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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념 = 개혁보수주의 | | 이념 = 개혁보수주의<br>기독교민주주의<br>경제보수주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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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개요== | ||
국가인민연합(國家人民聯合)또는 전국인민연합(National People's Union), 약칭 NPU는 | 국가인민연합(國家人民聯合)또는 전국인민연합(National People's Union), 약칭 NPU는 [[1904년]]부터 [[1913년]]까지 존재했던 [[프로콜란드 왕국]]의 [[정당]]이였다. | ||
==기원== | |||
국가인민연합의 기원은 [[프로콜란드 기독교민주연합]]을 당의 기원이라고 보고있다. | |||
==성향== | |||
국가인민연합은 [[프로콜란드 왕국]]의 [[보수주의]] 정당으로, [[프로콜란드 국민연합]]과 상대적 관점으로 비교 했을 때, 국가인민연합은 경제보수주의, 국민연합은 정치보수주의로 평가 받고 있다. | |||
[[1904년]] 창당 당시만 하더라도, 국가인민연합은 기독교민주연합의 후신정당으로서 [[기독교민주주의]]를 표방해왔으나, 소피아 엘라제를 주축으로 하는 개혁보수세력이 당파싸움에서 당권을 거머쥐면서 경제보수주의와 개혁보수주의로 노선을 전환하였다. 거대보수정당의 역할을 했던 만큼, 수권정당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프로콜란드 사회당]]과 연립하는 등, 여러모로 대중적이고 개혁적인 중도정당으로 평가함이 가장 적절하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보수-우익정당으로 평가 받는 것은, 소피아계의 성향과 소피아 엘라제 중심적인 정당운영으로 인해 당내에 다른 계파들이 성장하지 못했기에 경제보수주의와 개혁보수주의 노선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라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 |||
하지만 소피아계가 있음에도, 당내에 포괄적인 사상들을 가진 계파등이 존재한다. 이는 기독교민주연합을 계승 한 것 뿐만 아니라, 여러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인사들이 입당한 역사가 반영된 결과이다. | |||
분야별로 살펴보면, 경제 분야에서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지지하지만,국가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경제개입을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자유시장]]을 강조하며 규제 완화를 비롯해 기업의 자율성에 초점을 맞춘 경제 정책을 선호하며 [[중산층]]을 보호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 |||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대체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편이였다. | |||
법치주의를 중시하고, 엄격한 법 집행과 법적 절차 준수를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며, 가족, 교육, 문화 등 사회 정책에선 전통적 가치를 강조한다. 이는 전통적 가족 구조와 수월성 교육 시스템을 지키려는 시도로도 나타난다. 하지만 일정부분에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나타내는데, 여성인권이나 노동자 처우개선과 같은 인권관련분야에선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2025년 6월 7일 (토) 13:22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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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콜란드 국가인민연합 National People's Union | |||||
국가 | 프로콜란드 왕국 | ||||
NPU | |||||
다시 프로콜란드를 위대하게 | |||||
1904년 4월 17일 (국가인민연합) | |||||
프로콜란드 기독교민주연합 | |||||
프로콜란드 기독교민주연합 프로콜란드 경제공화당 (스로키계) | |||||
1913년 5월 10일 | |||||
세피아 | |||||
개혁보수주의 기독교민주주의 경제보수주의 | |||||
중도우파 ~ 극우 | |||||
에스피 (권한대행 라이히) | |||||
라이히 | |||||
스로키 | |||||
볼다르 | |||||
20석 / 50석 (40%) | |||||
11석 / 50석 (22%) | |||||
기를 높이 올려라 | |||||
네셔널블랙 (#00000) | |||||
국가연구원 | |||||
국가인민연합중앙당후원회 | |||||
국제보수회의 | |||||
프로콜란드청년단 | |||||
프로콜란드 국가돌격대 |
국가인민연합 지도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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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국가인민연합(國家人民聯合)또는 전국인민연합(National People's Union), 약칭 NPU는 1904년부터 1913년까지 존재했던 프로콜란드 왕국의 정당이였다.
기원
국가인민연합의 기원은 프로콜란드 기독교민주연합을 당의 기원이라고 보고있다.
성향
국가인민연합은 프로콜란드 왕국의 보수주의 정당으로, 프로콜란드 국민연합과 상대적 관점으로 비교 했을 때, 국가인민연합은 경제보수주의, 국민연합은 정치보수주의로 평가 받고 있다.
1904년 창당 당시만 하더라도, 국가인민연합은 기독교민주연합의 후신정당으로서 기독교민주주의를 표방해왔으나, 소피아 엘라제를 주축으로 하는 개혁보수세력이 당파싸움에서 당권을 거머쥐면서 경제보수주의와 개혁보수주의로 노선을 전환하였다. 거대보수정당의 역할을 했던 만큼, 수권정당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프로콜란드 사회당과 연립하는 등, 여러모로 대중적이고 개혁적인 중도정당으로 평가함이 가장 적절하다. 그럼에도 대표적인 보수-우익정당으로 평가 받는 것은, 소피아계의 성향과 소피아 엘라제 중심적인 정당운영으로 인해 당내에 다른 계파들이 성장하지 못했기에 경제보수주의와 개혁보수주의 노선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라는 가설이 가장 유력하다.
하지만 소피아계가 있음에도, 당내에 포괄적인 사상들을 가진 계파등이 존재한다. 이는 기독교민주연합을 계승 한 것 뿐만 아니라, 여러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인사들이 입당한 역사가 반영된 결과이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경제 분야에서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를 지지하지만,국가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적극적인 경제개입을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자유시장을 강조하며 규제 완화를 비롯해 기업의 자율성에 초점을 맞춘 경제 정책을 선호하며 중산층을 보호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대체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편이였다. 법치주의를 중시하고, 엄격한 법 집행과 법적 절차 준수를 통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며, 가족, 교육, 문화 등 사회 정책에선 전통적 가치를 강조한다. 이는 전통적 가족 구조와 수월성 교육 시스템을 지키려는 시도로도 나타난다. 하지만 일정부분에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나타내는데, 여성인권이나 노동자 처우개선과 같은 인권관련분야에선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