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파일: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20px]] {{글씨 크기 (px)|12|이름이 같은 다른 문서에 대한 내용은 [[프랑스 혁명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실제 사건ㆍ사고}}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 14.4px; border: 2px solid #000091; 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 ! style="background: #fff; color: #000;" | {{글씨 크기 (px)|19|프랑스 혁명}}<br>La Révolution française | French Revolution |- ! style="background: #000;" | <div style="margin: -5px -9px -6px;">[[파일:바스티유 습격1.webp]]</div> |- ! style="background: #fff; color: #000;" | '''{{글씨 크기 (px)|10|《바스티유 습격(La prise de la Bastille)》'''<br>장피에르 루이 로랑 위엘, 1789, 종이에 수채.}} |- |} {{목차}} ==개요== 1789년 [[프랑스 왕국]]에서 발발하여 [[테르미도르 반동]] 전까지 지속되었던 [[혁명]]의 상징이 된 일련의 [[봉기]]이다.<ref>[[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일으킨 [[브뤼메르 18일의 쿠데타]]를 종점으로 잡는 경우도 있으나 총재정부 시기는 중도적인 노선을 앞세웠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테르미도르 반동이 실질적으로 프랑스 혁명이 끝난 시기라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ref>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다른 혁명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특별히 '''프랑스 대혁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7~18세기에 걸쳐 일어난 여러 [[시민 혁명]] 중 가장 유명하며,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도 전환점이 된 대사건으로 분류된다.<ref>세계사를 주제로 한, 수능을 비롯한 어떤 시험에서든 17세기~18세기 유럽을 다룬 문제는 웬만하면 출제된다. 마치 한국사 관련 시험에서 대동법이 웬만하면 출제되는 수준으로 출제된다고 할 수 있다.</ref> 내부적으로는 잇따라 즉위하는 무능한 왕들과 사치와 권력 유지에 급급한 귀족들과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모순]]을 제거했고 외부적으로도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프랑스 혁명의 영향력이 주위 국가들에게 크게 미치게 되면서 19세기 이후 각국의 시민 혁명의 촉발제로 작용하였다. 사실 프랑스에서 일어난 굵직한 혁명 하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외젠 들라크루아]]의 그림으로 유명한 1830년 [[7월 혁명]], [[레 미제라블]]의 배경으로 유명한 1832년의 [[1832년 6월 봉기|6월 혁명]],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2월 혁명]]도 있으며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직후 [[파리 코뮌]]이 세워지기도 했고, 넓게 보면 [[나치 독일]] 치하 [[레지스탕스]]의 활동과 1968년 [[68운동]] 같은 다른 혁명들이 수두룩하다. 그렇지만 아무런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이라 칭한다면 대부분은 1789년의 혁명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 문서는 1789년 삼부회 사건부터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집권까지 계속된 혁명을 다룬다. [[루이 16세]]의 처형을 보고 유럽국가들은 봉건제 유지에 위협이 되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또는 국가 내부의 혁명으로 인한 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영토를 뺏기위해 [[프랑스 혁명 전쟁]]을 일으켰다. 프랑스 혁명의 사상이 전파될까 두려워한 [[합스부르크 제국|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황가와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의 호엔촐레른 왕조 등 지배계급 인사들은 자국의 혁명 지지파를 박해하며 왕권을 더욱 더 강화했다 ==내용== ===혁명 전야=== ====이론적 배경==== {{인용문1|'''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br>'''Liberty, Equality, Fraternity'''|[[자유, 평등, 우애]]<ref>흔히 박애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근대 일본의 학자들이 개념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오역이다.</ref>}} 혁명의 이념적 기초는 [[장 자크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 [[드니 디드로]]를 포함한 [[계몽주의]]자들과 백과전서파로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의 뿌리를 만든 사람은 루소로서, 루소의 [[사회계약설]]과 인민주권론은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던 프랑스의 [[절대군주정|전제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사회계약설은 [[토마스 홉스|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처음으로 주장한 이론으로, '''"왕이란 존재는 [[야훼|하느님]]께서 정해주신 직업이 아니며, 한 사회와 국가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번영하기 위해 백성님들께서 계약하듯이 옹립해 준 자리다."'''라는 왕권민수설을 주장했다. 이는 [[왕권신수설]]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이론이다. 또한 [[미국 독립 전쟁]]에 프랑스의 군사적 지원이 들어갔는데, 이 때 파견된 프랑스 군인들이 미국의 자유정신과 해방정신을 배워 와서 혁명에 기여했다는 설도 있다. ====경제적 위기와 수탈==== ====부르주아의 부상==== ===세력=== ====[[클뢰브 데 푀양|푀양파]]: 입헌군주==== * 입헌군주파 * 주요인물 * [[라파예트 후작 질베르 뒤 모티에|라파예트 후작 질베르 뒤모티에]] * 아드리앵 뒤포르 * 앙투안 바르나브 * 알렉상드르 드 라메트 ====[[마레파|평원파]]: 온건 공화 ~ 급진 공화==== * 지롱드파와 몽테뉴파의 중재역, 상황에 따라 성향 다름 * 주요인물 *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스]] ====[[지롱드파]]: 온건 공화==== * 온건 공화파 계열의 여러 파벌의 집합체이며, 자주연방주의자 * 주요 지도자들 * [[피에르 베르니오]] * [[자크 피에르 브리소]] * '지롱드파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마담 롤랑]] * [[니콜라 드 콩도르세]] * 제롬 페티옹 ====몽테뉴파([[산악파]], [[자코뱅]]): 급진 공화==== * 과격파, 급진공화파, 사회주의 * 주요인물 * [[장폴 마라]]: 암살당함 * [[자크 르네 에베르]]: 급진 좌파 * [[조르주 당통]]: 우파, 관용파 *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 중도파, 부르주아 중심의 정치적 개혁에 그치지 않고 평등주의적 경제정책을 추구하는 좌파 * [[루이 앙투안 드 생쥐스트]]: 죽음의 대천사란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방어적 민주주의]]의 시초로 꼽힌다. ====[[테르미도르]]파: 부르주아==== * [[부르주아]] * 주요 지도자 * [[조제프 푸셰]] * 베르트랑 바레르 * 장마리 콜로 데르부아 * 자크 니콜라 비요바렌 * 장 랑베르 탈리앵 ====도시 민중 세력==== * [[상퀼로트]] ===진행=== [[파일: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20px]] {{글씨 크기 (px)|13|자세한 내용은 [[프랑스 혁명/진행 과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후=== ==각주== {{각주}} [[분류:프랑스 혁명]]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각주 (원본 보기) 틀:글씨 크기 (px) (원본 보기) 틀:목차 (원본 보기) 틀:실제 사건ㆍ사고 (원본 보기) 틀:인용문1 (원본 보기) 틀:일반 기타 (원본 보기) 모듈:Check for unknown parameters (원본 보기) 프랑스 혁명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