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

개요

군주 는 세습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최고 지위에 있는 사람이다.

상세

일반적으로 ''이라 부르지만, 이러면 황제이거나 공국대공인 경우, 그리고 말레이시아 각 주의 술탄[1]이나 아랍에미리트에미르 등 세계 여러 문화권의 일원적이지 않은 군주 개념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여 본 문서로 이관하였다.

궁전에서 살며 최고의 부와 권력을 누리는 정점의 지위란 것이 일반적인 이미지. 예부터 수많은 권력자들과 야심가들의 궁극적인 목표였으며, 이 자리에 오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무한한 도취감과 희열을 안겨주는 그야말로 마성의 매력을 가진 직책이다. 주로 왕관, 옥좌, 옥새 등으로 상징된다.

군주라는 것 자체가 특정 무리들로 이루어진 '국가'라는 집단에서 이 국가를 이끌어 나가며 구성원인 국민들을 다스리고 국가의 보호하에 편안하게 살도록 노력하는 직업이며 국가의 NO.1이며 국가의 부와 힘의 상징이다. 그래서 군주는 해당국가에서 최고로 화려하게 지어진 건축물인 궁궐에서 살며 각종 보석으로 치장한 악세사리와 옷, 수입 등 그 어떤 것도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가장 화려하고, 최고가 아닌 게 없다.[2] 군주의 권력이 강할때는 백성을 포함한 국가의 모든 것이 군주 개인의 것으로 여겨졌다.

군주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존재'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강력한 왕권을 구축한 경우는 드물었다. 왜냐하면 군주는 한명인데 신하는 여럿이기 때문이다. 국가 수뇌부에서 다수를 차지한 관료, 귀족들이 연계해서 군주를 견제하면 왕권은 놀라울 정도로 무력해진다. 이를 조금이라도 방지하기 위해 친위세력을 양성하고 종교, 학문 등의 힘을 빌려 시스템을 강화하지만 결국 머릿수 앞에서는 답이 없다. 조금만 삐끗하면 신하들의 견제를 받아 권위가 약화되고 심할 경우 허수아비로 전락하거나 아예 퇴위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권력의 중추에 있는 자리이니만큼 국가 정책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 왕권이 아무리 약해져도 엄청난 권신이 등장하여 아예 막장이 되지 않는 한 신하 한명 한명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힘을 갖는다. 또한 군주는 하나이므로 그나마 신하의 권력이 강할 때와는 달리 여러 이익집단의 사정이라든가에 덜 휘말리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추진이 가능한 힘이 있으므로 신하의 권력 위주일 때보다 무언가가 많이 추진될 수 있다. 그리고 약해져도 상징적인 힘이라도 강한 경우가 있는데 조선만 해도 한창 막장테크를 타고 있던 세도정치 말기였던 철종 시기에도 군주가 제대로 폭발하자 안동 김씨의 수장이 벌벌 떨어야 했다. 심지어 수백년간 실권 없는 상징적인 존재였던 일본의 천황조차도 막부 말기에 그동안 안하던 정치적인 발언을 조금 하자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바로 백성들의 지지. 전근대 사회에서는 귀족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위에 있는 군주와 힘싸움을 벌이고, 한편으로는 바로 아래에 있는 백성들을 억압하는 구조이므로,[3] 상하관계이기는 하나 직접적인 착취 관계가 아닌 군주와 백성들은 서로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관계이다. 어차피 신하의 권력과는 어느 한 쪽이 강해지면 다른 쪽이 약해지는 구조로 죽을 때까지 서로를 견제해야 하는데 백성들의 지지가 있으면 바로 이 신하의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진다. 따라서 관료들의 장막을 뚫고 민생을 어루만져줄 능력이 되는 군주는 신하들과의 파워 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그리고 신하의 권력이라는 게 여러 신하들에게 나뉘어져 있다 보니 오히려 신하들이 적절히 분열되면 서로 군주에 대한 충성경쟁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애초에 서로가 정적이고 나눠먹기 힘든 이권까지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군주가 어지간히 막장이 아닌 이상 신하들이 죄다 단결해서 군주에 대항하는 구도 자체가 보기 힘들다. 바로 이런 케이스가 조선의 선조였다. 다만 신하들이 위아더월드로 일단 왕권부터 깎고보자는 식으로 가면 답이 없어지긴 마찬가지다.

서양의 역사에서는 강력한 힘을 가지던 로마 제국이 무너지고 난 뒤 대혼란을 겪고 사방에 깔린 토호들 가운데 힘이 강한 자가 조금씩 조금씩 힘을 길러 주도권을 잡으면서 발전해 나갔다. 이를 바탕으로 비교적 강한 왕권이 구축되었던 16~18세기를 절대왕정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시기의 군주들은 중상주의, 상비군, 왕권신수설을 무기로 왕권 강화에 성공하여 중앙집권 시스템을 만들어 근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고 그것을 마련한 국가들은 대개 서양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사의 경우 왕권이 강했던 시기에 국가발전이 많이 이루어진 편이고 왕권이 약해졌을 때에는 각 이익집단들의 아귀다툼으로 약해졌던 시기가 있다는 인식이 있다. 많은 예를 들 것도 없이 500년대 중반의 고구려나 조선의 세도정치라는 크고 훌륭한 예가 있다. 추군과 세군 같은 대귀족들의 내전에서 제목소리 안내고 틀어박히거나 어느 권세가문에게 실권을 빼앗겼을 때 고구려와 조선이 어떻게 되었는지 역사나 그것을 가르친다. 대체적으로는 작은 집단 여러 개보단 큰 집단 하나가 더 강력하고 발전의 여지도 크며 위기 시 대응능력이 좋을 수 밖에 없으며(세계사에서도 마찬가지) 군주가 약해지면 중앙권력이 약해지고 그러면 여러 집단이 자기 이익만을 우선시하는 것을 제지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큰 집단 하나 때보다는 당장 가용한 예산/인력/기타 등이 적어져서 당장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내놓는 것은 쇠퇴해진다. 작은 집단 여러 개가 내놓는 활동도 큰 집단 하나보다는 못한 경우가 많고 번영하더라도 그것은 특정분야 특화 등 한계가 있다. 손잡고 협업하는 것은 말은 몰라도 과거의 예에서 드러나듯이 쉬운 것이 아니다. 당장 현대의 무기개발도 미국] 러시아, 그리고 최근에 들어온 중국을 제외한다면 인력/자금/기술,규모의 경제 면에서 한계에 달해 협업을 하려고 하지만 서로의 이익 때문에 파토가 나거나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근세 유럽의 경우 각각의 잘나가는 국가들은 응집력이 있는 절대왕정이었고 이러한 정교한 제도가 유럽의 발전을 이끌었으며 그러지 못한 나라들은 폴란드처럼 갈라져서 사라졌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부분의 군주들이 얼굴마담 정도로 위상이 추락했다. 이 분야의 끝판왕은 사유재산조차 가질 권리가 없는 일본의 천황. 다만 저건 유럽이나 동아시아 쪽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도 아랍 쪽에는 군주가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군주제가 존재한다.

놀고 먹는 것만 같아서 부러워하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놀고 먹기만 하다 제 명줄에 못 간 군주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일종의 예외 상황, 그러니까 군주가 또라이라서 그런 것이다.

온갖 교육, 결제, 면담 등등은 기본이고 국가의 일을 대부분 혼자 관리, 책임지는 자리라 업무량이 장난이 아니며, 당연히 과로사한 군주의 숫자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더군다나 윗자리에서 온갖 막장 상황을 다 겪다보니 정신이 피폐해지고 화병으로 죽어나가는 군주도 수두룩하다. 뭐 절대적인 왕권을 누리는 국가라면 이론상으로는 놀고 먹는 것도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일국의 수장이라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라지게 되니, 그러기도 쉽지 않다. 즉, 가장 높은 자리인만큼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아주 막중하고 무겁다.

애초에 군주라는 자리 자체가 권력의 중점인 만큼 권력을 노리고 다가오는 자들도 상당하며, 그런 상황까지 다 예상하고 막는 것도 군주의 몫이다. 가족들끼리도 권력에 눈이 멀어 서로 권력을 잡기 위해 암투극을 벌이는 왕자의 난 같은 상황도 드물지 않았으며, 그런 상황을 다 겪지 않고 살다 간 군주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부과되는 책임도 상당히 무거운데다 권력의 중추인만큼 자유롭게 살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인 만큼 나라업무는 기본이요, 작은 행동 하나가 평판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만큼 몸가짐을 단정히 하는 것도 필수였다. 때문에 군주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며 자유롭게 살다가 가는 꿈의 직업만은 절대 아니었으며, 실제로는 온갖 책임을 맡고 그에 따라 자유보다는 책임을 더 요구받으면서 사는 것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군주는 문화권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문관의 업무와 무관의 업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 신분이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을 진두지휘해야 하기도 한다. 한국사에서는 전란이 잦았던 삼국시대의 군주들은 친정의 사례가 많았으며, 세계사적으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군주로서 전쟁터를 누빈 대표적인 인물. 때문에 군주는 의복도 여러 가지다. 평상복과 무도회에 참여하기 위한 파티복에 심지어는 전술한 바와 같이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터를 누벼야 하기 때문에 갑옷도 존재한다. 때문에 군주는 문무를 겸비한 능력이 요구된다. 다만 조선시대처럼 군주가 친정하지 않는[4] 경우[5]도 있다.

자신의 선택 하나에 수많은 백성의 운명이 왔다갔다하므로 책임감과 의무감, 높은 도덕성은 군주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덕목이다. 물론 책임감과 의무감, 도덕성 등 규범적인 측면에서의 덕목만 갖추었다고 해서 국정을 잘 이끌어 갈 수는 없기에, 카리스마나 재력, 인맥 등의 기량도 군주로서 요구되는 덕목이다.

참고로 '20세기는 군주들의 무덤'이라는 말도 있다. 20세기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대한제국,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 제정 러시아, 청나라, 이집트 왕국 등 웬만한 국가의 왕조들이 말 그대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 1910년대에는[6] 제1차 세계 대전에 앞서 대한제국이 경술국치에 의해 무너지고, 청나라가 신해혁명으로 무너졌고 1차 대전이 끝나면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제정 러시아, 오스만 제국의 황제들이 죄다 퇴출당했고[7][8] 몽골은 운게른의 깽판 이후에 복드 칸이 죽자마자 군주정이 끝장나고 공화정으로 이양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나서 이탈리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 루마니아 왕국, 유고슬라비아 왕국[9] 등 동부 유럽의 왕들이 집단 퇴장당했다. 1950~60년대를 지나면서는 이집트 왕국, 이라크 왕국, 리비아 왕국을 비롯한 중동계 왕들이 쿠데타로 줄줄이 쫓겨났고 1973년에 아프가니스탄 왕국, 1974년에 에티오피아 제국, 1979년에 이란 제국에서 군주정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전세계의 군주정들은 그야말로 도미노처럼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아프리카, 중동의 왕조, 동아시아의 왕조, 중동부 유럽, 아메리카의 왕조들은 상당수가 전멸해버렸다.

지고한 신분이라는 특징 때문인지 서브컬처 등에서는 역으로 신분 차이를 통한 스토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예, 거지, 떠돌이, 부랑자 같은 최하위 신분과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예가 리니지의 반왕 켄 라우헬. 천한 노예로 태어나 왕으로 죽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캐릭터이며, 농노에서 왕으로 순식간에 신분 업그레이드를 했기 때문인지 작중에서 표현되는 왕위에 대한 집착과 권력욕은 실로 무서울 정도이며, 그것 자체가 이 인물의 매력으로 여겨진다.

군주제 폐지

국가

가장 마지막에 군주제가 폐지된 때만 적는다.

  • 핀란드 1919년 독일의 지원으로 잠시 왕정이 세워졌으나 1차 세계대전에서 동맹국이 패배하면서 곧 붕괴되었다.
  • 튀니지 1957년 무함마드 8세가 사망함에 따라 왕통이 단절되어 공화정으로 이양.
  • 이라크 1958년 쿠데타로 파이살 2세 피살.
  • 르완다 1959년 내전 발발로 키겔리 5세가 망명함에 따라 사실상 군주정 붕괴, 1961년에 공화정 선포.
  • 예멘 1962년 쿠데타로 무함마드 알 바드르 국왕 퇴위.[17]
  • 싱가포르 1965년 독립과 함께 자연스럽게 폐지.[19]
  • 부룬디 1966년 군주정 폐지로 므왐부차 4세 퇴위.
  • 아프가니스탄 1973년 무함마드 다우드 칸의 쿠데타로 자히르 샤 국왕 퇴위.
  • 라오스 1975년 공산주의 혁명으로 싸왕왓타나 국왕 퇴위.
  • 중앙아프리카 1979년 장 베델 보카사가 프랑스 공수부대에게 체포됨에 따라 군주정 폐지.
  • 사모아 2007년 사모아의 마지막 왕이 사망한 이후 왕실 혈통이 단절되면서 군주정 폐지.[20]

마이크로네이션

가상국가

군주의 귀환

군주 없는 군주국

군주국 없는 군주


  1. 말레이시아는 대부분 주에 따로 술탄이 있고(페낭이나 말라카처럼 지금은 없는 주도 있다) 나라 전체의 왕위가 따로 있다.
  2. 프랑스의 절대왕정이 절정에 달했을 시기 프랑스 1년 국가 예산의 6%를 왕실이 썼을 정도였다. 현재 한국의 예산이 500조 정도 되는데 왕실 유지 및 사치에 사용하는 돈으로 매년 국가 예산 30조를 사용한 셈이다.
  3.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신분제는 백성과 아랫사람에게 자상하게 대하고 보살필 수는 있어도 신분의 구분은 철저히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4. 물론 즉위 이전의 인물들, 특히 이성계는 제외.
  5. 조선왕조 역사에서 개국 초 벌어진 조사의의 난 진압을 위해 태종 이방원이 친정한 딱 한 번의 사례가 있을 뿐, 그 이후 조선 국왕이 친정한 사례는 없다.
  6. 유독 이 시기에는 황제들이 많이 퇴출당한 시기다.
  7.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공화정으로 바뀌었으나 스페인은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왕정을 복고시켰다.
  8. 다만 실제로 후안 카를로스 1세프란시스코 프랑코에야 스페인의 국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다.
  9. 다만,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구성국 중 하나였던 몬테네그로는 현재 완전히 왕정복고 된 것은 아니지만 2011년부터 대통령과 국왕이 권한을 나눠가지는 법이 통과되었다.
  10. 1919년 고종 태황제 사후 복벽운동이 힘을 잃고, 임시정부가 헌장에서 민주공화제를 최초로 명시하고, 1948년 제헌 헌법에서 이를 못박는다.
  11. 독립국가로써의 군주제 폐지는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에 합병된 1910년이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천황가이왕가가 존재했으므로 넓게 보면 한반도의 군주정이 폐지된 때는 천황가를 기준으로 1945년, 이왕가를 기준으로 1947년이다.
  12. 마카오와 홍콩은 각각 1910년(포르투갈 10월 5일 혁명), 1997년(홍콩 반환)으로 군주제가 폐지된다.
  13. 크로아티아는 별도의 국왕이 세워졌으나 이도 2년후 국왕이였던 토미슬라브 2세가 국왕직을 포기하면서 퇴위.
  14. 1937년에 새 헌법을 제정하고 동시에 영연방을 탈퇴했으나 이 때에는 국가원수아일랜드 대통령과 아일랜드(영국) 국왕을 모두 국가원수로 두었으며 둘의 역할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규정되어 있어 충돌할 여지는 없었다. 반쪽짜리 왕국 혹은 반쪽짜리 공화국이었던 셈. 1948년에 아일랜드 공화국법을 제정해 영국 국왕의 아일랜드 국가원수 자격을 박탈했고, 1949년에는 영국이 영연방 탈퇴를 인정해 완전한 공화국이 된다.
  15. 하지만 헝가리는 군주정을 수립한 이후 한 번도 왕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실권자였던 호르티 미클로시섭정이었지 왕은 아니었다. 이는 즉, 군주정인데 왕이 있었던 적이 없는 당시에나 지금이나 상당히 괴이한 나라였다.
  16. 하지만 군주정 자체는 파루크 1세의 아들이 허수아비 국왕으로 즉위함에 따라 1953년까지 존속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철폐되었다.
  17. 하지만 1970년까지 바드르 국왕은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아 내전을 수행했으나 1970년 살레왕당파를 완전히 물리침에 따라 예멘은 공화국이 된다. 한편 이집트는 살레의 공화국을 지원했고 덕분에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뒷통수를 맞아 처참하게 패배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18. 이후 탕가니카와 통합
  19. 1963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의 일부인 상태로 독립하면서 말레이시아의 군주인 양 디페르투안 아공을 싱가포르의 군주로 모셨지만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축출되면서 군주정이 자연스레 폐지되었다.
  20. 취소선이 쳐져있는 이유는 사모아를 입헌군주국으로 볼지 공화국으로 볼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처럼 의회가 선출하고, 5년 임기이긴 한데 부를 때 전하(your highness)라고 부르고, 특별 계급 내에서만 선출되며,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 직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공화국으로 보는 견해와 입헌군주국으로 보는 견해가 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