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지론

신의 존재에 대한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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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있다
유신론
여럿이다 여럿 중 하나다 오직 하나다
다신론 일신론
단일신론 유일신론
이성으로 파악한다 만물이 신이다 세상은 신의 일부다.
이신론 범신론 범재신론
범이신론
있으나 바뀐다 있으나 악하다 있으나 증오한다
교체신론 악신론 혐신론
있으나 가변적이다 우주에 영향을 주고 받는다 없음이 신이다
열린 유신론 과정신학 다석 류영모의 신론
미래에 있다 신을 경험하는 것 부터 중요하다
위르겐 몰트만의 신론 존재 없는 신
회의
알 수 없다 관심 없다 의심된다
불가지론 무관심적 신론 회의주의
부정
없다 있어서는 안된다 지금은 없다
무신론 반신론 교체신론
무의미
일관적인 정의가 없다 개념 자체가 없다 신은 신일 뿐, 사유도 말할 수도 없다
이그노스티시즘 신학적 비인지주의 무/신론
사건
전지전능하지 않다 부정한 후에 받아들여야 한다
약신론 재신론

개요

不可知論 / Agnosticism

일반적으로 어떤 명제에 대해 알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가리킨다. 보통 불가지론은 종교적 관점에서 논의되므로 이 때 그 '어떤 명제'는 신이나 초월자, 혹은 초자연현상에 대한 관점이 된다. 종교적 관점에서의 불가지론은 간단하게 '인간은 신의 존재에 대해 알 수 없다'로 요약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초월자가 아니라 다른 명제에도 쓸 수 있다.[1] 다만, 그렇게 넓은 의미 보다는, 신 혹은 그와 비슷하게 정의 되는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입장에 대해 확답을 피하는 입장으로 주로 쓰인다.

신에 대한 생각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불가지론도 다양하게 설명되고 있어 원칙적으로 정리하면 불가지론(agnosticism)은 영국의 생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가 1869년에 만들었으며 간단하게 과학적인 근거가 없으니 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으니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뜻으로 시작했다.[2] 다만 그 전에도 비슷한 개념이 없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기원전에도 관련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불가지론에서 말하는 신의 범주는 원래는 예수같은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었다. 오늘날에는 과학이 발전해 종교가 인기가 떨어지고 각자 에 대한 생각이 깊어져 신이 곧 예수를 지칭하지 않지만 당시 유럽 사회는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었다. 토마스 헨리 헉슬리의 별명은 다윈의 불독으로 진화론을 지지해 창조론을 믿는 기독교와 맞서 싸웠었다.[3] 처음에는 옥스퍼드의 성공회 주교와 논쟁할 정도로[4] 적극적이었으나 신의 존재에 대해 신학[5], 신학 의견 모두 제쳐두고 과학적 증거가 없으니 믿을 수 없을 뿐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으로 바뀌었다.[6] 다만, 그렇다고 기독교의 신에 한정된 문제는 아니며 형이상학 전반에 관한 문제이다. [7] 애당초, 인격신을 대하는 논리는 다른 신이나 초월적 존재에게도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다.

불가지론에서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 정확히 모르니 있는 것(유신론적 불가지론)/없는 것(무신론적 불가지론)으로 치자'가 아니라, '신은 있는지 없는지 현재로선(혹은 인간으로선) 알 수 없다'는 부정과 인정 그사이에 중립적 입장을 취하며,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판단을 보류 혹은 불가함으로 본다. 이는 즉 결론이 확실한 유신론과 무신론을 전부 부정하는 논리다. '신은 명확히 정의되지 않는다',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은 무의미하다(혹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그노스티시즘'[8]과는 구별된다.

상세

"불가지론"으로 번역되는 개념, 'agnosticism에는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존재한다.

  • 첫 번째 의미
본래 의미에서 'agnosticism'은 진화론을 선보인 찰스 다윈의 맹우로 유명한 생물학자 토머스 헨리 헉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인식론적 일반원리(epistemic normative principle)였다. 즉 일종의 과학철학적 자세로서 과학적 검증 등을 통해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것(='해당 사실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이 불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믿음을 갖지 않는다는 원리이며, 그 자체로 신에 대한 존재론적 고찰에만 국한된 원리는 아니었다.
  • 두 번째 의미
두 번째 의미는 위에 설명 된 헉슬리의 일반원리에 기반한 철학적 회의론(philosophical skepticism)의 일종으로, 하나의 인식론적 명제(epistemic proposition)이다. 이 관점은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간이 알 수 없다 - 즉 '불가지하다'[9] - 는 입장을 취한다. (어느 정도 연관성은 있어도) 오늘날 의미에서 '유신론'과 '무신론'과는 아예 궤를 달리하는 명제이다. 달리 말하자면, 보통 회자되는 '무신론', '유신론', '불가지론'의 의미와는 아예 관계가 없으며, '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아예 별개의 명제다. 'Agnosticism'의 번역어 '불가지론'과 완벽히 의미가 일치함에서 알 수 있듯, 해당 용어는 바로 이 두 번째 의미를 직역한 결과다.
  • 세 번째 의미
agnosticism의 세번째 의미는 종교적 의미인데 이 용례에서 '불가지론'이란 앞서 개요에 설명된 바와 같이 "신은 존재한다", 혹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들에 대하여 유신론과 무신론이 각자 "그렇다" 혹은 "그렇지 않다"는 답을 내는 것과는 달리, 해당 명제에 대한 확답을 피하고 유보하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 신에 대해 "있다", "없다", "모르겠다"라는 직관적인 세 가지 태도를 관찰할 때, 바로 마지막의 '(아직은) 모르겠다'는, 양자 중 어느 쪽도 거부한 제3의 입장을 의미한다.

헉슬리적 의미에서 '불가지론'이 다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소위 '신무신론'(new atheism) 운동에서 학문적이고 철학적인 의미에서 "무신론"의 일반 용례를 무시하고 잘못된 규정을 하면서부터였음은 지적해둘 필요가 있는데, 이는 이미 확립 된 무신론을 소위 '약한 무신론'으로 재정의하려는 시도에 수반된 것으로, 약한 무신론에서 소위 '거증책임(burden of proof)'을 약화시키려는 수단으로 '어떤 주의주장도 하지 않는 회의적 태도'로 무신론을 멋대로 규정하면서 약한 무신론에 'agnostic atheism'라는 명칭을 부여하여 "신의 여부에 대해서는 인간이 알 수 없으므로 신에 대한 믿음을 갖지 않는다 = 무신론이다"는 해석을 덧붙였기 때문이다.

어원

'불가지론'이란 단어는 서양언어의 불가지론이란 단어를 의역한 것이므로 서양언어에서의 불가지론이란 단어의 어원을 알면 불가지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양언어에서 불가지론은, 언어별로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Agnosti-'와 주의를 나타내는 어미로 이뤄져있다. 예를 들면 영어에서 Agnosticism이고 프랑스어에서는 Agnosticisme이라고 사용한다. 그리스어 αγνωστικισμός(agnosticismos)에서 나온 단어이고 이 단어 역시 '모르는'이란 뜻의 그리스어 agnôstos와 '앎 혹은 지식'이란 뜻의 gnosis, 두 개가 합쳐져서 나왔다.

여기서 앎 혹은 지식이란 단순히 사전적 의미의 앎이 아니라 영지주의(gnosticism)에서 말하는 지식(gnosis)을 말한다.

agnosticismos(불가지론)이란 단어는 토머스 헉슬리가 사용을 하면서 유명해졌다.

유/무신론과 불가지론

신무신론에서는 무신론을 '신이 없다고 믿음'에서 '신을 믿지 않음'으로 정의하고 기존의 불가지론을 무신론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불가지론은 무신론과 유신론과 별개의 범주로도 여겨지기 때문에 기준점이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고,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대해서 지금도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불가지론자가 신에 대하여 가지는 관점은 존재 여부를 인간이 아직은 혹은 영원히 알 수 없다는 대전제 하나를 제외하면 매우 다양하다. 왜냐하면 불가지론의 핵심은 신의 존재 유무를 따지는 현재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그 후의 내용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불가지론의 가장 큰 흐름 두가지를 논하자면, 하나는 1) "이야기를 해보는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 "알 수 없기는 하지만, 논의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불가지론자들의 생각이 그야말로 다양하긴 하지만 크게보면 이 두가지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아예 이야기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입장은 원론적인 불가지론에 가까운 입장이고, 논의가 필요하다는 쪽은 보통 유신론이나 무신론 어느 한쪽에 기울어진 입장이다.

구체적으로는 "신적 존재에 대한 증명이 현재에만 불가능한 것인가 아예 불가능한 것인가" 대한 생각의 차이에 따라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인류의 미래를 통틀어서 아예 생각해 볼 필요가 없다"라고 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 "인식이 논한 수준이 될 때까지 유보한다"가 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논리상 원론적인 불가지론이 된다.

한편 논의를 긍정하는 후자의 불가지론은 유신론과 무신론에서 또 나뉘는데, 무신론적 불가지론은 "알 수 없으니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유신론적 불가지론은 "개개인의 신념에 따라 알아서 하는 게 낫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런 식으로 같은 불가지론이라도 여러가지 부분에서 입장이 갈린다.

위에서 말했듯 불가지론은 일단 "존재 여부를 알 수 없다"라는 게 대전제이고, 무신론적 입장도 많아 불가지론자 중에는 비종교인이 많다. 유신론적 입장이라 할 지라도 비종교인적 입장에 가까운 편이라 비종교인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뭔가 영적인 존재가 있을거라 믿기는 하지만 딱히 종교는 믿지 않는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예를들어 리처드 도킨스는 스스로를 무신론자에 한없이 가까운 불가지론자라고 했는데, 이는 두 분류의 공통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하지만 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유신론적 불가지론자들을 포함한 모든 불가지론자들이 대부분 자신들에게 동의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 '불가지론=무신론'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대로 유신론적 불가지론자도 존재하는 등 불가지론과 무신론이 일부 겹치는 부분은 있을지언정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다만 현대의 무신론, 소위 말하는 '신무신론' 같은 경우엔 무신론적 불가지론이 주류인 상황이다. 신의 존재에 대해 불가지론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그 바탕 위에 무신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내 차고 안의 용 문서 참고. 앞서 언급한 리처드 도킨스도 무신론적 불가지론자이다. 만들어진 신에서 이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입장을 명확히 하기위해서 무신론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불가지론 내에도 다양한 태도들이 공존하고 있으니 '여기서부터 여기까지는 불가지론' 하는 식으로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

실질적인 근거와 실험 결과를 중시하고 언제나 상식 밖의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하는 과학자들은 대부분 방법론적 자연주의적인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불가지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과학자들 중 불가지론자들이 꽤나 많은 편이다. 물론 양쪽이 완전히 같지는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모두 불가지론자는 아니다.

무신론유신론을 기준으로 스펙트럼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완전한 무신론(1) - 무신론적 불가지론(2) - 불가지론(3) - 유신론적 불가지론(4) - 종교인(5)

(1)~(2)가 무신론자, (2)~(4)가 불가지론자, (4)~(5)가 유신론자 정도로 분류될 수 있다. 즉 무신론, 유신론은 양립불가능하지만 이들과 불가지론은 양립 가능한 교집합하는 관계다.

(3)에 해당하는 입장은 원론적인 의미의 불가지론으로서 '믿으면 천국을 간다'는 등 신적인 존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물론, 신의 존재 유무조차 알 수 없다는 의견이다. 이들은 신적 존재에 대해 알 수 없고,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으며, 더 나아가 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굳이 종교를 탐구한다면 종교를 통해 인간이 얻는 심신의 평안 등의 이점이나 '신 앞의 평등'이라는 종교적 가치에 호소함으로써 천부인권이 설득력을 얻는 등의 사회적 존재 의의, 종교의 기원과 필요성을 생각하는 종교철학과 연관해서 탐구하게 된다.

무신론적 불가지론

(2)의 입장으로서, 인간이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 아직은 혹은 영원히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알 수 없으니 신이 없다고 가정하는 쪽이 옳다는 생각을 가진 온건한 무신론이다.

무신론적 불가지론의 경우, 신의 존재를 인간이 알 수 없다는 부분은 불가지론과 공통이다. 중요한 것은 그 뒷부분이다. 단순히 '모르는 것'이라고만 해두면 실제로 그와 관련된 일이 생겼을 때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즉 누군가 신의 이름으로 학살을 해도 아무런 반대도 할 수 없고 반대로 다른 사람이 신이 없다고 외치면서 종교를 탄압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존재 유무를 모르는 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

여기서 무신론적 불가지론에서는 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면서 있다는 믿음을 가져선 안 된다고 본다. 예를 들어 토성에는 코끼리가 살지만 관측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 토성에 코끼리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건 주장자여야지 그것의 무존재를 입증하는 게 불가지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러나 일부 근본주의적 종교는 과학자들에게 토성에 코끼리(즉 신)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라고 주장한다. 이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따라서 신의 존재 유무를 알지 못하니 있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은 상태로 판단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은 상태로 판단하는 것은, 보통 그것이 없다고 믿고 판단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무신론적 불가지론이다. 현대의 선진국에서 무신론이라 하면 보통 이쪽인데, 원래 의미의 무신론과 경계를 엄밀히 나누기는 힘들다. 토론 법칙 중 하나인 긍정측의 증명 우선을 신에도 적용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불가지론의 범위를 벗어나는 '완전한 무신론'의 경우 믿음의 영역[10], 즉 신 없는 종교[11]와 비슷하게 간주된다. 왜냐하면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들과 본인의 철학을 종합하여 합리적인 추론을 통해 도출해낸 무신론이 완전한 무신론이라는 '믿음'으로 분류되지 않으려면 10-1000000% 내지는 무한소에 가까운 확률이라도 최소한의 신의 존재 가능성[12]은 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전한 무신론을 충분조건으로 둔 철학극히 드물다. (부연: 신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서 어떤 신의 정의는 무신론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격체 창조신의 존재는 안 믿는 학자들이 많다. 칼 세이건과 에디슨은 사후세계, 인격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유신론적 불가지론

(4)의 입장으로서, 신의 존재를 믿지만 종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며 신을 위해 예배를 하거나 종교적 의식을 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신이 믿고 기도하는 것과 종교 활동을 좋아하는지의 여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신론자이기는 해도 이들도 불가지론적 입장에 따라 기성 종교에는 회의적인 경우가 많다. 여기서 언급되는 신은 유일신론에서 이야기하는 신은 아니므로 이 견해는 범신론과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다.

유신론적 불가지론의 경우, 신의 존재를 인간이 알 수 없다는 부분까지는 불가지론과 같다. 다만 신의 존재 유무를 모르더라도 개인이 원해서 믿는 건 가능하다고 본다. 알지도 못하면서 있다는 믿음을 가져선 안 된다고 보는 무신론적 불가지론과 달리, 유신론적 불가지론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여전히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 이성으로는 신의 존재 유무를 판단하지 못하더라도 믿음으로서 신의 존재 유무를 알 수 있다고 하면 그냥 유신론자가 되는 것이지만, 유신론적 불가지론자의 경우 그 정도까지 나가지는 않는다. 즉 믿지만 알지 못한다고 하면 유신론적 불가지론자, 믿으면 알게 된다고 하면 본래 의미의 유신론자라고 보면 얼추 들어맞는다. 물론 양쪽이 칼로 자르듯 나누어지지는 않는다.

기타

  1. the fact that someone does not know or does not have an opinion about whether something is true, good, correct, etc.:agnosticism, 출처: 캐브리지 사전, 2023년 1월 21일 접속 / 사물의 본질이나 실재의 참모습을 사람의 경험으로는 인식할 수 없다는 이론. 불가지론, 출처: 다음 사전, 2023년 1월 23일 접속
  2. "Agnosticism is of the essence of science, whether ancient or modern. It simply means that a man shall not say he knows or believes that which he has no scientific grounds for professing to know or believe. Consequently, agnosticism puts aside not only the greater part of popular theology, but also the greater part of anti-theology. On the whole, the "bosh" of heterodoxy is more offensive to me than that of orthodoxy, because heterodoxy professes to be guided by reason and science, and orthodoxy does not."
  3. 동시대 사람이다. 참고로 정작 다윈은 논쟁을 피해다녔다.
  4. 정확히 언쟁을 기록한 것은 남아있지 않는데 보통 할머니가 유인원이냐 할아버지가 유인원이냐 원색적인 질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5. 이 신학이라는 단어도 오늘날에는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보통 수식어 없으면 기독교적 신학을 의미하는 것처럼 당시 사회는 더욱이 그렇다. 다른 신학은 이단이었고.
  6. 그렇다고 기독교에 비판을 멈춘 것은 아니며. 특히 유신론적 진화론을 믿는 즉 기독교를 믿으며 진화론을 수용한 이들을 곱게 보지않았다.
  7. "1869년에 불가지론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는 T.H.헉슬리나 H.스펜서와 같은 실증론자는 지식을 경험 가능한 사실로만 한정시켰다. 이와 같이 형이상학적인 여러 문제에 관하여 분명히 불가지론을 주장하였는데, 이 경향은 현대의 논리실증주의와도 이어진다. 고대 회의론자의 시조 피론, 현상론자 W.해밀턴, F.H.브래들리, E.H.뒤부아 레몽 등도 넓은 뜻에서는 여기에 속한다. "출처: 두산백과, 2023년 1월 22일 접속,
  8. 아직까지 명확한 번역어가 없다. 보통 ignosticism을 agnosticism과 구별 없이 불가지론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엄밀히 둘은 다른 개념이다. 디시인사이드의 철학, 종교 관련 갤러리에선 이를 무가지론, 무관심론으로 번역했으나 한자 뜻과 개념을 생각하면 맞지 않는다.
  9. 지(앎)이 불가하다.
  10. 리처드 도킨스가 완전한 무신론을 믿음의 영역으로 표현한 바 있다.
  11. 단, '종교'와 같다고 단답형으로 표현하긴 힘들다. 이 쪽은 무신론을 포함한 특정 존재에 대한 숭배는 없는, 특정 명제에 대해 확신하는 상태에 가깝기 때문.
  12. 신이 흔히 말하는 인격신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주 같은 특정 존재를 신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신의 종류가 매우 다양해서 심오한 논변으로도 이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