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종


조선 제3대 국왕
태종ㅣ太宗
단종31.png
출생 1367년 6월 21일
동북면 함주목 귀주동 이성계 사저
즉위 1400년 12월 7일 (33세)
한성부 경복궁 근정전
사망 1422년 6월 8일 (향년 54세)
한성부 경복궁 흥복전
능묘 헌릉 (獻陵)
재위기간 조선 정안대군
1392년 8월 13일 ~ 1398년 10월 22일
조선 왕세제
1398년 10월 22일 ~ 1400년 12월 7일
조선 국왕
1400년 12월 7일 ~ 1418년 9월 18일
조선 상왕
1418년 9월 18일 ~ 1422년 6월 8일
[ 펼치기 · 접기 ]
본관 전주 이씨
휘 방원 (芳遠)
부모 부왕 태조, 모후 신덕왕후
배우자 원경왕후 (1382년 혼인)
자녀 슬하 2남 1녀
종교 유교 (성리학)
신장 178cm
봉호 정안대군 (靖安大君)
묘호 태종 (太宗)
존호 성덕신공 (聖德神功)
시호 문무광효대왕 (文武光孝大王)

개요

삼가 생각하건대, 태상왕 전하께서 홍업(洪業)을 초창하시고 상왕 전하께서 큰 사업을 이어받으시어, 삼가고 조심하여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충성이 천자(天子)에게 이르고, 효하고 공경함이 신명(神明)에 통하여 나라의 안팎이 다스려 평안하고 나라의 창고가 넉넉하고 가득하며, 해구(海寇)가 와서 복종하고, 문치(文治)는 융성하고 무위(武威)는 떨치었다.

조선의 제3대 국왕. 묘호는 태종(太宗), 휘는 방원(芳遠).

1367년 6월 13일, 아버지 이성계와 어머니 신덕왕후 사이에서 2남 중 2남으로 태어났다. 1398년 형 정종이 왕위에 올랐으나 후사가 없자 왕세제에 책봉되었고, 정종이 왕위에 더 욕심이 없어 이방원은 정종의 양위 후 조선의 제3대 국왕으로 즉위한다.

즉위 이후로는 철저한 현실주의적 시각으로 유교 중심의 국가 시스템 확립을 목표로 하였다. 불교 탄압 정책을 실행했으며, 4군 6진으로 외환을 제거하는 한편 명에 대한 사대로 실리주의적인 외교를 펼쳤다. 즉위 초엔 정사에 열정적이였으나, 형수인 왕대비 정안왕후와 여러 충돌을 빚으며 국정 의욕을 상실해 아들 세종에게 양위 후 상왕으로 물러났으며, 아들 세종의 자질을 크게 칭찬하며 편안한 말년을 보내다 병사하였다.

치세

18년 간 왕위에 있었으나 승유억불 정책과 4군 6진 개척 외엔 업적이 있다 보기 어려운 군주이다. 이는 왕위에 오른 뒤 왕대비 정안왕후와 여러 충돌을 빚으며 국정 의욕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왕대비 정안왕후가 국왕 태종과 왕비 원경왕후의 궁중 살림에 여러 관여하고, 나랏일에 거침 없이 목소리를 키웠으며 태종의 국정 운영에 늘 불만을 제기하며 단식 투쟁을 해 태종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조선왕조.png
조선 국왕
[ 펼치기 · 접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