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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초의 혼란을 지나 유교적 통치 체제를 확립해가며 우리나라는 정치적 안정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정은 농업을 중시하여 이앙법의 시행을 통해 농업을 진흥하고자 했다. 이앙법은 수전(水田)을 필요로 했고, 이에 따라 농업 용수의 확보가 농업 생산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게 되어 조정은 수리시설을 증대하는 정책을 전개했다.
세종 3년(1421)에 제언사(堤堰司)를 설치하고,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제정한 최초의 제언(저수지) 규정인 '제언사목(堤堰事目)'을 발표하여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와 지방관이 제언을 감독함으로써 수리시설을 정비해 갔다. 성종조에는 '제언절목(堤堰節目)'을 발표하고 '구농서윤음(求農書綸音)'을 발표하여 수리시설을 통한 농업진흥책을 추진했다.
또한 저수지와 보의 축조 이외에도 수문·수갑(水閘)의 설치, 수차(水車)의 도입에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양전(量田) 사업과 더불어 황무지를 개간하는 자에게 혜택을 베풀었으며, 우리 풍토에 맞게 쓰인 <농사직설>을 배포하면서 이앙법을 장려하고자 했다. 이앙법은 이모작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중농(重農) 정책의 결과로 농업 생산력이 크게 증가했다.
생산력이 증대되자 인구 부양력이 향상되어 자연히 인구가 증가하고 인구 밀도가 상승했다. 또, 잉여 생산물이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물물교환이 성행하게 되었다. 상업작물은 기본적으로 면세되는 경우가 많았고, 상당한 수요가 있었다. 따라서 상업작물의 재배가 점증하고, 그 종류가 다양해졌다. 상업작물의 전문화가 나타났다.
상업작물의 등장과 더불어 전문 중개상이 출현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수운교통의 발달과 도로망의 건설·체계화였다. 물자 유통을 위해 필요한 선박 산업이 활기를 띄었고, 해안가와 강가 주변에는 선원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번창했다. 도로를 정비하고 역참제를 개량하여 전국적으로 교통이 편리해지게 되었다.
명이 쇠퇴하여 지방과 번국에 대한 통제력을 잃자, 조정은 그간 조공의 요구를 받을까 두려워 채굴하지 못했던 광산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조정은 광산을 독점하여 화폐 주조권을 장악하고, 중종대에는 은자(銀子)와 상평통보를 유통시켰다. 곧이어 상거래에 어음이 출현했는데, 사기와 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고자 조정에서는 보초와 같은 지폐를 발행했다.
고액권 화폐인 지폐가 발행되자 상인들은 더욱 전문화·되었다. 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행과 작으로 대표되는 동업이 나타났으며, 주식회사의 초기 형태인 익명조합이 출현하고, 대부업도 성행했다. 이에 따라 규모의 경제가 쉽게 창출되었다.
다양한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산업이 발전하게 된다. 비단·칠기·도자기·화문석 등 전통 산업은 기술적 완성에서 최고 수준에 올랐으며, 책·지폐·문서·포장지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종이 생산이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철의 생산도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다.
그리고 상·공업의 성장으로 도시가 확장·발달하게 된다. 여러 도시에서 인구가 급증했기 때문에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성곽 도시에서는 반 이상의 인구가 성 밖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서울은 30만 호의 인구를 기록했고, 거리마다 복층가옥이 즐비했으며, 시장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개방되어 불야성(不夜城)을 이루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