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강씨 황가(메이플스토리)

진주 강씨
Jinju Kang clan family seal.svg.png
국가 메이플 세계관의 고구려 국기.jpeg 고구려
왕국명 고구려 제국
작위 고구려의 태왕
설립자 고구려 안순태왕
원시조 배달국 강거발환 환웅/염제 신농씨
비조 고조선 태조 홍성단제
시조 고구려 원수공
중시조 강계용, 강위용, 강원용, 강민첨, 강궁진
건립일 서기 875년
당주 강인범
본가 심양 강씨
분가 금천 강씨, 청주 한씨
강철상[1]은 문자명왕의 막내 아들이다.
— 강사 고구려국본기

개요

고구려 제국의 현 황가이자 고구려 제1왕조인 심양 강씨의 분가이자 직계 후손이며 고구려 원수공을 시조로 하는 가문이다.

연원

강씨 성을 득성한 것에 대해서는 설과 흔히(?) 알려진 역사가 있으며 이 황가의 연원은 굉장히 오래 되었다. 한민족 최초의 국가 배달국이 건국되기 직전 초대 군주가 될 강거발환이 지금의 두만강인 강수에서 강 자를 따와 강씨 성을 득성 했다는 설과 염제 신농씨가 지금의 섬서강인 강수에 자라서 강 자를 따와 강씨 성으로 득성 했다는 역사이다. 설을 인용해서 말해보자면 강거발환이 강씨 성을 득성하고 배달국을 세워 그의 후손 18명이 군주가 되어 배달국을 다스려왔다. 마지막 군주인 강거불단이 강임검에게 황태자로 책봉했다.[2] 하지만 배달국의 상황이 답이 없었는지 강임검은 배달국을 멸망시키고 고조선을 건국하고 강씨의 본관을 심양으로 하였다. 이로서 심양 강씨가 탄생한 것이다.

심양 강씨는 고조선이 멸망해도 부여, 백제, 탐라 그리고 고구려 제국까지 이어진다.

기원

서기 550년 3월 9일, 고구려 문자명왕과 소후 송자영의 막내 황자인 강철상과 한재희[3]의 사이에서 강이식 장군이 태어나고 야사에 따르면 15세 때는 90척짜리 철퇴를 마상에서 구사하고 진법을 이루었으며, 24세 되던 해(573년)에 동명대회에서 장원했다고 한다. 이를 역산해 보면 출생년은 550년. 이후 부친의 뜻을 이어받아 서부 총관부에서 벼슬하며 돌궐과 계단(거란), 말갈 등에 여러 차례 사신으로 갔다고 한다. 그 뒤 동명 대회에서 장원한 후 아직 보직을 받지 않은 을지문덕이 592년(고구려 영양왕 3년) 8월 하순 요동성 서부 총관부의 총관 강이식을 찾아와 총관부에서 같이 일하게 되었고, 수나라의 침략을 물리친 공으로 병마도원수, 을지문덕 장군은 서부 총관으로 각각 승진했다고 한다.

고수 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수나라 문제가 모욕을 담은 조서를 보내오자 강이식 장군은

이 같이 오만무례한 조서에는 붓이 아니라 칼로서 답해야 합니다.
— 강이식 장군

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고구려 제26대 영양태왕은 강이식 장군을 병마원수로 삼아 5만 병력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요서 지역과 영주를 공략했고, 나중에 임유관을 공략했다고 한다. 그 후 제2차 고수 전쟁에서도 수륙양군 병마대원수가 되어 수나라군을 털어버렸다.

875년 고구려의 황족인 강진이 신라로 방문하여 진주가 마음에 들었는지 진주 강씨로 분가했지만 황족 지위는 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금천 강씨는 고구려 인조가 황위에 등극한 후 황족들의 자유 시간에서 인조가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물었더니 황족 일부는 진주 강씨 황가에서 벗어나고싶다는 진주 강씨 인헌공파들의 소원을 말하자 인조는 그 소원을 들어줘서 생겨난 진주 강씨 황가의 분가이다

분파

  • 은열공파
  • 박사공파
  • 어사공파
  • 소감공파
  • 시중공파
  • 인헌공파[4]
  • 염통악파
  • 견성공파

봉국 조선

아마도 강철상이 고구려의 황족으로서 분봉받은 모양이며 강이식과 강운기까지 3대를 이어가다가 강운기가 고구려의 태왕이 되면서 봉국 조선은 폐지 되었다.

  1. 진주 강씨의 시조 원수태왕의 친아버지
  2. 강임검 위에 장남인 강설이 있는데 황태자 자리를 강임검에게 양보하고 본인은 부황인 강거발단으로부터 받는 국호로 나라를 세우니 그 나라가 상나라이다
  3. 청주 한씨 일족
  4. 금천 강씨 가문이 이 분파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