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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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효황제
純宗孝皇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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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황제
재위 1919년 1월 21일 ~ 1926년 4월 25일
전임자 고종 태황제
별칭
휘(諱) 척(坧)
별호 자(字): 군방(君邦)
호(號): 정헌(正軒)
연호 융희(隆熙)
묘호 순종(純宗)
시호 문온무령돈인성경효황제(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
능호 유릉(裕陵)
신상정보
출생일 1926년 4월 25일 (52세)
출생지 대한국 경성부 창덕궁 관물헌
왕조 이조(李朝)
가문 전주 이씨
부친 고종 태황제
모친 명성태황후
배우자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종교 유교(성리학)
군사 경력
복무 대한국 국군
복무기간 1919년 1월 21일 ~ 1926년 4월 25일
최종계급 대원수

순종 효황제(純宗 孝皇帝, 1874년 3월 25일 ~ 1926년 4월 25일)는 한국의 제4대 황제이다. 재위 중 연호는 융희(隆熙)를 사용하였다.

생애

순종은 1874년 3월 25일(음력 2월 8일), 한국 경성부 창덕궁 관물헌에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명성황후는 순종 이외에도 몇수 명의 자식을 더 얻었지만 장성한 것은 순종이 유일하다. 순종 이척은 2세 때였던 1875년 3월 8일을 기하여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1919년 1월 21일 부황 고종이 붕어하자 그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보위 등극과 동시에 대한국 육군 대장 예편과 아울러 원수에서 대원수로 승급하였으며 연호를 융희(隆熙)라 하였다.

순종은 건강이 좋지 않아 자식이 없었던 관계로 자신의 이복 남동생들 중에서 후계자를 정해야 했다. 하여 이복 동생 중 그 당시 나이가 가장 어렸던 원주왕 이은을 황위계승자(황태제)로 봉하였다.

1926년 4월 25일을 기하여 심장마비로 53세를 일기로 붕어하였으며, 아버지 고종 황제의 홍릉 근처 유릉(裕陵)에 안장되었다. 순종이라는 묘호(廟號)는 1926년 5월 1일 판궁내부사 민영기가 제안한 순종, 경종(敬宗), 성종(誠宗) 중 수망(首望)대로 결정했다.

융희 데모크라시

산업화와 대외 팽창 및 제1차 세계대전의 호황을 거치며 국가가 부강해지고 민중의 정신적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20세기 초반부터 순종 황제 때까지 정치·사회·문화 각 방면에 걸쳐 민주주의적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융희 데모크라시라고 한다. 그 결과 정당 정치가 근대화되었고, 보통선거 실시로 민주 정치가 진일보하였으며, 사회주의 운동도 본격화되었다.

교육과 학문 면에서도 큰 변화가 있어, 의무 교육과 대학 교육이 확대되었고 자유 분방한 예술 활동이 보장되었다. 민주주의가 제창되고, 정도전과 정여립이 재평가 받았다.

가족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