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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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계문
南契文
남계문.jpg
양주후 인장.png
대한국양주후
재위 1945년 11월 9일 ~ 1957년 12월 18일
양주후 가문의 당주
재위 1903년 5월 17일 ~ 1957년 12월 18일
전임자 양주백 남효숙
후임자 양주후 남명원
신상정보
출생일 1873년 8월 8일
출생지 대한국 양주군
사망일 1957년 12월 18일
사망지 대한국 경성부
가문 양주후 가문
의령 남씨
부친 양주백 남효숙
모친 양주현부인 전주 이씨
배우자 양주군부인 반남 박씨
자녀 양주후 남명원
내소백 남진원
종교 성리학
군사 경력
복무 대한국 국군
소속 대한국 국군
최종계급 육군 대장
지휘 대한국 국군
참전 제2차 한·순전쟁
동아시아 전쟁

남계문(南契文, 1873년 8월 8일 ~ 1957년 12월 18일)은 대한국의 육군 통어사를 지낸 무관이자 귀족(양주후)이다.

생애

1897년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보병 참위로 임관되었고, 1899년 육군 보병 부위로 진급하였다.

1902년 육군 보병 대위가 되어 근위 보병 제3부(部; 연대에 해당)장이 되었다. 1906년 프랑스에 주재 무관으로 급파되었고, 1907년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참령으로 승진하였다. 1908년에는 다시 해외로 파견돼 독일에서 주재하였다. 남계문은 1912년 한국으로 돌아갔고, 1913년 부령으로 승진하였다.

그는 군사 행정가이자 야전 사령관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고, 빠르게 승진해 1920년에는 서로군 헌병대 절도사, 1922년에는 서로군 도원수가 되었다.

1920년 개봉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와의 타협에 반대하고, 한·순 전쟁의 확대를 유도하였다. 1924년 병부 시랑이 되었으며, 1941년에는 제2차 김구 내각에서 육군 통어사에 임명돼 제3차 김구 내각에서도 연임하였다. 남계문은 산해관에서 오월군을 크게 무찌르는 등 동아시아 전쟁에서 활약하였다.

녹훈·봉작

1903년 아버지 양주백 남효숙의 작위를 이어 받았다. 1945년 동아시아 전쟁에서 육군 통어사로서 분전한 공로로 단무공신 1등관에 녹훈되었으며, 백작에서 후작으로 진봉되었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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