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 (나루히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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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공동세계관)}}
+
{{1세계관 일본국}}
{{나라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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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이름=일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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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나루히토)}}
|현지이름=일본국
+
 
|다른표기=(영어:Japan State)[br]일본어:日本国)
+
{{일본국 (나루히토) }}
|대표이미지=Panoramic view of tokyo-1.jpg
+
=개요=
|대표이미지_설명=[[동경]]의 전경
 
|국기_그림=Flag of Japan.svg
 
|문장_그림=Imperial Seal of Japan.svg
 
|문장_이름=황실 문장(관습상)
 
|지도_그림=Map of Japan.png
 
|지도_그림_설명=
 
|나라_표어=대화 민족의 시대[br](명치 33년 1900년~평성 23년 2011년)[br]우리 시대의 평화와 화합[br](평성 23년 2011년~현재)
 
|나라_표어_설명=
 
|국가=기미가요
 
|국가_듣기=
 
|지도=
 
|너비=
 
|수도=[[동경]](사실상)
 
|수도위치=
 
|최대도시=
 
|공용어=[[일본어]]
 
|국민어=
 
|지역어=아이누어, 류큐어
 
|정부형태= 단방제, 군주제, 입헌제, 의원내각제, 양원제, 문민통제
 
|지도자_칭호= [[일본국 천황 (공동세계관)|천황]]
 
|지도자_이름= [[나루히토]]
 
|지도자_칭호1=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공동세계관)|내각총리대신]]
 
|지도자_이름1=[[에다노 유키오]]
 
|지도자_칭호2= [[일본국 참의원 (공동세계관)|참의원 의장]]
 
|지도자_이름2= [[히라노 히로후미]]
 
|지도자_칭호3= [[일본국 중의원 (공동세계관)|중의원 의장]]
 
|지도자_이름3= [[오카다 가쓰야]]
 
|지도자_칭호4= [[일본국 사법원장|사법원장]]
 
|지도자_이름4= [[나카니시 간]]
 
|주권=[[일본국 헌법 (공동세계관)|헌법]] 공포
 
|주권_설명=1900년
 
|정부수립1=나루타키 도시미치 내각
 
|정부수립일1=1900년~1907년
 
|정부수립2=야마가타 아리토모 내각
 
|정부수립일2=1907년~1914년
 
|정부수립3=가토 다카아키 내각
 
|정부수립일3=1914년~1922년
 
|정부수립4=[[제1차호헌운동]]
 
|정부수립일4=1922년
 
|정부수립5=가쓰라 다로 내각
 
|정부수립일5=1922년~1923년
 
|정부수립6=[[제2차호헌운동]]
 
|정부수립일6=1923년
 
|정부수립7=[[1923년 체제]]
 
|정부수립일7=1923년~1945년
 
|정부수립8=[[1945년 체제]]
 
|정부수립일8=1945년~현재
 
|EU 가입일=
 
|면적=377,915㎢
 
|면적_순위=
 
|내수면_비율=0.8
 
|시간대=일본표준시
 
|UTC_시차=+9
 
|일광절약시간=
 
|인구어림년도=2019
 
|어림인구수=162,282,757
 
|인구_순위=
 
|인구조사년도=
 
|조사인구수=
 
|인구밀도=429.4명/㎢
 
|인구밀도_순위=
 
|GDP_PPP_년도=
 
|GDP_PPP=$7조 3913억 3045만 7조 9273억 5039만
 
|GDP_PPP_순위=
 
|일인당_GDP_PPP=$4만 8849
 
|일인당_GDP_PPP_순위=
 
|명목_GDP =$7조 1720억 8644만
 
|명목_GDP_순위 =
 
|인간개발지수=0.903
 
|HDI_순위=
 
|HDI_조사년도=2018년
 
|지니_계수=
 
|통화= [[일본국 엔 (공동세계관)|일본국 엔]](¥)
 
|통화기호=JPY
 
|단위=
 
|ISO1=JPN
 
|ISO2=JP
 
|ISO3=
 
|국가도메인=.jp·.日本
 
|국제전화번호= 81
 
|보충설명={{각주}}
 
}}
 
[[파일:View of osaka-1.jpg|500px|섬네일|왼쪽|오사카의 전경]]
 
[[파일:Panoramic view of tokyo-1.jpg|500px|섬네일|왼쪽|도쿄의 전경]]
 
[[파일:Sapporo panoramic view(Snow Festival 1).jpg|500px|섬네일|왼쪽|삿포로 눈축제]]
 
[[파일:Temples of Kyoto-1.png|550px|섬네일|왼쪽|교토 청수사]]
 
==개요==
 
 
||[youtube(zCLOJ9j1k2Y)]||
 
||[youtube(zCLOJ9j1k2Y)]||
'''일본국([[일본어]]: 日本国, [[한문]]: 日本國, [[영어]]: Japan State)'''은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의원내각제, 입헌군주제, 단방제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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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일본어]]: 日本国, [[한문]]: 日本國, [[영어]]: State of Japan)'''은 [[아시아]],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의원내각제, 입헌군주제, 단방제 국가이다.
==상징==
+
=상징=
{{일본국 (공동세계관)의 상징}}
+
{{일본국 (나루히토)의 상징}}
===국호===
+
==국호==
'''일본국(日本国)'''이 국호로 제도화된 것은 1900년으로 헌법 공포와 함께 '국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일본국이 국호로 제정됐다.
+
{| class="wikitable"
 
+
|-
이전에 '일본'이라는 단어가 국호로 등장한 최초의 사례는 670년으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대화국의 사신이 와서 자신들의 국호를 일본으로 개칭하였고 뜻은 동쪽(즉 해가 뜨는 곳)과 가깝기 때문이라 했다고 한다. 일본 역사 학회는 율령 체제가 도입된 8세기 경에 일본이라는 국호가 창출됐다고 한다. 일본이라는 국호를 쓰기 이전에 일본국은 대화(大和)라는 국호를 사용했는데 일본어 원음은 '야마토'이며 야마토 조정에서 나온 표현이다. 중국이나 외국에서는 왜국(倭國)이라 일본을 칭했다.
+
! 언어 !! 해당언어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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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일본어 독음은 니혼(にほん, Nihon) 혹은 닛폰(にっぽん, Nippon)인데 전자와 후자의 사용 빈도에 대해서는 제대로된 정보가 없으나 요즈음은 후자인 닛폰의 사용 빈도가 많다. 영어 독음으로 일본을 읽으면 저팬(Japan)이다.
+
| 일본어 || 日本(にほん, にっぽん)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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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국어 || 일본
 +
|-
 +
| 영어 || Ja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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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프랑스어 || Japon
 +
|-
 +
| 독일어 || Japan
 +
|-
 +
| 러시아어 || Япония
 +
|-
 +
| 중국어 간체&번체 || 日本
 +
|-
 +
| 베트남어 || Nhật Bả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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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자 전형인 신자체로 국호를 표기하면 日本国(일본국)이며 한자 번체로는 日本國(일본국), 한자 간체로는 日本国(일본국)으로 영어로는 Japan(저팬)으로 표기한다. '일본'의 일본어 독음은 니혼(にほん, Nihon) 혹은 닛폰(にっぽん, Nippon)인데 영어 독음은 저팬(japan)이다.
 +
==국기==
 +
{{일본국 (나루히토)/국기}}
 
[[파일:Flag of Japan.svg|섬네일|가운데|일장기(日章旗)]]
 
[[파일:Flag of Japan.svg|섬네일|가운데|일장기(日章旗)]]
일본국의 공식 국기는 '''일장기(日章旗), 히노마루(日の丸 ひのま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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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의 공식 국기는 '''일장기(日章旗), 히노마루(日の丸 ひのまる)'''. [[일본어 (나루히토)|일본어]]로는 일장기를 '닛쇼-키(にっしょうき)'라 읽지만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 대다수는 '히노마루(日の丸 ひのまる)'라 읽는다. 여기서 히노마루는 일장기를 뜻하기도 하고 일본이나 [[일본국 정부 (나루히토)|일본 정부]], 또는 일본의 독자적인 무언가를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
==국장==
[[일본어 (공동세계관)|일본어]]로는 일장기를 '닛쇼-키(にっしょうき)'라 읽지만 [[일본인 (공동세계관)|일본인]] 대다수는 '히노마루(日の丸 ひのまる)'라 읽는다. 여기서 히노마루는 일장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일본국이나 일본국 정부, 또는 독자적인 일본의 무언가 따위를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
{{일본국 (나루히토)/국장}}
 
 
일장기에서 홍색(紅色)의 원은 태양을 뜻하고 전체적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형태인데 이는 [[일본인 (공동세계관)|일본인]]이 태양신 아마테라스의 후손이라는 신화에서 착안하였다. 초기에는 홍색 부분이 적색(赤色)이었으나 이후 홍색으로 교체됐다.
 
 
 
일장기가 처음 사용된 것은 '몬무 천황'의 치세 시기로 태양을 형상화한 깃발을 썻다는 기록이 있다.[* 속일본기 기록.] 허나 예전에는 현재처럼 백색(白色), 홍색 조합이 아닌 적색 바탕에 금색(金色)이나 황색(黃色)의 원을 그려 넣은 모습이었고 여기에 황실 문장을 넣어서 금어기(錦御旗)로[* 다만 가마쿠라 막부 이전에는 국장을 안 넣았다. 그 이후에 금색 원에다가 황실 문장을 장착했다.]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현재의 백색+적색 조합의 일장기는 언제부터 사용됐느냐, 바로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부터 사용됐다. 이후 에도 막부가 들어서자 교역선의 상선기로 사용되었고 쿠로후네 사건이 일어난 다음 개항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국기(國旗)로 관습화되었으며[* 일본국 태정관지령 상선기령] 1900년에 제정된 '국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기로 제도화되었다.
 
 
 
현재에는 관공서에 의무적으로 게양되고 국경일에도 의무 게양을 해야 한다.[* 국기에 관한 법률 제3조(국기 게양)] 주로 황실 행사나 국가 행사 등에서 소지하여 흔드는 것을 많이 포착할 수 있으며[* [http://www.example.org 일본국 정부 내각부 국무원 보고서, 국가 행사나 황실 행사에 국기를 소지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 효과 정리]] 민간 축제 때에도 흔치 않게 사용된다. 이렇게 국기의 사용 빈도가 많은 것은 일장기를 흔드는 것에 대해 '히노마루는 태양이 떠오르는 형상이고 이는 히노마루를 흔들면 흔들수록 세계에 더 많은 빛이 내릴 것이다'[* [http://www.example.org 일본국 정부 문부과학성 문화연구원 보고서, 일본인이 히노마루를 많은 횟수로 흔드는 이유에 대한 가설 추론]]라는 민간 풍토 사상 때문이라는 가설이 존재한다. 다만 해외에서는 민폐로 여겨져서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사용을 안한다.
 
 
 
준국기에는 천황기가 있는데 일장기와 함께 양손으로 흔드는 경우가 있고 한 손에 다 들고 흔드는 경우도 있다. 천황기를 동반해서 쓸 때에는 황실 행사에 한정한다.
 
===국장===
 
 
[[파일:Imperial Seal of Japan.svg|섬네일|가운데|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파일:Imperial Seal of Japan.svg|섬네일|가운데|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일본국의 관습상 국장은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십육일중표국문(十六一重表菊文), 국화문(菊花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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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의 관습상 국장은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십육일중표국문(十六一重表菊文), 국화문(菊花文)'''이다. 명칭이 다양한데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쥬-로쿠요-하치쥬-효-키쿠,,)과 십육일중표국문(十六一重表菊文, ,,쥬-로쿠이치쥬-효-키쿠,,), 국화문(菊花文, ,,키쿠카,,) 등이 있다. 여기서 국화문은 말 그대로 이 문장에 쓰인 꽃이 국화(菊花)라서 쓰이는 이름이며, 십육엽팔중표국문의 뜻은 '16개의 잎, 8개의 겹을 가진 국화문'이다. 십육일중표국문은 '16개 홑겹을 가진 국화문'이라는 뜻이다. 보통은 국화문이라는 호칭이 널리 사용된다.
 
+
==국가==
명칭이 3개인데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쥬-로쿠요-하치쥬-효-키쿠,,)과 십육일중표국문(十六一重表菊文, ,,쥬-로쿠이치쥬-효-키쿠,,), 국화문(菊花文, ,,키쿠카,,)가 그 3개다. 국화문은 말그대로 이 문장에 쓰인 꽃이 국화(菊花)라서 쓰이는 이름이다. 십육엽팔중표국문의 뜻은 '16개의 잎, 8개의 겹을 가진 국화문'. 십육일중표국문은 '16개의 홑개의 겹의 국화문'이라는 뜻이다. 보통은 전자나 국화문을 많이 사용한다.
+
{{일본국 (나루히토)/국가}}
 
 
국화문에 있는 꽃은 위에서 말했듯 국화를 형상화한 것이고 16개의 꽃잎이 중앙을 중심으로 모여 있으며 꽃잎의 끝에는 겹쳐져 있는 꽃잎 중 돌출된 꽃잎 8개가 표현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의 테두리선이 표시되어 있고 노랑색으로 색칠되있다.
 
 
 
국화문이 사용된 최초의 사례는 가마쿠라 막부 시절, 고토바 천황의 사용이었다. 이시기에 국화문이 황실을 상징하는 문장으로 정착됐고 금어기의 금색 원에 이 국화문이 장착된 시기 또한 가마쿠라 막부 시기이다. 이렇게 황실 문장으로 자리를 잡은 국화문은 시간이 흘러 현대에 와서도 일본국 황실의 문장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고 관습상 국화의 지위에 있다.
 
 
 
국화문은 국장으로서 여러 기관의 문장에 박아 넣기도 하며 또한 바리에이션이 꽤 있는데 화족 가문이나 궁가 문장에 이 문장의 바리에이션이 도입되는 경우가 많고 '십육국문'[* 말그대로 16개의 잎을 가진 국화인데 기존 뒤에 겹쳐 있던 꽃이 제거된 모습이다.]이나 '육국문'[* 6개의 잎을 가진 국화라는 뜻이다.]이 그 예다. 이외 [[일본국 천황기 (공동세계관)|천황기]]와 황족기 등에도 사용된다.
 
 
 
국기에 비해 국화문은 제도상으로 일본국 국화로 보장되어 있지 '''않고 있다.''' 그래도 [[일본국 여권 (공동세계관)|일본국 여권]]에 사용된 점[* 여권을 제정할 때 세계 만국은 여권에다가 국가의 국장 등을 부착하기로 결정했고 이때 이 국화가 일본국 여권에 부착되면서 국화의 지위를 국제법상 어찌저찌 가지게 되었다.], [[일본국 정부 (공동세계관)|일본국 정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공동세계관)|내각총리대신]] 직속 내각법제국의 '국장 보고서'[* 일본국 국장이 어느 것인지, 국화가 과연 일본국 국화인지에 대해 정리한 내각 서면이다.]에서 '관습상 국화 긍정설'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국화문은 관습상 국화의 지위만큼은 [[일본국 정부 (공동세계관)|정부]]가 보장하고 있다.
 
===국가===
 
 
||[youtube(S_HCh5RC6WI)]||
 
||[youtube(S_HCh5RC6WI)]||
 
일본국의 국가는 '''기미가요(君が代, きみがよ)'''이다.
 
일본국의 국가는 '''기미가요(君が代, きみが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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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기미가요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임의 시대'로 여기서 임()은 친밀한 사람들, 일본 국민(日本 國民)을 뜻한다. 즉 일본 국민의 시대, 친밀한 이들의 시대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며 전자가 공인되고 있다.[* [http://www.example.org 일본국 정부 내각법제국 보고서, 기미가요 일본 국민 긍정설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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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나루히토)/국화}}
 
 
기미가요는 요나누키 음계 (四七抜き 音階)[* 요나누키 음계란 서양 7음계를 기준으로 하여 4번째 파와 7번째 시가 빠진 형태에 5음계로서 도-레-미-솔-라로 이루어져 있다.]를 기반으로 삼고 있으며 여기에 서양식 화음이 덧댄 형태다. 노래는 총 11마디 29자[* 자수는 한글 기준]로 굉장히 짧다. 근데 이렇게 짧은 곡을 길게 부르다보니 중간에 음이 끊기는 느낌이 난다, 중간에 멈춘거 같다, 등의 반응이 존재하며 서양적 화음이 전혀 어울리지 않다는 여론도 있다. 그리고 좀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이 있어 일부에서는 좀 화색이 있는 국가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다. 한편 기미가요는 기본적으로 가가쿠[* 일본 궁정음악을 뜻한다.]의 형태를 가지고 있고 서양 색채가 얕으며 대신 일본적인 색채가 강하다. 가가쿠을 베이스로 하기에 국가 제창 때에는 교내·민립 아악부나 관립 아악부가 동원된다.
 
 
 
기미가요의 원본은 913부터 914년에 편찬된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에 수록된 단가였고 천황이 헨조 대사의 칠순을 축하하며 기미가요를 발신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금화가집(古今和歌集) 하가(賀歌)] 1869년, 명치 시대에 영국군 군악대장 존 윌리엄 펜튼이 최초로 기미가요를 작곡했지만 곡조가 너무 서양적이라는 비판을 받아 무산됐다. 이후 궁내성 아악부의 소속 오쿠 요시이사와 하야시 히로모리가 요나누키 음계를 기반으로 기미가요를 작곡하고 독일인 음악가, 프란츠 에케르트가 서양식 화음을 추가하면서 지금의 기미가요가 완성된다. 1900년에 '국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기미가요는 정식적인 일본국 국가로 지정된다.
 
 
 
기미가요는 연례 국가 행사와 일부 국경일에 의무 제창을 해야 하며[* 국가에 관한 법률 제3조(제창)] 교육기관 조회[* 교육기관 조회에 관한 법률 제3조(국가 제창)]·민간 행사·황실 행사·연례 행사[* 국가 연례 행사에 관한 법률 제4조(국가 제창)] 등에서 개막식 때 제창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해외 올림픽이나 국제 체육 때에도 선수단에 의해 기미가요가 국가로서 제창된다.
 
 
 
오키나와 민족주의자들은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하는데 기미가요가 일본국 국가라는 이유때문이다. 이들은 기미가요 대신 '조약돌의 노래'를[* 류쿠 왕국의 국가였다.] 부른다.
 
===국화===
 
 
[[파일:Prunus × yedoensis-1.jpg|섬네일|가운데|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ソメイヨシノ)]]
 
[[파일:Prunus × yedoensis-1.jpg|섬네일|가운데|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ソメイヨシノ)]]
 
일본국의 국화는 '''벚꽃(桜, ,,사쿠라,,)'''이다.
 
일본국의 국화는 '''벚꽃(桜, ,,사쿠라,,)'''이다.
 
+
==국조==
일본국의 국화는 벚꽃으로 정확히는 벚꽃의 품종 중 소메이요시노다. 원래 소메이요시노는 이름바 제주 왕벚나무와 동일 품종으로 인식됐지만 이후 서로 별개 품종으로 분화됐다.
+
{{일본국 (나루히토)/국조}}
 
 
소메이요시노는 밝은 분홍색을 띄고 있고 향기로운 냄새를 가지고 있다. 이때문에 관상용 나무로 애용되며 일본국 전역의 벚꽃 공원은 대부분 이 소메이요시노를 쓰고 있다. 소메이요시노의 근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토론공방이 벌어지지만 제주도에서 기원했다는 '제주기원설'과 일본국 내에서의 인공재배를 통해 만들어졌다는 '인공재배설'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인공재배설은 일본국 소메이요시노 학회에서 주장하고 있으며 제주기원설은 한국측 단체에서 주장하고 있다.
 
 
 
소메이요시노가 본격적으로 국제 사회와 일본국 사회에 등장한 것은 1900년대로서 1901년에는 'Prunus Yedoensis'라는 학명을 부여받았고 1902년에는 소메이요시노 학원에 의하여 서양 세계에 소개됐다. 이후 1912년에는 [[동경도]]가 '워싱턴 DC'에 소메이요시노를 선물하였고 이후 워싱턴 DC에서는 매년 벚꽃재가 열리게 됐다. 시간이 흘러 1990년, '국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소메이요시노는 일본국 국화의 지위를 얻게 되었고 오늘날에 이르었다.
 
 
 
대부분의 일본 국토에는 소메이요시노가 서식하고 있으며 도심지나 마을에 벚꽃 공원이 조성되있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국 전역에서는 벚꽃재가 거의 연례 행사로서 열린다. 벚꽃은 군 계급장이나 휘장, 훈장 등에도 사용된다.
 
 
 
준국화로는 황실의 상징인 국화(菊花)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공동세계관)|내각총리대신]], [[일본국 정부 (공동세계관)|일본국 정부]]에서 사용되는 오동잎이 있다. 다만 천황기와는 다르게 제도화되어 있지는 않고 관습상 준국화다.
 
===국조===
 
 
[[파일:Phasianus versicolor versicolor -1.jpg|섬네일|가운데|일본꿩(日本の雉, 日本のキジ)]]
 
[[파일:Phasianus versicolor versicolor -1.jpg|섬네일|가운데|일본꿩(日本の雉, 日本のキジ)]]
 
일본국의 국조는 '''일본꿩(日本の雉)'''이다.
 
일본국의 국조는 '''일본꿩(日本の雉)'''이다.
 
+
=역사=
일본꿩은 말그대로 일본에 서식하는 고유종으로 니혼키지(日本のキジ)라 부른다. 그냥 꿩(キジ)은 칸코쿠키지(高麗のキジ), 즉 한국꿩을 뜻한다.
+
{{일본국 (나루히토)/역사}}
 
+
==근대 이전==
일본꿩의 특징은 한국꿩보다 얼굴이 더 붉고 몸통이 갈색인 꿩과 달리 초록색이라서 다른 꿩들과 식별이 편하다. 혼슈와 시코쿠, 큐슈와 기타 등등 섬에서 서식하지만 미국에 의해 하와이 등에서 사냥용으로 키워지는 경우가 있다. 다만 미국이나 사냥용으로 들어온 일본꿩은 잡종과 교배를 하여 나온 일본꿩으로 일본꿩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
{{본문|전근대 일본 (나루히토)}}
 
+
{{본문|전근대 외지 (나루히토)}}
일본꿩을 국조로 제정하자는 논의는 1950년대 이후이며 '일본국 국조 학회'에서 일본국 정부에 일본꿩을 국조로 제정하자는 청원서를 제출했고 이후 정부가 이를 논의하여 '국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일본꿩이 제도상 일본국의 국조가 되었다.
+
==익한정부 시대==
 
+
{{본문|1900년 체제}}
아직 일본꿩을 사용한 상징은 별로 없지만 일부 대중매체에서 일본을 일본꿩으로 동물화를 해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1900년대===
==역사==
+
===1910년대===
===근대 이전===
+
===1920년대 초기===
{{본문|전근대 일본}}
+
==문민정부 시대==
===헌법 공포와 제1차 군정===
+
{{본문|1924년 체제}}
[[파일:헌정 국화회 2대 의장_이토_히로부미.jpg|180px|섬네일|가운데|이토 히로부미]]
+
===1920년대 중후기===
헌법 공포 때 공포된 헌법은 이토 히로부미를 의장으로 하는 '헌정 국화회'에서 제출하였는데 프로이센 입헌군주제를 기반으로 작성됐다. 헌법이 공포되고 헌법은 곧이어 제헌국회 양원의 비준을 받아 발효되었다. 동시에 초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공동세계관)|내각총리대신]]으로 [[나루타키 도시미치]]가 임명됐다.
+
===1930년대===
 
+
===1940년대 초중기===
[[파일:나루타키 도시미치 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나루타키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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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부 시대==
[[나루타키 도시미치]]는 사츠마 번 출신이었지만 아버지의 가르침을 승계한 덕분에 반전주의자, 민본주의자였다. 그는 사츠마 번 출신으로서 해군의 지지를 받았다. 나루타키 도시미치는 1대 2대, 3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다가 3대 내각총리대신직을 수행하다 병사한다. 근데 부검 과정부터 매장이 아닌 화장으로 장례 방식이 바뀐 것까지 그의 병사는 이상한 점 투성이었고 사츠마 번을 경계하는 조슈 번 인물들로부터 독살당했다는 '나루타키 독살설'이 제기되었으며 이는 후일 야마가타 내각 총사퇴 운동의 발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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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1945년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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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와 시대===
[[파일:야마가타 아리토모 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야마가타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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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후기====
[[나루타키 내각]]의 뒤를 이어 4대 내각총리대신에 [[야마가타 아리토모]] 장군이 임명되었는데 그는 당시 헌정회와 입헌정우회 내부 親조슈 번 인사들을 권력 기반으로 삼았다. 총리대신에 오른 야마가타는 치안유지법을 제정하여 사회주의 세력을 탄압하는 한편 군부대신 현역무관제를 도입하여 문민통제를 무너트렸다. 한편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헌의회'의 해산을 명령했는데 왜냐하면 헌의회가 야마가타의 치안유지법을 비판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헌의회는 명령에 불복하였고 일본 주요 도시에 파발을 띄워 군정에 대항하자는 여론을 조성한다. 이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일파만파로 퍼져나갔으며 대학생들은 군부에 의해 강제 해산된 헌의회를 계승한 '호헌동지회'를 설립한다. 호헌동지회는 나루타키 독살설을 강력히 주장했고 청년들의 평화 궐기를 도모했다. 당연히 [[야마가타 내각]]은 이들을 '반역분자'로 규정하였으며 이들에게는 집회장도 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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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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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파일:야마가타내각총사퇴운동.jpg|섬네일|야마가타 내각총사퇴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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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 상황에서 야마가타 내각은 [[동경]]의 긴자 거리에서 일어난 호헌동지회의 데모 진압 과정에서 검 사용을 허용했고 결국 1914년 1월 9일, 학생 '노리타 기이치'가 싸늘한 주검으로 요코하마 시 앞바다에서 발견된다. 그의 죽음이 자유주의 신문사를 통하여 전국각지에 퍼져나가자 늦게나마 야마가타 내각은 '출판령'을 공포하여 신문에 대한 검열 작업을 시작했지만 이미 주요 도시인 교토, 오사카, 히로시마, 나가사키, 도쿄, 요코하마, 고베 등에서 노리타 기이치의 죽음을 추모하는 애도 시위가 발발한다. 그리고 애도 시위는 급격히 '야마가타 내각 총사퇴 운동'으로 확대됐으며 야마가타 내각에 불만이 많았던 해군마저 야마가타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하자 결국 야마가타 내각총리대신이 사퇴하며 야마가타 내각은 퇴진되고 입헌동지회의 가토 다카아키가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한다. 이에 따라 야마가타 내각 총사퇴 운동도 자진해산되고 다시 정국은 안정되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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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입헌동지회 내각, 그리고 제1차호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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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시대===
[[파일:가토 다카아키 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가토 다카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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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정권을 바통터치한 [[가토 다카아키]] 내각총리대신은 조슈 번 인사와 연계하여 권력 기반을 강화하였고 치안유지법과 출판령을 유지시켜 사회주의자 탄압을 지속시켰다. 한편 '학회령'을 선포하여 정부의 공인을 받지 못한 학회는 합법적 활동이 불가하도록 하여 자유주의 학회의 출범을 막았다. 이는 점차 자유주의자들의 불만으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일어난 제1차세계대전에 의해 일본국은 전시체제 상태였고 가토 내각은 이를 명분으로 하여 출판령, 학회령, 치안유지법을 계속 유지시켰다. 제1차세계대전 과정에서 일본은 막대하게 공업력을 증강시킨 후 이를 바탕으로 나오는 중공업 공산품을 유럽에 수출하면서 무역 특수를 누리고 식량 수요의 상승으로 농작물 산업이 호황을 맞이한다. 이에 따라 중상층과 상류층 인구가 점차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게 되고 정권 지지도도 상승하면서 자유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보수주의 온건론자들은 조용히 때를 기다리기로 하고 지하로 숨어든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무역 특수가 사라지고 군량미로 차출되던 식량이 시중에 풀림에 따라 식랴량 수요가 저조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이는 일본의 경제 위기로 직결된다. 무역 특수의 상실은 무역 회사들의 연쇄 적자를 일으켰고 제조 회사, 운송 회사가 차례대로 타격을 입으면서 일본 경제 전반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가토 내각]]은 당장 앞에 있는 회사의 재정 위기에만 집중하여 연쇄 적자의 원인인 수출 감소에 대해서는 내팽겨치고 적자를 맞이한 회사에 자금 지원을 실시한다. 허나 이는 막대한 국가 재정이 소모되는 일이었고 이에 가토 내각은 조세 제도를 개편, 증세를 통해 높여 재정 마련에 나선다. 가토 내각은 농민을 향해 가혹한 세금을 내게끔 조세 제도를 뜯어고쳤고 가뜩이나 식량 수요가 떨어져 침체에 빠진 일본 농업을 붕괴시키게 된다. 일본 농업이 무너지면서 일본의 식량 자급률과 농산물 시장 내에서의 일본의 경쟁력은 급격히 추락했으며 이에 내각은 식량 공급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외에서 식량을 수입하는 정책을 폈는데 이는 일본 재정이 해외로 유출되는 결과를 낳아버린다. 한편 농업이 무너지자 생계를 위해 지방의 농민들이 농촌을 버리고 도심지로 이동하는 이촌향도 현상이 일어나 주요 도시의 부동산이 원래 가치에 비해 고평가되면서 '거품'이 끼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촌향도 현상은 1923년에 이르어 절정을 이룬다. 도시 사회가 이촌향도 현상과 쌀 소동 등으로 불안해지면서 호헌파는 이름바 '다이쇼 데모크라시'에 편승하여 활발한 사상 운동과 정치 운동을 전개했고 가토 내각의 정책 허점과 현 경제적 사회적 문제들을 지적하며 문민정부 수립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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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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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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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
[[파일:일본국 제1차호헌운동.jpg|섬네일|제1차 호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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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중후기====
그리고 이는 1922년에 [[제1차 호헌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현역무관제 폐지, 자유해방3법[* 출판령, 학회령, 치안유지법을 일컫는다.] 폐지, 문민정부 수립을 주장하며 전국적인 집회를 일으켰다. 가토 내각 말기의 불만이 이렇게 터져나오자 [[가토 내각]]은 결국 바통을 [[가쓰라 다로]]에게 넘기면서 제2차 입헌동지회 내각이 수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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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파일:가쓰라 다로 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가쓰라 총리]]
 
제2차 입헌동지회 내각은 일단 학회령을 폐지하고 출판의 자유에 대해서도 유연한 방식을 취하는 한편 농민 감세를 실시하여 성난 민심을 진정시키는 것 같았는데 오히려 자유해방3법을 뛰어넘는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현역무관제 유지를 선언하면서(가쓰라 담화) 호헌파에게 --빅엿과 --현상유지를 통보한다. 이에 호헌파의 불만이 차고오르자 [[가쓰라 내각]]은 이번에는 강경책을 적용하여 호헌파 학회들을 강제 해산시키는 한편 헌병경찰을 도입하여 치안을 강화한다. 이러한 가쓰라 내각의 강경책으로 결국 호헌파는 수세에 몰려 다시 지하로 숨어들어간다. 1923년이 되어 1922년 일어난 제1차호헌운동 직후 1년 만에 호헌파는 다시 지하 조직이 되었지만 이 상황에서 간토 대지진이 일어난다. 간토 대지진으로 전체 부동산 거품의 50%를 차지하던 간토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게 되고 파급력은 막대하여 [[교토]], [[오사카]] 등의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원인이 된다. 전후 경제 위기 이후 일본 경제를 견인하던 부동산 거품이 사라지면서 일본 경제는 혼돈에 빠진다. 결국 [[가쓰라 내각]]에 대한 민중의 지지율은 폭락했고 이 틈을 노려 호헌파는 [[제2차 호헌운동]]을 계획한다. 제2차 호헌운동의 철저한 준비를 위해 호헌파는 자유주의자, 보수주의 온건론자, 사회주의자의 단합을 위해 [[일본국 호헌회]]라는 통합 반정부 단체를 설립했다. 이후 호헌회는 각 지역에 지부를 설치하고 각 대학교마다 뜻을 같이 하는 이들을 모와서 '호헌 청년 연합'을 설립하는 한편 '호헌 부녀자회'를 조직하여 여성들의 참여를 독려했는데 이는 차후 헌법 개정에서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각계 각층에서 호헌 단체를 만들고 호헌회는 점조직 형태로 이들을 지휘하며 [[제2차 호헌운동]]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침내 1923년 12월 8일에 [[제2차 호헌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격문 수백만장을 주요 도시에 살포하는 한편 각 도시마다 준비된 호헌회 인원들로 하여금 궐기가 일어난다.
 
===제2차 호헌운동과 문민정부 수립===
 
[[파일:일본국 제2차호헌운동.PNG|섬네일|제2차 호헌운동]]
 
전국적으로 호헌운동이 전개되자 [[가쓰라 내각]]은 당황하여 육군 전력을 동원하여 강경대응을 실시했다. 허나 이미 시위는 일파만파로 커진 상태였으며 [[다이쇼 천황]]도 가쓰라 내각의 시위대를 향한 발포 명령을 강력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해버리면서(다이쇼 선언) [[가쓰라 내각]]은 1923년 12월 30일에 총사퇴를 한다. 이로서 군정정부는 몰락하게 된다. 가쓰라 내각이 퇴진하자 다이쇼 천황이 친정을 선언하고(다이쇼 친정) 호헌회 인물들로 하여금 '개헌위원회'를 설치시켜 헌법 개정 작업을 명한다. 호헌회는 영국식 의원내각제 도입을 다이쇼 천황에게 제의했고 다이쇼 천황이 이를 승인하자 호헌회는 개헌 작업에 박차를 가한다. 현역무관의 문관 겸직을 금지하는 조항을 박아넣는 한편 국민 기본권 신장, 여성 참정권 인정, 보통선거 기본화 등을 명시했으며 귀족원도 민선으로 선출되는 참의원으로 교체시켰다. 이렇게 조각된 개헌안은 다이쇼 천황에 의해 공포와 발효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화족 계층의 반발이 있었지만 다이쇼 천황의 호헌 선언으로 이들의 불만이 사그라들게 된다. 이로서 [[일본국 정부 (공동세계관)|일본국 정부]]는 군정정부에서 문민정부로 교체되었다. 이를 [[1923년 체제]]라 부른다. [[일본국 헌법 (공동세계관)|헌법]]은 1924년에 제정됐으나 편의상 [[제2차 호헌운동]]의 발발 시기인 1923년으로 명명되었다.
 
===문민정부기, 그리고 1945년 체제 수립===
 
[[파일:와카츠키 레이지로 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와카츠키 총리]]
 
문민정부화가 이루어지자 하나로 뭉쳐져 있던 호헌회는 합종연횡처럼 분열된다. 사회주의자 계열은 [[일본 사회당]]을 창당하였고 보수주의 온건론자들은 [[입헌정우회]]에 복당하여 당권을 수복했다. 한편 자유주의자들은 그동안 활동이 금지된 [[입헌민정당]]을 재건하면서 3당체제가 수립된다. 곧이어 실시된 [[제9회 일본국 중의원 의원 총선거|1924년 총선]][* 사츠마 번은 은밀히 입헌민정당을 미뤄준다.] 총선 결과, 입헌민정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성공하고 [[와카츠키 레이지로]]를 내각총리대신으로 하는 [[제1차 와카츠키 내각]]을 수립하자 입헌정우회와 일본 사회당은 야당으로 밀려난다. 한편 조슈 번이 몰락, 후견 세력(입헌민정당)의 총선 승리가 겹치면서 사츠마 번이 육해군 통솔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군제 개혁--이라 쓰고 조슈 인사 숙청이라 읽는다--이 실시되어 오늘날의 일본군에 편제가 이시기에 완성된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br]1. 군관구제 도입[br]2. 편제명 개칭[br]3. (군령권 관할)합동참모회의 설치[br]4. 육해공군 사령부를 합동참모회의 예하에 설치[br]5. 방면대·지방대·항공방면대 설치 등] [[와카츠키 레이지로]] 내각총리대신은 '농촌 진흥 운동'을 개시하여 농촌 지원금을 신설하고 농민에게 부과된 과세 조치를 폐지하여 농업 부흥을 일으키는 한편 사회당의 주장을 받아들여 최저임금제를 도입하는 등 노동 환경을 개선시켜 노동생산성 향상과 공장가동률 증가를 이루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간토 뉴딜'을 실시해 일자리 창출과 관동 경제권 재건을 이룩한다. 정치적인 면에서는 문민정부 체제가 빠르게 정착할 방법으로 야당과의 공조를 아젠다로 삼았으며 그는 [[입헌정우회]]와 [[일본 사회당]]의 의견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였으나 와카츠키 내각총리대신의 이러한 정책에 반발한 강경파는 독자 회파인 '건십회'를 결성하면서 입헌민정당은 두개의 회파가 동거하는 형태가 된다. 와카츠키 내각총리대신은 1929년까지 집권하다가 지병 악화로[* 와카츠키 총리는 [[제2차 호헌운동]] 시기에 경찰의 총격으로 폐에 큰 손상을 입어 지병인 폐렴을 얻었다.] 총리직에서 사임한다. 내각총리대신 사퇴로 이어진 내각 총사퇴에 따라 치뤄진 [[제11회 일본국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입헌정우회가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이후 [[아베 간]]이 내각총리대신으로 선출됨에 따라 [[아베 간 내각]]이 수립된다.
 
 
 
[[파일:제12대 아베 간 내각총리대신.PNG|180px|섬네일|가운데|아베 간 총리]][[파일:이누카이 쓰요시 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이누카이 총리]]
 
아베 간은 와카츠키 총리가 실시했던 여야당간 정치적 협화(정야협화)를 승계했고 정야협화의 창조주인 와카츠키 총리를 자주 문병하였다. 아베 간은 제12대 내각총리대신직을 수행할 시기에 일본은 서민 경제가 성장하고 전후 경제 위기를 극복하였다. 또한 경공업·중공업 회사와 건설업 회사들의 설립 빈도가 많아져 일본의 2차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훗날 2차 산업을 바탕으로 하는 무역업, 운송업, 서비스업 회사들이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준다. 다만 아베 간은 와카츠키 레이지로 총리대신보다는 경제보다는 외교 사업에 집중하였고 이에 말미암아 재임기의 절반을 해외 순방에 쏟은 아베 간은 과로로 인한 지병을 얻게 되고 1933년 총선을 준비하다가 과로사한다. 아베 간의 뒤를 이어 [[이누카이 쓰요시]] 부대표가 당대표직을 승계하고 선거를 준비했는데 그는 입헌민정당과 일본 사회당의 선거연합을 무찌르고 다시금 입헌정우회 내각을 수립시킨다. [[이누카이 내각]]은 아베 간 내각의 대공황 수습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고[* 대표적으로 '보이지 않는 손'] 이에 이누카이 내각은 대공황 수습에 집중한다. 이름바 간토 뉴딜에서 얻은 경험을 발판 삼아 [[혼슈 뉴딜]]을 실시한 그는 공공 사업 시행과 함께 [[아베 간 내각]] 시기 만들어진 수많은 회사들을 지원하며 이들이 다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한편 이누카이 내각은 해외 무역 시장 개척에 나서서 아베 간이 쌓아 놓은 외교력을 바탕으로 처참히 무너진 무역업을 재건했고 금융업에 관련된 법령들을 뜯어고쳤다. 정치적으로 이누카이 내각은 건십회를 포섭하여 과반 의석을 더욱 공고히 하였고 사회당의 노동 정책들을 수용하는 카드를 꺼내들어 사회당의 지지를 얻는다. 그는 정야협화는 버리고 철저히 입헌민정당을 배척했으며 이에 따라 입헌민정당은 정치적으로 고립되버린다. 입헌민정당은 이 위기를 타개하고자 와카츠키 레이지로 前 총리의 정계 복귀 카드를 꺼내든다. 마침 폐렴을 디딛고 일어선 와카츠키 레이지로 前 총리는 정계 복귀 요구를 수락했고 와카츠키 총리는 정야협화를 주장하며 입헌민정당을 따돌리는 입헌정우회를 비판했다. 그리고 혼슈 뉴딜이 모티브로 삼은 미국의 뉴딜 정책처럼 한계에 다다르자 점차 이누카이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1937년 치뤄진 제13회 일본국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이누카이 내각과 입헌정우회를 입헌민정당에게 정권을 탈환당한다.
 
 
 
[[파일:와카츠키 레이지로 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와카츠키 총리]][[파일:시데하라 기주로 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시데하라 총리]]
 
[[제2차 와카츠키 내각]]을 수립한 와카츠키 내각총리대신은 이누카이 前 총리의 입헌정우회를 포용하였고 이 과정에서 다시 통합된 건십회가 다시 독자 회파를 구성했지만 와카츠키 내각총리대신의 포용 정책에 입헌정우회도 마지 못해 합류하면서 다시금 정계는 정야협화의 이름 하에 통합된다. 골치아픈 정치적 트러블을 제거한 와카츠키 내각총리대신은 혼슈 뉴딜을 재정비하고 대공황 수습 정책을 계속 진행했으나 이에도 한계점이 오는 듯 했다. 헌데 이 상황에서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와카츠키 레이지로 총리는 연합국에 대량의 식량을 수출하여 농작물 산업을 확대시켰고 전쟁 특수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에 말미암아 제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일본국의 경제는 더욱 성장한다. 194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며 일본의 경제체제는 중소기업 중에서 도시바, 미쓰비시, 스미토모, 미쓰이, 토요타, 일본사업동맹이 '일본육대업체(日本六大業體)'로 부상하고 나머지 수많은 영향력 있는 중소기업이 공존하는 경제체제로 바뀐다. 한편 와카츠키 레이지로는 1943년까지 총리직에 있다가 정계에서 은퇴한다. 이에 따라 치뤄진 [[제15회 일본국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입헌민정당의 [[시데하라 기주로]]에 [[막문내각]]이 수립된다. 막문내각 시기에도 경제는 계속 성장을 이루었고 정치적으로는 정야협화가 이루어졌으나 바깥 상황은 아니였다. 경제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기업가'라는 새로운 계층이 등장했고 마찬가지로 경제 개발 과정에서 돈을 벌어들인 농민, 노동자와 같은 서민 계층도 영향력을 급격히 넓여가기 시작했고 이는 1944년이 되어 참정권 확대 운동으로 분출된다. 노동자와 농민은 노농 계층의 참정권 확대를 강력히 주장했고 지식인과 청년 사업가 계층은 보통선거 연령 범위의 확대를 주장했다. 기업가와 지식인 계층도 보통선거 개혁과 참정권 확대와 국민 기본권 확대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는 1945년이 되면서 더욱 확대되었고 [[막문내각]]은 결국 이를 수용하여 헌법 개헌회를 설치하고 헌법 개정안을 조각하여 개헌안 심사회의 통과를 받아 [[일본국 중의원|중의원]]과 [[일본국 참의원|참의원]]의 의결을 받아 국민투표에 개헌안을 붙힌다. 국민투표에서 투표율은 81%에 달하였으며 결과 74%가 개헌에 찬성하여 개헌안은 [[쇼와 천황]] 앞까지 당도한다. 쇼와 천황은 개헌안을 공식 재가하였고 이에 따라 문민정부 시대는 종식되고 [[1945년 체제]]라 불리우는 국민정부 시대가 개막한다.
 
===국민정부 시대 그리고 현재===
 
국민정부 시대가 개막하고 새로히 치루어진 [[제16회 일본국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입헌민정당이 정권을 잡는데 성공했으나([[제2차 시데하라 내각]]) 1947년에 그동안 경제 발전 과정에서 일어난 입헌민정당 내부 비리 스캔들이 터지면서 시데하라 내각총리대신은 답이 없음을 깨달고 의회 해산권을 발동한다. [[제17회 일본국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입헌민정당은 대패하고 일본 사회당과 합당하여 겨우 명맥을 잇는다. 그리고 반사작용으로 [[입헌정우회]]가 [[제2차 와카츠키 내각]]에게 정권을 빼앗긴 1937년으로부터 10년만에 다시 정권을 탈환하고 [[제1차 요시다 내각]]을 수립한다.
 
 
 
[[파일:요시다 시게루 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요시다 총리]][[파일:하토야마_이치로_내각총리대신.PNG|250px|섬네일|가운데|하토야마 이치로]]
 
내각총리대신 [[요시다 시게루]]를 시작으로 입헌정우회의 장기 독주가 시작되는데 이때를 '20세기 입헌정우회 장기집권 체제', 줄여서 '20정우회 체제'라 부른다. 20정우회 체제 시기 일본은 전후 경제 기적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구가했다. 이전 유럽에 사실상 국한되있던 일본의 국외무역시장은 제2세계대전 중 대미무역시장 개척을 발단으로 막대한 확장을 이룩하는 한편 제조업과 농업, 어업 등의 소비재 공업은 전후 민간 소비와 수출 증대 등으로 발전했다.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혼돈이 끝나면서 내각은 차차 사회·문화 부문에 가해지거나 군정정부 때 실시된 것이 아직도 폐지가 안된 규제들을 해제하는 정책을 실시했고 이는 일본 문화 산업 발전을 촉진하였으며 전반적으로 일본 사회가 개방적으로 변하게 된다. 20정우회 체제 때에는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중국이 나중에 일본을 위협할 것이라는 '중국 적대설'이 등장한 시기였으며 소련 견제를 목적으로 하는 미국의 후견 하에 일본은 군비 증강을 추진하였고 군내 번벌 구조를 타파하는 한편 해군 항공대에서 일부 부대를 공군으로 독립시켜 육해공군 3군 체제를 확립한다.
 
 
 
[[파일:도이_타가코_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도이 타가코]]
 
그러나 1985년에 [[나카소네 내각]]에서 '미야기 토지사건'이[* 미야기 현 소재의 국유지를 나카소네 내각총리대신이 지인에게 비밀리에 헐값에 매각한 사건이다.] 터지고 직후 치루어진 [[제26회 일본국 중의원 의원 총선거|총선]]에서 [[입헌정우회]]는 정권을 [[입헌민정당]]에 이양한다. 입헌민정당의 도이 타가코가 내각총리대신에 임명되면서 사상 최초로 여성 내각총리대신이 배출된다. [[제1차 도이 내각]]이 출범하고 내각은 서민경제와 중산층경제 성장에 주력하여 내수 촉진 정책을 펼치는데 이는 엔저 정책과 수출경쟁력을 이용하여 수출 중심 경제 정책을 펼치던 입헌정우회와는 상반되는 노선이었다. 도이 내각 집권기 동안 일본 수출 무역은 둔화되지만 서민 경제와 중산층 경제가 막대한 성장률을 보였고 엔저 정책에 의한 수입 물가 상승이 해소되면서 가계 생활에 부담이 완화되자 재화에 대한 소비 자극이 이루어진다. 재화 소비 시장이 성장함과 동시에 서비스업도 발달하여 외식이 증가하고 서비스 사용률이 높아져 서비스업 회사들이 활기를 띈다. 서민자본과 중산층자본이 증가하여 증가된 자본을 바탕으로 업체 설립이 활발화되고 이는 곧 민간투자가 증강되는 길로 이어진다. [[제1차 도이 내각]]이 퇴진하고 새로 출범한 입헌민정당의 [[호소카와 내각]]은 성장한 내수 경제와 창출되는 업체들을 견인할 사회간접자본 증강 조치와 함께 투자 규제를 풀어 민간 투자를 더욱 활발히 진행케 한다. 이시기 집행된 규제 개혁들을 '제1차 헤이세이 경제 대개혁'이라 한다. 이시기 일본 경제는 호경기를 누리며 해외로 적극 진출해 동남아와 한국, 대만 등에 진출하여 사업체를 형성하였으며 국내 민간 투자를 중심으로 사업체나 업체를 상대로 하는 각종 투자가 증가했다. 그러나 일본 경제의 호경기는 경기 과열 현상이 오기도 전에 동아시아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동남아시아와 한국에 진출한 회사들이 엄청난 타격을 보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동남아와 한국에 진출한 일본의 회사들이 해외 지사 철수로도 적자 만회에 실패하자 국내 회사 자본 매각, 구조조정 실시하게 되고 이로 인해 대규모 해고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애초에 국제 경쟁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해외로 문어발식 사업 확장을 한 회사에게 이런 조치로는 회사의 붕괴를 막을 수 없었다. 이후 해고된 실업자들과 연관되있던 가계의 소득과 민간자본이 위축되는 결과를 낳게 되며 자연스레 내수 소비와 민간 투자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미 연방정부의 금리 인상으로 미국 내부 소비 심리의 위축 현상과 동남아, 한국 등지에서 안전 자산 마련을 위해 안전 자산으로 취급되던 엔화에 대한 시중의 매입량이 급증하여 발생해버린 엔고 현상이 겹치자 일본 수출업에 적등(赤燈)이 켜진다. 동아시아 외환위기의 파급력과 더불어 무역업마저 성장이 침체되자 일본의 고속 경제 성장은 정지된다. 수출 둔화 현상을 발단으로 하여 제조업과 무역업 회사들에서 대규모 구조조정과 공장 매각이 진행되었고 이는 또 실업자 대량 양산과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 이에 말미암아 그동안 증가했던 회사·사업체, 서민과 중산층 및 상류층 자본은 대량 위축되었고 투자량 감소와 함께 일본은 본격적으로 불경기를 맞이한다. 당연히 입헌민정당에 대한 지지율은 바닥을 치고 도로 정권을 입헌정우회에게 [[제31회 일본국 중의원 의원 총선거|정권을 내준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는 이름바 'J-POP'이라는 거대한 문화 산업 내 내수 시장이 유지되었고 음반 시장은 전성기를 맞이했다. 허나 최근들어 K-POP에게 그 위상을 빼앗긴 추세이며 문화 산업의 비중은 오락 문화 파이가 감소하고 관광 등의 파이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형태로 바뀐다.
 
 
 
[[파일:오부치_게이조_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오부치 총리]]
 
정권을 바통터치 받은 [[오부치 게이조]]의 [[오부치 내각]]은 경기 부양과 디플레이션 완화를 목적으로 금리 인하와 세율 인하를 추진하는 한편 대규모 국채 발행을 개시한다. 매년 국채 발행 규모는 최고치를 경신하였고 오부치 내각은 국채 발행으로 얻은 자금을 시장에 푼다. 시장에 풀린 자금은 당시 떠오르던 IT 업계 쪽의 투자자금으로 밀집되었지만 전체적으로 금융 경제 전체로 자금이 몰리기 시작하는데 반해 실물경제는 계속 성장이 둔화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생긴 거품마저도 닷컴 버블 붕괴 이후 가라앉으면서 일본 경제는 계속 침체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계층간 자산 불평등이 해소되는 한편 오부치 게이조 내각이 내세운 '평생 직장제'가 자리잡아 오늘날까지 일본 중산층이 존속될 수 있었던 기반이 마련되기도 했다. 오부치 게이조 내각은 닷컴 버블 붕괴 후 양적완화 대신 장기적 대책과 기업생산성 향상, 경제 구조 개혁으로 포커스를 바꾸게 되고 견실한 국제 경쟁력을 가진 회사 양성책을 꾸준히 확대시켰다.--진작이 이랬으면..-- 이를 '제2차 헤이세이 경제 대개혁'이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2007년대까지 일본은 닷컴 버블 붕괴와 이전 '제1차 헤이세이 불경기'를 극복하는데 성공하여 고용 시장 안정화와 내수 시장 면에서 서민 경제와 중산층 경제의 하락세가 멈추게 되었다. 오부치 게이조 내각이 집권한 이때 '20정우회집권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이론이 등장하였으나 견실한 회사들의 등장과 내수경제 침체 극복 등이 이루어진 이때 2008년 리먼 사태가 발생한다. 리먼 사태, 이름바 세계 금융 위기로 전세계가 타격을 입게 되었고 일본도 그 대상에 속해 있었다. 당장 일본의 경제 성장은 다시 고꾸라 쳤고 경기는 미국의 경제력 약화의 여파로 불황기로 역전되버린다. 경제가 재차 힘들어지자 오부치 게이조 내각은 실각하고 전 집권당인 입헌민정당이 복귀하여 내각을 구성한다.
 
 
 
[[파일:하토야마_유키오_내각총리대신.png|180px|섬네일|가운데|하토야마 유키오]]
 
[[하토야마 유키오]]의 입헌민정당 내각([[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은 단기적 경기부양책으로 미국 수출업에 제동이 걸리면서 타격을 입은 무역회사들과 이들에게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던 회사들에 회생자금을 지급하는 한편 오부치 게이조 내각의 조치로 저금리에서 보통금리로 돌아간 기준금리에 저금리 정책을 다시 실시한다. 허나 [[오부치 내각]]과는 달리 이번에는 회사경쟁력과 산업생산성이 매우 향상되어 있던 상태였고 금융 개혁이 단행되어 금융 경제로 자금이 대량으로 몰리는 일도 미연에 방지되었다. 이름바 '하토야마 경기 안정화 대책'은 성공하여 2010년까지 일본 경제는 지속적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파일:도호쿠 대지진 1.png|250px|섬네일|가운데|동일본 대지진]]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해외에서 수출 계약을 따내던 시기인 2011년에 도호쿠 동부 연해 즉 서태평양 부근에서 규모 9.1의 대지진이 발생한다. 이후 이 여파로 일본국은 주택 402,699채 파손, 선박 28,612척 파손, 항구 319개소 파손이라는 기반시설 피해와 16~25조엔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는다. 이는 곧 도호쿠 지방의 사회간접자본이 붕괴되었음을 암시했다. 이에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은 대대적인 국채 발행을 실시하여 재난 재건 자금으로 투여하는 한편 긴급재난대책본부를 신설, 총지휘체계를 수립하여 빠르게 지진 피해 복구를 시작한다. 이때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은 원활한 재건 작업 실시와 국채 발행을 통한 자금 마련을 목적으로 대연정 수립을 [[입헌정우회]]에 제안하고 입헌정우회가 이를 수락하자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총리대신은 대연정 각료 구성안을 협의한다.
 
 
 
[[파일:에다노_유키오_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에다노 총리]]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은 대연정이 수립되면서 총사퇴하고 무소속 의원인 [[하나무라 나카하라]]을 내각총리대신으로 하는 [[2011 대연정]]이 수립된다. [[2011 대연정]]은 초거대 원내 의석을 이용하여 대지진 복구 작업을 실시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국 경제와 건설·토목 업체, 금융업이 성장하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나온다. 대지진 복구 작업에 들어간 자금만 천문학적이었고 이 영향으로 한동안 일본 경제 성장이 주춤하기도 하는 등 전체적으로 볼 때 도호쿠 대지진은 일본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볼 수 잇다. 대지진 피해가 수습된 2016년을 기점으로 해산되고 중도개혁주의 정당인 [[자유당 (일본국)|자유당]]과 [[입헌민정당]]의 연립정부가([[에다노 내각]]) 수립된다. 이렇게 수립된 에다노 내각은 고부가가치 산업인 우주 항공산업, 정보 산업, 전자 통신 산업, 컴퓨터 산업, 운송업, 금융 서비스업 등에 대대적인 정부 투자를 실시하여 관련 업체들의 성장을 도모하는 한편 안정적인 출산율을 바탕으로 내수 확충을 촉진시켰다. 그리고 지난 도호쿠 대지진의 피해가 수습되고 국가 재정이 증대되자 이를 재원으로 경제 개발 4개년 계획을 실시한다. 경제 개발 4개년 계획은 다음과 같았는데 일본 제품에 대한 기술 경쟁력 향상 정책 추진, 산업 전반에 걸친 투자 확대, 건설 투자 증강, 서비스업 분야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확대 시행, 불량채권 대량 정리, 장기 고용 시장 확대 등이었다. 경제 개발 4개년 계획은 도호쿠 대지진으로 부양됐던 일본 경기에 편승하여 실시되었고 2019년에 종료됐는데 이 영향으로 일본은 오랜만에 경기 호황을 맞이하지만(이자나기 호황)[* 그런데 이런 경제 성장 정책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재정 문제와 지속성의 결여이다. 투자를 하면 할수록 그 가치가 떨어지기에 지속적인 경제 성장이 불과하며 N개년 형식으로만 집행이 가능하고 경기가 불황이면 소비 심리가 위축되어 아무리 설비나 재고에 투자하더라도 수요가 공급을 따라잡지 못해 오히려 적자가 나버린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본 4개년 계획을 위해 지출할 금액은 기존 경제예산 잔여액도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파이는 국채 발행을 통해 마련되어서 심히 불안한 국가재정 현황이 펼쳐진다. 즉 나라빚으로 경제를 운영한다. 그리고 투자를 하더라도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증가하지 않으면 거품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4개년 계획 시행 기간에 곳곳에서 거품이 형성되었다가 꺼지는 일이 발생했다. 만일 이 거품이 본격적으로 커졌다면 제2의 닷컴 버블 사태가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즉 '운이 좋았던 것'] 2020년 코로나19로 경기 호황이 주춤하고 있다.
 
 
==자연환경==
 
==자연환경==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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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일본국 (나루히토)/자연환경}}
일본국의 영토 면적은 37,791,500ha(377,915㎢)로 독일보다는 크지만 스웨덴, 스페인보다는 작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파일:(인공위성 지도) 일본 열도 구성 사도(四島).jpg|350px|섬네일|가운데|일본 열도 중 사대도(四大島)]]
 
일본국의 영토는 마치 활을 연상시키는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일본 열도 (공동세계관)|일본 열도]]를[* 일본 열도의 직선 거리를 기준으로 하여 서남단의 '[[규슈 (공동세계관)|규슈]] [[가고시마현]] 이부스키'에서 '북동단, [[홋카이도 (공동세계관)|홋카이도]] 네무로'까지 1,900km이다. 여기서 이즈 제도와 오가사와라 제도를 묶어 '남방 제도군'이라 하며 난세이 제도, 남방 제도군, 사개도와 그 속도가 [[일본 열도 (공동세계관)|일본 열도]]를 구성한다.] 구성하는 사대도(四大島)와[* [[홋카이도 (공동세계관)|홋카이도]], [[규슈 (공동세계관)|규슈]], [[시코쿠 (공동세계관)|시코쿠]], [[혼슈 (공동세계관)|혼슈]]를 일컫는다.]그 속도(屬島), [[이즈 제도 (공동세계관)|이즈 제도]], [[오가사와라 제도 (공동세계관)|오가사와라 제도]], [[난세이 제도 (공동세계관)|난세이 제도]]이다.
 
====본토(4개도)====
 
[[일본 열도 (공동세계관)|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핵심 지역으로 면적 순에 따라 [[혼슈 (공동세계관)|혼슈]], [[홋카이도 (공동세계관)|홋카이도]], [[규슈 (공동세계관)|규슈]], [[시코쿠 (공동세계관)|시코쿠]]로 구성된다. 부속도서로는 사도섬, 이키섬, 오키 제도, 쓰시마섬 등이 있다. 과거, 사할린섬을 일본 열도에 편입시키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남사할린-남쿠릴 반환 조치(1903) 이후 무산되었다.
 
====난세이 제도====
 
[[일본 열도 (공동세계관)|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서부 지역인데 독립 도군(獨立 島群)과 주류 도군(主流 島群)으로 분류된다. 먼저 주류 도군은 면적 순에 따라 류큐 제도, 사츠난 제도로 구성되며 류큐 제도는 사키시마 제도·오키나와 제도로, 사츠난 제도는 오스미 제도·토카라 열도·아마미 군도로 나뉜다. 독립 도군으로는 다이토 제도만 있다. 이중 중국과 영토 분쟁 지역인 [[센카쿠 제도]]는 사키시마 제도에 속하여 있다.
 
====남방 제도군====
 
[[일본 열도 (공동세계관)|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남부 지역으로서 크게 [[이즈 제도 (공동세계관)|이즈 제도]]와 [[오가사와라 제도 (공동세계관)|오가사와라 제도]]를 두고 있다. 이외 독립 도군으로 몇몇 섬을 두고 있었지만 최근에 전부 이즈 제도와 오가사와라 제도로 분류 작업이 완료되었다.
 
====영토 변화====
 
1900년, 일본국이 수립되고 일본국은 군사력을 이용한 물리적인 영토 확장을 하지 않았지만 자연적인 영토 확장과 간척 등을 통한 영토 확장은 이루어졌다. 주로 자연적인 영토 확장은 해저화산 폭발로 생긴 화산 열도의 등장에 따른 면적 변화였고 최근에 대표적인 화산섬은 '니시노시마'인데 2013년 말에 형성되었다.
 
===영해===
 
[[파일:일본국 영해+EEZ 지도.png|350px|섬네일|가운데|일본국의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을 포함한 영해 지도]]
 
일본국의 영해 면적은 3,860,000㎢이며 EEZ(베타적 경제 수역)도 합치면 4,479,358㎢의 광활한 영해+EEZ 면적을 소유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야에야마 제도, 동쪽으로는 미나미토리시마, 남쪽으로는 미나미아오섬, 북쪽으로는 벤텐섬까지 분포된 이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은 대단히 넓은 면적인데 중국 영해의 5배, 몽골 영토의 3배, 카자흐스탄 영토의 약 1.6배에 달한다.
 
 
 
이렇게 거대한 영해를 보유하게 된 이유는 일본 열도 자체가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 나라이자 태평양으로의 진출에 용이한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활발히 진행하였고 이러한 진출 활동은 현대에 들어서 멈추었지만 이미 방대한 영해를 확보한 뒤인지라 별 문제는 없었고 이때 자리잡은 영해 구도가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영해 문제에 대해서 중국과는 센카쿠 제도 분쟁을 겪고 있고 한국과는 7광구 분쟁을 겪고 있는게 흠이다. 종식된 국경 분쟁으로는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분쟁이 있었는데 이는 1900년대 초반인 1903년, 러시아와 일본 간 화친을 위하여 하보마이와 시코탄, 남사할린을 러시아 제국에 무조건 양보하면서 국경 분쟁을 종식시켰다.
 
 
 
위 사진을 보시다시피 일본국의 영해는 남북으로 길게 분포된 형태로서 남방 제도군은 심지어 아시아도 아닌 오세아니아 대륙에 속한다. 게다가 남방 제도군의 날씨는 온대 기후대에 속한 일본 본토와는 많이 떨어져 있어 지중해성 기후를 나타내기도 하고 열대 기후를 나타나 정글이 형성되어 있는 모습을 보이는 등 본토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말미암아 일본국은 여러 기후대를 경험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지만 보통 대중의 시선에서는 이러한 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영해 변화====
 
일본국의 영해 면적과 배타적 경제 수역 면적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2013년 11월 오가사와라 제도의 남동쪽 500m 해저에서 화산이 분화하면서 새로운 섬이 생성되었는데 [[동경도]]는 이 섬을 니시노시마라 명명했다. 이로 인하여 해안 국경이 조정되었고 이에 따라 일본국은 넓어진 니시노시마에 비례하여 70㎢의 영해를 새로 얻게 됐다.
 
===지형===
 
{{본문|일본 열도 (공동세계관)}}
 
{{일본 열도 (공동세계관)}}
 
일본국의 지형은 6852개의 섬으로 구성되는 열도의 지형을 가지고 있으며 해안선은 보통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본 국토 구성은 산지 61%, 구릉지 12%, 평지 11% 등이며 토지의 67%를 산림이 차지하고 농경지는 17%, 택지는 7%, 공업용지는 0.8%씩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토지 소유 면에서 37%가 국유지 혹은 공유지이며 63%가 사유지다. 한편 모든 영토가 대륙과는 떨어진 섬이기에 지상 국경을 접한 국가는 없다. 다만 해상 경계선으로는 중국, 대한민국, 러시아, 미국 등과 접경하고 있다.
 
====평야·분지====
 
저지대는 찾아보기 힘든게 현실이기에 일본에서의 평야는 주로 산간 지역의 분지나 곡저, 충적 평야같은 소규모 평야·분지 지대 밖에 없다. 그러나 [[간토 대평야]]나 [[간사이 대평야]]를 시작하여 [[나고야]]같이 평야 지대가 듬섬듬섬 거대한 규모로 조성된 대평야 지역은 존재한다.
 
 
 
[[파일:간토 평야.PNG|350px|섬네일|가운데|관동 대평야]]
 
간토 대평야(関東大平野, かんとうへいや)는 [[일본국 관동 지방 (공동세계관)|관동 지방]]에 위치한 대평야로 약 17,000km2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강원도랑 비슷한 면적이다.] [[일본국 (공동세계관)/도도부현|일본의 도도부현]] 중 [[동경도]], [[이바라키현]], [[도치기현]], [[군마현]], [[사이타마현]], [[지바현]], [[가나가와현]]에 위치한다. 그냥 관동에 있는 도도부현은 모두 이 간토 대평야에 위치해 있다고 보면 된다. 별로 쓰이지 않지만 별칭으로 제도 대평야(帝都大平野)가 있다.
 
 
 
[[파일:간사이 평야.PNG|350px|섬네일|가운데|관서 대평야]]
 
간사이 대평야(関西大平野, かんさいへいや)는 [[일본국 관서 지방 (공동세계관)|관서 지방]]에 위치하는 대평야인데 별칭으로 긴키 대평야가 있다. 간사이 대평야는 간토 대평야 다음가는 일본의 평야 지대로서 간사이 대평야 덕분에 관서 지방이 관동 지방 다음으로 가장 큰 일본 내 도시·경제권으로 성장하였다. 간사이 대평야에는 [[비와 호]]라는 대형 호수가 존재하는 것이 특징이며 면적은 약 10,200km2으로 간토 대평야에 비해 7,000km2 정도 면적이 작다. 도도부현 가운데, [[오사카부]]와 [[교토부]], [[나라현]]에 위치한다.
 
====산지·산맥====
 
[[파일:Shirane-sanzan.jpg|320px|섬네일|가운데|아카이시 산맥의 구간 중 시라네3산]][[파일:오우 산맥 최고봉 이와테 산.jpg|280px|섬네일|가운데|오우 산맥의 구간 중 이와테산]]
 
전체적으로 일본 열도는 그 토대가 형성된 조산기 시기와 그 후의 변화에 따라 여러 형태를 띄고 있다. 주로 중생대에 조산 운동을 받아 그 후 평탄화되다가 현재는 고원 모양의 산지로 변화된 기타카미 산지, 주고쿠 산지, 아부쿠마 고지가 있고 중생대의 조산대에 속하며 비교적 최근 시대에 단층 운동 등으로 융기하여 가파르고 험한 산맥이 된 히다 산맥, 기소 산맥, 아카이시 산맥이 있다. 보통 이 3개의 산맥을 아울러 '일본 알프스'라 칭한다. 그리고 조산대에, 지층이 물결 모양으로 주름이 지는 구조를 비교적으로 잘 반영하고 있는 오우 산맥 등이 존재한다.
 
====하천·호수====
 
[[파일:일본 시나노강.jpg|300px|섬네일|가운데|시나노 강]][[파일:간사이의 비와 호.jpg|295px|섬네일|가운데|비와 호]]
 
일본국의 본토는 몇개 줄기의 화산맥이 뻗어 있기 때문에 지형의 기복이 심하고 대다수의 강은 짧으며 급류인 경우가 많다. 일본국에서 가장 긴 강인 시나노 강이 불과 367km에 불과하고 이외 강들은 강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다만 규모가 엄청 큰 [[비와 호]]라는 대형 호수가 간사이 지방에 위치해 있으며 그 면적은 670km2에 이른다.
 
====화산대====
 
일본국은 세계 화산의 약 10%가 몰려 있는 지역으로 대략 200개가 넘는 화산이 일본 전역에 분포되있다. 화산의 일부는 복수의 화산들과 묶여 화산군을 형성하는데 이는 흥미로운 화산 지형을 형성하는 원인이 된다. 이때문에 일본에는 아름다운 화산 지형이 많이 존재하고 이를 토대로 일본의 일부 국립공원들과 화산 공원들은 화산군을 바탕으로 하는 화산 지형을 관광 지구로 설정하거나 중심 지역으로 기획한다. 일본국에 유명한 화산으로는 [[후지산]], 아소산, 사쿠라지마산 등이 있다.
 
 
 
[[파일:후지산 사진 1.jpg|350px|섬네일|가운데|후지산]]
 
일본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산은 일본하면 생각하는 그 [[후지산]]이 있다. 관동에 위치해 있는 후지산은 한국의 백두산 해발고도보다 높은 해발고도 3,776m의 '''활화산'''이며 일본에서는 신령한 영기가 깃든 '영산(靈山)'으로 꼽힌다. 야마나시현에 위치해 있다.
 
===생태===
 
일본은 과거 대륙으로부터 분리된 이후 독특한 생태계가 구성되었는데 산림이 일본 열도 생태계의 핵심 요소이며 이미 일본 열도 토지의 과반 이상이 산림인 것을 보면 말 다했다.
 
 
 
일본 특산 동물로는 일본원숭이라든지 시바견, 아키타견 등이 있으며 특산 식물로는 일본국 국화인 소메이요시노같은 벚꽃과[* 허나 이는 소메이요시노 한정이고 그냥 벚꽃이라 하면 다른 지역에도 태초부터 존재했다.] 섬진달래 등이 있다.
 
===자원===
 
먼저 천연자원을 보면 일본은 거의 대부분의 천연자원을 수입을 통해 의존하고 있다. 다만 일본은 천연자원의 종류도 많고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지만 그 채굴량이 적어 제대로 채굴하지도 않는다. 한편 천연자원 중 석회석, 고령토, 규사, 황화광 정도만 자급이 가능한 수준이며[* 석화석은 시멘트 제조의 원료고 고령토는 세라믹이나 도자기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이며 규사는 반도체 제조에 사용된다. 황화광은 금속광택과 전기 전도성을 비롯한 많은 금속의 특성을 갖기에 중요 자원이다.] 그나마 산출량이 높아 자급률이 조금은 있는 자원으로는 구리광의 자급률이 1.3%이며, 철광석은 2%, 석유는 0.3%이다. 석유 시추를 하는 중요 시추구로는 니가타 유전과 아키타 유전이 있다. 이렇게 저조한 자급률로 인하여 원유는 99.7%, 석탄은 98.1%, 천연가스는 96.8%를 수입하고 있다. 석탄만큼은 1955년까지는 93.1%를 자급했으나 이후 점차 인건비 상승과 채탄 조건의 약화. 석유 발전 대세화로 2002년을 끝으로 석탄광산은 모두 폐광 조치되었다. 이 밖에 철광석, 동, 주석 등도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일본국은 해상 국가라는 특성을 이용하여 해저 석유 자원을 비롯하여 해저 천연자원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추세다.
 
 
 
일본은 에너지 자원 면에서 1982년 기준 제1차 에너지 소비량만 보더라도 미국, 중국, 소련에 이은 4위였으며[* 대략 5억톤의 에너지량이다.] 과거에는 석탄 발전소를 중요 발전소로 사용하며 석탄 채굴을 활발히 하였으나 지금은 석탄 채굴의 여러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모두 폐광 처리되고 지금 석탄 발전소는 일부 지역에서 간간히 생산되는 석탄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 중요 에너지 산출책으로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한 만큼 지열을 에너지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높고 험한 산지가 많아, 수력 발전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천연가스면에서 니가타, 지바, 아키타이 주산지로 있지만 추출하지는 않는데 지반 침하를 시작하여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도 실시하고 있으며 전국에 50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운전하고 있다. 이전에 9기를 운용했었으나 모두 폐로했다. 국토 다수가 산지인 점을 바탕으로 풍력 발전소 등을 건립하고 태양광판을 주택 등에 설치하게 하는 등 친환경 에너지 시대로 도약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석유 발전이나 석탄 발전이 전력 생산에 중요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기후===
 
국토가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형태이고 쿠로시오 해류의 영향으로 지역마다 기후가 달라지는 모습과 함께 유동적으로 기후가 변동되는 모습을 보인다.
 
 
 
[[파일:일본국 기후 지도.png|700px|섬네일|가운데|일본국 기후 지도]]
 
일단 [[일본 열도 (공동세계관)/사대도|일본 열도 사대도]]의 [[일본국 관동 지방 (공동세계관)|간토]], [[일본국 주부 지방 (공동세계관)|주부 남부]]·[[일본국 주부 지방 (공동세계관)/호쿠리쿠 지방|호쿠리쿠]], [[일본국 간사이 지방 (공동세계관)|간사이]], [[일본국 주고쿠 지방 (공동세계관)|주코쿠]], [[일본국 규슈 지방 (공동세계관)|규슈]]로 비롯되는 본토 남부, 오가사와라 제도 북부와 야에야마 제도 중부로 대표되는 [[일본 열도 (공동세계관)/남방 제도군|남방 제도군]]은 온대 기후에 속하되 혼슈의 고원 지역은 냉대 기후를 띈다. 한편 홋카이도와 도호쿠, 주부 중부는 냉대 기후대에 속한다. 오가사와라 제도 남부·중부와 미나미토리섬, 야에아마 제도 남부·북부, 다이토 제도 등 남방 제도군에서 이즈 제도와 오가사와라 제도 북부를 제외한 지역과 난세이 제도의 독립 도군 지역은 열대 기후에 속한다. 여기서 냉대 기후대에 속하는 지역은 대개 냉대습윤기후이며 주부 중부 일부 고원 지대는 냉대동계건조기후를 띄기도 한다. 온대 기후에 속하는 일본 국토는 전역이 온난습윤기후다. 헌데 혼슈 남부와 시코쿠, 규슈를 비롯해 남부 온대 기후권 지역은 아열대기후로 분류되기도 하다. 열대기후 면에서 일본은 다이토 제도가 열대몬순기후를 나타내고 미나미토리섬과 오가사와라 제도는 사바나 기후를 띄며 야에야마 제도는 열대우림 기후를 나타낸다. 허나 일본국 기후는 일본 열도를 통과하는 쿠로시우 해류와 계절에 따른 여러 기단들의 영향으로 난세이 제도 일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방은 계절에 따른 변화가 크다.
 
 
 
일본국은 본국의 기후를 크게 3개로[* 혼슈를 기준으로 나눈 감이 있다.] 분류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후 분류 기준은 사대도 중앙을 가르는 산악 지대를 경계로 하여 중부는 중앙 고지 기후, 서부는 일본해측 기후, 동부는 태평양측 기후로 세분한다. 그 세개의 기후는 다음과 같은데 먼저 일본해측 기후는 --닉값--지리적으로 일본해 부근에 있는 호쿠리쿠와 니가타 등지의 기후를 말하는데 여름에는 무지 더운데 겨울에는 쿠로시오 해류의 지류인 쓰시마 난류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아서 폭설이 쏟아진다. 연 강수령이 2000mm~3000mm인 것도 특징이다. 두번째로 중앙 고지 기후는 나가노와 야마나시에서 볼 수 있는 기후로서 고원지대에 속하기에 여름에도 서늘하다. 겨울 강수량이 낮은게 특징이며 태평양 부근보다 눈이 더욱 증폭된다. 세번째로는 태평양측 기후가 있는데 간토와 간사이 등지의 기후다. 여름에는 북태평양 기단의 영향으로 폭염이며 겨울은 온난건조해 여름은 습하며 겨울은 건조하다. 일부 지역은 온대 하우 기후가 나타나기도 하다. 예외적으로 [[일본국 도호쿠 지방 (공동세계관)|도호쿠]]는 오호츠크해 기단의 영향으로 여름이 시원한게 특징.
 
 
 
봄과 가을에는 계절풍의 영향력은 적고 기압의 정도에 따라 날씨가 유동적으로 변한다. 특히 저기압이나 전선의 이동에 따라 단계별로 온도가 바뀌며 자연스레 계절이 교체된다. 여름은 중앙 이동 지역은 주로 쿠로시오 해류와 섬이라는 특성의 영향으로 습한 한편 북태평양 기단에 의해 폭염이 일어나지만 서부는 아키이시 산맥 등이 북태평양 기단을 막아주어 폭염이 덜하고 서늘한 편이다. 그러나 습한건 매한가지이다. 겨울에는 시베리아 기단의 영향으로 북서계절풍이 오며 북부 냉대 기후 지역은 폭설이 쏟아지고 추워진다. 일본해측 기후 지역인 호쿠리쿠와 니가타는 매년 적설량이 2~3m인 덕에 세계적인 폭설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 지역별 기후 개관과 특징을 보면 [[홋카이도 (공동세계관)|홋카이도]]는 1년에 걸쳐 기온이 낮고 비가 적으며 타지와는 다르게 장마나 태풍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겨울은 매우 춥다. 태평양 인접 지방은 여름에는 장마가 많이 보고 덥고 습하지만 겨울은 건조하고 맑은 날씨가 유지된다. 남부 태평양 지대는 태풍의 영향을 받고 비가 자주 내리지만 겨울에는 온난하다. 한편 내륙 지대는 1년 중 비가 적게 내리고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크다. 일본해 연해 지역은 여름에는 비가 적게 내리고 겨울에는 폭설이 당연코 온다. 세토나이카이 연해 지역은[* 세토나이카이란 혼슈 서부와 규슈, 시코쿠 안의 바다를 말한다.] 1년 내에 맑은 날이 많은 것이 특징이며 남방 제도군은 평균적으로 적도에 가까워 온도가 높은게 특징이다.
 
 
 
[[파일:일본의 코타츠.jpg|350px|섬네일|가운데|코타츠]]
 
일본에서는 난방 시스템 방비가 잘 안되어 있어[* 지진에 의해 온돌같은 난방 시스템 도입을 못하는 실정이다.] 겨울이 강타하면 가내(家內)가 무지 춥고 간토 대평야같이 산이 없는 지역은 그대로 겨울에 부는 혹독한 추운 바람을 직통으로 맞아야 해서 추위가 극에 달한다.--어떻개 사는거지?-- 이때문에 계절이 겨울일 경우에 일본 가정집은 코타츠가 흔하게 보인다.
 
===재난재해===
 
일본의 단골 재난재해는 누구나 알 법한 지진인데 하필이면 환태평양 조산대에 나라가 존재하여 소규모 지진부터 7.0 이상의 대규모 지진까지 지진이 엄청나게 일어난다. 한편 열대성 저기압에 의해 생성되는 태풍의 영향도 많이 받는 나라이기에 그 피해가 해마다 막심한 편이다.[* 물론 아닐때도 존재한다.] 화산 분화는 최근에 들어 본토 한정으로 대부분 멈췄으나[* 대부분의 화산이 휴지산이 된 것이란 표현은 '''절대 아니며''' 단지 분화를 안하고 있는 시기라는 뜻이다.] 일부 섬에서는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화산열도라 불리우는 화산섬이 생성되기도 한다.
 
 
 
일본은 지진 부문 재난 훈련에 대해서는 행동 강령이 세부화되어있고 그 실시 빈도도 높지만 이외 재난에 관련된 훈련에 대한 훈련도는 떨어진다. 이때문에 홍수 재난이 남일본을 휩쓸고 갔을 때에도 우왕좌왕한 이들이 상당하다. 그래서 일본국 정부는 [[일본국 총무성 (공동세계관)|총무성]]의 진두지휘 하에 재난 훈련 다양화 계획' 실시와 함께 화산 대책 계획 등의 대응 정책들을 실시하고 있다.
 
====지진====
 
[[파일:일본국 긴급지진속보 장면.PNG|350px|섬네일|가운데|긴급지진속보가 송출되는 장면]]
 
일본국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한 덕분에 지진이 많이 발생하여 최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이라던지 고베 대지진, 1923년에 일어난 간토 대지진같은 대형 지진부터 강도 4.0 이하의 소규모 지진까지 활발히 일어난다. 특히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도호쿠 지방이 크게 시름했던 적이 존재했으며 하나터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할 뻔했다. 일본은 지진주기설에 의거하여 난카이 해곡을 필두로 발생하는 대지진을 도카이 대지진, 도난카이 대지진, 난카이 대지진으로 분류하는데 이를 통틀어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이라 일컫는다. 도난카이 대지진이나 난카이 대지진에 비해 도카이 대지진의 발생 가능성이 높은데 이미 발생 주기를 한참 넘긴 시점이라서 [[일본국 정부 (공동세계관)|일본국 정부]]는 총무성에 '도카이 대지진 상시대응과'를 설치하여 언제든지 도카이 대지진이 발생할 경우 대비할 수 있게 정부 조직 비상망 체제를 구축했다.[* 발생하는데로 엄청난 소음--(..)--의 경고음이 울리고 대피 경보를 [[아이치현]], [[시즈오카현]], [[미에현]]에 발령하는 한편 재난대책본부를 즉시 내각총리대신 직속기구로 설치한다. 그리고 대피 경보는 혼슈 남부 해안가와 시코쿠 전역으로 확대되는 단계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총무성은 모든 인력을 동원하여 현민을 고지대로 피신시킨다. 그리고 '후지산 관측소'에 상시적으로 연락을 하여 [[후지산]]의 동태를 보고받는다. 지진이 휩쓸고 간 뒤에는 '재건은행'이라는 국영은행을 설립하여 저이자 대출을 건설 토목 기업에 대주고 국가 주도의 '도카이 뉴딜'을 실시하여 경기 부양도 하면서 도카이 대지진으로 파괴된 지역을 재건한다. 이게 도카이 대지진 대응 및 처분 메뉴얼이지만 이 메뉴얼에도 피해 금액은 천문학적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일본은 지진 관련 재난 방비를 철저히 하는 국가로서 내진 설계를 건물에 무조건 적용시키고 그 기술을 전문적으로 개발한다. 또한 관련 재난 훈련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재난 방비 메뉴얼도 철저한 편이다.
 
====화산 분화====
 
[[파일:아소산 1.jpg|350px|섬네일|가운데|아소산 칼데라]]
 
일본 열도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는 바람에 세계 화산의 10%가 죄다 몰려 있는게 특징이다. 이는 즉슨 '그만큼 터질 수 있는 화산(활화산)이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 지각은 판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기에 불안정한 것이 그 특성이며 이에 말미암아 화산 폭발도 빈도 있게 발생했다. 일본은 지진에 대해서는 대피 훈련을 철저히 하지만 다른 재난에 관련된 훈련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며 화산 분화에 따른 재난 훈련도 포함된다. 지금 유명한 활화산으로는 [[후지산]]이 있으며 '이중화산'인 아소산도 활화산이다. 이 두 화산의 피해를 예상해보자면 후지산이 대분화하면 동경도를 비롯하여 관동은 초토화될 정도이며 아소산이 대분화하면 근처에 위치한 구마모토현이 날라간다.
 
 
 
일본국 정부는 화산 분화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는데 총무성에 '화산 분화 대비과'를 신설하고 화산 분화 시 대응 메뉴얼 재정비를 실시했다. 한편 화산 분화 대비 재난 훈련의 시행 빈도를 늘리는 조치를 취하고 지질조사팀을 증설을 개시했다. 이러한 노력은 [[2011 대연정]]에서 시작되었고 지금의 [[에다노 내각]]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일본국 정부 (공동세계관)|일본국 정부]]는 이 국가 계획의 명칭을 '화산 대책 계획'이라 명명했다. 화산 대첵 계획은 1차와 2차로 구분되는데 1차는 2011 대연정 종료를 기점으로 종료 이전을 말하며 2차는 그 이후를 말한다.
 
====태풍====
 
일본 열도 바로 아래가 열대성 저기압을 생성시키는 적도 기단이 있는 것이 문제이며 태풍이 집중 발생되는 서태평양 지역과 인접한 것도 문제다. 이러한 이유들이 합쳐져서 일본 열도에는 거대한 태풍부터 작은 태풍까지 여러 태풍들의 타격을 받는게 허다하다. 대표적으로 일본국을 강타했던 태풍으로는 '제2무로토 태풍'이나 '이세 만 태풍', 최근에 발생한 '하기비스 태풍'이 그 예다.
 
 
==인문환경==
 
==인문환경==
 
===인구===
 
===인구===
{{본문|일본국 (공동세계관)/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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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일본국 (나루히토)/인구}}
일본 국적을 가진 이는 [[일본인 (공동세계관)|일본인]](日本人)이라 하며 일본인의 주류 민족은 [[대화 민족 (공동세계관)|대화 민족]]이고 비주류 민족으로는 아이누족, 류큐족 등이 있다.
 
 
 
일본의 인구는 2019년 호구조사를 기준으로 162,282,757명, 즉 1억 6228만 2757명이며 견실한 인구 증가를 이룩하고 있다. 옆나라인 중국에 비해 적다고 볼 수 있는데 당장 남한 인구의 약 3.2배이고 위에 있는 러시아보다(약 1억 4000만명) 인구가 많다. 한편 일본국은 세계 인구 순위 10위 안에 들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인구는 현재 일본 경제를 견인하는 주요점인 내수 경제의 바탕이 되고 있으며 풍부한 노동가능인구와 이에 편승하여 안정적인 노동생산성 성장이 보장된다. 이는 곧 국가 경제력과 산업력의 확장으로 직결된다. 한편 인구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세수가 증대되는 효과가 나온다.
 
 
 
일본 인구 밀도는 여타 다른 나라와는 상대적으로 심한 편이다. [[동경도]]의 인구 밀도는 6,359명/km²이며 [[오사카부]]의 인구 밀도 4,633명/km²에 달한다. [[동경도]]에서 영역을 넓혀 [[일본국 관동 지방 (공동세계관)|간토]]으로 본다면 간토 면적이 약 15,000㎢, 인구는 43,581,963명인데 한국 수도권보다 살짝 더 큰 면적에 1000만명이 더 얹어 살고 있다 보면 된다. 한편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일본국 인구 1억 2천만명 정도가 혼슈에 거주하는 모습으로 혼슈의 면적은 한반도에 충청도 면적을 더한 것과 비슷한 면적, 한반도 인구가 7000만명인 것 등을 감안하면 혼슈에 얼마나 많은 인구가 사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일부 평야 지역을 제외하면 죄다 산악 지대인 점까지 참작하면 빼곡히 인구가 밀집된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인구 밀도가 높아지며 부동산 시장이 하루가 가면 갈수록 높아져 버블이 발생할 것을 염려한 [[일본국 정부 (공동세계관)|일본 정부]]는 지속적으로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장려하고 있다.[* 하단 문단에서도 봤듯이 최근 이 정책이 실효성을 보고 있는 중이다.]
 
 
 
[[파일:동경 스크램블 교차로 사진 1.jpg|350px|섬네일|가운데|동경 시내 스크램블 교차로]]
 
일본 인구 중 성인(20세~64세)은 131,611,316명으로 전체 인구 중 78.1%를 차지한다. 한편 전체 인구의 6.3%는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이며 전체 인구 15.6%는 19세 이하의 소년 인구다. 갈수록 타 선진국처럼 고령 인구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이며 전문가들은 10년 이내로 고령 인구가 7%를 돌파하여 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상대적으로 높은 출산률이 유지되는 것이 일본 사회의 희망이라 볼 수 있다.
 
 
 
일본국의 인구 중 123,010,330명(75.8%)은 혼슈에 분포되있으며 그 중 [[일본국 관동 지방 (공동세계관)|관동 지방]]과 [[일본국 관동 지방 (공동세계관)|관서 지방]]에 밀집되어 있는 상황이다. 한편 나머지 39,272,427명(24.2%)는 이외 [[일본국 규슈 지방 (공동세계관)|규슈 지방]], [[일본국 시코쿠 지방 (공동세계관)|시코쿠 지방]], [[일본국 홋카이도 지방 (공동세계관)|홋카이도 지방]]과 [[남방 제도군]], [[난세이 제도]]에 거주하는데 규슈에는 20,860,206명(12.9%), 시코쿠는 7,741,790명(4.8%), 홋카이도는 8,226,993명(5%), 난세이 제도와 남방 제도군, 기타는 2,443,437명(1.5%)이다. 정부의 건설 투자 증대와 이에 따른 주택공급률 상승이 겹치면서 산막한 혼슈 대신 강렬한 추위를 느낄 수 있는--?-- 홋카이도나 남부의 규슈, 시코쿠 지역으로 이주하는 혼슈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이것이 재작년 80%를 찍었던 혼슈 인구가 작년 76%로 급락한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인구 비율에서 이민자 비율이 처참한데 기존 일본인을 제외한 국외인 비율이 0.N%를 찍고 있으며 오히려 최근들어 가장 최저 비율인 0.3%를 찍어버렸다. 이는 해외인에 대한 배척 성향이 주 원인이다. 게다가 아직 일본 노동가능인구가 안정적인 편이기에 외국인 노동자 채용이 적은 것도 주 원인은 아니지만 나름 원인이기도 하다. [[에다노 내각]]은 기능견습생 명목으로 이런 해외노동자 채용을 정부 차원에서 장려하여 중앙정부 소속 기능견습생은 늘어나는데 지방정부, 특히 [[동경도]] 기능견습생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도호쿠 지역의 도도부현들을 제외하면[* 도호쿠 대지진 후 재건 작업에 동원할 인력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능견습생 감소 현상이 일어나는 중이다. 전국 47개 [[일본국 (공동세계관)/도도부현|도도부현]] 중 기능견습생이 늘어난 곳은 [[이와테 현]], [[아오모리 현]], [[미야기 현]], [[후쿠시마 현]] 뿐이고 이외 43개 도도부현에서는 기능견습생이 줄어들었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기능견습생 비자 연장을 거부하는게 가장 큰 원인이며 신입 채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 원인이다. 최근 0.3%라는 경이로운 국외인 비중이 나오자 [[에다노 내각]]은 국외인 이주 조건 완화를 검토 중인데 일부 내각 관료는 구지 시행할 필요성이 없다고 역설 중이다.
 
 
 
[[파일:호소카와_모리히토_내각총리대신.jpg|180px|섬네일|가운데|호소카와 총리]]
 
일본국의 출산율은 2019년 기준으로 2.21이며 전년 대비 0.02 증가하였다. 일본이 출산율은 1970년대 이후부터는 계속 2.n을 유지하고 있는데 가끔 2.0까지 떨어지기도 하였다.
 
 
 
일본의 출산에 관련된 복지 정책은 아주 차세대적인데 미성년자의 원치 않은 임신 혹은 성범죄로 인해 임신을 하는 것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의견을 퇴치하도록 법률 체계를 재정립하는 한편 원치 않은 임신에 의해 출산을 하더라도 정부가 위탁소를 설치하여 이들을 대리 보육을 해주거나 정부 차원에서 입양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이러한 정책은 입헌정우회의 장기 독주 시기에 구축되었다가 [[제1차 도이 내각]] 때 재정비되었다. 제1차 도이 내각의 후임인 [[호소카와 내각]]은 혼인 전에 출산을 하는 이들을 위하여 '예비 가정 등록제'를 실시하여 가정 구성원이 될 이들에게도 가족 구성원과 같은 혜택을 주었다. 한편 출산 지원금을 신설하기도 하였다. 제2차 도이 내각은 살점을 덧대어 일과와 육아의 병행을 지원하고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금지 및 육아휴직으로 인한 직장내 불이익 제거와 같은 육아에 도움이 안되는 사회 병폐 척결을 실시했다. 그리고 가정이 고령 가족을 부양하는 것에 대한 복지 정책도 실시하였는데 은퇴 연금제, 노령기초지원금 증대, 노령자 생활 지원 시설 대규모 증설 등이 바로 그 정책이다. 이에 말미암아 노령 인구 부양이 쉬워지면서 가정 재정에 대한 부담도가 낮아지게 된다.[* 이렇듯 출산율 하락을 미연에 방지하면서 지금까지 일본은 안정적인 노동생산인구 증가와 출산율 유지, 내수경제 확대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일본이 선진국 계열에 속해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선진국 공통분모상 일본도 언젠가는 저출산 시대에 접어들 것이라는 비관론도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이때문에 최근에는 연애 커플도 가족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자는 법률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언어===
 
===언어===
{{본문|일본어}}
+
{{본문|일본국 (나루히토)/언어}}
일본국의 국어(國語)는 가나라는 일본 국문(國文)으로 기록되는 [[일본어]]이며 [[일본 열도 (공동세계관)|일본 열도]]의 [[일본인 (공동세계관)|일본인]] 절대다수가 국어로써 혹은 생활에 용이함을 위하여 사용 중에 있고[* 사실 일본인과 대화 민족은 엄연히 다른 뜻이고 일본인 속에 대화 민족이 있는 것이다. 일본인에는 아이누족이나 류큐족, 재일한인들도 포함된다.] 해외에 거주하는 일본국적의 [[일본인 (공동세계관)|일본인]]도 대개는 사용한다. [[대화 민족 (공동세계관)|대화 민족]]은 해외 거주인을 제외하면 [[일본어]]를 통용한다. 다만 아이누족이나 류큐족, 재일한인, 재일중국인 등은 자국 언어나 전통 언어를 겸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글로벌 언어로 정착한 영어에 관하여 일본국 정부는 정규 교육 과정에 영어 교육을 의무화시키는 등 영어 교육을 보편화시켰다. 이외에 제2외국어로는 프랑스어, 중국어, 독일어, 라틴어 등이 인기가 많다.
+
일본국의 국어(國語)는 '가나(仮名)'라는 국문(國文)으로 기록되는 [[일본어]]이며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 절대다수가 국어로써 혹은 생활에 용이함을 위하여 사용 중에 있고 해외에 거주하는 일본 국적의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도 대개는 사용한다. [[일본인 (나루히토)|일본인]]은 따라서 [[일본어]]를 통용한다. 아이누어나 산칸어 등 지역어가 존재하고 일본어 자체의 방언도 다양하다. 한편 글로벌 언어로 정착한 영어에 관하여 일본국 정부는 정규 교육 과정에 영어 교육을 의무화시키는 등 영어 교육을 보편화시켰다. 이외에 제2외국어로는 프랑스어, 중국어, 독일어, 라틴어 등이 인기가 많다.
 
===종교===
 
===종교===
일본국은 [[일본국 헌법 (공동세계관)|일본국 헌법]]에 의거하여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며 정교(政敎)의 분리를 규정하고 있다.[* 즉 제정일치사회를 부정한다는 뜻이다.] 또한 '국가 연례 행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국가 행사에는 종교 색채가 함유되면 안된다고 규정한다. 이로 인하여 정부관료들의 신사참배 등, 국가신토나 종교에 관련된 행사는 국가 행사가 아닌 정치인 개인이 치루는 행사로 분류된다. 기타적으로 일본에는 기복 신앙이 대중화되었으며 신토, 불교, 기독교 등 주요 종교의 사상에 착안한 신종교의 발생 빈도가 빈번하다. 그러나 이렇게 발생한 신종교는 사이비 종교와는 다르게 상식적, 윤리적, 비영리적[* 다만 성금을 걷는 신종교도 존재하는데 이럴 경우에는 '성금·모금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부의 방침 하에 성금을 모집한다.]인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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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은 [[일본국 헌법 (나루히토)|일본국 헌법]]에 의거하여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며 정교(政敎)의 분리를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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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
[[일본인 (공동세계관)|일본인]]은 종교를 여러개 갖는 '복수종교(複数宗教, おおいのしゅうきょう)'라는 종교 생활을 하는데 이는 과거 일본이 여러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과 종교 간 연결된 상호 관계에 의해 파생됐다. 그 예로 신불습합이 있었다.[* 신불습합은 메이지 시대 이후 '신불분리'에 따라 와해되었으나 최근들어 다시 나타나려는 조짐이 있다.] 복수종교의 종교생활면을 간단하게 보면 일본국의 전통 종교인 불교와 신토는 거의 일본 국민 생활 전반에 동화되어 있기에 태생 초부터 불교나 신토, 혹은 둘 다를 믿기 시작하며[* 이럴 경우에는 처음부터 복수종교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기독교 세례를 받게 되거나 불교를 믿게 되어 복수교적(複数黨籍)을 갖는다. 이런 면에서 복수종교 생활은 세속적이라 볼 수 있다.[* 일본은 문부과학성 산하 문화청의 주도 하에 종교인은 소속된 종교를 정부에 신고하는 '교적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 덕에 일본에서 종교인 집계를 하면 종교인 집계인수가 일본 전체 국민 수를 넘어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그냥 매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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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토는 뚜렷한 종교라는 특성이 없어서 다른 종교와 섞이기도 하였는데 복수종교라는 일본인의 종교 문화와 연계되면서 불교와의 융합인 신불습합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후기에는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 현재에 이르러 중앙집권화에 성공, 정식적인 종교화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종교성이 별로 없어 강한 정체성과 체계적인 조직이 전무했던 신토는 19세기에 접어든 후, 이세신궁의 신관이었던 '아이야 도이치(会谷 盗一)'가 서양의 천주교를 보면서 신토 또한 천주교처럼 조직화되어 '종교(宗敎)'의 모습을 갖출 것을 주장하게 되고 이의 일환으로 여러 지역에 분권적으로 존재하던 신사들을 신궁의 예하로 통합시키는 신토통합운동(神道統合運動)을 전개한다. 한편 '우부야시키 나츠히코(産屋敷 夏彦)'라는 또다른 신관은 천주교의 교황청을 모방하여 모든 신사들을 통할하는 기구의 설립을 이세신궁에 청원하는 교무부설립청원운동(敎務府設立請願運動)을 일으킨다. 또한 신토는 신불습합와해운동(神佛習合瓦解運動)을 통해 신토의 중앙집권화를 사사건건 방해하던 불교와 연을 끊으려 기도한다. 이후 세 운동 모두 목적을 달성하였고 1879년에 교무부가 설치되며 1881년에는 대부분의 지방 신사들이 해당 지방의 신궁에 관리를 받기 시작한다.  이로서 교무부가 신궁을 통할하고 신궁이 신사를 통할하는 조직적 구조의 틀이 정립된다. 허나 이러한 중앙집권화 운동은 일부 지방 신사들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 하였고 이렇게 개혁에 불응한 신사들을 '불응신기(不應神祇)'라 한다. 아이야 신관을 위시한 협상파는 불응신기도 포용하여 개혁에 동참시키는 온건적인 노선을 지향했지만 우부야시키 신관을 위시하는 '신궁회(神宮会)'는 협상파의 포용 노선을 지양하고 개혁에 협조하지 않는 불응신기는 불가역적으로 배제, 순응한 신사들로만 개신을 추진해야 한다 주장하면서 대립각을 세운다. 이윽고 신궁회가 양보하면서 불응신기와의 협상에 들어가 현재까지 대부분의 지방 신사가 중앙집권화를 이룩했지만 일부 신사는 아직도 불응신기로 남아 있다. 한편 앞서 말한 두 운동으로 천주교처럼 신토를 종교로 가꾸어 나가기 시작한 신궁회와 '창경회(彰炅会)'는[* 협상파가 표면 위로 올라오면서 창설한 조직이다.] 훗날 신토의 양대 파벌이 되버린다. 20세기 초반이 되어 신토는 천주교처럼 교무부를 정점으로 하는 완연한 중앙집권적 지배 구조와 아마테라스오오카미를 중심으로 교리를 개편하게 된다. 이로서 신토는 여타 다른 종교들처럼 종교의 색을 갖추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신토의 파벌 정계는 190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는 창경회가 우세를 점했지만 이후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낙수론 계열인 신궁회가 우세를 점한 상태이며 기존 이세신궁파와 새로 등장한 헤이안신궁파가 연고지를 기반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신토====
 
 
 
 
====불교====
 
====불교====
 
[[파일:일본 도다이지 대불전 정면.jpg|350px|섬네일|가운데|도다이지 대불전]]
 
[[파일:일본 도다이지 대불전 정면.jpg|350px|섬네일|가운데|도다이지 대불전]]
일본의 불교 신자수는 [[일본국 정부 (공동세계관)|일본국 정부]]의 통계 조사 결과 일본 국민의 48.2%인 78,220,289명(7822만 289명)이며 전국의 사찰 수는 약 7만 5천곳, 승려는 약 18만명 정도이다. [[일본국 정부 (공동세계관)|일본 정부]] 문부과학성이 관할하는 불교 부문의 종교법인은 461개, [[일본국 (공동세계관)/도도부현|도도부현]] 관할 불교 부문 종교법인은 7만 6875개로 종교 법인 중 가장 많은 파이를 가지고 있으며 한편 주요 종파로는 대승불교를 원칙으로 하는 진언종과 정토종이 있다.
 
  
 
[[파일:호류지 사찰.jpg|250px|섬네일|가운데|호류지]]
 
[[파일:호류지 사찰.jpg|250px|섬네일|가운데|호류지]]
일본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시기는 6세기경의 [[전근대 일본|아스카 시대]]로 이때 불교 종파 중 '남도육종(南都六宗)'으로 불리우는 삼론종, 성실종, 법상종, 구사종, 율종, 화엄종이 전파됐다. 이러한 불교 전래를 주도했던 세력은 한반도 서남부 국가인 '백제'의 승려들이었다. 한편 당시 정사를 폈던 우마야도 황자(쇼토쿠 태자)는 불교의 공인을 추진하던 외척 가문인 소가씨의 주장을 수용하여 불교 진흥에 노력했는데 이에 따라 호류지와 같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일본의 유명 사찰들이 창설됐다. 일본에 불교가 설파되며 견당사를 통해 일본의 주요 승려들이 당나라에서 불교 학문 등을 수입·연구를 시작한다. 견당사로 돌아온 승려들은 직후 사이초와 구카이의 주도 하에 천태종과 진언종 등을 일본에 새로 개창하였다. 그리고 [[전근대 일본|나라 시대]]에는 율령국마다 대표되는 절을 창설하는 '고쿠분지' 제도가 실시되어 지방으로도 불교가 급격히 확산된다. 허나 일본 불교는 연도가 지나며 말법 사상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말법 사상이란 석가모니의 불교 설파 후 첫 천년기에는 제대로 석가의 가르침이 구주되지만 두번째 천년기에 접어들면서 불교는 암흑기에 접어든다는 이론으로 [[전근대 일본|헤이안 시대]]가 되는 기원후 1000년대에 말법 사상이 급격히 확산되고 불교 비관론이 등장하며 일본 불교는 점차 쇠퇴기에 접어든다. 그리고 가마쿠라 시대가 되자 이러한 쇠퇴 현상은 가속화된다. 가마쿠라 시대에 일본은 빈번한 전쟁과 전염병으로 사회가 혼란하였고 백성들은 말법 사상에 젖여 있는 승려들에 대한 대체재, 딱딱하고 규율에 얽매인 불교의 대체재로 한반도에 존재하던 정토종의 아미타 신앙을 믿기 시작한다. 직후 아미타 사상이 충분히 유입되자 이를 기반으로 정토종도 일본에 전래된다. 아미타 사상이라는 학문 기반과 혼란한 사회상을 비료로 쉽게 일본에 뿌리를 튼 정토종은 일본 불교 사회의 주요 종파로 등극하였고 불교가 대중화되면서 불교는 급격한 세 확장을 이룬다. 그리고 헤이안 시대에 전파된 '가지(加持)'를 통하여 본인이 곧 부처가 된다는 진언종이 유행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진언종은 일본의 주요 종파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다. 정토종과 아미타 신앙의 대중화가 밑거름이 되어 [[전근대 일본|전국 시대]]에는 잇키 주도의 민간 사찰들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전근대 일본|에도 시대]]가 개막된 후 불교와 신토가 융합되는 '신불습합'이 융성하였는데 신토를 주도로 하는 신불습합은 재력가와 정부 관료들의 후원과 일본 상공업의 성장에 편승하여 전성기를 누린다. 그러나 점차 불교는 정계와 유착하기 시작하고 '신정유착'이 불교의 폐습으로 자리 잡는다. 근대에 접어들어 [[전근대 일본|메이지 시대]]가 열리고 근대화라는 명목 하에 신토와 불교를 분리시키는 '신불분리'가 정부 주도 하에 시행되고 승려들은 신정유착 폐습의 철폐와 불교의 쇄신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였다. 이후 현재에 이르어 일본 불교는 그리 넉넉치 않은 상황인데 이촌향도 현상으로 지방 사찰의 재정을 지원하던 농가들[* 단가(檀家)라 부른다.]이 감소함에 따라 일본 불교 사회는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파일:일본 승려들 1.jpg|350px|섬네일|가운데|일본 불교의 승려들]]
 
[[파일:일본 승려들 1.jpg|350px|섬네일|가운데|일본 불교의 승려들]]
일본 불교의 특징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종교 활동이 전개되지 않고 그 사찰의 주직이나 개산조사[* 불교 종파나 절을 새로 세운 사람을 일컫는다.]을 중심으로 종교 활동이 전개된다. 이때문에 부처 불상을 모시는 법당보다 개산조사 등을 모시는 법당이 나름 많다. 일본 전역에 기복신앙이 퍼져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일본 불교는 사상적, 교육적인 노선을 타고 있는데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한다.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하여 이에 말미암아 일본 불교는 통일된 종교 기구 수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하다. 한편 일본에서 승려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며 [[일본인 (공동세계관)|일본인]]은 승려를 장례주관인이라 생각하거나 자식에게 직업을 대물림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여기서 일본은 결혼이 가능하고 자식도 가질 수 있는 대처승이 많은 것이 이들의 인식에 크게 기인한다. 한편 승려를 '부업'으로 가진 재가승이나 '알바 승려'같은 직종도 존재한다.
 
 
====기독교====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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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우라카미 성당 1.jpg|350px|섬네일|가운데|우라카미 성당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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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마리아_관음상_1.jpg|350px|섬네일|성모 마리아를 관음상으로 표현한 모습]]
 
====사이비 종교====
 
====사이비 종교====
일본국에서 사이비 종교(カルト, 카루토)의 발호 횟수는 적지만 암암리에 창시되고 일부 사이비 종교 단체는 정치 세력을 출범,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정치 세력은 '행복실현당'.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사이비 종교로는 '옴진리교'가 있는데 도쿄에 사카린 테러를 일으켰다가 [[일본국 정부 (공동세계관)|일본국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조직이 와해됐지만 아직까지 단체를 --세포분열-- 분리시키며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종교가 상당히 세속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전세계적으로 보면 그다지 사이비 종교가 범국가적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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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에서 사이비 종교(カルト, 카루토)의 발호 횟수는 적지만 암암리에 창시되고 일부 사이비 종교 단체는 정치 세력을 출범,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정치 세력은 '행복실현당'.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사이비 종교로는 '옴진리교'가 있는데 도쿄에 사린 테러를 일으켰다가 [[일본국 정부 (나루히토)|일본국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조직이 와해됐지만 아직까지 조직을 분리시키며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종교가 상당히 세속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전세계적으로 보면 그다지 사이비 종교가 범국가적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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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일 (일) 08:38 기준 최신판

본 문서는 나루히토가 창작한 가상의 일본국 설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1공동세계관 일본의 설정은 현실과 같으되, 모리토모 사건 후 아베 신조가 실각하고 이시바 시게루가 내각총리대신으로 취임한 것이 분기점입니다. 이외 설정은 거의 같습니다.

 

Flag of Japan.svg
일본국
日本国
State of Japan
국기국장국가국화국조
사회문화종교국어민족
정치행정정당천황도도부현
경제산업기업무역통화
자연환경역사국군연호과학기술

 

대일본국
大日本国
Flag of Japan.svgImperial Seal of Japan.svg
국기국장
우리 시대의 평화와 화합
我等の時代の平和と和合
상징
국기일장기
국장국화문
국가기미가요
국화벚꽃
국조일본꿩
지리
면적719,155㎢
수도도쿄도
최대도시도쿄도
행정구역도도부현
인문환경
인구총인구250,817,853명(2019)
지역인구·일본 열도 142,136,597명
·조선 반도 87,350,609명
·대만도 20,727,511명
·남양 제도 603,136명
인구밀도349명/km²(2019)
민족구성일본인 97.5%
중국인 0.9%
기타 1.6%
출산률1.8명(2019)
공용어일본어
공용 문자가나·신자체
종교국교 없음
신토 14%
불교 26.9%
가톨릭 9.4%
기타 및 무종교 49.7%
군대일본국 국군
정치
정치 체제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국가요인천황나루히토
내각총리대신이시바 시게루
참의원 의장히라노 히로후미
중의원 의장가네다 가쓰토시
대심원장나카니시 간
여당입헌정우회
경제
경제 체제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명목 GDP전체 GDP$10,368,810,043,020(2019년)
1인당 GDP$41,340(2019년)
GDP(PPP)전체 GDP$11,306,617,995,387(2019년)
1인당 GDP$45,079(2019년)
화폐공식화폐일본국 엔 ¥
ISO 4217JPY
역사
701년일본으로 국호 개칭
1900년일본국 헌법 제정
1912년다이쇼 시대 개막
1926년쇼와 시대 개막
1989년헤이세이 시대 개막
2019년레이와 시대 개막
단위
법정연호레이와
시간대일본국 표준시
도량형SI 단위
ccTLD
.jp
국제 전화 코드
+81
국가코드
392, JPN, JP

개요

일본국(일본어: 日本国, 한문: 日本國, 영어: State of Japan)아시아,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의원내각제, 입헌군주제, 단방제 국가이다.

상징

Flag of Japan.svg
일본국의 상징
日本国の象徴
Symbol of Japan
Flag of Japan.svg일장기
日の丸 ひのまる
Imperial Seal of Japan.svg국화문
十六葉八重表菊文
Kimigayo.score.png기미가요
きみがよ
Prunus × yedoensis-1.jpg벚꽃
さくら
Phasianus versicolor versicolor -1.jpg일본꿩
日本の雉

국호

언어 해당언어명칭
일본어 日本(にほん, にっぽん)
한국어 일본
영어 Japan
프랑스어 Japon
독일어 Japan
러시아어 Япония
중국어 간체&번체 日本
베트남어 Nhật Bản

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자 전형인 신자체로 국호를 표기하면 日本国(일본국)이며 한자 번체로는 日本國(일본국), 한자 간체로는 日本国(일본국)으로 영어로는 Japan(저팬)으로 표기한다. '일본'의 일본어 독음은 니혼(にほん, Nihon) 혹은 닛폰(にっぽん, Nippon)인데 영어 독음은 저팬(japan)이다.

국기

틀:일본국 (나루히토)/국기

일장기(日章旗)

일본국의 공식 국기는 일장기(日章旗), 히노마루(日の丸 ひのまる)다. 일본어로는 일장기를 '닛쇼-키(にっしょうき)'라 읽지만 일본인 대다수는 '히노마루(日の丸 ひのまる)'라 읽는다. 여기서 히노마루는 일장기를 뜻하기도 하고 일본이나 일본 정부, 또는 일본의 독자적인 무언가를 지칭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국장

틀:일본국 (나루히토)/국장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일본국의 관습상 국장은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십육일중표국문(十六一重表菊文), 국화문(菊花文)이다. 명칭이 다양한데 십육엽팔중표국문(十六葉八重表菊文, 쥬-로쿠요-하치쥬-효-키쿠)과 십육일중표국문(十六一重表菊文, 쥬-로쿠이치쥬-효-키쿠), 국화문(菊花文, 키쿠카) 등이 있다. 여기서 국화문은 말 그대로 이 문장에 쓰인 꽃이 국화(菊花)라서 쓰이는 이름이며, 십육엽팔중표국문의 뜻은 '16개의 잎, 8개의 겹을 가진 국화문'이다. 십육일중표국문은 '16개 홑겹을 가진 국화문'이라는 뜻이다. 보통은 국화문이라는 호칭이 널리 사용된다.

국가

틀:일본국 (나루히토)/국가

일본국의 국가는 기미가요(君が代, きみがよ)이다.

국화

틀:일본국 (나루히토)/국화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ソメイヨシノ)

일본국의 국화는 벚꽃(桜, 사쿠라)이다.

국조

틀:일본국 (나루히토)/국조

일본꿩(日本の雉, 日本のキジ)

일본국의 국조는 일본꿩(日本の雉)이다.

역사

틀:일본국 (나루히토)/역사

근대 이전

익한정부 시대

1900년대

1910년대

1920년대 초기

문민정부 시대

1920년대 중후기

1930년대

1940년대 초중기

국민정부 시대

쇼와 시대

1940년대 후기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헤이세이 시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초기

레이와 시대

2010년대 중후기

2020년대

자연환경

인문환경

인구

언어

일본국의 국어(國語)는 '가나(仮名)'라는 국문(國文)으로 기록되는 일본어이며 일본인 절대다수가 국어로써 혹은 생활에 용이함을 위하여 사용 중에 있고 해외에 거주하는 일본 국적의 일본인도 대개는 사용한다. 일본인은 따라서 일본어를 통용한다. 아이누어나 산칸어 등 지역어가 존재하고 일본어 자체의 방언도 다양하다. 한편 글로벌 언어로 정착한 영어에 관하여 일본국 정부는 정규 교육 과정에 영어 교육을 의무화시키는 등 영어 교육을 보편화시켰다. 이외에 제2외국어로는 프랑스어, 중국어, 독일어, 라틴어 등이 인기가 많다.

종교

일본국은 일본국 헌법에 의거하여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며 정교(政敎)의 분리를 규정하고 있다.

신토

신토는 뚜렷한 종교라는 특성이 없어서 다른 종교와 섞이기도 하였는데 복수종교라는 일본인의 종교 문화와 연계되면서 불교와의 융합인 신불습합이 일어나기도 하였고 후기에는 천주교의 영향을 받아 현재에 이르러 중앙집권화에 성공, 정식적인 종교화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종교성이 별로 없어 강한 정체성과 체계적인 조직이 전무했던 신토는 19세기에 접어든 후, 이세신궁의 신관이었던 '아이야 도이치(会谷 盗一)'가 서양의 천주교를 보면서 신토 또한 천주교처럼 조직화되어 '종교(宗敎)'의 모습을 갖출 것을 주장하게 되고 이의 일환으로 여러 지역에 분권적으로 존재하던 신사들을 신궁의 예하로 통합시키는 신토통합운동(神道統合運動)을 전개한다. 한편 '우부야시키 나츠히코(産屋敷 夏彦)'라는 또다른 신관은 천주교의 교황청을 모방하여 모든 신사들을 통할하는 기구의 설립을 이세신궁에 청원하는 교무부설립청원운동(敎務府設立請願運動)을 일으킨다. 또한 신토는 신불습합와해운동(神佛習合瓦解運動)을 통해 신토의 중앙집권화를 사사건건 방해하던 불교와 연을 끊으려 기도한다. 이후 세 운동 모두 목적을 달성하였고 1879년에 교무부가 설치되며 1881년에는 대부분의 지방 신사들이 해당 지방의 신궁에 관리를 받기 시작한다. 이로서 교무부가 신궁을 통할하고 신궁이 신사를 통할하는 조직적 구조의 틀이 정립된다. 허나 이러한 중앙집권화 운동은 일부 지방 신사들의 지지를 얻어내지 못 하였고 이렇게 개혁에 불응한 신사들을 '불응신기(不應神祇)'라 한다. 아이야 신관을 위시한 협상파는 불응신기도 포용하여 개혁에 동참시키는 온건적인 노선을 지향했지만 우부야시키 신관을 위시하는 '신궁회(神宮会)'는 협상파의 포용 노선을 지양하고 개혁에 협조하지 않는 불응신기는 불가역적으로 배제, 순응한 신사들로만 개신을 추진해야 한다 주장하면서 대립각을 세운다. 이윽고 신궁회가 양보하면서 불응신기와의 협상에 들어가 현재까지 대부분의 지방 신사가 중앙집권화를 이룩했지만 일부 신사는 아직도 불응신기로 남아 있다. 한편 앞서 말한 두 운동으로 천주교처럼 신토를 종교로 가꾸어 나가기 시작한 신궁회와 '창경회(彰炅会)'는[1] 훗날 신토의 양대 파벌이 되버린다. 20세기 초반이 되어 신토는 천주교처럼 교무부를 정점으로 하는 완연한 중앙집권적 지배 구조와 아마테라스오오카미를 중심으로 교리를 개편하게 된다. 이로서 신토는 여타 다른 종교들처럼 종교의 색을 갖추게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그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신토의 파벌 정계는 1900년대에서 1950년대까지는 창경회가 우세를 점했지만 이후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낙수론 계열인 신궁회가 우세를 점한 상태이며 기존 이세신궁파와 새로 등장한 헤이안신궁파가 연고지를 기반으로 대립하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불교

도다이지 대불전
호류지
일본 불교의 승려들

기독교

우라카미 성당의 모습
성모 마리아를 관음상으로 표현한 모습

사이비 종교

일본국에서 사이비 종교(カルト, 카루토)의 발호 횟수는 적지만 암암리에 창시되고 일부 사이비 종교 단체는 정치 세력을 출범,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정치 세력은 '행복실현당'. 일본에서 일어난 대규모 사이비 종교로는 '옴진리교'가 있는데 도쿄에 사린 테러를 일으켰다가 일본국 정부의 대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조직이 와해됐지만 아직까지 조직을 분리시키며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종교가 상당히 세속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에 전세계적으로 보면 그다지 사이비 종교가 범국가적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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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협상파가 표면 위로 올라오면서 창설한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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