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논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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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 왕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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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대 제20대
빌 쇼튼 샤논 대처
* 호주는 임기가 단절되었다가 재집권해도 처음 집권 당시 대수를 유지한다.

호주 제20대 총리
샤논 대처
The Hon. Shannon Thatcher
MP
대처122.jpg
본명
샤논 힐다 대처
Shannon Hilda Thatcher
출생
1967년 7월 3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시드니
재임
제20대 호주 총리
2021년 4월 15일 ~
서명
샤논 대처 서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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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퀸즐랜드 대학교 (법학 / 학사)
시드니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배우자
데니스 대처(1993년 결혼)
신장
167cm
종교
호주 성공회
정당
자유당
지역구
와이드 베이
의원 선수
8
의원 대수
29, 30, 31, 32, 33, 34, 35, 36
약력
호주 하원의원 (2010~)
교육, 청소년부 차관 (2013)
환경부 장관 (2013~2015)
내무부 장관 (2015~2018)
재무부 장관 (2018~2019)
자유당 총재 (2019~)
호주 총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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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초상화

개요

호주의 정치인. 호주의 여성 총리이며, 역대로 치면 세 번째이다. 자유당의 두 번째 여성 총재이기도 하다. 2021년부터 현재까지 총선을 네 차례나 승리로 이끌었고, 호주의 보수주의와 시장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잡고 있다. 2031년 기준 집권 10년 차를 달성하며 역대 2번째 최장수 내각을 기록하게 되었다.

위상

전당대회 연설 中 <The lady's not for turning.>[1]

로버트 멘지스, 밥 호크 총리 이후로 호주 정치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모국에서는 그녀의 리더십과 냉철한 이미지에 빗대어 철의 여인으로, 독선적이고 비타협적인 태도에 신자유주의의 마녀라고 불리울 정도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지만, 공과 과의 여부와는 별개로 호주 사회 전반을 변화시킨 시대적 인물임에는 별 다른 이견이 없다.

호주의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광부, 조선소 파업을 분쇄하여 노동시장 개혁을 쟁취하거나 압도적인 정치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에너지 정책을 입법의 최종단계인 상원까지 무리없이 상정하는가 하면, 자국 선박을 피랍한 해적들에 가차없는 응징을 선사하는 등의 불도저스러운 면모가 곧 대처의 아이콘이라 볼 수 있다. 2013년부터 내홍을 겪어온 자유당의 암흑기를 종식시키고 한 때 호주 정치계를 휘어잡던 노동당을 몰락시킨 인물 또한 대처이다. 위와 같은 이력은 유권자의 다수이자 자유당의 핵심 지지층인 미들 오스트레일리아[2]의 전폭적인 지지를 야기하여 장기집권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친인척의 후광을 받지 않은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녀의 가정은 전형적인 중산층으로, 노력주의적 경제관념을 가진 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비록 부유한 사업가인 남편의 영향이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정치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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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츠가 사진. 맨 오른쪽 인물이 샤논 로버츠이다.[3]

대처는 1967년 7월 3일 뉴사우스웨일스 시드니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대처는 학창시절 동안 항시 학급수석을 유지하였으며, 웅변 능력이 출중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내면의 불타는 경쟁심으로 인해 호주의 명문대인 퀸즐랜드 대학교의 장학생을 목표로 삼아 입시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장학생으로 선발되지는 않았지만 1987년에 퀸즐랜드 대학교 법과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게된다. 이후 그녀는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된 '정치' 에 눈독을 들이게 되고, 퀸즐랜드 대학교 자유당 학생회에 가입하여 유명 정치가들의 순회강연에도 성실히 참가하였다. 이때 대처는 자유당 의원의 연설을 듣고 정치와 경제의 깊은 연계성에 흥미를 갖게 되어 여러 경제도서를 접하였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도서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집필한 「노예의 길」 이었다.

대처는 3학년이던 1990년 학생회 회장 자격으로 브리즈번에서 열린 퀸즐랜드 자유당 대회에 처음으로 참석하였다. 이는 퀸즐랜드에서 찾아든 남녀노소 당원들이 존 휴슨[4]을 비롯한 당 지도부와 한 자리에 모여 당의 단합을 다진 대회로 대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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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대처와 샤논 대처의 결혼식

1991년 자유당 간부 만찬에서 남편 데니스 대처를 만났다. 그는 한 수출회사의 주주였으며 샤논의 정치활동을 열심히 도운 인물이다. 1993년 데니스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샤논에게 청혼하였고 두 사람은 교회에서 국교파 예법에 따라 결혼식을 올리게 되며, 샤논은 혼전 성인 로버츠에서 대처로 개명한다. 데니스 대처는 결혼 후부터 아내인 샤논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사랑을 베푼 남편으로 알려져 있다. 샤논이 호주 총리로 재임 중인 현재까지 절제되고 검소한 품격을 보이고 있으며, 데니스는 그런 자신을 '그림자 남편' 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대처는 법학 학위 졸업장을 수여받은 다음 시드니 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하여 변호사 자격시험 공부에 매진하게된다. 당면 목표는 변호사 중간시험에 이어 최종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임산부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는 결실을 맺게된다. 2년 후 대처는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이후 자유당 학생회장, 전직 변호사라는 경력을 바탕으로 대처는 1998년 31세의 나이에 하원의원에 출마할 기회를 얻었다. 1998년과 2001년 두 차례 걸쳐 출마하였으나 두 선거 모두 노동당 후보에게 크게 패하였다. 결국 차기 총선부터는 입후보를 단념하고 선거운동을 돕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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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후보 발탁 후 인터뷰 하는 샤논 대처

그녀는 마지막으로 퀸즐랜드 와이드베이 지역구 후보에 도전하였다. 자유당 우세 지역구인 만큼 약 200여명이 입후보를 희망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대처가 와이드베이 지역구 입후보자로 선출되어 2010년 총선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대처는 2013년, 당선된 지 3년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자유당 토니 애벗 총리로부터 교육부 차관직을 제의받았다. 2014년에는 환경장관, 2016년에는 내무장관, 2018년에는 재무장관에 임명된다.

자유당은 토니 애벗과 피터 더튼을 필두로 한 매파가 줄리 비숍 총리를 대상으로 불신임을 선언하며 당내 분란이 본격화된다. 2019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패배한 이후 절정에 달한 분란은 비숍의 사퇴를 몰고 왔고, 당시 비숍의 측근이자 재무장관이었던 대처가 차기 당수 후보로 거론된다. 대처는 공직 시절의 악착같은 추진력과 훌륭한 웅변실력으로 대내적 인지도가 높았으며, 비록 매파 성향이 짙은 인물이었으나 분당 위기에 봉착한 자유당으로 하여금 고난을 타개해 나갈 리더십이 충만한 정치인로 각인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우연히 당권 도전 기회를 마주하게 된 대처는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 아래 자유당 총재로 취임한다.

총재로 선출된 대처는 캔버라의 한 호텔에서 자유당 상·하원의원과 당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취임 연설회를 개최했다. 연설 내용은 "비전을 잃은 사회는 붕괴된다." 는 것으로, 확고한 신념 아래 자유당을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대처가 총재로 선출된 2019년 호주는 노동조합의 산발적인 파업과 원자재 가격 폭락, 전기료 폭등으로 혼란에 휩싸여있었다.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고, 주가가 폭락하였으며 주택가에는 정전이 끊이질 않았다. 이에 대처는 총재로서 그림자 내각을 구성한 후 정책연구그룹을 만들어 각료들에게 정책개발에 열중하라 지시하였다. 동시에 대처는 야당 대표로 재직할 동안 거친 언행으로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이른바 '공격수' 로 활동하며 총리 적임자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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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승리 후 인사하는 샤논 대처

2021년, 대처가 상정한 노동당 내각 불신임안이 77대 74로 가결되며 조기총선이 실시된다. 자유당은 하원의원 150석 중 79석을 확보하며 무난하게 과반 승리를 쟁취하지만 그간 축적된 사회적 난제를 짊어지게 되었다. 대처는 첫 임기부터 광산 통폐합을 단행하며 대격변을 예고하였다. 광부 노조가 이에 반발하여 호주 전역에 동시다발적으로 파업이 발생하지만 공권력의 지속적인 압력으로 단기간에 종료된다. 이듬해 발생한 조선소 파업에도 관용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의 독선은 대처의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또한 대처가 제언한 에너지 정책은 호주 정치계에 돌풍을 몰고왔다. 탄소세 폐지와 우라늄 채굴을 골자로 한 정책 초안은 야당과 환경운동단체를 납득시키기 어려웠고, 발효된 교토의정서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행보였기에 국제적 비난은 예정된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각계의 우려와는 달리 연연치 않은 대처는 탄소세의 부작용을 대대적으로 역설하고 우라늄 광산을 직접 답사하는 등 강행 의지를 내비쳤다. 여야의 설전 끝에 남호주에서 우라늄 탐사가 전개되었으며, 탄소세는 상원의 심의를 거쳐 최종 폐지되었다. 이후 대처 정부는 기업체의 투자를 기반으로 한 탄소감축기금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2030년 총선 이후 대처는 행정개편을 명목으로 수도 준주 자치의회를 폐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노동당이 다수인 자치의회를 무력화하는 조치로, 수도 준주를 중앙정부 직할령으로 편입시킬 전망이다.

성향과 행보

대처는 사회적으로는 보수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지향한다. 이는 우파 정치의 일반적인 특징이지만, 대처는 기존 보수 계층과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학계에서는 대처를 보수주의자보다는 고전적 자유주의자 내지는 개혁주의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반난민

내무장관 시절 대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된 각종 테러를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2017년 퀘안비얀 테러, 브라이튼 참사, 2018년 맬버른 칼부림 사건 등의 참상을 목도한 대처는 곧바로 국경을 통제하고 체류허가 과정을 강화하여 난민 유입을 전면 차단하였다. 동 조치는 현재진행형이며 호주 정부는 난민수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가부장적 가치관

대처는 가부장적인 사회를 줄곧 옹호해왔다. 전당대회에서는 친동성애 교사들을 향해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하는 아이들에게 좌파적인 인식만을 주입한다" 라며 비판했으며, 성소수자 지지 발언을 범법화하려 시도해 논란이 일었다.

탄소배출 감축기금 조성

대처는 탄소세의 대안으로 탄소배출 감축기금(Emissions Reduction Fund)을 조성하여 민간 투자를 통한 탄소 저감을 유도하였다. 정부 기금을 통해 기업들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시장 원리에 따라 사업자들이 자체적으로 감축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인데, 재생에너지가 시장에서 경쟁력이 갖추어지지 않아 화석연료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저탄소 배출 및 고효율 화력발전기술에 대해서는 정부의 강제적 집행이 아닌 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와 연구 개발 활동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하였다. 위 제도를 기반삼아 온실가스 배출감축 계획을 UN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반소

2026년, 소련의 비토권 행사로 호주가 비상임국 지위를 승계받지 못한 건에 대하여 대처는 대미국 협력을 강화하고 소련 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하여 항의했을 정도로 반소적 성향을 여실없이 드러냈다. 우크라이나-소련 위기 당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행보를 보였다.

노동시장 개혁

대처 정부는 거대권력화된 노동조합에 비타협적인 태도를 고수해오고 있다. 집권 초기 발생했던 파업사태를 거치면서 대처의 정책노선은 더욱 확고해져 양측 간 분위기는 날로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가 세수에 비상이 걸려 각종 의료혜택이 폐지되고 최저임금 상한제와 탄소세까지 거론되자 이는 전국민적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위 현상을 직접 목격했던 대처는 1기 내각이 출범하자마자 사회적 합의는 고사하고 바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시작한다. 반발하며 파업에 돌입한 노조를 분쇄함과 동시에 책임자들을 모두 사법조치한다. 더불어 대처는 2024년에 공정근로법(Fair Work Act)을 개정하여 노동시장을 한 층 유연화시켰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조합원 파업관련 비밀투표 의무화
  • 기업연금제 축소
  • 노조비로 정치 후원금 제한
  • 노조운영비 투명하게 정부 신고
  • 노동기준 보장체제(Award System) 적용범위 축소
  • 클로즈드숍, 유니온숍 제한 및 오픈숍 제도 확장
  • 피케팅 시 경찰에 의무적 신고
  • 파업 시 대체인력 고용 가능
  • 노사관계의 사법화[5]
  • 상부조직 설립 의무화 및 재편[6]

여담

  1. 여인은 돌아서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대처의 생애를 다룰 시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다.
  2. Middle Australia, 호주 중산층
  3. 혼전 성은 로버츠(Roberts)였다.
  4. John Hewson, 당시 자유당 총재
  5. 본래는 독립기관인 노사관계위원회에서 중재를 전담하였으나 그 권한을 모두 사법부로 이관한다는 조치이다.
  6. 호주는 개별노조 간 입장이 천차만별이라 별다른 연맹체가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