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번째 줄: |
1번째 줄: |
| {{분류:대조선국 왕비}} | | {{분류:대조선국 국왕}} |
| ||<width=100><#972000><-999> {{{+2 {{{#ffffff '''조선 태조의 정비''' }}}}}} ||
| | {{분류:대조선국 왕세자와 왕세손}} |
| ||<width=100><#972000><-999> {{{+1 {{{#ffffff '''신의왕후 | 神懿王后''' }}}}}} ||
| | [[분류:대영제국]] [[분류:대영제국 내각]] |
| ||<table align=right><table width=400><-999> [[파일:2590.png]] ||
| | '''대조선국과 대영제국은 텍사스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
| ||<-3><#972000> {{{#ffffff 출생}}} || 2022년 11월 19일 [br] {{{-1 대조선국 안동 사저}}} ||
| |
| ||<-3><#972000> {{{#ffffff 사망}}} || 2022년 12월 18일 (향년 20세) [br] {{{-1 대조선국 한양 사저}}} ||
| |
| ||<-3><#972000> {{{#ffffff 능}}} || '''정릉(貞陵)''' ||
| |
| ||<-3><#972000> {{{#ffffff 재위기간}}} || 2022년 12월 15일 ~ 2022년 12월 18일 (4일) ||
| |
| ||<-3><#972000> {{{#ffffff 본관}}} || 안동 김씨 ||
| |
| ||<-3><#972000> {{{#ffffff 부모}}} || 없음 ||
| |
| ||<-3><#972000> {{{#ffffff 형제자매}}} || 없음 ||
| |
| ||<-3><#972000> {{{#ffffff 배우자}}} || [[대조선국 태조|태조]] ||
| |
| ||<-3><#972000> {{{#ffffff 자녀}}} || 없음 ||
| |
| ||<-3><#972000> {{{#ffffff 종교}}} || 유교 ||
| |
| ||<-3><#972000> {{{#ffffff 시호}}} || '''신의왕후(神懿王后)''' ||
| |
| | |
| ==[[파일:현재2.png|width=30]] '''개요'''==
| |
| | |
| [[대조선국 태조|태조]]의 정비이자, '''조선 최초의 왕비'''. 본관은 안동 김씨.
| |
| | |
| ==[[파일:현재2.png|width=30]] '''생애'''==
| |
| | |
| 2022년 11월 19일, 안동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다.''' 그녀가 20대에 들어설때 왕실은 [[대조선국 태조|태조]]의 정비를 찾고 있었다. 신의왕후는 왕비간택단자를 제출하였고, 결국 조선의 초대 왕비가 된다. 왕비가 되었을때 남편 태조와 나이 차이가 '''30~40살'''이였다. 신의왕후는 하지만 고뿔에 걸려 예정된 혼례에 참여하지 못했고, [[대조선국 태조|태조]]는 이걸 빌미 삼아 신의왕후를 왕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킨다. 왕후 김씨인 그는 폐비 김씨가 되었다. 폐위된 신의왕후는 궁에서 쫒겨났으며, 가난하게 자랐으나 이제 조선 국모로써 부유한 삶은 살까하는 '''희망이 깨져 망연사실'''하였다고 한다.
| |
| | |
| '''너무 큰 충격'''을 얻어서 일까. 그녀는 궁에서 쫒겨난지 얼마 안되어 향년 20세로 사망한다. 이후 폐비로 기록되어 묘 또한 지나가는 백성들이 밟고 다닐정도로 '''고인이 되서도 모욕'''을 당하던 그녀는 반년이 지나서야 [[대조선국 성종|성종]]때 왕후로 복권되어 '''신의왕후(神懿王后)'''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묘 또한 왕릉으로 이장되었고 종묘에 위패도 세워졌다.
| |
| | |
| ==[[파일:현재2.png|width=30]] '''가족 관계'''==
| |
| ----
| |
| 자식이 하나도 없어서 신의왕후의 핏줄은 사실상 없다.
| |
| | |
| ==[[파일:현재2.png|width=30]] '''평가'''==
| |
| | |
| ・국가의 주요 행사를 참석하지 않아 급진파로 인하여 왕후의 자리에서 폐위된 그녀는 20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만약 그가 폐위되지 않고 왕후의 자리에 있었다면 휼륭한 국모가 될수 있었다고 후대가 평가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