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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르어로는 Arnor라는 단어의 뜻이 '왕의 땅'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Kingdom' | 아르노르어로는 Arnor라는 단어의 뜻이 '왕의 땅'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Kingdom'혹은 '왕국'을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아르노르 왕국으로 표기하는 것도 허용하며, 영문으로도 Arnor 또는 Kingdom of Arnor로 표기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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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역사== | ||
엘로스가 세운 최초의 왕국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옛 아르노르어로 '최초의 왕국' 이라는 뜻의 'Minui | 아르노르의 건국 신화는 흔히 '에아렌딜 신화'로 불린다. 에아렌딜 신화에서는, 아주 먼 옛날, 아르노르 섬의 사람들이 아주 원시적인 기술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때, 에아렌딜이라는 사람이 바다 건너에서 배를 타고 아르노르에 온 후, 아르노르가 기술적,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어 고대 국가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에아렌딜이 어디서 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그저 '바다 건너 어딘가'에서 왔다고만 전해진다. 에아렌딜 신화의 영향으로, 아르노르인들은 전통적으로 바다를 신성시하며 '항해'를 중요시한다. 에아렌딜은 아르노르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였고, 그 사후에 에아렌딜의 아들인 엘로스가 최초의 왕으로써 즉위하고 최초의 국가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 ||
엘로스가 세운 최초의 왕국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옛 아르노르어로 '최초의 왕국' 이라는 뜻의 'Arnad Minui', 줄여서 아르나드라고 일컬어질 뿐이다. 전설에 의하면 엘로스는 아르메넬로스를 수도로 삼아 500년을 살며 통치했다고 전해지며, 아르노르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엘로스 사후에는 24명의 왕이 'Minui Arnad'의 왕으로서 통치했다. 물론 엘로스에 대한 기록이 엄청나게 자세하다거나, 신빙성이 높다던가, 역사학적으로 엄청나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엘로스라는 지도자가 존재했고, 아르노르에서 최초로 칭왕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기에, 일반적으로 위대한 왕을 꼽을 때에 빠지지 않고 꼽힌다. (약 기원전 900~약 기원후 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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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로스의 장손으로 이어지는 직계 후손은 25대 이후로 끊기고, 25대 왕 '아르파라존'의 조카인 '엘렌딜'이 26번째 왕으로써 즉위한다. 엘로스가 최초로 즉위했을 때 왕국의 강역은 섬 서쪽 일부분 뿐이었지만, 25대를 이어오며 강역을 차차 확장해나갔고, 아르파라존 대에 이르러서는 섬의 절반에 가까운 면적을 차지했다. 엘렌딜이 즉위한 이후로 본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갔고, 엘렌딜 통치기 말미에 이르러서는 섬 전체에 가까운 영역을 왕국의 강역으로 삼았다. 이때 엘렌딜은 옛 아르노르어로 '왕의 땅'이라는 뜻의 'Arnor'로 국호를 정하고, 수도를 안누미나스로 옮겼다. 이 때문에 엘렌딜은 아르나드의 26대 왕이자 아르노르의 1대 왕으로 불린다. 또한 엘렌딜은 아르노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 엘로스의 장손으로 이어지는 직계 후손은 25대 이후로 끊기고, 25대 왕 '아르파라존'의 조카인 '엘렌딜'이 26번째 왕으로써 즉위한다. 엘로스가 최초로 즉위했을 때 왕국의 강역은 섬 서쪽 일부분 뿐이었지만, 25대를 이어오며 강역을 차차 확장해나갔고, 아르파라존 대에 이르러서는 섬의 절반에 가까운 면적을 차지했다. 엘렌딜이 즉위한 이후로 본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갔고, 엘렌딜 통치기 말미에 이르러서는 섬 전체에 가까운 영역을 왕국의 강역으로 삼았다. 아르노르 본섬뿐 아니라 현재는 포르투갈령인 대서양의 아소르스 제도까지 점령해 영토로 삼기도 했다. 이때 엘렌딜은 옛 아르노르어로 '왕의 땅'이라는 뜻의 'Arnor'로 국호를 정하고, 수도를 안누미나스로 옮겼다. 이 때문에 엘렌딜은 아르나드의 26대 왕이자 아르노르의 1대 왕으로 불린다. 또한 엘렌딜은 아르노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이자,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로 꼽힌다. 왕국의 영토가 섬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넓어지자, 통치에 어려움을 겪은 왕은 왕국을 북부와 남부로 나눠 통치하고자 했다. 북부는 왕이 직접 통치했으며, 북왕국이라고 불렸고, 남쪽은 왕이 임명한 지도자가 다스렸으며 남왕국이라고 불렸다. 남왕국은 주로 왕의 동생이나 조카 등 왕의 친족이 다스렸다. 남왕국의 중심 도시이자 수도는 오스길리아스였다.( ~약 기원후9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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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분열 끝에 엘렌딜의 적통인 아르세다인 왕가가 루다우르와 카르돌란을 패퇴시켰으나, 오랜 전쟁으로 국력은 쇠퇴하고, 왕권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섬 각지에서 반군이 일어났고, 왕의 군대와 반군과의 전쟁 끝에 아르세다인마저 멸망하게 된다. 그러나 반군도 하나로 | 전쟁과 분열 끝에 엘렌딜의 적통인 아르세다인 왕가가 루다우르와 카르돌란을 패퇴시켰으나, 오랜 전쟁으로 국력은 쇠퇴하고, 왕권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섬 각지에서 반군이 일어났고, 왕의 군대와 반군과의 전쟁 끝에 아르세다인마저 멸망하게 된다. 그러나 반군도 하나로 통합되지 못했고, 각 반군마다 원하는 것도 달랐으며 의견도 하나로 모아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반군 정부가 세워지지 못하고, 각 지역에서 영향력이 강한 반군 단체가 각각 정부의 역할을 하면서 아르노르판 춘추전국시대가 열린다. 중앙 정부는 존재하긴 했지만 왕위는 공석이었고, 그저 이름뿐인 '섭정'이 중앙 정부의 우두머리로 존재했지만 영향력은 없었다. 중앙정부는 힘이 없고, 지방에서는 반군 단체들이 각각 정부를 자칭하며 오랜 혼란기가 열렸다. 하지만 엘렌딜의 정당한 후계자 혈통인 아르세다인 왕가의 혈통은 멸족하지 않았고, 정체를 숨긴 채 반군을 피해 여러 지역을 방랑하며 살아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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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랜 혼란기를 거쳐, 기원후 1200년 즈음 아르세다인 왕가의 혈통이 끊어졌다고 생각될 때 쯤에, 자신이 엘렌딜의 적통이라고 주장하는 '엘레사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혼란기에 정체를 감추고 살아오던 아르세다인 왕가의 직계 혈통이었다. 엘레사르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각 지방을 지배하며 영주를 자칭하던 옛 반군 세력을 모두 격파하고, 아르노르를 다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엘레사르는 그 자신과 그 후손은 아르노르의 '텔콘타르 왕조'가 될 것이라 선언하고, 아르노르 왕국의 엘레사르 텔콘타르 1세로 즉위했다. 엘레사르는 엘로스, 엘렌딜과 함께 아르노르의 위대한 세 왕으로 불린다. | 그렇게 오랜 혼란기를 거쳐, 기원후 1200년 즈음 아르세다인 왕가의 혈통이 끊어졌다고 생각될 때 쯤에, 자신이 엘렌딜의 적통이라고 주장하는 '엘레사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혼란기에 정체를 감추고 살아오던 아르세다인 왕가의 직계 혈통이었다. 엘레사르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각 지방을 지배하며 영주를 자칭하던 옛 반군 세력을 모두 격파하고, 아르노르를 다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엘레사르는 그 자신과 그 후손은 아르노르의 '텔콘타르 왕조'가 될 것이라 선언하고, 아르노르 왕국의 엘레사르 텔콘타르 1세로 즉위했다. 엘레사르는 엘로스, 엘렌딜과 함께 아르노르의 위대한 세 왕으로 불린다. 아르노르 사학계에서는 엘라사르가 정말 엘렌딜의 후손인지, 혼란을 틈타 그 후손임을 주장하고 칭왕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다만, 그와 별개로 엘레사르 왕이 아르노르의 제 2 전성기의 문을 열었다는 것 만은 사실이기에 엘렌딜의 적통인지에 대한 논쟁과는 별개로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는다. 세간에서는 엘라사르 왕을 엘렌딜의 후손이자 정당한 후계자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며, 왕실의 공식 입장도 그러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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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콘타르 | 엘레사르 왕의 텔콘타르 왕조 치하의 아르노르는 수백년을 이어오며 다시 번성했고, 옛 영광을 재현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근대에 들어 포르투갈과 영국의 침략을 받고, 결국에는 영국령 아르노르가 된다. 아메리카로 항해하는 길목에 위치해 영국 선박들의 중간 기착지로 활용되었으며, 이 시기에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은 영국 왕실이 아르노르의 왕을 겸했고, 오랜 기간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이후 1800년대 중반쯤 자치령이 되었고,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19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완전한 독립국의 지위를 다시 가지게 되었다. 영국의 식민지일 당시에도 대규모 수탈이나 학살은 없었고, 이후 자치령이 되었다가 독립할 때까지의 과정도 순탄했기에, 영국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아 독립 당시 영연방 왕국으로 남을지에 대한 사안도 논의되었지만, 결국 원래의 아르노르 왕가가 왕관을 되찾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영연방의 일원이면서 단독 왕실을 가지는 특이한 정치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후 현대까지도 영국에 대한 인식은 좋은 편이고, 영연방의 일원으로써 영국 및 다른 영연방 국가들과 꾸준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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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르가 자치령일 당시와 독립 초기에는 영국의 정치 체제를 거의 그대로 따랐다. 의회는 서민원과 귀족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를 따랐으며, 입헌군주제 및 의원내각제의 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독립 이후 이 체제를 아르노르의 특성에 맞게 일부 수정해, 의회는 단원제를 따르게 되었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경제적 발전을 일구어내 현재는 국민소득도 상당한 수준이 되었으며, 유럽연합과 NATO의 일원으로써 국제사회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 | |||
특이한 것은, 엘로스 이후로 현 국왕에 이르기까지 역성혁명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중간에 왕이 없던 혼란기도 있었고, 엘레사르가 진짜 엘렌딜의 후손인지에 대한 논쟁도 있고,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혁명을 일으켜 왕실을 폐하고 새로운 인물이 왕이 되는 역성혁명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공백기(혼란기, 식민지배기)를 제외하면 수천년간 한 혈통이 왕위를 유지했다고 보는 시선이 일반적이다. | |||
==인문 환경== | |||
총 인구: 13,239,600명 | |||
==경제== | |||
*총 GDP: 517,893,433,200 USD | |||
* 1인당 GDP: 39,117 USD | |||
=== | ==군사== | ||
[[아르노르 왕국군]] 문서로. | |||
2021년 8월 28일 (토) 10:00 기준 최신판
개요
아르노르 또는 아르노르 왕국은 북대서양에 위치한 입헌군주제 국가이다.
상징
국호
아르노르어로는 Arnor라는 단어의 뜻이 '왕의 땅'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Kingdom'혹은 '왕국'을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아르노르 왕국으로 표기하는 것도 허용하며, 영문으로도 Arnor 또는 Kingdom of Arnor로 표기한다.
국기
국장
국가
역사
아르노르의 건국 신화는 흔히 '에아렌딜 신화'로 불린다. 에아렌딜 신화에서는, 아주 먼 옛날, 아르노르 섬의 사람들이 아주 원시적인 기술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 때, 에아렌딜이라는 사람이 바다 건너에서 배를 타고 아르노르에 온 후, 아르노르가 기술적,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이루어 고대 국가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에아렌딜이 어디서 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그저 '바다 건너 어딘가'에서 왔다고만 전해진다. 에아렌딜 신화의 영향으로, 아르노르인들은 전통적으로 바다를 신성시하며 '항해'를 중요시한다. 에아렌딜은 아르노르에서 오랫동안 사람들을 이끈 위대한 지도자였고, 그 사후에 에아렌딜의 아들인 엘로스가 최초의 왕으로써 즉위하고 최초의 국가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엘로스가 세운 최초의 왕국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옛 아르노르어로 '최초의 왕국' 이라는 뜻의 'Arnad Minui', 줄여서 아르나드라고 일컬어질 뿐이다. 전설에 의하면 엘로스는 아르메넬로스를 수도로 삼아 500년을 살며 통치했다고 전해지며, 아르노르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엘로스 사후에는 24명의 왕이 'Minui Arnad'의 왕으로서 통치했다. 물론 엘로스에 대한 기록이 엄청나게 자세하다거나, 신빙성이 높다던가, 역사학적으로 엄청나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엘로스라는 지도자가 존재했고, 아르노르에서 최초로 칭왕한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로 받아들여지기에, 일반적으로 위대한 왕을 꼽을 때에 빠지지 않고 꼽힌다. (약 기원전 900~약 기원후 100) 엘로스의 장손으로 이어지는 직계 후손은 25대 이후로 끊기고, 25대 왕 '아르파라존'의 조카인 '엘렌딜'이 26번째 왕으로써 즉위한다. 엘로스가 최초로 즉위했을 때 왕국의 강역은 섬 서쪽 일부분 뿐이었지만, 25대를 이어오며 강역을 차차 확장해나갔고, 아르파라존 대에 이르러서는 섬의 절반에 가까운 면적을 차지했다. 엘렌딜이 즉위한 이후로 본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해나갔고, 엘렌딜 통치기 말미에 이르러서는 섬 전체에 가까운 영역을 왕국의 강역으로 삼았다. 아르노르 본섬뿐 아니라 현재는 포르투갈령인 대서양의 아소르스 제도까지 점령해 영토로 삼기도 했다. 이때 엘렌딜은 옛 아르노르어로 '왕의 땅'이라는 뜻의 'Arnor'로 국호를 정하고, 수도를 안누미나스로 옮겼다. 이 때문에 엘렌딜은 아르나드의 26대 왕이자 아르노르의 1대 왕으로 불린다. 또한 엘렌딜은 아르노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하나이자,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로 꼽힌다. 왕국의 영토가 섬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넓어지자, 통치에 어려움을 겪은 왕은 왕국을 북부와 남부로 나눠 통치하고자 했다. 북부는 왕이 직접 통치했으며, 북왕국이라고 불렸고, 남쪽은 왕이 임명한 지도자가 다스렸으며 남왕국이라고 불렸다. 남왕국은 주로 왕의 동생이나 조카 등 왕의 친족이 다스렸다. 남왕국의 중심 도시이자 수도는 오스길리아스였다.( ~약 기원후900) 북왕국과 남왕국은 오랜 기간 '아르노르'라는 한 깃발 아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끌어갔으나, 북왕국의 10대 왕이자 엘렌딜의 10대손인 에아렌두르의 죽음 이후 그의 세 아들의 불화로 아르노르는 세 개의 다른 국가로 찢어지게 된다. 북왕국과 남왕국은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 존속했지만, 이제는 서로 다른 세 깃발이 옛 아르노르의 땅에서 휘날리게 된 것이다. 엘렌딜의 정당한 계승자인 에아렌두르의 장자는 '아르세다인'을, 둘째 아들은 '루다우르'를, 셋째 아들은 '카르돌란'을 세웠다. 이 분열기는 오랜 기간 지속되었으며, 이 오랜 기간 동안 세 왕국은 서로 간의 끝없는 전쟁을 이어갔다. ( ~기원후 1100) 전쟁과 분열 끝에 엘렌딜의 적통인 아르세다인 왕가가 루다우르와 카르돌란을 패퇴시켰으나, 오랜 전쟁으로 국력은 쇠퇴하고, 왕권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러자 섬 각지에서 반군이 일어났고, 왕의 군대와 반군과의 전쟁 끝에 아르세다인마저 멸망하게 된다. 그러나 반군도 하나로 통합되지 못했고, 각 반군마다 원하는 것도 달랐으며 의견도 하나로 모아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반군 정부가 세워지지 못하고, 각 지역에서 영향력이 강한 반군 단체가 각각 정부의 역할을 하면서 아르노르판 춘추전국시대가 열린다. 중앙 정부는 존재하긴 했지만 왕위는 공석이었고, 그저 이름뿐인 '섭정'이 중앙 정부의 우두머리로 존재했지만 영향력은 없었다. 중앙정부는 힘이 없고, 지방에서는 반군 단체들이 각각 정부를 자칭하며 오랜 혼란기가 열렸다. 하지만 엘렌딜의 정당한 후계자 혈통인 아르세다인 왕가의 혈통은 멸족하지 않았고, 정체를 숨긴 채 반군을 피해 여러 지역을 방랑하며 살아갔다. (~기원후 1200) 그렇게 오랜 혼란기를 거쳐, 기원후 1200년 즈음 아르세다인 왕가의 혈통이 끊어졌다고 생각될 때 쯤에, 자신이 엘렌딜의 적통이라고 주장하는 '엘레사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혼란기에 정체를 감추고 살아오던 아르세다인 왕가의 직계 혈통이었다. 엘레사르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각 지방을 지배하며 영주를 자칭하던 옛 반군 세력을 모두 격파하고, 아르노르를 다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엘레사르는 그 자신과 그 후손은 아르노르의 '텔콘타르 왕조'가 될 것이라 선언하고, 아르노르 왕국의 엘레사르 텔콘타르 1세로 즉위했다. 엘레사르는 엘로스, 엘렌딜과 함께 아르노르의 위대한 세 왕으로 불린다. 아르노르 사학계에서는 엘라사르가 정말 엘렌딜의 후손인지, 혼란을 틈타 그 후손임을 주장하고 칭왕한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다만, 그와 별개로 엘레사르 왕이 아르노르의 제 2 전성기의 문을 열었다는 것 만은 사실이기에 엘렌딜의 적통인지에 대한 논쟁과는 별개로 위대한 왕으로 칭송받는다. 세간에서는 엘라사르 왕을 엘렌딜의 후손이자 정당한 후계자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며, 왕실의 공식 입장도 그러하다. 엘레사르 왕의 텔콘타르 왕조 치하의 아르노르는 수백년을 이어오며 다시 번성했고, 옛 영광을 재현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근대에 들어 포르투갈과 영국의 침략을 받고, 결국에는 영국령 아르노르가 된다. 아메리카로 항해하는 길목에 위치해 영국 선박들의 중간 기착지로 활용되었으며, 이 시기에 근대화가 이루어졌고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게 된다. 이 기간 동안은 영국 왕실이 아르노르의 왕을 겸했고, 오랜 기간 식민 지배를 받게 된다. 이후 1800년대 중반쯤 자치령이 되었고,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190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완전한 독립국의 지위를 다시 가지게 되었다. 영국의 식민지일 당시에도 대규모 수탈이나 학살은 없었고, 이후 자치령이 되었다가 독립할 때까지의 과정도 순탄했기에, 영국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아 독립 당시 영연방 왕국으로 남을지에 대한 사안도 논의되었지만, 결국 원래의 아르노르 왕가가 왕관을 되찾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영연방의 일원이면서 단독 왕실을 가지는 특이한 정치 체제가 만들어졌다 이후 현대까지도 영국에 대한 인식은 좋은 편이고, 영연방의 일원으로써 영국 및 다른 영연방 국가들과 꾸준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아르노르가 자치령일 당시와 독립 초기에는 영국의 정치 체제를 거의 그대로 따랐다. 의회는 서민원과 귀족원으로 구성된 양원제를 따랐으며, 입헌군주제 및 의원내각제의 체제를 유지했다. 하지만 독립 이후 이 체제를 아르노르의 특성에 맞게 일부 수정해, 의회는 단원제를 따르게 되었다.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경제적 발전을 일구어내 현재는 국민소득도 상당한 수준이 되었으며, 유럽연합과 NATO의 일원으로써 국제사회에도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엘로스 이후로 현 국왕에 이르기까지 역성혁명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중간에 왕이 없던 혼란기도 있었고, 엘레사르가 진짜 엘렌딜의 후손인지에 대한 논쟁도 있고, 영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도 있었지만, 혁명을 일으켜 왕실을 폐하고 새로운 인물이 왕이 되는 역성혁명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공백기(혼란기, 식민지배기)를 제외하면 수천년간 한 혈통이 왕위를 유지했다고 보는 시선이 일반적이다.
인문 환경
총 인구: 13,239,600명
경제
- 총 GDP: 517,893,433,200 USD
- 1인당 GDP: 39,117 USD
군사
아르노르 왕국군 문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