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선국 성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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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 '''시대는 안 좋았지만 국가의 모든 부분을 성장시킬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셨으며 성과 또한 많았다. 그래서 그 공로를 보아 묘호는 성종이 가장 좋다.''' | '''2023년 7월 2일, 성종의 묘호가 확정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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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3대 국왕.''' 묘호는 성종(成宗), 시호는 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 휘는 제(䄢), 연호는 광덕(光德).
  
'''조선의 제3대 국왕.''' 묘호는 '''성종(成宗)''', 시호는 '''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이고 휘는 '''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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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국 인종|인종]]과 [[휘빈이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대조선국 태조|태조]]와 어머니 [[휘빈이씨]]의 갈등을 원손 시절 겪었고, 결국 어머니가 폐서인 되고 사망한 뒤, 할아버지 [[대조선국 태조|태조]]의 엄격한 견제를 거쳐 겨우 왕세손(王世孫)으로 책봉되었다. 아버지 [[대조선국 인종|인종]]이 즉위한 이후엔 왕세자(王世子)에 책봉되었으며 비교적 조용한 삶을 살았다.
  
[[대조선국 인종|인종]][[휘빈이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45세의 나이로 즉위하였으며 부왕처럼 백성의 총애와 사랑을 받았으며, 부왕과 성격이 매우 닮고 재위기간동안 이룬 공도 커 백성들이 성종을 향해 역사상 가장 휼륭한 성군이라 칭하였다. 또한 2022년 마지막 태생 왕족이다.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하고 장수한 끝에 향년 109세로 훙서하였다. 성종은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하고 장수한 군주'''이며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뽑힌다.
+
아버지 [[대조선국 인종|인종]]때부터 조선의 문화 컨텐츠가 대부분 붕괴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2023년 3월 10일, 아버지 [[대조선국 인종|인종]]의 승하로 45세의 나이로 보위에 올라 흔들리던 조선을 겨우 유지시켰다. 실질적으로 세운 큰 업적은 없으나, '''조선의 존립'''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한 '''버팀목이 되었던 국왕'''이다. 성종은 무려 '''114일'''간 재위하였으며, 이는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국왕'''이다.
  
==[[파일:현재2.png|width=30]] '''즉위전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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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왕조.png|width=30]] '''업적'''==
  
2022년 12월 27일, [[대조선국 인종|인종]]과 [[휘빈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언행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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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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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왕컵 개최
{{인용문| '''원손마마께서 새벽에 디코 노래방에서 내관인 청설모와 욕배틀을 했다는 증좌들이 고변을 하였으며 내금위를 동궁전(東宮殿)에 배치해야한다는 상소문(上疏文)도 올라왔다. 청내관의 체벌에 대해선 내외명부 수장을 대리(代理) 중이시던 빈궁마마께서 청내관을 존현각에 불러 경고(警告)로 끝내셨다.'''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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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L 개최
{{인용문| '''미천한 소손을 아끼시는 전하의 어심에 감사함이 크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동궁전(東宮殿)에 외지인이 들어올 일이 없으며 저에게 강상죄(綱常罪)를 범한 청내관의 일 역시 품고 넘어가고자 하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 역시 없게 하겠사오니 전하께서도 소손의 뜻을 이해하여주시어 내금위의 배치까지는 거두어 주시길 바라옵니다. 심지어 자칫하면 이 일이 궁궐 밖으로 퍼질 수 있사온데 이미 중전마마와 관련된 일로 국가의 혼란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더 퍼져서야 되겠습니까?'''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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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구리그 개최
 
 
한번 자신을 모시는 내관과 함께 욕배틀을 하며 백성들 앞에서 차마 말할수 없는 심한 언행들을 벌였는데, 그걸 여러명이 고변하였다. 자식손주를 '''완벽한 제왕'''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던 [[대조선국 태조|태조]] 입장에선 '''걸림돌'''이 될수 밖에 없었으며 세자던 [[대조선국 인종|인종]]에게도 안 시킨 여러 시험을 원손인 성종에게 치루게 하였다.
 
 
 
원손 고변 사건이 터지고 바로 다음날, [[대조선국 태조|태조]]는 [[신덕왕후]]와 세자던 [[대조선국 인종|인종]]을 경회루에 불러 세자빈 [[휘빈이씨]]와 원손 성종의 언행에 대해 대책 회의를 열었다고 한다. 사실상 세자빈은 조용한편에 속했지만 원손의 언행으로 인해 모친 [[휘빈이씨]]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유폐상태던 [[신덕왕후]]가 [[대조선국 태조|태조]]의 지원으로 많은 권력을 얻게 된다. 그러다 결국 1월 5일 어머니 [[휘빈이씨]]가 세자빈에서 폐위되고 사망한다. 새 어머니로 [[정안왕후]]를 맞이한 원손은 어머니처럼 잘 대해주었다.
 
 
 
{{인용문| '''새벽 1시 10분 원손마마께서 삼정승(三政丞)의 심사하에 집현전(集賢殿)에서 입학례(入學禮)를 치루다. 점수 영의정이 통을 주어 90점대였으나 우의정이 약을 주며 60점을 맞으셨다.'''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2권''' }}
 
 
 
[[대조선국 태조|태조]]의 감독하에 삼정승들이 여러 시험지를 주었다. 원손이던 성종의 답변을 보고 영의정이 통을 주었으나 당시 우의정이던 김간춘이 약을 주며 '''점수가 매우 떨어졌다.''' 훗날 성종은 왕위에 오른 뒤 자신에게 약을 준 김간춘을 싫어하였다고 전해져내려온다. 결국 극적으로 왕세손으로 책봉된 성종은 1월 17일 한양 토씨의 [[원경왕후]]를 세손빈으로 맞이한다.
 
 
 
2월 10일, 증조부 [[대조선국 태조|태조]]가 승하하고, 곧 바로 조선의 왕세자로 책봉된다.
 
 
 
{{인용문| '''세자저하께서 강녕전(康寧殿) 職務실을 실수(失手)로 들어가 박상궁이 이에 경고(警告)하자, 세자저하께서 이리 말하셨다. ''' | '''조선왕조실록 인종실록 1권''' }}
 
{{인용문| '''어차피 미래에 내자리인데''' }}
 
{{인용문| '''그러자 박상궁이 말하기를, 실록(實錄)에 실여야겠군요.''' }}
 
{{인용문| '''그러자 세자저하께서 말하시길, 안됩니다. 실록(實錄)에는 쓰지마세요 라고 하셨다.''' }}
 
 
 
[[대조선국 태조|태조]]의 국상이 한참 치루어질때 태조의 빈전을 앞에 두고 강녕전에 들어간다던지, 미래 자신의 자리라고 말하며 권력욕이 많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국상의 마지막 날 태조의 대관이 왕릉에 묻히던 의식이 있었는데 이때 세자가 자며 참석하지 못하였다. 이에 세자는 경복궁 영제교에서 [[대조선국 인종|인종]]이 있는 근정전을 향해 비를 맞으며 15분 넘게 '''석고대죄'''를 하였다.
 
 
 
{{인용문| '''아! 불초(不肖)한 후손(後孫)이 감히 조상(祖上)과 선왕(先王)을 모심에 누를 끼치었으니 이 어찌 큰 불효(不孝)가 아니겠는가, 선왕(先王)과 선조(先祖)들께서는 이 후손(後孫)의 죄를 보시어 꾸짖어주소서, 那羅의 기틀과 廟社를 망치었으니 이 불초(不肖)한 후손(後孫)이 삼가 죄를 청하나이다, 본디 선왕(先王)께서 나라(那羅)를 여시어 구시대(舊時代)의 악을 滅하시고 나라(那羅)를 평안(平安)케 하신바. 후인(後人) 된 자로서 그 유지(維持)를 거슬렸으니 죄가 크옵니다. 선조(先祖)들께 죄를 고하나니 일신우일신하게 하시어 죄를 고치게 하시고 의무(義務)를 다하게 하여 주소서.''' | '''조선왕조실록 인종실록 1권''' }}
 
 
 
세자는 마음이 가볍지 않았는지 석고대죄가 끝난 직후 종묘를 찾아 저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2월 20일에는 아들 이연을 얻었으며 2월 23일에는 새어머니 [[정안왕후]]가 정신 질환을 겪다가 결국 훙서하고, 세번째 어머니 [[현덕왕후]]를 맞이하였다. 효심을 다해 [[현덕왕후]]에게도 잘해줬다는 일화가 있다.
 
 
 
3월 10일, 세자빈이던 [[원경왕후]]와 결혼 50일 기념일인 금혼식을 맞이하였는데 맞이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당일 오후 10시에 부친 [[대조선국 인종|인종]]이 향년 72세로 갑작스럽게 훙서한다.
 
 
 
==[[파일:현재2.png|width=30]] '''조선 국왕 즉위'''==
 
 
 
3월 10일, 아버지 [[대조선국 인종|인종]]이 훙서하며 45세의 나이로 '''조선 제3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성종은 백성들에게 죽을 때 까지 나라에 헌신을 다하겠다고 맹세하였는데 '''실제로 죽을 때까지 헌신을 다하고 공식 일정을 모두 소화'''하였다.
 
 
 
세손과 세자 시절에 삐둘어지긴 했으나 왕위에 오른 이후 그 누구보다 '''성군, 제왕'''이라 칭할 정도로 열심히 국정을 운영하였다. 성종이 왕위에 오를 시기에는 개학 시즌으로 인하여 '''조선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였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나서 정책을 수립하고 조선의 존립을 위해 온 힘을 다하여 4~6월 초에 조선이 다시 일어서기도 하였다. 결정적으로 조선이 존립을 유지할 수 없었으나 발전을 하지 못한 이유가 부친 [[대조선국 인종|인종]]때 문화사업이 모두 날아가였기 때문이다.
 
 
 
4월 11일에 왕대비던 [[현덕왕후]]를, 4월 19일에 부인 [[원경왕후]]를, 4월 20일에 대왕대비 [[신덕왕후]]를 연이어 보냈으며 왕실의 최고 어른이 되었다. 6월 17일에는 재위 100일 기념일인 백금경축을 맞이하였으며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하고 장수한 군주'''가 되었다. 그 결과 장남 1명, 손녀 1명, 증손주 2명, 며느리, 손주며느리, 증손주며느리까지 보았다. 너무 긴 재위기간으로 인해 왕세자 이연의 불만이 '''매우 컸다고 한다.''' 6월 말 부터 지팡이의 도움없이 걷지 못했으며 건강이 안 좋아졌다.
 
 
 
결국 7월 1일, 폐비 김씨를 [[신의왕후]]로, 폐빈 이씨를 [[휘빈이씨]]로 복권시키고 향년 109세로 훙서하였다.
 
 
 
==[[파일:현재2.png|width=30]]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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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ordercolor=#972000; width=600px; table align=center><#972000><:> {{{#ffffff '''자녀'''}}} ||<#972000><:> {{{#ffffff '''이름'''}}} ||<#972000><:> {{{#ffffff '''출생'''}}} ||<#972000><:> {{{#ffffff '''배우자/자녀'''}}} ||
 
||<#E6FFFF> 1남 ||<#E6FFFF> 주상 이연 ||<#E6FFFF> 2023년 2월 10일 ||<#E6FFFF> [[의정왕후]] <br> [[정순 공주]], [[효문 세자]], 경원대군 ||
 
 
 
==[[파일:현재2.png|width=30]] '''평가'''==
 
 
 
・학구열 : 공부나 학업은 '''세손과 세자 시절에 아주 열정적'''이였다고 한다. 점수는 낮게 나온적이 많으나 학업에 관심이 많았다.
 
 
 
・성품 : 감정적일때도 있고 이성적일때도 있으며 부친 [[대조선국 인종|인종]]과 성격이 비슷하였다. '''호감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며 많은 백성의 지지를 얻었다.
 
 
 
・치적 : 재위기간동안 나라를 평안하게 하였고 정치, 경제, 외교 등 다양한 부분에 있어서 발전하긴보단 쇠퇴하지 않게 현상 유지시킬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조선의 존립을 크게 유지'''할 수 있었다.
 
 
 
・외모 : 피부색이 매우 밝았다고 하며 눈 또한 크고 이뻤다. 부친 [[대조선국 인종|인종]]의 유전자인 듯하다.
 
 
 
・가정사 : 조선 국왕중 최초로 왕비를 1명 두었으며, '''안정적인 가정'''을 이끌었다.
 

2023년 12월 5일 (화) 01:32 기준 최신판

조선왕조.png
대조선국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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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조선국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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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대
이경
인종 대
이제
성종 대
이연
명종 대
이행
문종 대
이역
영조 대
이산
헌종 대
이향
이향 대
이율
조선 제3대 국왕
성종 | 成宗
성종어진.png
출생2022년 12월 27일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자선당
즉위2023년 3월 10일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근정전
사망2023년 7월 1일 (향년 109세)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강녕전
헌릉(獻陵)
재위기간2023년 3월 10일 ~ 2023년 7월 1일 (114일)
본관전주 이씨
제(䄢)
부모부왕 인종, 모후 휘빈이씨
형제자매없음
배우자원경왕후
자녀명종
종교유교
신장183cm
묘호성종(成宗)
시호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
연호광덕(光德)

조선의 제3대 국왕. 묘호는 성종(成宗), 시호는 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 휘는 제(䄢), 연호는 광덕(光德).

인종휘빈이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태조와 어머니 휘빈이씨의 갈등을 원손 시절 겪었고, 결국 어머니가 폐서인 되고 사망한 뒤, 할아버지 태조의 엄격한 견제를 거쳐 겨우 왕세손(王世孫)으로 책봉되었다. 아버지 인종이 즉위한 이후엔 왕세자(王世子)에 책봉되었으며 비교적 조용한 삶을 살았다.

아버지 인종때부터 조선의 문화 컨텐츠가 대부분 붕괴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2023년 3월 10일, 아버지 인종의 승하로 45세의 나이로 보위에 올라 흔들리던 조선을 겨우 유지시켰다. 실질적으로 세운 큰 업적은 없으나, 조선의 존립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한 버팀목이 되었던 국왕이다. 성종은 무려 114일간 재위하였으며, 이는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국왕이다.

조선왕조.png 업적

〈 문화 〉
・ 국왕컵 개최
・ EPL 개최
・ 야구리그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