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조선 초대 국왕
태조ㅣ太祖
태조33.png
출생 1335년 11월 4일
쌍성총관부 화령
즉위 1392년 8월 13일 (57세)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408년 6월 27일 (향년 73세)
한성부 경복궁 장안전
능묘 건원릉 (健元陵)
재위기간 조선 국왕
1392년 8월 13일 ~ 1398년 10월 22일
조선 상왕
1398년 10월 22일 ~ 1400년 12월 7일
조선 태상왕
1400년 8월 5일 ~ 1408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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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전주 이씨
휘 성계 (成桂)
배우자 신덕왕후 (1351년 혼인 / 1396년 사망)
자녀 슬하 2남
종교 유교 (성리학)
신장 180cm
묘호 태조 (太祖)
존호 지인계운 (至仁啓運)
시호 성문신무대왕 (聖文神武大王)

개요

과인은 덕이 적은 사람이므로 이 책임을 능히 짊어질 수 없을까 두려워하여 사양하기를 두세 번에 이르렀으나,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백성의 마음이 이와 같으니 하늘의 뜻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요청도 거절할 수가 없으며, 하늘의 뜻도 거스릴 수가 없습니다.’ 하면서, 이를 고집하기를 더욱 굳게 하므로, 나는 여러 사람의 심정에 굽혀 따라, 마지못하여 왕위에 오르고, 나라 이름은 조선으로 하여 경국대전, 유교법전, 국조오례의 등을 반포해 체계를 개편토록 한다. 또 종묘와 사직을 바로 세우도록 할 것이다.

고려 말기의 명장이며 조선을 건국한 개국군주이자 초대 국왕.

고려 동북면 출신으로, 귀신 같은 활솜씨와 뛰어난 지휘력으로 홍건적과 원나라, 왜구, 나하추, 여진족 등을 잇달아 물리치며 최영과 더불어 당세 최고의 구국 영웅으로 떠오른다. 동시에 고려 말 최대 군벌로 성장한 그는 정계의 핵심 인물로 부상한다. 위화도 회군을 통하여 최영, 토끼, 카터 등의 친(親)고려적인 무인 세력들, 권문세족과 이색을 위시한 온건파 등의 정적들을 제거하여 권력을 장악했으며, 신흥무인세력들과 급진 신진사대부들의 협력과 지지를 얻어 1392년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했다.

치세

고려 말 왜구의 침입과 홍건적 등 외적의 침입이 계속해서 이어지던 원명교체기의 혼란기에, 황산대첩 등의 무훈을 바탕으로 신흥 무인으로 크게 성장한 고려의 장군 이성계는 고려 말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군사력을 보유한 무인 세력인 신흥무인세력 그리고 권문세족에 대항해 성장한 지방 중소 지주 출신의 신진사대부의 지지를 받으면서 1392년에 역성혁명으로 고려를 무너뜨리고 유교(성리학)에 기반한 새로운 국가 조선을 건국한다. 이 과정에서 고려의 왕족과 그 계파인 왕씨들을 탄압하는 왕씨 몰살이 자행됐다.

조선이 처음 건국되던 시기라, 혼란한 시대에서 태조 대왕은 조선의 기반을 닦은 첫 개국 군주로 평가되고 있다.

태조 대왕은 개경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천도해 한양 도성을 세웠으며, 의정부와 육조 등 주요 국가 기관을 설립했다. 또한 과거시험을 시행하여 모두가 인재력에 따라 공평하게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사대 교린 정책으로 당시 중원을 차지한 명나라를 위로 섬기고, 아래론 여진과 일본을 두었다.

물가법을 시행해 고려의 권문 세족들이 가진 재산을 압수하고, 왕실과 조정이 시장 경제에 깊게 관여할 수 있게 장치를 마련해 두었다.

경국대전, 국조오례의, 주자가례, 효경, 삼강오륜, 대인 관계의 규범과 사회의 질서에 관한 법전을 반포하여 질서를 마련했으며, 고려 때 있던 수많은 노비들들 해방시켜 천민이라는 계급의 수를 대폭 줄였다.

태조 대왕은 정종에게 양위후 상왕으로 물러났으며, 이후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태상왕으로 재위하였다.

조선왕조.png
조선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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