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왕국/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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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서 잉글랜드의 각 지역 협회가 국제 연맹에 별개로 가입한 종목(축구, 럭비 등)에서는 잉글랜드로 나가지 않고 그 지역으로 나간다. 지역 협회가 별개로 가입한 종목은 올림픽 같은 잉글랜드 왕국 하나로만 가입되어 있는 종합 스포츠 대회의 경우 참가를 포기하거나 단일 팀을 구성해 참가한다.

1908 런던 올림픽에서 종합 메달 1위를 해본 이후로 최고 성적은 바로 2016 리우 올림픽에서의 2위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3위를 했었는데 홈에서도 하지 못했던 2위를 리우에서 터트렸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금메달 단 1개라는 치욕스러운 성적을 낸 적도 있다. 전통적으로 요트, 트라이애슬론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따고있다. 나머지 잉글랜드가 가장 메달을 많이 따고 있는 종목들은 현재는 다 퇴출된 옛날 종목들이다. 2016년에는 사이클, 조정, 카누, 요트, 승마에서 선방했다. 올림픽 아마추어 복싱은 역대 3위다. 배구도 잉글랜드는 지역별로 따로 참가하나 2012 올림픽에서는 단일 팀을 구성했다. 네 지역 다 못하기 때문에 세계 대회에서 볼 일이 없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컬링도 따로 대표팀이 있지만 국가 대표는 랭킹 상위팀이 나가는 특성을 이용해 올림픽 잉글랜드 팀을 꾸릴 때 올림픽 출전 랭킹을 얻은 팀이 나간다.

동계 올림픽에서는 영 시원찮다. 성적이 종합 10위권에 들어온 적이 1952 오슬로 동계올림픽 이후로는 아예 없다.심지어 아예 노메달이었던 적도 무려 7번이나 있을 정도로 이웃 국가인 소로우드기, 프로이센,앨런이 모두 동계 스포츠에서 한가닥 하는 국가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부진한 편이다. 동계 올림픽에서는 그나마 스켈레톤과 컬링에서 나름 괜찮은 성적을 내는 중이다.

축구 팬들은 대표팀 경기가 국가가 아닌 협회 대항전임을 강조하지만 축구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각대로 이야기하면 올림픽도 국가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올림픽 위원회(와 해당 종목 협회)를 대표해 참가하는 것이다. 럭비의 경우는 잉글랜드 안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이젠 아니다), 웨일스가 따로 나가지만 북아일랜드는 아예 다른 국가인 아일랜드와 합쳐서 나간다. 이 역시 잉글랜드 본토와 아일랜드의 럭비 협회들이 그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잉글랜드만 12월 26일에 축구 리그 경기를 한다.

월드컵에서는 1998년에 스코틀랜드가 진출한 것을 끝으로 잉글랜드만 계속 나가고 있다. 잉글랜드는 1998년 월드컵부터 곧 열릴 2018년 월드컵까지 6연속으로 진출하고 있는데 다른 팀들은 주구장창 예선 탈락만 하고 있다. 북아일랜드는 1986년, 웨일스는 1958년이 마지막 월드컵 진출이다. 2018년 월드컵 예선에서는 북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모두 조2위 경쟁에 뛰어들어서 영연방/커먼웰스 4개국이 60년만에 전원 본선에 진출하나 했지만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는 마지막 경기 직전만 해도 2위였는데 그 마지막 경기를 이기지 못해서 탈락하고 말았다. 그나마 북아일랜드가 조 2위를 지켜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기는 했다. 만약에 북아일랜드가 진출한다면 20년 만에 잉글랜드가 아닌 구성국 팀이 월드컵에 올라오는 것이었는데 스위스에 패해 아쉽게 탈락했다. 잉글랜드만 월드컵에서 보이기 때문에 어린 세대에서는 잉글랜드=영국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가 4위를 했다.

테니스의 종주국으로 그랜드슬램 대회 중 하나인 윔블던이 매년 7월에 개최된다.

야구는 내셔널 베이스볼리그라는 아마추어 리그가 있고 Great Britain(GBR)라는 이름으로 국제 대회에 참가한다. 사이클에서는 투르 드 프랑스 4연패로 그야말로 사이클계의 레전드가 된 팀 스카이의 크리스토퍼 프룸과 인간 미사일이라는 별명을 가진 최강의 스프린터인 디멘션 데이터 팀의 마크 카벤디쉬 등이 활동 중이다. UFC 미들급 전 챔피언 마이클 비스핑이 잉글랜드 왕국 국적이다. 프로 복싱 4대 메이저 기구 WBA 남자부에서 잉글랜드 왕국이 미국보다 챔피언 수가 많다.특히 앤서니 조슈아가 유명하다. 잉글랜드 왕국의 한 마을에는 자체적으로 여는 달리기 축제가 있다. 축제 성격상 컬트적인 인기를 끌어서 전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점점 참가자 수가 늘어나고 있다.

축구

축구는 잉글랜드 왕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종목이다. 축구는 잉글랜드에서 발달했으며, 브리튼인의 삶에서 중요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잉글랜드는 "축구 종가"라는 별칭 그대로 축구의 발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월드컵 예선이나 본선, 국가대표 경기, 청소년대표 경기 때에는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로 나눠 출전한다.(허나 이번 월드컵은 잉글랜드,웨일스만 출전)

현재 잉글랜드 왕국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를 포함해 2부 리그인 잉글랜드 챔피언쉽 리그 등 7부의 실업 축구 승강제를 택하고 있으며 구단을 제외하지 않은 아마추어 축구회까지 도합 24부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조직

잉글랜드 왕국의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축구도 잉글랜드 왕국 전체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별로 따로 경기가 열리고 있다. 각 지역별로 별도의 국가대표팀과 축구 리그가 존재한다.

축구협회

지역 별로 별도로 잉글랜드 축구 협회, 웨일스 축구 협회, 북아일랜드 축구 협회가 조직되어 있다. 각 축구 협회는 각 지역의 축구 행정 전반을 관할한다.

잉글랜드 축구 협회(The Football Association, FA)는 1863년에 창설되었다. 축구 협회의 원래 관할이 잉글랜드만이었는지, 아니면 당시 영국 또는 세계 전체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각 지역별 축구 협회와 UIFA가 창설되면서 이 문제는 정리되었다.

잉글랜드 왕국의 세 축구 협회는 축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축구 규칙을 제정하는 국제축구평의회(IFAB)에서 세 자리를 차지한다. (나머지 세 자리는 UIFA 몫이다.)

국가대표팀

잉글랜드 왕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따로 없다. 대신 잉글랜드,웨일스, 북아일랜드의 대표팀이 각각 존재한다. 선수의 대표 자격(선수들은 모두 잉글랜드 왕국 국적으로 유럽연방 여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대개 그나 그의 부모, 조부가 태어난 곳을 기준으로 한다(겹칠 경우, 그 중에서 하나를 선수가 선택한다). 맨 섬이나 채널 제도 등의 잉글랜드 왕국 왕실령처럼 법적으로는 잉글랜드 왕국이 아닌 지역 출신도 네 팀 중 하나를 선택하여 참가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잉글랜드 왕국 전체를 대표하는 팀이 있던 적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하계 올림픽이다. 하계 올림픽 축구 경기에는 초창기에는 아마추어 선수만이 참여할 수 있었고 잉글랜드 아마추어 대표팀이 잉글랜드 왕국 대표팀의 이름을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도록 잉글랜드 왕국 올림픽 위원회가 결정하였다. 그러나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아마추어 선수와 프로 선수의 구분을 없앤 이후부터 아마추어 규정 때문에 잉글랜드 왕국 올림픽 대표팀은 결성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23세 이하의 선수들로 구성된 올림픽 경기에 참여하고 있으며, 잉글랜드 왕국은 어떤 대표팀도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고 있다. 이는 잉글랜드 왕국이 세 지역별 대표팀을 운영하거나, 하나의 연합대표팀을 운영하던지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하는 UIFA(국제축구연맹) 의 압력 때문이다. 런던이 2012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면서 잉글랜드 왕국 대표팀에 대한 요구가 더 증가하였다. 제프 블라터 당시 UIFA 사무총장은 공개적으로 잉글랜드 왕국 올림픽 축구팀이 세 지역의 독자성에는 영향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플레이 스타일

잉글랜드 - 삼사자 군단. 대표 스타일은 롱볼축구. 최근의 축구에서는 다른 리그의 축구와 별 차이를 찾기 어려우나, 2000년대만 해도 확실히 다른 리그에 비해 템포가 빨랐다. 패스를 할 때 패스성공률보다는 성공했을 때 좋은 찬스가 나는 것을 고려해 패스하는 형태를 띠었다. 중거리 슛도 자주 때렸다. 이탈리아 축구와 어찌 보면 비슷하지만 그들보다는 득점에 치중하는 스타일. 잉글랜드 국민들은, 잉글랜드가 축구 종가라는 것에 상당히 자부심을 품고 있다. 하나 실상 그 성적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위대한 선수 보비 찰턴과 보비 무어가 있던 시절, 윙어가 없는 다소 신기한 전술로 자국에서 열린 대회를 논란 끝에 우승한 것을 제외하고는 월드컵 결승에 올라간 적이 아예 없으며, 유로는 이탈리아에서 열린 대회에서 3위를 한 것과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3위를 간 것이 최고 성적이다. 이를 두고서 몇몇 팬들은 잉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아닌 단일 잉글랜드 왕국 팀으로 전환하면 전력이 상승할 거라 하지만, 잉글랜드 왕국의 역사를 알면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사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단일팀을 꾸려 봤지만, 축구변방국이라 불리우는 대한민국에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는 바람에 8강에서 떨어졌다.(IGO)

프리미어리그

프리미어리그(영어: Premier League 또는 잉글랜드 외의 지역에서 구분을 위해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영어: Premier League, EPL) 는 1992년에 시작한 잉글랜드의 최상위 축구 리그이다. 프리미어리그는 이탈리아의 세리에 A, 프로이센의 분데스리가,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와 함께 세계 4대 프로 축구 리그로 꼽히며, EFL 챔피언십과의 승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매 시즌은 8월부터 5월까지 진행되며 홈 & 어웨이 방식으로 20개 클럽이 각 38경기씩 치르며 우승팀과 2~4위팀은 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에 직행하고 5~6위팀은 UEFA 유로파리그에 나가게 된다. 추가적으로 FA컵 우승팀이 UEFA 유로파 리그 진출하게된다. 하위 3개팀은 다음시즌부터 2부리그인 풋볼리그 챔피언쉽으로 강등되고 반대로 풋볼리그 챔피언쉽에서 우승한팀과 2위팀 그리고 3~6위간의 승강 플레이오프 승리팀이 다음시즌부터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하게된다.

프리미어리그는 1992년 2월 20일에 풋볼 리그 1부에 속해있던 24개의 구단이 풋볼 리그를 떠나 완전히 새로운 리그인 FA 프리미어리그를 조직하면서 시작되었고, 첫 경기는 같은 해 8월 15일에 펼쳐졌다. 1부 리그가 속해 있던 풋볼 리그는 1888년부터 잉글랜드의 최고 리그로 존재했던 리그이지만, 프리미어리그가 생기면서 2부 리그로 내려가게 되었다.

이때부터 프리미어리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시청하는 스포츠 리그이자,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축구 리그가 되었다. 2005-06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구단 전체의 수입이 14억 파운드에 달하였으며, 2007-08 시즌엔 중계권 수입이 늘어나 18억 파운드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다.프리미어리그는 20개 클럽이 주주로 있는 일종의 주식회사이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 총 49팀이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았고, 이 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블랙번 로버스 FC, 아스널 FC, 첼시 FC, 맨체스터 시티 FC, 레스터 시티 FC 이 여섯 팀만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2003-04 시즌에는 아스널 FC가 리그 경기에서 단 한 번의 패배도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프리미어리그에서 무패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팀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이 기록은 유효하다. 2017-18 시즌에는 맨체스터 시티 FC가 승점 100점을 기록하면서 프리미어리그 최다 승점 기록을 달성하였다. 현재 2017-18 시즌 우승 팀은 맨체스터 시티이다.

현재까지 프리미어리거를 배출한 국가는 100개국이다.

소속팀

프리미어리그 로고2.jpg
참가 클럽 (2019-)
토트넘 핫스퍼 로고 무배경.png토트넘 핫스퍼 FC맨체스터 시티.png맨체스터 시티 FC첼시 로고.png첼시 FC
레스터시티.png 레스터 시티 FC아스날로고.png 아스날 FC왓포드로고.png 왓포드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로고.png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셀틱로고.png 셀틱 FC스완지로고.png 스완지 FC
웨스트햄.png 웨스트햄 FC에든버러 FC오메가 유나이티드 FC

럭비

19세기 이전까지 럭비의 역사는 축구와 궤를 같이 한다. 1823년 잉글랜드의 유명 사립학교인 럭비 스쿨에서 풋볼 경기 중에 윌리엄 웹 엘리스(William Webb Ellis)라는 학생이 공을 손으로 들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 기원으로 전해지지만, 후세의 창작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19세기 초 손을 이용해 볼을 들고 달렸던 형태의 풋볼 경기가 같은 이름의 지역에서 행해진 것은 확실하다. 당시 이튼, 해로우, 럭비 등 유명 사립학교들은 독자적인 규칙으로 풋볼 경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엘리스는 실존한 인물로,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후, 신부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를 기리기 위해 현재 럭비 월드컵에서 우승컵의 이름은 웹 엘리스컵(Webb Ellis Cup)이라 부르고 있다.

1863년 축구에서 The FA (The Football Association)가 설립되고 풋볼에서 손의 사용을 금하면서, 그에 반대하던 사람들은 1871년 1월 26일, 런던에서 럭비 풋볼 유니온(RFU, Rugby Football Union)을 만들고, 럭비만의 규칙을 정립하게 된다. 그 해 3월 28일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첫 럭비 국제 경기가 에딘버러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때 양 팀 선수는 20명이었으며, 주심이 없었기 때문에 양 팀 주장이 중재자 역할을 하였다.1886년에는 럭비 규칙을 제정하고 국제적인 럭비 행정을 총괄하는 기구로 국제 럭비 평의회(IRB, International Rugby Board)가 창설되었고, 1890년 럭비 유니온이 그를 승인하게 된다.

1895년 8월 29일 맨체스터 등 노동자층 위주로 구성된 잉글랜드 북부의 21개 클럽이 상류 계층 위주로 구성된 럭비 유니온의 아마추어리즘의 고수 문제를 둘러싸고 유니온과 갈등을 빚고, 럭비 유니온을 탈퇴하였다. 그들은 웨스트요크셔주 허더스필드에서 현재의 럭비 리그인 노던 럭비풋볼 유니온(Northern Rugby Football Union)을 만들고 독자적인 룰을 발전시키면서 프로화를 진행, 1901년부터 리그를 시작하게 된다. 럭비 리그라는 명칭은 노던 럭비풋볼 유니온이 명칭을 럭비 풋볼 리그 (Rugby Football League)로 바꾼 1922년부터 정착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분화된 럭비는 각각 세계로 퍼지며 두 개의 방식이 공존하게 되었다.

1995년 8월 26일, IRB에서 럭비 경기에 참가한 선수에 대해 보수나 대가를 지불하는 것에 대한 제한을 공식적으로 철폐(오픈 선언)하면서 럭비 리그에 참여한 선수도 럭비 유니온 클럽이나 경기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고, 럭비 유니온 팀들 역시 프로화되었다.

잉글랜드 왕국에서는 유니온과 리그, 양쪽 모두의 규칙을 전후반 번갈아 사용하는 크로스코드 게임(cross-code game)을 하는 경우도 있다.

농구

잉글랜드 왕국에서 농구는 인기있는 스포츠는 아니지만 12개의 프로 팀이 잉글랜드 왕국 프로 농구인 BBL에 참가하고 있다.

수영

유명선수

  • 시오반-마리 오코너: 2016 리우 올림픽 여자 개인혼영 200m 은메달리스트.
  • 애덤 피티(현역): 2016 리우 올림픽 남자 평영 100m 금메달리스트. 2018년 현재 남자 평영 50m, 100m 세계기록 보유자.
  • 제임스 가이 : 2016 리우 올림픽 은메달리스트(4x100m 혼계영, 4x200m 계영), 2015 카잔 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200m 우승자.
  • 톰 데일리(현역):영국의 다이빙 선수. 2012 런던 올림픽(10m 플랫폼), 2016 리우 올림픽(10m 플랫폼 싱크로) 동메달리스트.

테니스

현대 테니스의 기원은 두 갈래로 나뉜다. 1859~1865년 사이에 해리 젬 장군과 그의 친구였던 오구리오 페레라는 바스크 전통 공놀이의 일종인 펠로타에 라켓을 접목시킨 새로운 구기를 고안하여 당시 영국 버밍햄의 크로케 구장에서 즐겼다.1884년 7월 23일에는 슈러블랜드 홀(Shrubland Hall)에서 열린 최초의 테니스 대회 경기 모습이 녹화되기도 했다.

한편, 1873년 12월 월터 윙필드 장군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경기를 고안하였다. 그는 이 경기를 스페어리스티크(sphairistike, 그리스어: σφάίρίστική, '공을 다루는 기술'이라는 뜻)라고 명명했으며, 이것은 이후 좀 더 간단하게 '스티키(sticky)'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이 경기를 웨일스의 흘라넬리단(Llanelidan)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가든 파티를 열 때마다 손님들의 오락을 위해 활용하였다.그가 고안한 경기는 좀 더 현대적인 스포츠인 실외 테니스나 리얼 테니스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현대 테니스의 관련 용어들이 이 시기에 윙필드 장군이 실내 테니스의 명칭 및 관련 프랑스어 어휘들을 차용했던 것에서 유래한다고 본다.

1877년 당시 영국 윔블던에서 최초의 테니스 대회가 개최되었다.미국의 사교계 명사였던 메리 유잉 아웃터브리지는 1874년 버뮤다에서 윙필드 장군을 만나고 돌아온 뒤, 뉴욕의 뉴 브라이튼 스테이튼 아일랜드(New Brighton Staten Island)에 위치한 스테이튼 아일랜드 크리켓 클럽에 테니스 코트를 만들었다. 이 클럽은 현재의 스테이튼 아일랜드 페리 선착장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1880년 미국 최초의 국제 테니스 대회가 이 곳에서 열렸다. O.E 우드하우스(O.E Woodhouse)라는 당시 영국인이 단식 우승을 차지했으며, 복식에서는 미국인 복식조가 우승했다.

핸드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