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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7일 (목) 18:03 판

십계명이 적힌 돌을 든 모세.jpg

개요

모세야훼로부터 받은 10가지 계율이기에 '십계명'으로 불린다. 기독교에서는 이 십계명을 위반한 여부를 가지고 대죄이냐 소죄이냐를 판별하기도 한다. 또한, 아브라함이나 야곱 등이 살았던 족장시대에 야훼의 말씀을 기록한 성문화된 경전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1] 십계명은 '말씀'을 담은 최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원래 모세가 40일 동안 시내 산에 있으면서 깨끗한 석판에 하느님의 말씀을 적어서, 기쁘게 들고 산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내려와 보니 자기 형 아론과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서 화가 난 모세는 석판을 던져서 깨버렸다. 이후 모세가 자기 형 아론에게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냐고 따지니 아론은 할 말이 궁색해서 사람들이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조르길래, 금을 가진 사람들에게 청해 을 모아서 불에 던졌더니 금송아지가 나오더라고 씨알도 안 먹힐 변명을 했다. 이에 제대로 열받은 모세와 레위인[2]들은 우상을 숭배한 3,000명 가량의 사람들을 숙청해 버린다. 그 후에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올라가서 다시 받았다고 한다.

종교적 관점을 제하고 봐도 모세의 행동은 충분히 정당성이 있다. 기껏 고생하면서 하느님의 말씀(=타락하지 않기 위한 행동지침)을 곰곰이 생각하며 새겼건만, 그 사이를 참지 못한 백성들이 그새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 숭배를 하고 있으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미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실제 성서에서는 단순히 석판을 깨고 군사를 모아 우상 숭배자들을 몰살했다는 기록만 남아있지만, 영화 십계에선 한 술 더 떠, 십계명이 적힌 석판을 금송아지에 집어 던지자 금송아지 주변에 있던 땅이 갈라지는 것으로 묘사했다.

원래 성경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개신교의 경우 성경을 출판할 때에 따로 발췌하여 부록으로 수록하는 경우가 많으며, 가톨릭 성경에는 부록으로 발췌하진 않고 대신 기도서에 들어있다.[3] 원래 성경 겉표지 안쪽에 십계명을 넣은 이유 자체가 예배 때 외우라고 있는 것이고, 실제로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의 보수적인 장로교나 개혁 교회에서는 오전 예배 시작 때 이것을 낭독하며, 흔히 생각하는 사도신경은 저녁 예배 때 낭독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예배 순서에서 십계명을 외우는 개신교는 사실 별로 없다.

가톨릭에서도 가톨릭 기도서 내 주요 기도문으로 십계명이 실려 있다.

타 종교에서 비슷한 개념을 들자면, 불교에서 재가인(평신도)이 지켜야 할 규정인 오계가 있을 것이다. 음주를 금하는 것을 제외하고는[4] 오계의 내용은 십계명에서도 비슷한 규정을 찾을 수 있다. 오계 이외에도 팔계, 십계 등도 불교에 있으나 너무 빡세서 잘 안 쓰인다.

원문

성경에서 모세의 십계명에 대한 직접적 서술을 한 곳은 출애굽기(탈출기)와 신명기다. 밑의 내용은 출애굽기(탈출기)에 나오는 모세의 십계명에 대한 구절이다.

1이 모든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2"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다.
3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4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5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5][6]
6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7]
7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야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9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10이렛날은 너희 하느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 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11야훼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훼께서 안식일에 복을 내리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
12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13살인하지 못한다.
14간음하지 못한다.
15도둑질하지 못한다.
16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
17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8][9]
(출애굽기 20장 1~17절, 공동 번역 성서)

구분법

유대교, 정교회, 대부분의 개신교(성공회 포함)[10]가톨릭, 일부 개신교(루터교회)[11]
1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2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마라.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3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12]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주일을 거룩히 지내라.[13]
4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부모에게 효도하여라.[14][15]
5부모를 공경하라.사람을 죽이지 마라.
6살인하지 마라.간음하지 마라.
7간음하지 마라.도둑질을 하지 마라.
8도적질 하지 마라.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9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10네 이웃의 아내나 재물을 탐내지 마라.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이 두 가지를 비교하면, 가톨릭과 루터교회의 제1계명이 정교회나 다수 개신교에서는 제1계명과 제2계명으로 나뉘어져 있다. 반면에 가톨릭과 루터회의 제9계명과 제10계명이 정교회나 다수 개신교에서는 제10 계명으로 합쳐져 있다.

첫 1~4(가톨릭 및 루터교회에선 1~3)계명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지만, 나중에 있는 5~10(4~10)번은 인간 사회에서 보편적인 도덕규범이다. 특히 앞선 계명들은 인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코 하느님과 같은 자리(또는 그 위의 위치)에 오를 수 없음을 의미하기에, 훗날 나타난 개념인 메멘토 모리와도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십계명 역시 1등은 항상 하느님이 차지하고 있으니 절대로 교만에 빠지지 않고 항상 겸손하게 살라는 지침이었다.

또한 굳이 유대교,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니어도 5~10(4~10)번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으며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물론이요, 높은 확률로 법의 심판을 받는다. 살인, 강간, 위증, 절도, 강도는 모두 형법상 죄이며, 간통의 경우 한국에서는 더이상 형법상 죄가 아니지만 민사상으로 여러가지 불이익이 뒤따른다. 굳이 따지자면, 이혼 시 높은 위자료를 청구 받거나 재산 분할에서 큰 불이익을 당하는 등, 다시 말해 이혼을 요구할 권리를 잃는 모든 일을 말한다.[16]

물론 모든 도덕과 법이 항상 지켜지지 않듯, 십계명 또한 심지어 그리스도교 내에서조차도 항상 지켜지지는 않는다. 종교적 해석에 기인하자면, 인간이 타락한 이래로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생각과 말과 행위에 있어서 날마다 계명들을 어긴다. (전도서 7:20, 요한 1서 1:8, 창세기 8:21, 야고보서 1:14, 3:2-8, 시편 19:1–12, 열왕기 상 8:46) 심지어 현대에도 기복신앙에 젖은 몇몇 탐욕스러운 종교인들은 지금도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십계명을 온전히 준수하려는 노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며, 계명 어기는 것에 대한 여러 성경 구절들은 인간의 영적인 나약함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이해함이 타당하다. 결국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도움 없이는 인간의 노력만으로 십계명을 온전히 지키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힘들다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학의 지론.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국 한두 번은 어길 수밖에 없는 마당에, 대놓고 십계명을 어기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17]

현대에 있어 가장 무시되고 있는 계명이자, 어찌보면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계명은 다음의 계명이다.
7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야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유대인들에게는 동아시아에 있는 피휘같은 관념이 이었는데 자기보다 높은 사람의 면전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건 굉장히 무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건 자기보다 낮은 사람에게나 가능했다. 문제는 하느님은 누구보다도 높은 존재이고 동시에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아무도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이 계명은 그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아무도 못부르고, 적지도 못하다보니 이름이 실전되어버린 것이다. 유대인들은 신의 이름을 아예 안쓸 수는 없어서 히브리어로 'יהוה'라고 기록하였는데, 이는 신의 이름에서 모음만 기록한 것이다. 이를 라틴어계 문자로 옮기면 YHWH 또는 YHVH가 된다. 적을때는 자음으로 적었지만, 당시에는 신의 이름을 다들 알고 있었지만, 읽을 때 절대로 부르면 안되었다. 따라서 모두가 같이 읽을 때는 아도나이(나의 주인, 주님)라 읽게 되었다.

그리스에 전해진 이후에도 철저히 지켜지는데 하느님의 이름은 테트라그람마톤(τετραγράμματον)' 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이는 네 글자라는 뜻으로 로마시대 이후까지 전해진다. 'יהוה', YHWH 또는 YHVH 마저도 피휘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처럼 야훼나 여호아를 감히 부르는 사람은 십계명 기준으로는 지옥에 떨어질 범죄자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야훼는 하느님의 이름의 모음자만 모은 것으로 실제로 어덯게 불렀는지는 실전되어버렸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자면 이름을 부른게 아닐 수 있다. 따라서 완전히 무시되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 계율이라는 이상한 형태로 준수되고 있는 것이다.


  1. 에녹이 에녹서를 썼다고 하나 이는 외경으로 취급받는다.
  2. 레위 지파가 제사장 지파가 된 이유를 이 일에서 찾는 경우가 있다.
  3. 이는 기도서의 유무에서 비롯된 차이인데, 가톨릭은 개신교보다 정형화된 기도문이 많기에 따로 기도서를 발행하고 십계명도 여기에 적은 것이다. 즉 개신교 입장에서는 정형화된 기도문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주기도문, 사도신경 정도가 전부이기에, 성경의 부록으로 합쳐서 휴대성을 극대화한것.
  4. 그것도 평신도에게는 완화되어 술에 취하지 마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승려들은 술 마시지 마라고 해석한다.
  5. 북이스라엘 왕국에서 자꾸만 왕가가 망하는 것 역시도 우상을 섬겨서(여로보암, 바아사, 예후), 아예 이방신을 섬겨서(아합) 등의 일을 저질러 야훼가 저 꼬라지를 보고 빡쳐서 예언자를 시켜 "너 망할거야" 라고 말하고 진짜 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개중에는 예후처럼 아예 "니가 저놈들 다 죽여 버리고 니가 왕 해라 그럼 니 다음으로 4대까지 보장해주마" 같이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이것도 조금은 기준이 달라서 유다 왕국은 그래도 다윗에게 한 약속 때문에 자주자주 벌을 주지만 므나쎄 전까지는 나라는 안 망하게 해줬고 빡치게 해도 예를 들어 이방신을 들여왔다고 미치도록 까이는 아합도 나봇의 포도원을 뺴앗았다가 예언자 엘리야가 "니 하는 꼴 보니 니 대에 가문 망함" 이라고 한 것에 싹싹 빌며 사과하자 "좀 봐 줄게 니 다음 대에 망한다." 라고 바꾸었고 므나쎄도 이쪽도 이방신을 들였다고 므나쎄 대에 망할 뻔 했지만 일단 안 망하고 다음 대인 요시야가 조상들의 죄를 뉘우치고 평생동안 열심히 야훼를 섬기자 봐 줘서 요시야 대에는 망하게 하지 않았다고 기술한다. 아무리 요시야가 잘 섬겨도 망할 수 밖에 없던건 워낙 므나쎄가 죄를 많이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기술한다.
  6. 열왕기에서는 왜 안 망했는지 나오지 않고 역대기에서 중도에 회개하였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기술된다. 다만 열왕기에서도 무려 44년이나 재위했다고 언급하여 간접적으로 므나쎄가 죄는 저질렀어도 야훼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언급한다.
  7. 다윗이 야훼를 잘 섬겨 솔로몬 사후에도 나라가 반쪽으로 갈리긴 했어도 왕관은 지켰고 치드키야에 이르기까지 오래도록 왕위를 지켰다고 기술된다. 물론 그 와중에도 제대로 안 믿는 왕도 있었지만 안 믿는 왕과 믿는 왕이 번갈아 나타나서 어느 정도 유지는 되었다. 물론 므나쎄때는...
  8. 아합이 혼쭐난 이유가 이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아합은 궁 근처에 나봇이라는 사람이 소유한 포도원을 탐냈다. 그런데 닥치고 뺏기는 찝찝했던지 나봇에서 값을 잘 쳐 줄테니 팔라고 했으나 그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에게 땅이란 하느님이 내려주신 것이기에 함부로 사고팔 수 없다고 여겨서 나봇이 거절하자 포도원은 탐나는데 먹지를 못해 끙끙대자 아내 이세벨이 그걸 알고는 나봇을 모함하여 죽이고 포도원은 빼앗아 남편에게 주었다. 어찌되었든 나봇의 포도원을 먹은 아합이 희희낙락하며 포도원에 가보니 예언자 엘리야가 빡쳐서 아합에게 니 대에 가문이 망할 거라고 예언을 내린다. 물론 아합이 아차 싶어 싹싹 빌어 그나마 아합의 대에 망하게 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예언대로 아합의 가문은 아합의 아들 대에 폭삭 망하며 심지어 예언대로 아주 비참하게 멸망한다.
  9. 이세벨도 성경에서 아주 제대로 까이는 사람인데 아예 이방인에 이방신인 바알을 믿으며 남편에게서 종교 문제를 일임받아 이스라엘에서 믿는 야훼 신앙을 탄압하는지라 까이는 정도가 아합보다 더하다.
  10. 모르몬교도 이 십계명 구분법을 사용한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도 동일
  11. 여기에 인용된 구절은 가톨릭 기도서에 수록된 십계명을 따랐다.
  12. 정교회와 성공회에서는 "하느님"으로 표현한다.
  13. 이 구절 때문에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등에서 가톨릭이 성경을 변개했다고 딴지를 걸기도 한다.
  14. 이 부분이 조선 역사에서 다뤄진 적이 있다. 기해박해로 인해 정하상이 잡혔을 때 정하상은 천주교를 옹호하는 글을 지었는데, 이 때 조선에서는 천주교도들을 두고 무부무군(無父無君; 아버지도 임금도 안중에 없는 이들)의 무리라 불렀다.(신해박해 당시 정하상의 아버지인 정약종의 책에서 무부무군이라는 표현이 나온 바 있는데, 왜 썼는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썼다는 이유로도 문제였다. 정약종은 천주교인이었다. 안 그래도 천주교는 이미 정조 시절 진산 사건으로 인해 불효자 집단 취급을 받아왔는데, 이 일로 그러한 부정적 인식이 굳어졌다.) 이에 정하상은 십계명에도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구절이 있다고 하여 해명하려고 했다.
  15. 이 계명에는 기혼자 한정으로 자식과 부부에 대한 사랑과 존중도 포함된다.
  16. 다만 6번째 혹은 7번째 계명인 '간음하지 말라' 는 현대 사회에 들어서는 그 중요성이 크게 감소한 계명이긴 하다. 간음간통이나 문란한 성행위만을 의미하진 않고 '결혼 관계 외의 모든 성행위'를 일컫기 때문에 연인 간에 아무리 서로 사랑하고 충실하고 심지어 결혼을 약속했더라도 아직 결혼하지 않았으면 둘 사이의 성관계는 간음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독실한 그리스도교도들은 혼전순결을 지향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적어도 현대에 이르러 서구 사회나 한국 사회에서는 충분히 책임질 준비가 된 연인 간에 갖는 혼전 성관계는 도덕적 타락으로는 여겨지지는 않고 있다. 물론 이슬람권이나 하레디 사회 등 아직도 혼전순결이 당연한 문화권 역시 많이 남아있다.
  17. 그런 행위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예레미야 7:9절 에서 대놓고 까발렸던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