아 우측에 위치하고 있는 모로니아는 여러개의 섬들과 속령으로 이루어진 제도 국가이다. 모로니아는 호수가 많고 평야지대가 많은 섬나라이며, 총면적은 모로니아 제도와 그 외 작은 섬들, 속령을 모두 합쳐 225,853㎢로 루니온과 비슷하다. 모로니아는 평야와 호수의 나라로서 그 지형이 매우 아름답다. 모로니아 제도엔 평야지대가 많아 농업이 활발하며, 밀, 쌀, 보리 등이 대표적인 수확물이다. 모로니아 제도엔 호수도 많은데, 산 정상에 있는 호수도 많아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모로니아는 온대 지역에 속하지만 지역에 따라 기후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젠시티는 연중 따뜻하며 눈을 보기 힘들다. 반면에 플레인포트는 겨울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내린다. 기온의 교차는 작으며, 연평균 기온은 북부의 젠시티에선 15℃ , 남부의 카멜턴에선 10 ℃안팎이다. 지구 온난화로 만년설이 녹아내린다. 남부의 경우엔 대체로 온화하나, 두 계절이 있다. 6월부터 9월까지는 선선하고(한랭기), 11월 중순부터 4월 중순까지는 덥다(온난기). 한랭기에는 수온이 섭씨 21도까지 내려가고 평균 기온은 대체적으로 낮에는 섭씨 24도, 밤에는 섭씨 15도 정도이다. 해변에서 여유롭게 보내려는 여행객들은 이 냉기를 피해야 하나, 도보 여행자들에게는 이 시기가 남부를 방문하기에 좋은 때이다.

경제

모로니아는 수정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모로니아는 빈부격차가 적은편이며 지니계수도 24.0로 적은 편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 경제가 저출산 고학력화와 고령화 등의 문제로 악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또한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증시가 폭락하는 피해를 입었었다. 모로니아 정부는 2011년부터 경제자유무역도시를 개발하기 시작하고 여러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는 등의 해결책등을 사용하고 있다. 모로니아는 20세기 초기까지 수출의 70%는 영국 본국을 상대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마다 대영 의존도는 감소하여 1970년대에는 4% 정도에 불과하게 되었다. 수입국에 있어서도 영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수입 총액의 40∼50%를 차지하였으나 1970년대에 23%로 떨어졌고, 최근에는 3% 이하로 그 비중이 크게 낮아졌다. 이에 대신하여 미국, 일본, 독일로부터의 수입이 증가하였고 EU 국가와 캐나다로부터의 수입도 늘었다. 이후로는 아시아태평양 국가와의 교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하여 2009년에는 중국, 일본, 대한민국이 가장 중요한 수출 상대국이기도 하였다.

모로니아를 대표하는 산업은 농목이라고 할 수 있다. 목양은 모로니아의 주력 산업으로서 양은 북부에 40%, 남부에 60%의 비율로 분포한다. 양모의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농산물을 중심으로 하는 1차산품이 수출의 55%를 차지한다. 그외 육류·유제품은 양모에 버금가는 수출품이다. 낙농지역은 남부에 집중하며, 양모에 비하여 훨씬 집약적으로 경영된다. 북부의 동쪽 및 남쪽 연안에는 혼합농업 지역이 발달하여, 목초 등과 윤작을 하면서 곡류의 생산이 활발하다. 또한 제조업과 IT도 발전해 모로니아에선 품질이 좋은 전자제품이 생산된다. 또한 모로니아제 의약품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모로니아의 쉬운 기업 설립 절차로 인해 모로니아에서는 다른 국가보다 기업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며 이 기업들이 모로니아가 무세금, 높은 사회 복지를 국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하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모로니아는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을 꾀함으로서 다른 국가가 좀 더 용이하게 모로니아산 물건들을 수입해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모로니아 정부는 2011년부터 모로니아의 공업이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각 시 중에 발달한 시를 뽑아 '경제자유무역도시'로 개발하는 정책을 시작하였으며 경제자유무역도시의 이점인 무관세와 자유로운 상품판매로 모로니아의 국민들이 좀 더 원활하게 질이 좋고 값 싼 공산품들을 얻어 낼 수 있게 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공업 발전과 생산력 증대, 그리고 나아가 모로니아의 밝은 공업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문구로 경제자유무역도시 정책을 펼쳐 나가고 있다. 정부에서도 발벗고 나서서 우리나라의 경제자유무역도시를 홍보하여 외국의 공장 유치를 시도하고 있다.

사회

모로니아 인종은 영국 및 아일랜드계(67%)·기타 유럽계(19%)·아시아계(12%)·원주민 및 기타(2%) 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로니아는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된 복지사회이다. 사회보장제도는 고령자·신체장애자 등에 대한 연금과, 실업자·병약자·자녀가 있는 가정에 대한 수당 등이 있다. 그 밖에 여러 복지단체에 대해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또 주택정책이 잘 되어 있어 2008년 현재 모로니아의 주택 보급률은 70%를 조금 웃돌아 세대의 약 25%의 정도는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교외주택의 정원에는 수영장이 사파이어처럼 반짝이고 있고, 요트들이 항만을 가로질러 미끄러져가고 있으며, 도로는 자동차로 붐빈다. 영국계 주민이 많고, 영연방의 하나인 탓에 생활양식이 영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모로니아는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데, 모로니아 영어는 미국 영어나 영국 영어와 구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2001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80%는 가정에서 영어만을 사용하고 있다. 이민 1세대나 2세대의 상당수는 두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베트남계 이주민은 베트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영어 구사자도 있다. 일례로 동남아시아에 온 주민은 베트남에서 온 주민처럼 고향 언어를 사용하는 점이랑 영어를 같이 구사하는 점도 있는 편이다. 처음 유럽인이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했을 때,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약 100에서 200개의 토착 언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약 50개 정도만 살아남아 있으며, 그중에 20 개는 사멸 위기에 놓여 있다.

모로니아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다수이다. 영연방 국가인 것과 영국에서 기독교가 들어온 이래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현재 모로니아에 국교는 없으나 기독교가 사실상의 국교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

모로니아는 수백 개의 국립공원만큼이나 다채로운 축제와 행사가 벌어지는데 동성연애자들을 위한 마디그라 축제, 패션축제, 앵글리아 예술축제, 젠시티 꽃축제, 포도축제를 비롯하여 요트경기·자동차 경주·경마경기 등이 사랑을 받고 있다. 유명한 축제로는 매년 2월에 개최되는 드로우캔디 축제가 있다. 모로니아를 개척하던 죄수들이 심심함과 배고픔을 다루기 위해서 서로에게 사탕을 던져주던 놀이가 현재까지 내려온것으로, 현재는 국민들이 젠시티에 와서 서로에게 사탕을 던져주며 모은 사탕을 다같이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참고로 축제 후 정리정돈은 잘되고 있는 편이다. 원주민인 시아시아족들의 문화도 현재 보존되고 있다. 시아시아족은 모로니아의 원주민으로써, 폴리네시아계이다. 그들은 현재까지 혈통을 이어오고 있으며 참신한 전통문화풍습이 큰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그들은 조각 · 직물 · 음악 · 무용 · 종교 등에서 독특한 문화를 발달시켜 왔는데, 무용,음악,미술등의 예술부문에는 다른 폴리네시아계 부족들보다 뛰어나다. 시아시아족의 가면춤, 달의 노래등은 시아시아족을 대표한다.

모로니아의 스포츠는 매우 발달했으며, 축구, 야구, 크리켓 등이 대표적인 스포츠이다. 축구의 경우 1977년 정식 리그가 출범하였으며 리그 이름은 모로니아 국왕컵 축구리그(M리그)이다. 모로니아 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으며 최근 우승팀은 AS 앵글리아(15/16컵 기준)이다. 월드컵에서도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1982년부터 꾸준히 월드컵에 진출해오고 있다. 야구의 경우 1980년 실업리그를 운영하는 모로니아야구협회(MBF)가 설립되었으며 기업에서 후원하는 실업야구팀으로 구성된 실업리그에는 초창기엔 4개 구단만 참가하였으나 2개 구단이 더 참가해 6개 구단이 리그를 진행하였다. 1995년 실업야구가 정식 야구리그로 승인받고, 프로야구로 격상된다. 이에 따라 1996년 10월 프로야구협회가 설립되었다. 현재는 8개의 구단이 참가중이며 북군과 남군으로 나누어 경기를 치루고 있다.

문예로 모로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아그네스 카라리나(1933~1999)가 있다. 모로니아 최고 예술가로, 화가와, 소설가를 함께 하였다. 또한 1978년 나의 집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여받았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나의 집(소설), 수(소설), 달의 울림(그림), 예술은 하늘에(그림) 등이 있다. 모로니아는 인터넷이 최근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터넷 사이트로는 호주, 루니온와 공동으로 홈페이지를 사용하는 야후!7과 토종 검색엔진인 하이드가 있다. 또한 대한민국과 함께 IT가 발달하여 IT강국이라고 불리며, 현재 인터넷 속도는 대한민국을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SNS도 활발하여 SNS를 통한 정치 참여나 사회 문제 제기도 활발히 이루어진다.

외교

모로니아는 전통적인 외교 강국으로, 영연방 소속국으로서 호주, 루니온, 영국 등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다. 미국과도 중요한 파트너이며 비NATO(非-NATO), OECD, 오세아니아 경제 공동기구의 회원국이다.

모로니아는 1903년 독립한 이후 오세아니아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는 데에도 중점적으로 노력해왔다. 오스트레일리아와는 가장 먼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으며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레일리아·모로니아군 3만여 명이 터키의 갈리폴리 반도에 상륙해 연합군과 함께 싸웠는데, 8천 명이 전사하고 18,000명이 부상당하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루니온의 리오스트리아와는 1909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는데, 리오스트리아의 아니크 세이시 황제가 패도정치로 급변하자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와 함께 강력하게 규탄해왔다. 리오스트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모로니아는 '모로니아-리오스트리아 상호방위조약' 을 철회했고 신생 정부 리아트리스에게 지지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모로니아와 루니온의 본토 일부가 일본군에 점령당하자 오스트레일리아의 지원군 파병으로 연합군이 결성되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모로니아, 루니온은 매년 4월 25일 'AMRAC Day(Australia-Moronia-Runion Army Corps)' 를 공휴일로 지정하고 전쟁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행사를 연다.

1960년대 모로니아는 자본주의적 풍요로 색깔론과 같은 극단적 반공성향이 집권당에 퍼져, 미국의 지지하에 리아트리스를 강력히 차단했고 많은 제재를 가했다. 과거에는 리오스트리아를 제재하고 신생독립정부 리아트리스를 지지했으나, 그 당시에는 세계대전과 추축국 세력만이 적대와 경계의 대상이었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확산에 경계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따라서 모로니아 정부의 대외행동도 정반대로 변했다. 사회주의 국가가 된 리아트리스가 자유주의 리오스트리아를 분리시키자 리오스트리아를 가장 빠르게 정식 정부로 인정했다. 1972년 리아트리스 해군함정이 북섬에 출현했을 때는 군함을 파견했다가 그해 2월 21일 리처드 닉슨 미국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자 이틀만에 복귀하였다.

이외에도 모로니아는 1950년대부터 남태평양의 여러 국가들에서 내전이 발생할 때마다 중재역할을 도맡아 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영국령 식민지 시절 행정구역의 범위로 시비가 붙은 '영토확장론' 이 있을 때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솔로몬 등 주변 국가들과 싸늘한 관계가 생기기도 했다.

대한민국과의 관계

모로니아와 한국과의 관계는 좋은 관계이다. 역대 대한민국의 정권은 집권 기간에 최소 1회는 모로니아를 방문하였다. 한국 전쟁 6.25때 호주에 이어 두 번째로 참전을 한 국가이다. 무역 또한 아주 활발하다. 한국의 무역 순위의 4위를 차지한다. 또한 모로니아의 무역 순위에서 한국이 5위를 차지한다. 2011년도에 한국과 모로니아는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과 모로니아의 하늘길과 바닷길을 만들어냈다.

UVS와의 관계

모로니아는 2017년 모로니아 선언을 통해 합법적인 유일한 UVS계 국가들의 후계자로 인정받았다.

국방

모로니아군은 오세아니아에서 호주군 다음가는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총 병력은 50,500명이며, 모병제로 병력을 충원하고 있다. 군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좋아 군으로 입대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군사력에 대한 투자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소수정예로 양성되고 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의 침략을 받은 경험이 있어 전진방어 개념으로 공군력과 해군력에 투자하고 있다. 모로니아는 영국이 참전하거나 관련된 전쟁에는 전통적으로 거의 대부분 참여하곤 했다.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모로니아를 공격한 것이 모로니아 건국사상 첫 외국 군대의 공격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연방의 일원으로 나치 독일에 대항하여 호주와 루니온과 함께 주력 부대를 아프리카 전선에 파병하여 전투를 수행하였고 또한 일본군의 공격에 대항하였는데 주력 정규여단들을 이미 아프리카에 파병하였기에 나중에 발발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의 남진을 시간제 예비부대에 해당하는 민병대를 투입하여 일본의 침공을 저지하였다. 이들 민병부대에 대해 모로니아 정부마저도 전투력에 우려를 표했지만 같이 싸운 미군이나 나중에 돌아온 호주 정규부대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는 전투력을 보이면서 훌륭히 싸우기도 하였다. 현재 모로니아군은 국방개혁 2030을 토대로 정예화된 군사를 양성할 계획이며 해군과 공군에 투자하고 있으며 육군은 본토를 방위하는 개념으로 육성하고 있다. 현재 모로니아에는 주모로니아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며 인원은 약 2,000명(2017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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