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력 강화와 영토 확장을 위해 노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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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연쇄효과(前方連鎖效果)를 보이며 15 ~ 16세기에 발전한 산업은 국부의 증대로 이어졌다. 이는 국가가 수취할 몫이 커졌다는 뜻이었고, 즉 세입이 따라 증가했다. 조정은 국가 재정에 있어서 여유를 확보하게 되었다. 또, 명이 쇠퇴하여 조공을 생각하지 않게 된 바, 광산을 개발하여 금·은·구리·철·유황 등 자원을 채굴했다.

한편, 국초(國初)부터 여진은 북변에서 거듭 소란을 일으켜왔는데, 명이 16세기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쇠퇴하면서 주변을 통제할 수 없기에 이르자 그 침노해오는 정도가 차츰 커졌다. 또, 본래 명의 무관으로 명 말기에 심요(審遼) 지방을 세력화하여 군벌을 세운 이홍경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우리나라를 자주 겁박하고 침략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군사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여진과 심요 군벌 모두 기마병을 주축으로 삼아 쳐들어오므로, 보병을 데려다 싸우면 반드시 질 수밖에 없었다. 기병을 양성하고자 했지만 지리상의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이에 조정은 화약 병기의 개발과 보급을 통해 군대를 포병 중심으로 편제하여 화력전으로 맞서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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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조에는 최해산, 장영실 등을 동원하여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자 하여 화기 제조와 실용적인 과학 기술 탐구에 큰 성과를 얻었다. 이러한 과학기술 중시 풍토는 이후에도 이어져 우리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화약 병기를 중심으로 한 교리는 천자총통 등 여러 화포들, 대장군전 같은 무쇠 화살을 탄생시켰다.

근세 전기에는 영토 확장을 위해 남·북방으로 진출하고자 했다. 세종대에는 최윤덕과 김종서를 북쪽 강가에 보내 여진을 토멸하고 4군과 6진을 설치했고, 삼남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를 개척하게 했다. 이후 명이 쇠퇴하고 우리나라의 국력은 날로 강성해지는 형국에서, 조정은 여진들에게 상국(上國) 대접을 받으며 그들을 복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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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순한 여진족에게는 관직을 주거나 토지와 주택을 마련해 주어 아국인(我國人)으로 동화시켰다. 북방 지역에 무역소를 열어 여진족이 가죽이나 말 등 특산물로 식량, 농기구, 의류 등을 사 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니탕개의 난(1583) 등 여진족이 국경 마을을 약탈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무력을 동원하여 본거지를 토벌하기도 했다.

또 제주도에는 완전히 중앙 권력이 미치도록 하고, 영주와 벽랑을 비롯한 남방도서들을 경략하고 백성들을 보내 개척하게 했다. 유구국과 형제지맹(兄弟之盟)을 맺어 아우의 나라로 만들고, 대마도를 정벌한 뒤 경상남도에 편입했다.

명의 쇠망으로 인해 중원에 통일 왕조가 부재하게 된 점과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국력이 16세기에 들어 주변 여러 나라를 제압하는 등 맹위를 떨치게 된 점으로 인해 외왕내제 체제가 조금 더 과감해졌으며, 공고화되었다. 또한 우리 고유의 천하관이 기세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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