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junghee (토론 | 기여) 편집 요약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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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륙= | ||
==아주(亞州)==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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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파키스탄 포스터1.jpg|400px|링크=파키스탄(안타고니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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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margin-top:-5px; line-height:1.2"> | |||
<span style="font-size:170%; font-weight:bold; color:white;">'''巴基斯坦伊斯蘭共和國'''</span><br> | |||
<span style="font-size:120%; font-weight:bold; color:white;">'''파기사탄이사란공화국'''</span> | |||
</div><br> | |||
'''‘신념과 규율, 그리고 무아의 헌신이 있다면 이룰 수 없는 가치는 없다.’''' | |||
영국 왕실이 제도를 떠날 적에, 인도는 분열을 맞이하였습니다. | |||
제국의 정통을 자처한 캐나다의 지도 아래, 인도는 찢어졌고 그 조각 중 하나가, 신앙의 이름으로 이 땅에 세워졌습니다. | |||
파키스탄. | |||
이슬람의 이름으로, 정의와 해방을 외치며 우리는 국경을 그었습니다. | |||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란 곧 갈등이었고, 갈등은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 |||
71년, 동파키스탄의 정글은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습니다. | |||
벵골에서 일어난 반란은 인도를 움직였고, 그 뒤에는 미국이 있었습니다. | |||
그러나 우리 또한 외롭지 않았습니다. | |||
독일은 신출귀몰한 전쟁기계와 루프트바페의 날개를 우리에게 내어주었고 우리의 병사들은 신의 대리인으로서 힌두인들의 땅에 뿌리내린 죄악을 단죄하였습니다. | |||
그러나 신께서는 우리에게 바다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 |||
미국의 항모전단이 인도양을 틀어막았고, 그 틈을 타 다카에서는 자유의 깃발이 휘날렸습니다. | |||
우리의 형제였지만, 이제는 등을 돌린 또 하나의 이단, 방글라데시. | |||
우리는 그들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 |||
전쟁은 끝났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 |||
우리는 인도 서부에 구자르트 공화국과 힌두스탄 연방이라는 이름의 이슬람 질서를 세웠습니다. | |||
그러나 그곳엔 충성 대신 의심이, 질서 대신 저항이 자라났습니다. | |||
이슬라마바드는 승리를 선언하였지만, 그 승리는 우리를 병들게 했습니다. | |||
폭탄은 시장에서 터졌고, 기관총은 골목에서 불을 뿜었습니다. | |||
서부의 힌두인들은 저항을 노래하였으며 화약고의 폭발은 시간만이 정답을 알것입니다. | |||
그러니 우리 모두, 힌두인들의 노래에 맞춰 공화국의 장송곡을 목이 터져라 불러봅시다. | |||
'''‘신성한 땅이 축복 받기를.’''' | |||
|}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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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인도 포스터.jpg|400px|링크=인도(안타고니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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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margin-top:-5px; line-height:1.2"> | |||
<span style="font-size:170%; font-weight:bold; color:white;">'''印度共和國'''</span><br> | |||
<span style="font-size:120%; font-weight:bold; color:white;">'''인도공화국'''</span> | |||
</div><br> | |||
'''‘진리를 찾아가는 자는 티끌보다도 겸손해져야 한다.’''' | |||
왕실이 망명을 결단하였을 때, 인도는 갈라졌습니다. | |||
북서쪽은 신앙의 이름으로 타올랐고, 동쪽은 곧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 |||
우리 공화국은 그 재의 더미 위에서 우뚝 섰습니다. | |||
국부이신 마하트마 간디께선 언제나 아대륙의 통일과 서쪽의 이교도들과의 화해를 바랬으나 그들은 보란듯 우리의 선의를 배반하였습니다. | |||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무력 점거 이후, 간디-아니 인도인들은 마음에 큰 상실감을 품었고 급기야 52년, 그가 암살 당하며 인도는 큰 정치적 공백을 맞이하였습니다. | |||
그의 뒤를 이어 메가폰을 잡은 네루는 피와 눈물의 강을 건너 국민 앞에 섰습니다. | |||
그는 총 대신 붓을, 전차 대신 언론을, 복수 대신 교육을 선택하였습니다. | |||
그러나 초승달과 별은 떨어지지 않았고, 국경 너머의 위협은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 |||
71년, 동방의 형제들이 압제에 맞서 들고일어났을 때,인도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으나 그 대가로서 우린 선혈이 줄을 지을 뿐인 서부를 맞이하였습니다. | |||
파키스탄은 독일의 철제 짐승들을 앞세워 | |||
검은 그림자를 삼켰고,델리의 코 앞까지 이어진 철조망은 이슬람이란 쇠사슬에 묶였습니다. | |||
파키스탄은 그 땅 위에 인형극을 시작했고, 힌두의 신들은 금지당했으며, 언어는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 |||
그러나, 인도는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 |||
우리는 유니언잭 아래,오랜 밤을 견뎌온 민족입니다. | |||
우린 복수를 외치지않고, 종말을 원하지 않습니다. | |||
그저 기억하고 있을뿐입니다. | |||
불을 지핀 자는 언젠가 그 불에 데이게 마련이라는 것을. | |||
'''‘앞으로, 앞으로, 계속 앞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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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주(東北亞州)===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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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거했으며, 민족의 국부이신 '''이범석''' 각하의 지휘 아래 민족 부흥의 초석을 다시 닦기 시작했습니다. | 제거했으며, 민족의 국부이신 '''이범석''' 각하의 지휘 아래 민족 부흥의 초석을 다시 닦기 시작했습니다. | ||
80년대, 우리는 '''단군 이래 최고 호황'''을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97년'''의 공포가 한국을 역성장으로 빠뜨렸고, 새천년이 된 지금. 우리는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 |||
|} | |} | ||
35번째 줄: | 118번째 줄: | ||
동족상잔의 비극, '''1950년 6월 25일''',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공산봉기가 소련과의 국경에서 손을 맞잡는 충격적인 상황이 목격된 이후 만주국은 사회주의 공화국과 군주국으로 갈라졌습니다.<br><br> | 동족상잔의 비극, '''1950년 6월 25일''',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공산봉기가 소련과의 국경에서 손을 맞잡는 충격적인 상황이 목격된 이후 만주국은 사회주의 공화국과 군주국으로 갈라졌습니다.<br><br> | ||
우리는 아시아의 사실상 유일하게, 완전한 민주국가입니다. 일당우위제인 일본과 한국과 다르게, 여야 구도가 확실했습니다. 하지만 93년 닥친 위기가 우리를 다시 절벽 밑으로 내려가게 했습니다. | |||
'''새천년. 우리는 국제통화기금의 부채를 전부 상환했고, 이제는 다시 절벽을 오를 순간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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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번째 줄: | 137번째 줄: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결코 일왕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전 국민이 동조하고 참여한 참극이었으니까요.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이 자신의 땅에 발을 밟을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일본은 70년대까지 통제하겠다는 문서를 내밀고 일본 전체의 내정을 간섭하였고 우리는 전쟁 이후 장장 약 20여년동안 농업국가로써 살아야 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결코 일왕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전 국민이 동조하고 참여한 참극이었으니까요.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이 자신의 땅에 발을 밟을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일본은 70년대까지 통제하겠다는 문서를 내밀고 일본 전체의 내정을 간섭하였고 우리는 전쟁 이후 장장 약 20여년동안 농업국가로써 살아야 했습니다. | ||
70년 이후. 우리는 동북아주의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비교적 느린 시대에서 산업화를 시작했습니다. 물가통제로 겨우 경제 안정을 유지했고, 곧 실업률도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 |||
'''천년의 시대가 지나고, 이젠 이천년의 시대입니다. 일본인들은 전쟁 이후, 장장 50년만에 다시 선진국 반열로 올라왔습니다. 잔인한 세계 경제속에서 살아남은 일본은 이제 더 성장할 일만 남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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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번째 줄: | 157번째 줄: | ||
몽강은 더 울부짖었습니다. 같은 군주국가들이던 대한과 만주에게 경제성장과 체제방어를 위한 요청을 보냈고, 옆 나라들에게는 중립국을 선포하며, 그들이 문을 개방하게 만들었습니다. | 몽강은 더 울부짖었습니다. 같은 군주국가들이던 대한과 만주에게 경제성장과 체제방어를 위한 요청을 보냈고, 옆 나라들에게는 중립국을 선포하며, 그들이 문을 개방하게 만들었습니다. | ||
''' | 분단된지 77년. 몽골의 공산정권이 붕괴하자 바로 몽골과 몽강은 곧 통일을 위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77년이라는 민족분단을 우리가 곧 해결할수 있을겁니다. | ||
'''몽골 민족이야, 초원을 달리자!''' | |||
|} | |} | ||
===중동===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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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40%; text-align:center; background:#1f1f1f;" | | |||
[[파일:이라크 선전 포스터1.jpg|400px|링크=이라크(안타고니즘)]] | |||
| style="text-align:left; padding:20px; background:#1f1f1f; vertical-align:top;" | | |||
<div style="margin-top:-5px; line-height:1.2"> | |||
<span style="font-size:170%; font-weight:bold; color:white;">'''伊拉克共和國'''</span><br> | |||
<span style="font-size:120%; font-weight:bold; color:white;">'''이랍극공화국'''</span> | |||
</div><br> | |||
==미주(美州)== | '''‘길이 남을 승리를 하기 전 까지, 절대로 돌아오지 않기를 맹세하면서.’''' | ||
바그다드에서 영국군 전차가 철수할 때에 국민들은 국왕의 깃발 아래 환호를 외쳤습니다. | |||
그러나 그 승리는 이라크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 |||
우리의 왕국은 철의제국과 함께 런던에 맞서 싸웠고 이겼습니다. | |||
하지만 영광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 |||
유니언 잭은 더 이상 우리의 하늘을 뒤덮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금빛 계약서와 석유 배당서였습니다. | |||
쿠웨이트는 명분 아래 넘어왔지만, 환호보다는 계산이 따랐습니다. | |||
이탈리아의 자본은바그다드까지 깊숙이 침투하였고 약조한 서류는 한낱 휴지 조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 |||
이라크의 검은 황금은 이탈리아인의 보유고에 수납되었습니다. | |||
그 분노는 결국 폭풍이 되어 터져 나왔습니다. | |||
제1차 석유파동은 전 세계를 뒤흔들었고 그 여파 속에서 이라크 내부의 모순은 폭발하였습니다. | |||
왕정은 국민에게 총을 들었고, 바그다드의 밤은 유혈로 물들었습니다. | |||
여러 강대국이 이라크를 자국의 장기말로서 사용하기 위해 개입하였으나, 소련제 무기와 함께 나타난 바트당 민병대는 혁명군의 이름으로 전장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 |||
바그다드가 혁명군에 의해 함락된 후 이 땅엔 공화국이 선포되었습니다. | |||
석유는 국유화되었고, 외세의 자본은 재협상을 강요받았습니다. | |||
강철로 지은 동상들이 바그다드 곳곳에 세워졌고,군가는 고요한 새벽을 비집으며 아침을 깨웠습니다. | |||
인민의 해방과 아랍의 통일이라는 명분 아래 군비는 증강되었으며 청년들은 입대를 강요받았습니다. | |||
그리고 우리는 그 허황된 이상만을 탄창에 넣은 채 총부리를 국경 너머로 겨눕니다. | |||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 |||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 |||
|} | |||
==서방(西邦)== | |||
===미주(美州)===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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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40%; text-align:center; background:#1f1f1f;" | | | style="width:40%; text-align:center; background:#1f1f1f;" | | ||
[[파일:미국 | [[파일:미국 70년대 포스터.jpg|400px|링크=미합중국(안타고니즘)]] | ||
| style="text-align:left; padding:20px; background:#1f1f1f; vertical-align:top;" | | | style="text-align:left; padding:20px; background:#1f1f1f; vertical-align:top;" | | ||
<div style="margin-top:-5px; line-height:1.2"> | <div style="margin-top:-5px; line-height:1.2"> | ||
93번째 줄: | 224번째 줄: | ||
거인 또한 몸안에서 그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전쟁영웅인 맥아더 장군은 대통령이 되었고, 심지어 연임에 성공하며 미국을 자유가 아닌 규율의 나라로 나아가게 만들었고, 철저한 통제가 그들의 경제를 다시금 부흥시키기 시작했습니다. | 거인 또한 몸안에서 그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전쟁영웅인 맥아더 장군은 대통령이 되었고, 심지어 연임에 성공하며 미국을 자유가 아닌 규율의 나라로 나아가게 만들었고, 철저한 통제가 그들의 경제를 다시금 부흥시키기 시작했습니다. | ||
''' | '''독일과 소련이 붕괴한 지금, 우리는 다시 세계의 통제권을 완전히 쥐어야 합니다.''' | ||
|} | |}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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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40%; text-align:center; background:#1f1f1f;" | | |||
[[파일:캐나다 승리 포스터.jpg|400px|링크=캐나다(안타고니즘)]] | |||
| style="text-align:left; padding:20px; background:#1f1f1f; vertical-align:top;" | | |||
<div style="margin-top:-5px; line-height:1.2"> | |||
<span style="font-size:170%; font-weight:bold; color:white;">'''加拿大自治領'''</span><br> | |||
<span style="font-size:120%; font-weight:bold; color:white;">'''가나대자치령'''</span><ref>캐나다 자치령</ref> | |||
</div><br> | |||
'''‘타오르는 가슴으로, 조국의 비상을 바라보리.’''' | |||
굴욕적인 협정 이후, 왕실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브리튼 제도를 등 진 채 대서양을 건너 이 곳, 캐나다로 향했습니다. | |||
그 후부터 캐나다는 ‘자유 브리튼’이라는 별칭으로 세계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 |||
그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 |||
왕실은 우리에게 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심어주었고, 우리는 왕실을 충성스레 보필하며 그에 따랐습니다. | |||
그러나, 우리의 충성은 배반당했습니다. | |||
왕실이 본토로 귀국하던 그 해의 겨울은 사무칠 정도로 서늘하였습니다. | |||
이 땅이 얼어붙은 후 눈보라는 우리의 따귀를 지겹도록 때려댔습니다. | |||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없어 눈 속에 온 몸을 파묻고 나서야, 우리는 우리가 지켜온 가치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 |||
제국은 우리를 잃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영국인이 장악한 의회는 캐나다법의 통과를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 |||
단풍이 들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의회에 캐나다인들의 걸음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 |||
그러나 이는 오히려 정치적 극단을 낳았고 의회는 캐나다는 곧 영국이며, 자유 브리튼의 영광을 수호했던 캐나다의 정체성을 고수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네오브리타니즘과,미국식 공화주의와 독립을 주장하는 공화주의가 충돌하며 캐나다 전역에 정치적 폭력을 야기하였습니다. | |||
새천년이 지난 지금, 색이 바랜 단풍잎은 가을 바람에 살랑이며 서서히 그리고 하나 둘 떨어져가고 그 모습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 |||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 |||
'''‘자유는 죽기 직전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 |||
|} | |||
===구라파(歐羅巴)===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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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40%; text-align:center; background:#1f1f1f;" | | |||
[[파일:대독일국 안타고니즘 00년대.jpg|400px|링크=대독일국(안타고니즘)]] | |||
| style="text-align:left; padding:20px; background:#1f1f1f; vertical-align:top;" | | |||
<div style="margin-top:-5px; line-height:1.2"> | |||
<span style="font-size:150%; font-weight:bold; color:white;">'''大獨逸聯邦共和國'''</span><br> | |||
<span style="font-size:120%; font-weight:bold; color:white;">'''대독일연방공화국'''</span> | |||
</div><br> | |||
'''삶은 나약함을 용서하지 않는다.''' | |||
1990년,강철의 라이히는 민중의 손에 무너졌습니다. | |||
철통 같던 총통의 권위는 분노한 시민들을 막을 수 없었고,독일인은 스스로 자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 |||
세계는 우리를 환영하였습니다. | |||
하지만, 자유의 대가란 너무나 혹독하였습니다. | |||
바람이 불었습니다. | |||
보헤미아는 프라하의 깃발을 다시 올렸으며,동쪽에선 다시금 석양이 떠올랐습니다. | |||
우리의 손아귀에서 조용히,하지만 분명하게 유럽은 떨어져나갔습니다. | |||
민주화는 소수민족에게 권리를 주었고,그 권리는 대독일이라는 국체를 흔드는 칼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 |||
라이히스방크는 무너졌습니다. | |||
라인 강변의 거대한 공장들은 멈춰섰고, 한때 유럽의 심장이던 게르마니아는 이젠 실업자와 노숙자, 시위자들의 발걸음만이 울려퍼지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 |||
브란덴부르크의 거리엔 스와스티카가 휘날립니다. | |||
모두가 그리워하고있습니다. | |||
또 원하고 있습니다. | |||
독일이 가장 위대했던 시절을. | |||
'''동지여, 그대의 붉은 피는, 헛되이 흘린것이 아니니, 자유의 깃발을 두배로 높이 들어 올려라!''' | |||
|}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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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40%; text-align:center; background:#1f1f1f;" | | |||
[[파일:이탈리아 왕국 포스터 1.jpg|400px|링크=이탈리아(안타고니즘)]] | |||
| style="text-align:left; padding:20px; background:#1f1f1f; vertical-align:top;" | | |||
<div style="margin-top:-5px; line-height:1.2"> | |||
<span style="font-size:170%; font-weight:bold; color:white;">'''伊太利王國'''</span><br> | |||
<span style="font-size:120%; font-weight:bold; color:white;">'''이태리왕국'''</span> | |||
</div><br> | |||
'''백년을 양으로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사자로 사는 것이 낫다.''' | |||
1975년,국왕 폐하의 결단으로 파스케스는 조각났고, 이탈리아인들은 스스로 지도자를 선택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 |||
그러나 급격한 민주화는 우리에게 마레 노스트룸을 지켜낼 시간을 주지않았습니다. | |||
독일의 파시스트 정권이 붕괴하며 전 세계가 구시대의 장송곡을 부르던 때,이는 아테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 |||
군부에 전쟁기계가 친이탈리아 정부를 전복시킨 후 녹백적의 삼색기는 에게해의 바다에서 나부끼지않습니다. | |||
이집트의 사막은 혁명의 불길로 달아올랐습니다. | |||
찬탈자들은 우리가 좌절감을 느끼기도 전에 수에즈에 대한 야망을 들어내며 우리 제국의 종속을 위협하고있습니다. | |||
동아프리카는 붕괴하였고 식민지들이 연이어 무장 독립을 선언하며 로마는 끝내 철수해야만 했습니다. | |||
제국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불리는 리비아 내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 |||
지중해의 바다는 오늘도 고요하게 흘러가지만 그 물살은 더 이상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않습니다. | |||
마레 노스트룸,우리가 그토록 추구했던 이상은 파도에 휩쓸려 더 없이 멀어져갑니다. | |||
'''우리는 죽을 준비가 되었으니,이탈리아가 부르네!''' | |||
|}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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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width:40%; text-align:center; background:#1f1f1f;" | | |||
[[파일:러시아 구축주의 포스터.jpg|400px|링크=러시아(안타고니즘)]] | |||
| style="text-align:left; padding:20px; background:#1f1f1f; vertical-align:top;" | | |||
<div style="margin-top:-5px; line-height:1.2"> | |||
<span style="font-size:170%; font-weight:bold; color:white;">'''露西亞聯邦'''</span><br> | |||
<span style="font-size:120%; font-weight:bold; color:white;">'''노서아연방'''</span> | |||
</div><br> | |||
'''신앙을 위해 일어나라, 조국 러시아여!''' | |||
새천년의 첫해, 소련은 붉은 광장에서 그 마지막 숨을 내뱉었습니다. | |||
연방 각지에서는 동시다발적인 독립선언이 터져 나왔고, 형제라 불리던 공화국들은 우리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 |||
붉은 광장의 기수는 쓰러졌고, 크렘린의 하늘에 드리워졌던 낫과 망치는 그 색을 잃었습니다. | |||
혼돈은 순식간에 몰려왔습니다. | |||
계획경제의 종말은 곧 공급망의 붕괴였고, 루블은 종잇조각처럼 날아다녔습니다. | |||
연금은 지급되지 않았고, 국영 공장은 유리창 너머로 폐허가 되었으며,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은 채 빵 줄에 늘어섰습니다. | |||
그리고 그 모든 위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 |||
무엇이 우리를 무너뜨렸는가. | |||
무엇이 우리를 이 지경까지 이끌었는가. | |||
그리고 그 대답으로서 우리의 심장은 고동칩니다. | |||
선혈은 대동맥으로부터 시베리아를 가르며 단 하나의 가치로 향하고있습니다. | |||
'''’복수’''' | |||
우리는 피로써 세계를 물들이던 시절을 기억합니다. | |||
한때,인류를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던 인민의 군화는 벗겨졌지만,그 발자취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 |||
겨울이 찾아왔기에,곰은 잠을 취합니다. | |||
언젠가 봄이 온다면 곰은 있는 힘을 다해 포효할것입니다. | |||
'''우리는 신의와 정의로 러시아에 충성하리라!'''<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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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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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영국 참정권 운동 포스터.jpg|400px|링크=영국(안타고니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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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margin-top:-5px; line-height:1.2"> | |||
<span style="font-size:170%; font-weight:bold; color:white;">'''英聯合王國'''</span><br> | |||
<span style="font-size:120%; font-weight:bold; color:white;">'''영연합왕국'''</span> | |||
</div><br> | |||
'''나는 언제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세상 누구도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 | |||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한 후,수도 없이 시도한 우리의 전쟁계획은 철의제국에 방어선에 그 한계를 맞이했습니다. | |||
반전여론은 극심해졌고 국민들은 더 이상 파리를 위해 피를 흘릴 각오를 다지지 못했으니 이에 전시내각이 실각하였고 의회는 피 대신 잉크로서 굴욕적인 협정문에 서명하였습니다. | |||
왕실은 캐나다로 망명하였고,런던에는 브리튼국이 선포,식민지 주둔군 대부분이 이들의 동조하며 불안하기 그지 없는 제국의 구색을 유지하였습니다. | |||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총통의 명령 아래, 브리튼 제도는 28년간의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 |||
그러나 억압은 결코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 |||
73년,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런던에서 시작되었고,정권은 이를 유혈 진압했습니다. | |||
그날의 피는 분노를 깨웠고, 시위는 곧 전국적 항쟁으로 번졌습니다. | |||
결국 브리튼국은 붕괴하였고, 왕실은 귀국하며 연합왕국이 복원되었습니다. | |||
다시 재건된 왕국은 미국의 막대한 지원 아래 부흥할 수 있었습니다. | |||
특히 대처 시대에 개혁은 영국을 다시 선진국의 자리에 올려놓기에 충분하였으며 패전 이후부터 우후죽순 통제를 잃어가던 식민지의 이탈에도 런던의 해는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 |||
그러나 새천년에 들어서며 경제는 서서히 침체되기 시작하였고 단 하나의 위기가 촉발된다면 런던의 하늘은 어둠으로 물들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 |||
빅 벤의 시계가 황혼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 |||
'''하느님,우리 여왕 폐하를 지켜주소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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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비시 프랑스 페탱찬양 포스터.jpg|400px|링크=프랑스(안타고니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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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margin-top:-5px; line-height:1.2"> | |||
<span style="font-size:170%; font-weight:bold; color:white;">'''佛蘭西國'''</span><br> | |||
<span style="font-size:120%; font-weight:bold; color:white;">'''불란서국'''</span> | |||
</div><br> | |||
'''‘영광의 날에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어려운 날에도, 저는 여러분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 | |||
파리가 포화 속에 점령당하던 해, 필리프 페탱 원수는 콩피에뉴로 향해 사실상의 항복협정의 서명하였습니다. | |||
베르됭의 사자는 포효하였고 국가의 모든 행정은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 |||
그의 사후, 프랑스국민당이 정권을 이어받았습니다. | |||
자유는 통제와 맞바꾸었고,우리는 질서 아래 성장하였습니다. | |||
노동자는 톱니바퀴의 부속으로 다시 태어났고, 기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 |||
굴복 위에서 우리의 번영은 피어난 것입니다. | |||
그러나 우리는 대전의 패자로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 |||
브르타뉴는 독일의 해군기지 신세를 면치 못했으며, 부르군트라 불리우는 이 괴이한 제국은 독일의 혼란을 틈타 대전 이후 다시 한번, 우리의 심장부마저 집어삼켰습니다. | |||
센강은 이제 국경이 되었고, 파리는 북과 남으로 나뉘어 두 개의 숨소리를 내뱉었습니다. | |||
하지만 거짓과 위선, 기만으로 세워진 명예는 언제나 그 명을 다하기 마련입니다. | |||
부르군트가 무너질 때, 우리는 독일과 손을 잡고 센강을 넘었습니다. | |||
강을 건넌 우리의 전차는 에펠탑의 광휘 아래 빛을 삼켰습니다. | |||
그러나 부르군트의 폐허 위엔 독일의 또 다른 그림자,프랑크라이히 국가판무관부가 깃발을 꽂았습니다. | |||
베를린이 스스로 철조망을 걷어낼 때에도 우리는 침묵하였습니다. | |||
아니, 정확히는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 |||
베르사유의 거리를 가득 메운 자유의 깃발은 전쟁기계에 밟혔고, 함성은 비명이 되었습니다. | |||
의회는 문을 굳게 걸어잠구었고,언론은 침묵했습니다. | |||
압제자들은 내부의 문제를 외부의 성과로 돌리기 위해 브르타뉴에 군가와 함께 진입하였습니다. | |||
그러나 프랑크라이히는 여전히 게르만인들의 손에 들려있었습니다. | |||
세기는 새천년을 맞이하였지만 여전히 투표함은 봉인되어 있으며,우리는 아직도 하나의 정당 아래에 있습니다. | |||
독일은 몰락하였지만 그 잔재는 자유의 땅에서 살아숨쉽니다. | |||
'''‘원수여,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 |||
|} | |||
==아불리가(阿弗利加)==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1f1f1f; color:white; width:100%; border:2px solid #FFA500; border-radius: 10px; padding:10px;"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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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집트 포스터1.jpg|400px|링크=이집트(안타고니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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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margin-top:-5px; line-height:1.2"> | |||
<span style="font-size:170%; font-weight:bold; color:white;">'''埃及伊斯蘭共和國'''</span><br> | |||
<span style="font-size:120%; font-weight:bold; color:white;">'''애급이사란공화국'''</span><ref>이집트</ref> | |||
</div><br> | |||
'''‘지하드란 오직 이슬람만이 전파되도록 전세계를 지속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이다.’''' | |||
전쟁이 끝난 뒤, 카이로는 침묵 속에 무릎 꿇었습니다. | |||
그 침묵의 끝자락에서 유니언 잭은 땅에 떨어졌고 사보이아의 삼색기는 왕궁 꼭대기에 걸렸습니다. | |||
이집트 왕국은 존속하였습니다, 단지 그 주인이 바뀌었을 뿐. | |||
로마의 대리인들이 군림하는 동안, 나일강은 우리를 적시되 로마를 부양하였고, 알렉산드리아의 항구에는 이탈리아 군함이 닻을 내렸습니다. | |||
79년, 중동의 질서가 붕괴하는 한 차례 석유 파동이 있은 후, 아랍 세계에서 이슬람주의가 부상하였고 무슬림 형제단을 중심으로 단결하였습니다. | |||
결국 91년, 도화선엔 불이 붙었고 빠른 속도로 번졌습니다. | |||
카이로의 청년들이 다시금 민중의 소리를 외치자, 왕정은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무너졌고, 군과 시민이 손을 잡고 왕궁의 철문을 부수었습니다. | |||
그러나 쟁취한 자유는 국민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 |||
신생 공화정은 무슬림 형제단의 독재 체제로 빠르게 변질되었고, 맹목하였던 이슬람주의는 국민의 일상을 옥죄기 시작하였습니다. | |||
기득권은 외부로 적을 돌려 국민들을 단결시키고자 하였고 이는 곧장 수에즈 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 |||
그러나 우리의 염원에도 불구, 수에즈는 여전히 침략자들의 눈이요, 그 돈줄입니다. | |||
공화국은 수에즈의 체스판 위, 다음 수를 고민합니다. | |||
운명은 단 하나의 길목으로 연결되었고 그 해답은 확실합니다. | |||
‘체크 메이트’가 아니면 다음 게임은 없다는것. | |||
'''‘그대를 위해 나의 영혼을 희생하노라,오 이집트여!’''' | |||
|} | |||
==호사태랄리아주(濠斯太剌利亞洲)== |
2025년 7월 25일 (금) 11:03 기준 최신판
개요
대륙
아주(亞州)
巴基斯坦伊斯蘭共和國 ‘신념과 규율, 그리고 무아의 헌신이 있다면 이룰 수 없는 가치는 없다.’ 영국 왕실이 제도를 떠날 적에, 인도는 분열을 맞이하였습니다. 제국의 정통을 자처한 캐나다의 지도 아래, 인도는 찢어졌고 그 조각 중 하나가, 신앙의 이름으로 이 땅에 세워졌습니다. 파키스탄. 이슬람의 이름으로, 정의와 해방을 외치며 우리는 국경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란 곧 갈등이었고, 갈등은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71년, 동파키스탄의 정글은 그 어느때보다 뜨거웠습니다. 벵골에서 일어난 반란은 인도를 움직였고, 그 뒤에는 미국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또한 외롭지 않았습니다. 독일은 신출귀몰한 전쟁기계와 루프트바페의 날개를 우리에게 내어주었고 우리의 병사들은 신의 대리인으로서 힌두인들의 땅에 뿌리내린 죄악을 단죄하였습니다. 그러나 신께서는 우리에게 바다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항모전단이 인도양을 틀어막았고, 그 틈을 타 다카에서는 자유의 깃발이 휘날렸습니다. 우리의 형제였지만, 이제는 등을 돌린 또 하나의 이단, 방글라데시. 우리는 그들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평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인도 서부에 구자르트 공화국과 힌두스탄 연방이라는 이름의 이슬람 질서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곳엔 충성 대신 의심이, 질서 대신 저항이 자라났습니다. 이슬라마바드는 승리를 선언하였지만, 그 승리는 우리를 병들게 했습니다. 폭탄은 시장에서 터졌고, 기관총은 골목에서 불을 뿜었습니다. 서부의 힌두인들은 저항을 노래하였으며 화약고의 폭발은 시간만이 정답을 알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힌두인들의 노래에 맞춰 공화국의 장송곡을 목이 터져라 불러봅시다. ‘신성한 땅이 축복 받기를.’ |
印度共和國 ‘진리를 찾아가는 자는 티끌보다도 겸손해져야 한다.’ 왕실이 망명을 결단하였을 때, 인도는 갈라졌습니다. 북서쪽은 신앙의 이름으로 타올랐고, 동쪽은 곧 분노로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공화국은 그 재의 더미 위에서 우뚝 섰습니다. 국부이신 마하트마 간디께선 언제나 아대륙의 통일과 서쪽의 이교도들과의 화해를 바랬으나 그들은 보란듯 우리의 선의를 배반하였습니다.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무력 점거 이후, 간디-아니 인도인들은 마음에 큰 상실감을 품었고 급기야 52년, 그가 암살 당하며 인도는 큰 정치적 공백을 맞이하였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메가폰을 잡은 네루는 피와 눈물의 강을 건너 국민 앞에 섰습니다. 그는 총 대신 붓을, 전차 대신 언론을, 복수 대신 교육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초승달과 별은 떨어지지 않았고, 국경 너머의 위협은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71년, 동방의 형제들이 압제에 맞서 들고일어났을 때,인도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았으나 그 대가로서 우린 선혈이 줄을 지을 뿐인 서부를 맞이하였습니다. 파키스탄은 독일의 철제 짐승들을 앞세워 검은 그림자를 삼켰고,델리의 코 앞까지 이어진 철조망은 이슬람이란 쇠사슬에 묶였습니다. 파키스탄은 그 땅 위에 인형극을 시작했고, 힌두의 신들은 금지당했으며, 언어는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러나, 인도는 기다릴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유니언잭 아래,오랜 밤을 견뎌온 민족입니다. 우린 복수를 외치지않고, 종말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억하고 있을뿐입니다. 불을 지핀 자는 언젠가 그 불에 데이게 마련이라는 것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앞으로!’ |
동북아주(東北亞州)
大韓帝國 경술국치, 나라가 바다 건너 왜놈에게 빼앗기고 35년이 지나 우리는 광복(光復)을 되찾았습니다. 왜놈은 우리의 언어습관뿐만 아니라 일상생활까지 파고들었지만 우리는 다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철저히 제거했으며, 민족의 국부이신 이범석 각하의 지휘 아래 민족 부흥의 초석을 다시 닦기 시작했습니다. 80년대, 우리는 단군 이래 최고 호황을 구가했습니다. 하지만, 97년의 공포가 한국을 역성장으로 빠뜨렸고, 새천년이 된 지금. 우리는 저성장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
大滿洲國 1932년, 일제에 의해 괴뢰국의 황제가 되신 우리의 국부이자 아버지이신 푸이를 강제로 옹립한 일제는 간악하게도 친일파들을 앞세워 폐하께서 32년부터 45년 일제가 패망할때까지 폐하의 자주독립적인 활동을 일체 금지했습니다. 말로는 오족협화를 외치며, 뒤에선 일본 경찰들이 우리 만주인들과 타민족들을 억압하고 통제했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 1950년 6월 25일,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공산봉기가 소련과의 국경에서 손을 맞잡는 충격적인 상황이 목격된 이후 만주국은 사회주의 공화국과 군주국으로 갈라졌습니다. 우리는 아시아의 사실상 유일하게, 완전한 민주국가입니다. 일당우위제인 일본과 한국과 다르게, 여야 구도가 확실했습니다. 하지만 93년 닥친 위기가 우리를 다시 절벽 밑으로 내려가게 했습니다. 새천년. 우리는 국제통화기금의 부채를 전부 상환했고, 이제는 다시 절벽을 오를 순간입니다! |
日本國 敗亡-. 일본은 잠자는 거인을 깨웠습니다. 바보같은 수뇌부는 자국민을 거대한 화마로 밀어넣었고, 3개의 도시는 신민들의 울부짖음과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결코 일왕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전 국민이 동조하고 참여한 참극이었으니까요.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이 자신의 땅에 발을 밟을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습니다. 미국인들은 일본은 70년대까지 통제하겠다는 문서를 내밀고 일본 전체의 내정을 간섭하였고 우리는 전쟁 이후 장장 약 20여년동안 농업국가로써 살아야 했습니다. 70년 이후. 우리는 동북아주의 다른 국가들과 다르게 비교적 느린 시대에서 산업화를 시작했습니다. 물가통제로 겨우 경제 안정을 유지했고, 곧 실업률도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천년의 시대가 지나고, 이젠 이천년의 시대입니다. 일본인들은 전쟁 이후, 장장 50년만에 다시 선진국 반열로 올라왔습니다. 잔인한 세계 경제속에서 살아남은 일본은 이제 더 성장할 일만 남았습니다. |
大蒙疆國 우리는 만주국과 같이, 해체당하지 않고 미국과 소련의 완충 지대로써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건국되자마자 다시 일어난 중국의 국공내전으로 사방이 온통 공산-사회주의 세력들로 가득해졌고, 미국은 우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가세하기 시작했습니다. 몽강은 더 울부짖었습니다. 같은 군주국가들이던 대한과 만주에게 경제성장과 체제방어를 위한 요청을 보냈고, 옆 나라들에게는 중립국을 선포하며, 그들이 문을 개방하게 만들었습니다. 분단된지 77년. 몽골의 공산정권이 붕괴하자 바로 몽골과 몽강은 곧 통일을 위한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77년이라는 민족분단을 우리가 곧 해결할수 있을겁니다. 몽골 민족이야, 초원을 달리자! |
중동
伊拉克共和國 ‘길이 남을 승리를 하기 전 까지, 절대로 돌아오지 않기를 맹세하면서.’ 바그다드에서 영국군 전차가 철수할 때에 국민들은 국왕의 깃발 아래 환호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이라크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왕국은 철의제국과 함께 런던에 맞서 싸웠고 이겼습니다. 하지만 영광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유니언 잭은 더 이상 우리의 하늘을 뒤덮지 않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금빛 계약서와 석유 배당서였습니다. 쿠웨이트는 명분 아래 넘어왔지만, 환호보다는 계산이 따랐습니다. 이탈리아의 자본은바그다드까지 깊숙이 침투하였고 약조한 서류는 한낱 휴지 조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라크의 검은 황금은 이탈리아인의 보유고에 수납되었습니다. 그 분노는 결국 폭풍이 되어 터져 나왔습니다. 제1차 석유파동은 전 세계를 뒤흔들었고 그 여파 속에서 이라크 내부의 모순은 폭발하였습니다. 왕정은 국민에게 총을 들었고, 바그다드의 밤은 유혈로 물들었습니다. 여러 강대국이 이라크를 자국의 장기말로서 사용하기 위해 개입하였으나, 소련제 무기와 함께 나타난 바트당 민병대는 혁명군의 이름으로 전장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바그다드가 혁명군에 의해 함락된 후 이 땅엔 공화국이 선포되었습니다. 석유는 국유화되었고, 외세의 자본은 재협상을 강요받았습니다. 강철로 지은 동상들이 바그다드 곳곳에 세워졌고,군가는 고요한 새벽을 비집으며 아침을 깨웠습니다. 인민의 해방과 아랍의 통일이라는 명분 아래 군비는 증강되었으며 청년들은 입대를 강요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허황된 이상만을 탄창에 넣은 채 총부리를 국경 너머로 겨눕니다.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알라 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
서방(西邦)
미주(美州)
美合中國 잠자는 거인을 건든 일본을 패망시키고 난 뒤, 거인은 기지개를 펴며 다시 눈을 떴습니다. 거인은 곧장 극단주의로 물든 세계를 구하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세계는 이미 한참 늦었습니다. 미국의 아버지인 영국도, 오스왈드 모슬리의 손아귀로 넘어갔으며, 유럽 전체는 파시즘-이라는 극단적 사상이 지배해버렸습니다. 거인 또한 몸안에서 그들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전쟁영웅인 맥아더 장군은 대통령이 되었고, 심지어 연임에 성공하며 미국을 자유가 아닌 규율의 나라로 나아가게 만들었고, 철저한 통제가 그들의 경제를 다시금 부흥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독일과 소련이 붕괴한 지금, 우리는 다시 세계의 통제권을 완전히 쥐어야 합니다. |
加拿大自治領 ‘타오르는 가슴으로, 조국의 비상을 바라보리.’ 굴욕적인 협정 이후, 왕실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브리튼 제도를 등 진 채 대서양을 건너 이 곳, 캐나다로 향했습니다. 그 후부터 캐나다는 ‘자유 브리튼’이라는 별칭으로 세계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왕실은 우리에게 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심어주었고, 우리는 왕실을 충성스레 보필하며 그에 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충성은 배반당했습니다. 왕실이 본토로 귀국하던 그 해의 겨울은 사무칠 정도로 서늘하였습니다. 이 땅이 얼어붙은 후 눈보라는 우리의 따귀를 지겹도록 때려댔습니다. 더 이상 서 있을 힘이 없어 눈 속에 온 몸을 파묻고 나서야, 우리는 우리가 지켜온 가치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제국은 우리를 잃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영국인이 장악한 의회는 캐나다법의 통과를 용인하지 않았습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할 때가 되어서야 의회에 캐나다인들의 걸음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정치적 극단을 낳았고 의회는 캐나다는 곧 영국이며, 자유 브리튼의 영광을 수호했던 캐나다의 정체성을 고수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네오브리타니즘과,미국식 공화주의와 독립을 주장하는 공화주의가 충돌하며 캐나다 전역에 정치적 폭력을 야기하였습니다. 새천년이 지난 지금, 색이 바랜 단풍잎은 가을 바람에 살랑이며 서서히 그리고 하나 둘 떨어져가고 그 모습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자유는 죽기 직전이 가장 아름답다는 사실을.’ |
구라파(歐羅巴)
大獨逸聯邦共和國 삶은 나약함을 용서하지 않는다. 1990년,강철의 라이히는 민중의 손에 무너졌습니다. 철통 같던 총통의 권위는 분노한 시민들을 막을 수 없었고,독일인은 스스로 자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세계는 우리를 환영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유의 대가란 너무나 혹독하였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보헤미아는 프라하의 깃발을 다시 올렸으며,동쪽에선 다시금 석양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손아귀에서 조용히,하지만 분명하게 유럽은 떨어져나갔습니다. 민주화는 소수민족에게 권리를 주었고,그 권리는 대독일이라는 국체를 흔드는 칼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라이히스방크는 무너졌습니다. 라인 강변의 거대한 공장들은 멈춰섰고, 한때 유럽의 심장이던 게르마니아는 이젠 실업자와 노숙자, 시위자들의 발걸음만이 울려퍼지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의 거리엔 스와스티카가 휘날립니다. 모두가 그리워하고있습니다. 또 원하고 있습니다. 독일이 가장 위대했던 시절을. 동지여, 그대의 붉은 피는, 헛되이 흘린것이 아니니, 자유의 깃발을 두배로 높이 들어 올려라! |
伊太利王國 백년을 양으로 사는 것보다 하루를 사자로 사는 것이 낫다. 1975년,국왕 폐하의 결단으로 파스케스는 조각났고, 이탈리아인들은 스스로 지도자를 선택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급격한 민주화는 우리에게 마레 노스트룸을 지켜낼 시간을 주지않았습니다. 독일의 파시스트 정권이 붕괴하며 전 세계가 구시대의 장송곡을 부르던 때,이는 아테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군부에 전쟁기계가 친이탈리아 정부를 전복시킨 후 녹백적의 삼색기는 에게해의 바다에서 나부끼지않습니다. 이집트의 사막은 혁명의 불길로 달아올랐습니다. 찬탈자들은 우리가 좌절감을 느끼기도 전에 수에즈에 대한 야망을 들어내며 우리 제국의 종속을 위협하고있습니다. 동아프리카는 붕괴하였고 식민지들이 연이어 무장 독립을 선언하며 로마는 끝내 철수해야만 했습니다. 제국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불리는 리비아 내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중해의 바다는 오늘도 고요하게 흘러가지만 그 물살은 더 이상 우리를 바라보고 있지않습니다. 마레 노스트룸,우리가 그토록 추구했던 이상은 파도에 휩쓸려 더 없이 멀어져갑니다. 우리는 죽을 준비가 되었으니,이탈리아가 부르네! |
露西亞聯邦 신앙을 위해 일어나라, 조국 러시아여! 새천년의 첫해, 소련은 붉은 광장에서 그 마지막 숨을 내뱉었습니다. 연방 각지에서는 동시다발적인 독립선언이 터져 나왔고, 형제라 불리던 공화국들은 우리에게 등을 돌렸습니다. 붉은 광장의 기수는 쓰러졌고, 크렘린의 하늘에 드리워졌던 낫과 망치는 그 색을 잃었습니다. 혼돈은 순식간에 몰려왔습니다. 계획경제의 종말은 곧 공급망의 붕괴였고, 루블은 종잇조각처럼 날아다녔습니다. 연금은 지급되지 않았고, 국영 공장은 유리창 너머로 폐허가 되었으며,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은 채 빵 줄에 늘어섰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위기 속에서, 우리는 다시 생각하였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무너뜨렸는가. 무엇이 우리를 이 지경까지 이끌었는가. 그리고 그 대답으로서 우리의 심장은 고동칩니다. 선혈은 대동맥으로부터 시베리아를 가르며 단 하나의 가치로 향하고있습니다. ’복수’ 우리는 피로써 세계를 물들이던 시절을 기억합니다. 한때,인류를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던 인민의 군화는 벗겨졌지만,그 발자취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찾아왔기에,곰은 잠을 취합니다. 언젠가 봄이 온다면 곰은 있는 힘을 다해 포효할것입니다. 우리는 신의와 정의로 러시아에 충성하리라! |
英聯合王國 나는 언제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세상 누구도 나를 굴복시킬 수 없다.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한 후,수도 없이 시도한 우리의 전쟁계획은 철의제국에 방어선에 그 한계를 맞이했습니다. 반전여론은 극심해졌고 국민들은 더 이상 파리를 위해 피를 흘릴 각오를 다지지 못했으니 이에 전시내각이 실각하였고 의회는 피 대신 잉크로서 굴욕적인 협정문에 서명하였습니다. 왕실은 캐나다로 망명하였고,런던에는 브리튼국이 선포,식민지 주둔군 대부분이 이들의 동조하며 불안하기 그지 없는 제국의 구색을 유지하였습니다.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총통의 명령 아래, 브리튼 제도는 28년간의 침묵을 강요당했습니다. 그러나 억압은 결코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73년,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런던에서 시작되었고,정권은 이를 유혈 진압했습니다. 그날의 피는 분노를 깨웠고, 시위는 곧 전국적 항쟁으로 번졌습니다. 결국 브리튼국은 붕괴하였고, 왕실은 귀국하며 연합왕국이 복원되었습니다. 다시 재건된 왕국은 미국의 막대한 지원 아래 부흥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대처 시대에 개혁은 영국을 다시 선진국의 자리에 올려놓기에 충분하였으며 패전 이후부터 우후죽순 통제를 잃어가던 식민지의 이탈에도 런던의 해는 뜨겁게 타올랐습니다. 그러나 새천년에 들어서며 경제는 서서히 침체되기 시작하였고 단 하나의 위기가 촉발된다면 런던의 하늘은 어둠으로 물들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빅 벤의 시계가 황혼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하느님,우리 여왕 폐하를 지켜주소서. |
佛蘭西國 ‘영광의 날에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었습니다. 어려운 날에도, 저는 여러분 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 파리가 포화 속에 점령당하던 해, 필리프 페탱 원수는 콩피에뉴로 향해 사실상의 항복협정의 서명하였습니다. 베르됭의 사자는 포효하였고 국가의 모든 행정은 그를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그의 사후, 프랑스국민당이 정권을 이어받았습니다. 자유는 통제와 맞바꾸었고,우리는 질서 아래 성장하였습니다. 노동자는 톱니바퀴의 부속으로 다시 태어났고, 기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굴복 위에서 우리의 번영은 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전의 패자로서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브르타뉴는 독일의 해군기지 신세를 면치 못했으며, 부르군트라 불리우는 이 괴이한 제국은 독일의 혼란을 틈타 대전 이후 다시 한번, 우리의 심장부마저 집어삼켰습니다. 센강은 이제 국경이 되었고, 파리는 북과 남으로 나뉘어 두 개의 숨소리를 내뱉었습니다. 하지만 거짓과 위선, 기만으로 세워진 명예는 언제나 그 명을 다하기 마련입니다. 부르군트가 무너질 때, 우리는 독일과 손을 잡고 센강을 넘었습니다. 강을 건넌 우리의 전차는 에펠탑의 광휘 아래 빛을 삼켰습니다. 그러나 부르군트의 폐허 위엔 독일의 또 다른 그림자,프랑크라이히 국가판무관부가 깃발을 꽂았습니다. 베를린이 스스로 철조망을 걷어낼 때에도 우리는 침묵하였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베르사유의 거리를 가득 메운 자유의 깃발은 전쟁기계에 밟혔고, 함성은 비명이 되었습니다. 의회는 문을 굳게 걸어잠구었고,언론은 침묵했습니다. 압제자들은 내부의 문제를 외부의 성과로 돌리기 위해 브르타뉴에 군가와 함께 진입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랑크라이히는 여전히 게르만인들의 손에 들려있었습니다. 세기는 새천년을 맞이하였지만 여전히 투표함은 봉인되어 있으며,우리는 아직도 하나의 정당 아래에 있습니다. 독일은 몰락하였지만 그 잔재는 자유의 땅에서 살아숨쉽니다. ‘원수여, 우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
아불리가(阿弗利加)
埃及伊斯蘭共和國 ‘지하드란 오직 이슬람만이 전파되도록 전세계를 지속적으로 해방시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카이로는 침묵 속에 무릎 꿇었습니다. 그 침묵의 끝자락에서 유니언 잭은 땅에 떨어졌고 사보이아의 삼색기는 왕궁 꼭대기에 걸렸습니다. 이집트 왕국은 존속하였습니다, 단지 그 주인이 바뀌었을 뿐. 로마의 대리인들이 군림하는 동안, 나일강은 우리를 적시되 로마를 부양하였고, 알렉산드리아의 항구에는 이탈리아 군함이 닻을 내렸습니다. 79년, 중동의 질서가 붕괴하는 한 차례 석유 파동이 있은 후, 아랍 세계에서 이슬람주의가 부상하였고 무슬림 형제단을 중심으로 단결하였습니다. 결국 91년, 도화선엔 불이 붙었고 빠른 속도로 번졌습니다. 카이로의 청년들이 다시금 민중의 소리를 외치자, 왕정은 단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 채 무너졌고, 군과 시민이 손을 잡고 왕궁의 철문을 부수었습니다. 그러나 쟁취한 자유는 국민들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생 공화정은 무슬림 형제단의 독재 체제로 빠르게 변질되었고, 맹목하였던 이슬람주의는 국민의 일상을 옥죄기 시작하였습니다. 기득권은 외부로 적을 돌려 국민들을 단결시키고자 하였고 이는 곧장 수에즈 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염원에도 불구, 수에즈는 여전히 침략자들의 눈이요, 그 돈줄입니다. 공화국은 수에즈의 체스판 위, 다음 수를 고민합니다. 운명은 단 하나의 길목으로 연결되었고 그 해답은 확실합니다. ‘체크 메이트’가 아니면 다음 게임은 없다는것. ‘그대를 위해 나의 영혼을 희생하노라,오 이집트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