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을 독재자로 간주하기 힘든 이유: 두 판 사이의 차이

(마오쩌뚱이 뭐노 머성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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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몇가지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독재자란 무엇입니까?  
저는 몇가지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독재자란 무엇입니까?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시진핑은 [[마오쩌뚱]]처럼 절대적 권력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중국 정당였던 마오쩌둥(毛澤東)과 달리 당내 지도자에 불과한 시진핑이 일인지배로 역행하기는 쉽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첫째로는 중국 정치의 현재 상황이 시진핑이 절대 권력을 추구하기에 쉽지 않고, 둘째로는 시진핑 세력이 절대적 권력을 추구하기보다는 다른 선택지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는 시진핑 세력의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시진핑은 [[마오쩌둥]]처럼 절대적 권력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중국 정당였던 마오쩌둥(毛澤東)과 달리 당내 지도자에 불과한 시진핑이 일인지배로 역행하기는 쉽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첫째로는 중국 정치의 현재 상황이 시진핑이 절대 권력을 추구하기에 쉽지 않고, 둘째로는 시진핑 세력이 절대적 권력을 추구하기보다는 다른 선택지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는 시진핑 세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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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똑같습니다. 상하이방, 공청단, 태자당, 시파 이러한 분류들은 중국 정치의 정치적 흐름을 설명해주는 수많은 축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저는 중국 정치를 크게 본다면, 보수파와 개혁개방파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수파 중에서도 공청단을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반대로 개혁개방파중에서도 태자당이 존재하죠. 그림으로 설명하자면 대충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중국도 똑같습니다. 상하이방, 공청단, 태자당, 시파 이러한 분류들은 중국 정치의 정치적 흐름을 설명해주는 수많은 축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저는 중국 정치를 크게 본다면, 보수파와 개혁개방파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수파 중에서도 공청단을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반대로 개혁개방파중에서도 태자당이 존재하죠. 그림으로 설명하자면 대충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중국 공산당의 보수파는 대체적으로 마오쩌뚱에게 영향을 받은 세력'''들입니다. 평등지향과 토론과 협의를 통한 수평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지요. 이들은 중국의 관료제를 증오하다시피 합니다.   
* '''중국 공산당의 보수파는 대체적으로 마오쩌둥에게 영향을 받은 세력'''들입니다. 평등지향과 토론과 협의를 통한 수평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지요. 이들은 중국의 관료제를 증오하다시피 합니다.   


* '''진보파는 중국 전통 관료제의 후예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덩샤오핑이나 장쩌민에 의해 적극 섭외된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다루어 보겠지만 관료제의 재건은 급속한 경제 발전, 시장 개방에 가장 필요한 요소중 하나였습니다. 독일의 재건, 미국의 경제 부흥 모두 관료제의 급속한 발전에 의해 견인되었듯이 중국의 관료 문화는 개혁개방의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보파는 시장 친화적이고 상명하복식의 관료제를 지지했으며, 사회의 자유화를 이끌었습니다. 천안문 사태에서 덩샤오핑을 반대하면서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시장화를 통한 박탈감, 평등한 토론에 의한 의사 결정을 요구했던 것처럼 개혁과 개방이란 정치의 관료화, 기업가들의 정치 참여, 그리고 해외 시장의 과감한 개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진보파는 중국 전통 관료제의 후예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덩샤오핑이나 장쩌민에 의해 적극 섭외된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다루어 보겠지만 관료제의 재건은 급속한 경제 발전, 시장 개방에 가장 필요한 요소중 하나였습니다. 독일의 재건, 미국의 경제 부흥 모두 관료제의 급속한 발전에 의해 견인되었듯이 중국의 관료 문화는 개혁개방의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보파는 시장 친화적이고 상명하복식의 관료제를 지지했으며, 사회의 자유화를 이끌었습니다. 천안문 사태에서 덩샤오핑을 반대하면서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시장화를 통한 박탈감, 평등한 토론에 의한 의사 결정을 요구했던 것처럼 개혁과 개방이란 정치의 관료화, 기업가들의 정치 참여, 그리고 해외 시장의 과감한 개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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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치는 이와같이 크게는 두가지로 나뉩니다. 그리고 다른 축으로 인맥과 자신이 공무 생활을 한 사람들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결정납니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은 진보파를 형성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시진핑의 어린 시절이 말해주듯이 시진핑은 마오에 대해서 좋을래야 좋은 감정을 가질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장쩌민에 의해 발탁되었고, 장쩌민의 개혁개방을 같이 주도한 인물입니다.  
중국 정치는 이와같이 크게는 두가지로 나뉩니다. 그리고 다른 축으로 인맥과 자신이 공무 생활을 한 사람들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결정납니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은 진보파를 형성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시진핑의 어린 시절이 말해주듯이 시진핑은 마오에 대해서 좋을래야 좋은 감정을 가질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장쩌민에 의해 발탁되었고, 장쩌민의 개혁개방을 같이 주도한 인물입니다.  


반면에 그는 후진타오, 상하이방과 공청단같은 진보파와는 다른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개국공신의 자제였고, 그 과정에서 보시라이같은 소위 금수저 도련님들과 필연적으로 어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수저 도련님이라고 해도 모두가 보수파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모택동의 장정을 함께한만큼 마오에 대한 반감은 상당히 적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그는 후진타오, 상하이방과 공청단같은 진보파와는 다른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개국공신의 자제였고, 그 과정에서 보시라이같은 소위 금수저 도련님들과 필연적으로 어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수저 도련님이라고 해도 모두가 보수파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모택동의 장정을 함께한만큼 마오에 대한 반감은 상당히 적을 수밖에

2022년 3월 6일 (일) 12:16 판

우리들은 많은 언론기사들을 통해 시진핑이 통치하는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계적 투자자이자 오픈소사이어티 회장인 조지 소로스(사진)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독재가 중국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경고했고, 사회적 명사들 뿐만 아니라 뉴욕 타임즈를 비롯한 미국의 언론등, foreign affairs같은 미국의 주요 외교 잡지들도 시진핑이 1인 권력을 구축하려 한다며 대한 강력한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타임즈 같은 경우, 마오와 시진핑의 절대 권력을 비교하기까지 했죠 우리 한국 언론들도 서구 언론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몇가지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독재자란 무엇입니까?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시진핑은 마오쩌둥처럼 절대적 권력을 추구할 수 있을까요? 중국 정당였던 마오쩌둥(毛澤東)과 달리 당내 지도자에 불과한 시진핑이 일인지배로 역행하기는 쉽지 않을거라 생각합니다. 첫째로는 중국 정치의 현재 상황이 시진핑이 절대 권력을 추구하기에 쉽지 않고, 둘째로는 시진핑 세력이 절대적 권력을 추구하기보다는 다른 선택지를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는 시진핑 세력의


중국의 권력을 이해하면 중국 정치 구조가 보입니다

조금이라도 중국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시라면, 상하이방, 공청단, 태자당이라는 중국 정치의 세가지 파벌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을겁니다. 또한 최근 기사들에서 많이 등장하고 있는 단어, 시진핑의 사단을 의미하는 시파등의 단어들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분류는 중국 정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어이지만, 중국 공산당의 권력 대립이나 권력 구조를 전부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한국 정치도 크게는 여러 정당으로 나누어져 있긴 하지만, 사람을 중심으로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이전에, 김대중계, 김영삼계, 김종필계등 여러 사람 중심의 정파들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큰 영향력을 끼쳐 왔습니다.그러나 어느 누구도,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을 논하기 이전에,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정파가 대한민국 정치의 흐름을 알려주는 유일한 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대중계와 김영삼계의 대립만으로는 1980년대 90년대의 한국 정치 흐름을 논할 수 없습니다. 정당과 계파, 그리고 여론등의 수많은 축들을 알아야만이 한국 정치 흐름을 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중국도 똑같습니다. 상하이방, 공청단, 태자당, 시파 이러한 분류들은 중국 정치의 정치적 흐름을 설명해주는 수많은 축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저는 중국 정치를 크게 본다면, 보수파와 개혁개방파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수파 중에서도 공청단을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반대로 개혁개방파중에서도 태자당이 존재하죠. 그림으로 설명하자면 대충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중국 공산당의 보수파는 대체적으로 마오쩌둥에게 영향을 받은 세력들입니다. 평등지향과 토론과 협의를 통한 수평적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지요. 이들은 중국의 관료제를 증오하다시피 합니다.
  • 진보파는 중국 전통 관료제의 후예라고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대부분은 덩샤오핑이나 장쩌민에 의해 적극 섭외된 사람들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히 다루어 보겠지만 관료제의 재건은 급속한 경제 발전, 시장 개방에 가장 필요한 요소중 하나였습니다. 독일의 재건, 미국의 경제 부흥 모두 관료제의 급속한 발전에 의해 견인되었듯이 중국의 관료 문화는 개혁개방의 일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보파는 시장 친화적이고 상명하복식의 관료제를 지지했으며, 사회의 자유화를 이끌었습니다. 천안문 사태에서 덩샤오핑을 반대하면서 관료들의 부정부패와 시장화를 통한 박탈감, 평등한 토론에 의한 의사 결정을 요구했던 것처럼 개혁과 개방이란 정치의 관료화, 기업가들의 정치 참여, 그리고 해외 시장의 과감한 개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중국 정치는 이와같이 크게는 두가지로 나뉩니다. 그리고 다른 축으로 인맥과 자신이 공무 생활을 한 사람들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결정납니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은 진보파를 형성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시진핑의 어린 시절이 말해주듯이 시진핑은 마오에 대해서 좋을래야 좋은 감정을 가질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는 장쩌민에 의해 발탁되었고, 장쩌민의 개혁개방을 같이 주도한 인물입니다.

반면에 그는 후진타오, 상하이방과 공청단같은 진보파와는 다른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개국공신의 자제였고, 그 과정에서 보시라이같은 소위 금수저 도련님들과 필연적으로 어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금수저 도련님이라고 해도 모두가 보수파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모택동의 장정을 함께한만큼 마오에 대한 반감은 상당히 적을 수밖에 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